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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예술가의 세계

가면 통해 현대인의 욕망 표현하는 화가 이철희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2008. 10. 21

‘골드 페르소나’ 연작을 통해 현대인의 성공과 신분상승 욕망을 표현하는 화가 이철희의 작업실을 찾았다. 황금빛 가면을 쓴 가수 비와 중국 화폐에 등장한 마릴린 먼로 사이에서 그가 들려주는 추락과 비상의 인생역정.

가면 통해 현대인의 욕망 표현하는 화가 이철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화폐인 미국 달러화에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인기 가수 비의 얼굴을 그려넣었다. 떠오르는 강대국 중국의 위안화에는 세대를 초월한 영원한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가 들어갔다. 두 인물 모두 화려한 컬러 퍼즐로 구성된 가면을 썼다. 조각가이자 화가인 이철희씨(47)의 작품에는 현대인이 갈망하는 성공과 신분상승을 이룩한 유명인사들이 황금빛 가면을 쓴 모습으로 등장한다.
“인간은 누구나 보다 나은 내일을 추구하고 화려한 도약을 꿈꿉니다. 비와 마릴린 먼로가 쓰고 있는 ‘골드 페르소나(황금가면)’는 제가 꿈을 실현한 그들에게 수여하는 일종의 월계관이라고 할 수 있죠.”
청동에 금도금을 입힌 조각을 비롯해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가면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다양한 상황에 따라 바꿔 쓰는 여러 개의 얼굴을 의미한다.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은 ‘인간에게는 천개의 페르소나가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페르소나를 쓴다’고 했죠. 저는 또 다른 얼굴인 가면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군중 속에 이름 없이 파묻혀 있거나 예비군복을 입고 있을 때는 무책임하게 함부로 행동하다가도 원하는 것을 얻거나 자신을 알려야 할 때는 진지하게 교양과 예의를 차리는 것처럼….”
금을 소재로 한 이유는 성공한 이에게 주어지는 금메달이라는 상징적 의미와 더불어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소재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금으로 가면을 만든 데는 신분 상승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목표한 바를 성취하려는 노력을 긍정적으로 보는 작가의 시각도 반영돼 있다.
“돌로 만들든, 플라스틱으로 만들든 미술작품은 어차피 많은 돈을 주고 사는 것 아닙니까. 이왕이면 작품을 구입하는 사람에게 고액의 재료로 만든 작품을 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금으로 만든 덕분인지 그의 작품은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한번은 아예 순금으로 조각을 만들 계획도 세웠다가 견적이 7억원 가까이 나와 포기하고 그 대신 도금이나 코팅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언젠가는 아주 고가의 순금 마스크를 하나 만들 생각입니다. 골드 페르소나 작가로서의 이미지도 확실히 부각시키게 되고 또 그런 작품은 구매자에게도 환금성을 보장해줄 테니까요(웃음).”
가면 통해 현대인의 욕망 표현하는 화가 이철희

들쥐 나오는 창고에서 7년간 인고의 세월 보내
가장 높이 날아오르려는 인간의 욕망을 금빛 가면을 통해 성찰하기까지 그에게는 화려한 비상을 시도하다 처절한 바닥으로 떨어진 아픈 세월이 있었다. 경희대 미대를 거쳐 홍익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각종 미술대전 입상과 수십 차례의 전시회 개최 등 활발한 경력을 자랑하던 그는 지난 93년 일본에서 개인전을 열려다가 크게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빚을 잔뜩 짊어진 그는 경기도 하남시의 버려진 창고에서 무려 7년을 살았다. “들쥐가 나오는 창고에서 그림을 그리며 인생공부 많이 했던” 그 시절, 명함을 들고 이리저리 영업을 다닌 끝에 간신히 찜질방에 그림 한 점을 팔고 온 날도 있었다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소설도 있잖아요. 날아오르려 하지 않는 자에게는 추락도 없습니다. 욕심이 많아 설치고 다니며 일을 벌이다가 추락도 한 거죠.”
가면 통해 현대인의 욕망 표현하는 화가 이철희


그전까지 정보사회에서 감시와 통제를 당하는 인간의 비극적 상황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하던 그는 그 이후 방향을 바꿔 인간 내면의 욕망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러 차례 공모전에 당선돼 수억원 규모의 작품을 만들고, 골드 페르소나 시리즈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가난의 그늘은 물러갔다. 서울 청담동 사무실과 김포의 작업실을 둔 ‘돈 잘 버는’ 예술가로 복귀한 지금 그는 예술의 상업화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텔레비전 같은 가전제품은 ‘필요해서 샀다’고 말하면서 화가의 작품은 ‘사줬다’고 표현합니다. 마치 은혜를 베풀었다는 듯이. 저는 그게 못마땅해요. 예술가의 재능과 에너지를 당당하게 상품화하고 자연스럽게 돈으로 환산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합니다.”
가면 통해 현대인의 욕망 표현하는 화가 이철희

미국 달러화에 가면을 쓴 월드 스타 비의 모습을 그려 넣은 Gold persona-World star. (좌) 황금 가면을 쓴 마릴린 먼로. Gold persona-Monroe P. 작가는 황금가면을 통해 성공과 신분 상승의 욕망을 표현했다고 한다.(우)



10월1일부터 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최되는 마니프(MANIF) 서울국제아트페어에 참여해 개인전을 열고 내년 홍콩, 미국 마이애미 등에서 열리는 국제아트페어 참여하는 것은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미술품 수집가이면서 동시에 “작품 잘 팔리는 화가”가 되겠다는 야망을 떳떳하게 드러내는 그는 평소 명품 잡지를 즐겨 본다고 한다.
“명품 잡지 광고를 보면 시장에 모이는 인간 군상의 욕망, 도시적인 삶의 열정, 그 최첨단이 가장 적나라하고 황홀하게 묘사돼 있어요. 화려하고 세련된 모델의 포즈와 명품 사진에서 작품 아이디어를 많이 얻고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마치 기름을 넣지 않으면 달릴 수 없는 자동차처럼 미술작업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오전에는 주로 컴퓨터 작업으로 대형 건축 조형물을 구상하고 오후에는 조각작업을 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린다. 미술과 관련된 일 외에는 관심이 없어 시간과 돈을 안 쓴다. 만나는 사람도 미술분야 종사자로만 한정돼 있다고. 인간의 진솔하고 원초적인 욕망을 미래의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의지로 보는 그의 작품세계와 미술가 이철희는 아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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