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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한 이 가족

정치에서 한 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가는 김한길·최명길 부부

글·김유림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8. 05. 23

김한길·최명길 부부가 결혼 13년 만에 처음으로 긴 휴식에 들어간다. 지난 18대 총선에 불출마한 김한길 의원이 오는 5월 말 임기를 마치는 것. 최명길 또한 올해 둘째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당분간 학부형으로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두 사람에게 가정생활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었다.

정치에서 한 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가는 김한길·최명길 부부

벚꽃이 만발한 4월 중순, 서울 구로구 도림천을 지나 국회의원 김한길(56)·탤런트 최명길(46) 부부의 자택에 들어서자 두 아이가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를 합창했다. 올해 초등학교 4학년, 1학년이 된 어진이와 무진이는 인사를 하자마자 곧장 방으로 뛰어들어가 컴퓨터 게임에 몰두했는데, ‘주말에만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라고 한다.
화사한 연둣빛 스웨터를 입은 최명길은 우당탕탕 방으로 뛰어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남자아이들이라 클수록 컨트롤하기 쉽지 않다”며 눈을 찡긋거렸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인사하며 악수를 건네는 김한길 의원은 지난 4월9일 총선을 마치고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최명길은 남편이 지난 1월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남편과 함께 적극적으로 통합민주당 후보 선거 유세를 지원했다. 선거운동이 막을 내릴 때까지 총 91번 유세 현장에 나갔는데, 현재 KBS 사극 ‘대왕 세종’에도 출연 중이어서 선거기간에는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정도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남편이 총선에 출마하지 않으니 유세 나갈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당 후보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나가야 한다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 선거기간 내내 열심히 유세 현장을 누볐죠. 새벽에 드라마 촬영하고 들어와서 다시 유세 나갔다가 또 촬영장으로 직행, 새벽이 다 돼 집에 들어오는 생활을 반복했어요. 그러느라 선거기간에는 아이들 학교 과제물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죠.”

정치에서 한 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가는 김한길·최명길 부부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최명길은 큰아들 어진이가 초등학생이 된 후로 지금까지 줄곧 학부모 대표를 맡고 있다고 한다.


“정치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가족과 많은 시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반가웠어요”
지난 95년 결혼과 동시에 정치가의 아내가 된 그는 처음 남편이 정치를 하겠다고 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치를 그만두기로 결정했을 때도 순순히 남편의 뜻을 받아들였다. 서운한 마음이야 들었지만 남편이 많은 갈등 끝에 용단을 내린 것이니 따뜻한 말로 위로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사생활도 없이 바쁘게 살아온 남편이 지금부터라도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고.
“총선 불출마를 두고 오랜 시간 고민하지 않았어요. 여러 사람에게 묻지도 않고 아내한테만 의견을 얘기했죠. 그러자 아내는 ‘그럼 앞으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네요. 잘됐어요’라고 덤덤하게 말하더군요(웃음). 사실 아내의 반응에 제가 더 놀랐는데, ‘그동안 내가 가족에게 너무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중한 건 가까운 데 있는 것인데 말이죠.”
최명길은 정치가의 아내로 사는 동안 ‘일희일비’하는 정치에 날마다 고심하는 남편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으면서 고민하는 남편을 볼 때면 ‘자기 자신을 그만 좀 괴롭히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가족도 사랑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고. 또한 정치인에 대한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 또한 그를 힘들게 했다고 한다.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인데도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한꺼번에 매도당하는 현실에 속상할 때가 많았다고.
“집에서는 정치 얘기 잘 안 하려고 해도 아내가 먼저 알고 물을 때가 많아요. TV나 신문을 통해 돌아가는 상황을 다 아니까요. 전화 통화하는 내용만 들어도 제 기분을 간파하고, 어떨 때는 참모들도 하지 못하는 얘기를 해줘요.”
“아직도 전 정치에 대해 잘 몰라요. 하지만 진심으로 남편을 위하는 사람이 저 말고 또 누가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듣기 싫은 얘기도 해주려고 하는 거죠. 좋은 얘기는 저 말고도 해줄 사람이 많잖아요(웃음).”

“아이들을 평범하게 키우기로 뜻을 모았어요”
김 의원은 벌써부터 여러 분야에서 향후 행보와 관련해 제안을 받지만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휴식을 취할 계획이다. 두 아이가 이만큼 자라는 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해주지 못한 게 미안해 이번 기회에 ‘좋은 아빠’ 노릇도 톡톡히 해볼 작정이다. 며칠 전에는 어진이 학교에서 지정한 ‘아버지의 날’ 참관수업에 참석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최명길은 “남편이 바빠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자녀교육에 뒷짐만 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며 “아이들이 아빠를 꼭 필요로 하는 순간에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려 애썼고, 해마다 어진이 운동회에도 참석했다”고 말했다. 특히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 들어올 때가 많은데 그러면 다음 날에라도 아이들을 불러서 얘기를 해요. 하루 동안 학교에서 어땠고 집에서는 엄마와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묻죠. 아이들과 얘기하다 보면 아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얼마만큼 생각이 자랐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대화만큼 중요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어진이한테 장차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더니 의사가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이유는 엄마 아빠가 자기 친구들 부모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백 살까지 살게 해주고 싶어서래요. 그래서 ‘그럼 전공은 뭘 할 거야?’ 하고 물었더니 글쎄 ‘소아과’라고 답하잖아요. 아내와 한참을 웃었어요(웃음).”
어진이는 얌전하고 어른스럽지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에 반해 무진이는 밝고 명랑하며 개구쟁이 기질이 다분하다고.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아이는 엄마 아빠가 질투가 날 정도로 형제애가 두터운데,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고 하면 ‘형아’ ‘동생’이라고 할 정도. 잠을 잘 때도 둘이 손을 꼭 잡고 잔다고 한다.

