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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젠더리스에서 커밍아웃까지, 달라진 K-팝 

윤혜진 객원기자

2025. 06. 26

K-팝에 그 어느 때보다 젠더리스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고 있다. 패션은 물론 가사, 안무 등 K-팝 전반에서 성별의 영역이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1, 2, 3 성별 구분 없이 나만의 개성을 찾아가는 아이돌들.  네일아트를 한 BTS 진과 젠더리스 콘셉트로 데뷔한 엑스러브, 치마를 즐겨 입는 투바투 연준. 

1, 2, 3 성별 구분 없이 나만의 개성을 찾아가는 아이돌들.  네일아트를 한 BTS 진과 젠더리스 콘셉트로 데뷔한 엑스러브, 치마를 즐겨 입는 투바투 연준. 

최근 8인조 보이 그룹 에이티즈가 미니 12집 ‘GOLDEN HOUR : Part.3’로 컴백했다. 타이틀곡인 ‘Lemon Drop’은 멤버들의 표현에 따르면 습도 높은 청량한 곡이다. 평소 청양고추 매운맛의 강한 퍼포먼스를 보여온 멤버들은 첫 음악방송에서 주황색 섀도로 얼굴에 열기가 오른 듯한 느낌을 표현했고, ‘북부대공’이란 강인한 별명을 지닌 최산은 길이가 짧고 몸에 꼭 맞는 티셔츠를 입었다. 홍중은 프린지 디테일이 춤출 때마다 찰랑거리는 무릎 위 길이의 반바지에 미들 부츠를 신었다. 

최산이 입은 배꼽이 보일락 말락 총장의 타이트한 티셔츠는 이제 남자 아이돌에게 기본 아이템에 가깝다. 춤을 출 때 은은하게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복근이 드러나도록 크롭트 티셔츠를 입기도 한다. 홍중이 입은 반바지보다 더 짧은 반바지에 니삭스 조합도 클래식이 됐다. 붉은 홍조와 주근깨를 포인트로 한, 여름 느낌 물씬 나는 ‘선번 메이크업(sunburn makeup)’은 남자 아이돌이라면 패션 화보나 앨범 콘셉트로 한 번은 거치는 실패 없는 무적 화장법 중 하나다. 말괄량이 삐삐 같으면서도 나른한 퇴폐미가 매력이다.  

패션은 기본, 젠더리스 콘셉트 그룹 데뷔

해가 지날수록 K-팝에서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젠더리스(genderless)’의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지표인 패션은 이미 오래전부터 K-팝을 파고들었다. 젠더리스 룩의 대표 아이템이라 할 수 있는 치마를 예로 들면, 과거에는 각 보이 그룹에서 ‘잘생쁨(잘생김+예쁨)’ 멤버들이 간혹 치마를 입었다면 이제는 더 많이, 더 다르게 입는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이하 투바투)와 엔하이픈은 멤버 전원이 치마를 입고 무대에 오른 적도 있다. 치마를 활용하는 방법도 다양해져 와이드 팬츠에 미니스커트를 입거나, 과감하게 치마‘만’ 입는 경우도 있다. 또 안무 동작을 극대화하는 요소로 치마를 활용하기도 한다. 얼마 전 정규 5집을 발표한 세븐틴은 ‘THUNDER’라는 제목처럼 파워풀한 안무가 몰아치는 뮤직비디오에서 치마 패션을 선보였다. 바지에 무릎 길이 치마를 겹쳐 입거나 랩스커트처럼 바지를 감싸 펄럭이도록 연출한 것.    

평소 사복으로 젠더리스 룩을 즐겨 입는 아이돌도 많다. 지드래곤, 샤이니 키, 투바투 연준 등이 대표적이다. 예전 인터뷰에서 “누가 이건 여자 옷이다, 남자 옷이다 정해놓았냐는 거죠”라며 의상에는 성별이 없다는 생각을 밝힌 투바투의 연준은 치마는 물론 쇼트 팬츠, 망사 옷 등 다양한 아이템에 도전한다. 메종마르지엘라의 크림색 니트 스커트 셋업에 검은 부츠를 매치한 모습은 팬들에게 놀라움을 안기는 동시에 큰 호응을 얻었다. 

