본문 바로가기

STYLE

로고 플레이의 참패, 럭셔리 브랜드 CEO 교체 붐

김명희 기자

2025. 02. 25

매출 부진에 시달리는 명품 브랜드들이 CEO 교체 카드를 내세우고 있다. 빅 로고를 앞세워 중국에서 흥행 몰이를 하던 기업들이란 점이 흥미롭다.

2023년 12월 루이비통이 마케팅의 일환으로 상하이에 자이언트백을 전시한 모습. 한때 ‘명품의 블랙홀’로 불렸던 중국 소비자들의 변심으로 럭셔리 브랜드들이 매출 부진에 빠졌다.

2023년 12월 루이비통이 마케팅의 일환으로 상하이에 자이언트백을 전시한 모습. 한때 ‘명품의 블랙홀’로 불렸던 중국 소비자들의 변심으로 럭셔리 브랜드들이 매출 부진에 빠졌다.

요즘 명품 업계에 달갑지 않은 트렌드가 부상하고 있다. CEO 교체 바람이 그것이다. 구찌, 발렌시아가, 생로랑 등을 소유한 프랑스 명품 그룹 케링은 올 1월 스테파노 칸티노를 새로운 수장으로 발탁했다. 이탈리아 토리노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스테파노는 명품 업계에 30년 동안 몸담으며 럭셔리 브랜드들의 영토 확장과 질적 성장을 일궈낸 입지전적 인물이다. 프라다에서 마케팅 부문 고위직을 역임하며 중국 진출 교두보 마련과 더불어 IPO(기업공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후 2018년 LVMH 그룹으로 옮겨 공격적인 성장의 시기에 커뮤니케이션과 이미지를 총괄했다. 그가 재임한 5년 동안 LVMH의 매출은 2배가량 늘었다. 케링 그룹은 스테파노에 앞서 생로랑과 발렌시아가의 새 수장도 각각 세드릭 샤르빗과 지안프랑코 지아난젤리로 교체했다. 케링 그룹 측은 “세드릭은 상징적인 파리지앵 하우스를 더욱 발전시키고 독특한 포지셔닝, 헤리티지 및 정체성을 구축하는 미션을, 지아난젤리는 발렌시아가의 영향력과 명성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확장하는 새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영국의 유서 깊은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는 2년 6개월 동안 그룹을 이끌던 조너선 아케로이드를 돌려보내고 마이클코어스와 코치 등을 거친 조슈아 슐먼을 새로운 CEO로 발탁했다. 지방시는 랄프로렌과 조르지오아르마니 등을 거쳐 루이비통 유럽,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 사장을 역임한 알레산드로 발렌티를 새 얼굴로 내세웠다.

에르메스·보테가베네타 등 ‘조용한 럭셔리’는 오히려 매출 증가

중국에서 여전히 인기 높은 에르메스.

중국에서 여전히 인기 높은 에르메스.

명품 업계의 CEO 교체는 매출 부진에 따른 결과다. 케링 그룹의 매출은 2023년 정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2024년 3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15% 감소한 41억 달러(약 6조 원)였으며, 특히 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는 구찌의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26%나 감소해 큰 충격을 안겼다. 생로랑의 매출도 12%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케링 그룹의 2024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7% 감소한 25억 유로(약 3조7000억 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매출 부진으로 CEO를 교체하고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실시한 버버리(왼쪽). 사진은 2024년 9월 열린 기성복 컬렉션과 미국 시카고의 버버리 매장,

매출 부진으로 CEO를 교체하고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실시한 버버리(왼쪽). 사진은 2024년 9월 열린 기성복 컬렉션과 미국 시카고의 버버리 매장,

아이코닉한 트렌치코트와 체크 패턴으로 영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버버리는 2024년 상반기 영업이익이 적자(약 7억4000만 원)로 돌아섰다. 실적 부진에 따른 주가 하락으로 FTSE100(영국증권거래소 시가총액 100위 기업 지수)에서도 15년 만에 퇴출되는 수모를 겪었다. 세계 최대 럭셔리 제국으로 불리는 LVMH(루이비통모엣헤네시) 그룹도 2024년 매출이 전년 대비 3% 감소했다. 루이비통 등의 매출이 드라마틱하게 줄었으나, 리치몬트의 선전 덕분에 그나마 다른 럭셔리 그룹들보다 실적이 양호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유럽 증시에서 시가총액 1위를 기록해온 LVMH는 비만치료제 위고비, 당뇨병치료제 오젬픽 등을 앞세운 덴마크 제약 회사 노보노디스크에 한때 1위 자리를 내주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새로운 CEO 조슈아 슐먼

새로운 CEO 조슈아 슐먼

이들 그룹의 부진은 명품 블랙홀로 통하던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과 관련이 있다. 2017~2021년 중국의 명품 시장은 3배 이상 상승하며 럭셔리 브랜드들의 성장 엔진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에 구찌와 루이비통을 비롯한 거의 모든 브랜드가 중국으로 달려가 매장을 오픈하고, 패션쇼를 개최하는 등 대륙 소비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2022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중국의 경기 침체로 상황이 달라졌다. 럭셔리 시장의 주요 고객이던 청년층의 실업률이 증가하고 중산층의 소비 여력이 떨어지자 이들이 명품 소비에 지갑을 닫은 것.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선 매년 10% 이상 반복적으로 가격을 인상하는 명품 브랜드의 로고에 집착하기보다 개성 있는 스타일의 자국 브랜드를 선호하는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내 명품 소비는 2024년 18% 정도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명품 중에서도 찐 부자들이 선호하는 조용한 럭셔리 브랜드들은 매출이 증가했다. 에르메스는 중국 시장에서 2024년 1분기 15%, 2분기 13%의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이에 에르메스 회장은 애널리스트들에게 “중국 소비자들은 로고가 아닌, 고품질의 제품을 찾는 매우 세련된 사람들”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에르메스의 전체 매출 가운데 45%가량이 중국 시장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히려 중국 의존도가 너무 높은 걸 걱정해야 할 정도다. 에르메네질도제냐, 브루넬로쿠치넬리 등도 중국 시장에서 매출이 증가했으며, 케링 그룹 브랜드 중에서 가장 가격대가 높은 축인 보테가베네타는 중국 매출 볼륨이 4% 정도 신장했다.

어쨌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명품 그룹들은 CEO 교체 외에도 다양한 자구책을 마련 중이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케링 그룹은 프랑스 파리 유명 쇼핑 장소인 방돔광장과 몽테뉴가에 위치한 3개 부동산의 지분 60%를 프랑스 사모펀드 아르디안에 8억3700만 유로(약 1조2500억 원)를 받고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등 현금 확보에 나섰다. 버버리는 기존의 고급화 전략 대신 더 많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대중화 전략을 택했다. 조슈아 슐먼 CEO는 취임 후 “그동안 가격을 전반적으로 너무 높게 책정했고, 고객에게 익숙하지 않은 브랜드 스타일을 만들었다”는 반성 어린 분석과 아울러 트렌치코트와 스카프에 집중하고 가방과 신발 가격을 인하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실제로 버버리는 지난해 9월 대대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케링 그룹의 생로랑도 국내 판매가를 3~15%가량 인하했다.

럭셔리 마켓은 꼭 필요한 물건을 사고파는 게 아니라 사치와 욕망이 반영된 시장이기 때문에 세계 경제가 불확실성이란 터널에 빠진 요즘 같은 시기엔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명품 브랜드들이 내놓은 자구책이 떠나간 고객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버버리 #구찌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