정치에서 한 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가는 김한길·최명길 부부

“물론 싸움도 많이 하죠. 언젠가 한번은 둘이 하도 티격태격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 너희 둘 중 한 명을 다른 집으로 보내야겠다’고 하니까 아이들이 깜짝 놀라서 ‘안 돼요. 헤어지면 안 돼요’ 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웃음). 그 모습에 혼을 내기는커녕 웃고 말았죠.”
최명길은 아이들에게 엄하게 대하려고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아이들 앞에서만큼은 애정을 절제하기 힘들다는 것. 더욱이 서른여섯 다소 늦은 나이에 첫아이를 낳은 그는 어진이·무진이가 태어난 뒤로는 ‘연기자, 정치가의 아내’라는 타이틀에 앞서 엄마로서의 역할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한다.
“한때는 연기가 인생의 전부라 생각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이들 돌보는 게 가장 중요해요. 학부형들과도 자주 어울리는데 어진이가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학부모 대표를 맡고 있어요. 아무래도 제가 나이가 가장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엄마들끼리 따로 모여서 정보도 교환하고, 제가 바쁠 때는 다른 엄마들이 아이들을 챙겨주기도 하니까 고맙죠. 며칠 전에는 무진이 친구 엄마가 전화를 해서는 무진이가 학교에서 착한 일을 했으니 칭찬해주라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학년이 높아질수록 엄마의 부담감은 커지기 마련. 그는 아이들 교육문제를 놓고 남편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는데, 토론의 끝은 항상 ‘평범하고 성실한 아이로 키우자’로 매듭지어진다고 한다.
“요즘은 너도 나도 영어 조기교육에 열을 올리지만 아이들에게 정작 부족한 게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해요. 영어를 좀 더 잘하기 위해 부모의 사랑을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죠. 우리 아이들도 강남이 아닌 신도림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전혀 불만이 없어요. 아내와 결혼하면서도 한 얘긴데, 맥아더 장군이 이런 말을 했어요.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게 하라.’ 저희는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고 싶어요.”

처음에는 공통 관심사 많지 않았지만 대화로 공감대 키워
두 사람은 결혼 당시 유명 작가와 탤런트의 만남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열 살의 나이 차도 화제가 됐는데 정작 두 사람은 세대 차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단지 서로 오랫동안 관심분야가 달랐기 때문에 결혼 초에는 공통 관심사를 갖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각자 활동했던 분야가 다르고 연애도 오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교집합’이 크지 않았어요. 제가 연예계를 모르듯 아내도 정치나 사회 면에 관심이 많지 않았죠. 그래서 낸 아이디어가 각자 신문의 칼럼을 하나씩 오려서 읽고 아침마다 그것에 대해 토론하는 거였어요. 아내가 많이 물어보기도 했는데, 어쩔 땐 저도 잘 모르는 게 있어서 공부한 뒤 알려주기도 했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의도적인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이제는 남편이 한마디를 하면 어떤 생각을 갖고 하는 말인지를 간파할 수 있어요. 남편과 살면서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바로 ‘대화의 힘’이에요. 부부간에도 얘기를 잘 안 하다 보면 나중에는 할 말이 없고, 또 어색해서 대화를 못한다고 하잖아요. 반면 매일 보는 단짝과는 볼 때마다 할 얘기가 넘쳐나고요. 저희는 그동안 눈 코 뜰새 없이 바쁘게 살아왔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대화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 했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권태기는 없었는지 궁금한데, 이 질문에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글쎄요. 워낙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서 그런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었던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최명길은 “살면서 순간순간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가슴에 사무칠 만한 기억은 없다”며 미소 지은 뒤 8년 전 김 의원이 장관직을 내던지고 보궐선거에 나왔을 때의 일화를 들려줬다.
“무진이를 낳고 열흘 만에 유세 현장에 나갔는데 남편이 낙선했어요. 당시 저는 사람들만 만나면 눈물이 날 정도로 상심이 컸는데, 남편이 ‘낙선 인사’를 나가자고 하는 거예요. 부기도 다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사까지 다니라고 하니 너무 야속하더라고요. 맞는 정장이 없어서 한복을 입고 인사를 다녔는데 그땐 정말 남편이 미웠어요. 그러고 난 뒤 남편과 여행을 떠났는데 버스 안에서 노을 지는 풍경을 보고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갑자기 센티멘털해져서 제가 남편한테 ‘여보, 인생이 뭐야’ 하고 물었더니 남편도 같이 진지해져서 인생에 대해,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더라고요. 저를 배려하는 남편의 모습에 많이 감동했고, 김한길이란 남자의 진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죠(웃음).”
연기자, 정치가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온 최명길은 5월 초 드라마 ‘대왕 세종’ 촬영을 마치고 당분간 방송 활동을 하지 않을 계획이다. 정치에서 한 발 물러난 남편과 함께 오롯이 가족중심의 생활을 하고 싶다는 것. 조만간 가족여행을 계획 중이라는 김 의원은 “이제 백수가 됐으니 당분간은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아이들과 아내를 위한 시간만 갖겠다”며 털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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