걸 그룹이 택한 젠더리스 패션은 실루엣과 믹스 매치가 포인트다. 애써 여성성을 전부 지우지 않는다. 몸매가 드러나는 톱과 와이드 팬츠, 오버사이즈 후디와 쇼트 팬츠 등의 조합에 크롬하츠 같은 시크한 브랜드 액세서리를 즐긴다. ‘쇠 맛’의 에스파 멤버 지젤과 윈터, ‘핫 걸’ 키스오브라이프의 나띠 등 많은 여자 아이돌의 사복 패션에서 크롬하츠 아이템을 찾아볼 수 있다. 귀와 눈썹이 훤히 드러나는 쇼트커트 헤어스타일로 컴백한 아이들의 소연도 요즘 눈에 띄는 인물이다. 강렬한 금발 쇼트커트에 루스한 검은 원피스, 흰색 스니커즈를 매치한 지난 6월 6일 공항 패션의 경우 귀여우면서도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특히 걸 크러시와 러블리한 콘셉트 사이를 오가는 아이들은 젠더리스 개념을 그룹 활동 전반에 적용했다. 지난 5월 미니 8집 ‘We are’로 컴백하면서 팀명도 기존의 ‘(여자)아이들((G)I-DLE)’에서 ‘여자’를 떼고 ‘아이들(i-dle)’로 변경했다. 타이틀곡 ‘Good Thing’의 가사에서도 걸 그룹 색을 지웠다. ‘난 1억 5000짜리 시계를 차고/그 다음에 르쉐 or 람보 키를 손에 들고’라는 부분에는 남자 힙합 가수들의 곡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는 단어인 시계, 스포츠카가 등장한다. 노래를 만든 소연은 “이런 가사가 아이돌 가사 중에 있었나? 여성 아티스트가 이런 가사를 쓴 적 있었나? 싶은 새로운 표현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아예 K-팝 최초의 젠더리스 그룹을 표방하며 올 초 데뷔한 남자 신인 그룹 엑스러브(XLOV)는 성별에 경계를 두지 않고 멋있는 것을 표현해보고자 그룹 콘셉트를 젠더리스로 정했다. 멤버들의 성정체성이 젠더리스는 아니다. 6월 나온 미니 2집에는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대체 불가,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3, 4 걸크러시한 매력으로 사랑받는 아이들 소연과 에스파.

3, 4 걸크러시한 매력으로 사랑받는 아이들 소연과 에스파.

‘나는 나’ 젠더리스 바람 타고 성소수자 인정까지? 

K-팝 업계에서 젠더리스 물결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거대해진 K-팝 산업이 많은 수익을 내려면 수요층의 니즈를 반영해야 한다. 적어도 싫어하는 건 피해야 한다. K-팝의 큰손 MZ세대는 기존의 틀을 깨고 남과 다른 나를 찾는 경향이 강하다. 젠더리스가 유행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정해진 틀이 싫다. 패션 아이템을 구매할 때도 남자용, 여자용 구별하지 않고 내 눈에 예쁘면 그만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도 이런 나와 통하길 바란다. 10대와 20대가 대부분인 아이돌 역시 비슷한 성향이다.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할 경우 팬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한 예로 2016년 BTS의 팬덤 아미들은 BTS 곡 중 일부 가사가 여성 혐오적이라고 문제 삼았고, 이 일을 계기로 빅히트 뮤직과 BTS는 달라진 행보를 보였다. 2020년 선보인 ‘Dynamite’와 이듬해 내놓은 ‘Butter’ 등에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으려 했고, 이를 젠더리스 스타일을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또 빅히트 뮤직이 2019년 선보인 투바투의 세계관에는 ‘너와 나’만 있고 상남자는 없다. 불완전하고 서로 다른 너와 내가 함께 내일을 만들어가는 성장 서사는 어린 왕자와 발레코어, 수호천사 등 몽환적인 비주얼을 통해 정교하게 완성됐다. 

저스트비의 배인은 지난 4월 남자 아이돌 최초로 커밍아웃을 했다.

저스트비의 배인은 지난 4월 남자 아이돌 최초로 커밍아웃을 했다.

무엇보다 젠더리스 성향은 해외 K-팝 팬일수록 강하다. 그렇기에 하이브와 미국 게런 레코드가 공동 제작한 글로벌 6인조 그룹 캣츠아이의 두 멤버 라라와 메간이 최근 연이어 자신들의 성정체성을 팬들에게 솔직히 고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난 4월 22일 한국에 기반을 둔 현역 보이 그룹 멤버가 성소수자임을 고백했다. 2021년 데뷔한 6인조 보이 그룹 저스트비의 멤버 배인은 미국 LA 월드 투어 중 “내가 LGBT(성소수자) 커뮤니티 일원인 것이 자랑스럽다. 오늘 나 자신이 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털어놓았다. 이 고백은 회사와 협의된 부분이었으며, 저스트비는 6월 21일 한국에서 콘서트도 열었다. 최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배인은 “무엇보다 나 자신으로 인해 팀 멤버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에 미안함이 컸다”며 “그냥 커밍아웃한 K-팝 남자 아이돌로만 남을지, 그 이후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결국 내 몫이지 않겠나.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서상, 그리고 이성의 지지가 절대적인 K-팝 산업 특성상 배인이 계속 잘 활동해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K-팝 안의 거센 젠더리스 바람이 단순히 패션에 국한되어 있거나, ‘힙해 보이는 나에 취한 나’들이 만든 유행 좇기가 아니라면 생각해볼 거리임은 분명하다.

#젠더리스 #아이돌 #저스트비 #여성동아 

사진출처 아이들 연준 엑스러브 BTS 배인 에스파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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