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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합니다

이영돈 PD가 들려준 취재 뒷얘기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 진행자

글·김명희 기자 / 사진·성종윤‘프리랜서’

2008. 05. 23

KBS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을 진행하는 이영돈 PD. 지난 1년 동안 농약을 쳐 재배한 티백 녹차, 브랜드 달걀의 허와 실, 아파트 과장 분양광고의 문제점 등 생활과 직결된 사안들에 관해 문제제기를 해온 그를 만나 프로그램 제작 뒷얘기와 현명한 소비 방법에 대해 들었다.

이영돈 PD가 들려준 취재 뒷얘기

몸에 좋다는 이유로 티백 녹차를 즐겨 마시던 사람들에게 지난해 8월 방영된 KBS 시사 프로그램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의 방송 내용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일부 녹차 제품에서 맹독성 농약인 파라티온이 검출됐다는 내용과 아울러 대규모 녹차 재배를 위해서는 농약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농민의 증언 및 업체의 생산과정이 생생하게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소비자 고발’은 지난해 5월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유전자재조합식품(GMO) 생산과 판매의 문제점, 고가 브랜드 달걀의 허와 실, 외제 차의 터무니없는 가격, 세제를 뿜어내는 뚝배기 등 다양한 문제를 제기해왔다.
서울 여의도 KBS 사무실에서 이 프로그램의 책임프로듀서이자 진행자인 이영돈 PD(42)를 만났을 때, 다섯 평 남짓한 공간에는 고춧가루 포대, 김치, 농약, 비료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스물다섯 명의 작가와 PD가 그 공간에서 머리를 맞대고 프로그램을 제작한다고 한다.
“많이 어수선하죠. 아직 검증이 덜 끝난 제품들입니다. 보통 사무실에 음료수나 간식거리가 있으면 사람들이 오다가다 먹기도 하는데 저희 사무실에 있는 음식은 아무도 손을 안 대요(웃음).”
이 PD는 81년 KBS에 입사한 이후 ‘생로병사의 비밀’ ‘술, 담배, 스트레스에 관한 첨단보고서’ ‘마음’ 등 화제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왔다. 그가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보통 ‘소비자는 왕’이라고 하지만 정작 소비자 권익 보호는 굉장히 취약한 측면이 많아요. 소비자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는 곳도 없고 피해를 입었을 때 보상해주는 시스템도 부족하고요. 그런 상황이다 보니 많은 사람이 생활에서 겪는 불편을 ‘나만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느낀 점은 ‘내가 겪는 불편은 다른 사람도 똑같이 겪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이 PD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자신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사례가 많다고 한다. 때문에 녹차·달걀·인삼 등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제품, 건강과 직결된 제품, 뚜렷한 근거 없이 신비한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제품은 꼭 한번 뒤집어보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특히 유전자재조합식품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나도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유전자재조합식품인지 여부를 알 길이 없다는 점에서 충격이었어요. 덕분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생활습관도 많이 바뀌었죠. 물건을 구입할 때는 원료부터 생산과정, 유통과정까지 꼼꼼히 살피게 되더라고요.”

“소비자가 좋은 제품을 정당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 제공하는 게 목표예요”
이영돈 PD가 들려준 취재 뒷얘기

과거에도 소비자가 당하는 각종 피해를 지적하는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소비자 고발’처럼 여러 명의 PD가 투입돼 심도 깊게 파헤친 적은 없었다. 프로그램에서 문제점이 제기된 제품이나 사례는 식약청·공정거래위원회 등 관련 단체가 직접 나서서 조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긍정적인 역할을 한 덕분에 이 프로그램은 지난해 ‘시청자 위원회상’ ‘좋은 방송 프로그램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PD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가장 보람된 순간으로 보도를 통해 제도적 변화를 이끌어냈을 때를 꼽았다.
“기혼자를 소개해주거나 학력을 속이는 일부 결혼정보업체의 사기행각에 대한 보도가 나간 후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에 착수, 결혼정보회사에 시정 명령을 내렸고 소비자들은 가입비를 환불받을 수 있게 됐어요. 또 신규 아파트 단지에 들어설 학교 용지 구입비를 아파트 분양자에게 일부 부담시켰던 사례도 보도가 된 후 정부 시행령이 제정돼 오는 8월부터 돌려받을 수 있게 됐죠.”
하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는 보람만큼이나 큰 진통이 따른다고 한다. 프로그램의 파급력이 커질수록 고발의 대상인 생산자, 기업 등의 불만도 쌓여간다는 것.
“영향력이 커질수록 악명도 높아지더라고요. 업체들 가운데는 저희를 ‘저승사자’라고 부르는 곳도 있고요. 저희 프로그램의 목적은 기업을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당장은 피해를 입더라도 잘못된 점을 고쳐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 더 큰 신뢰가 쌓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비행기를 타고 북극항로를 지날 때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다는 보도와 관련해 업체 측에서는‘불가피하게 벌어지는 일인데 왜 알려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느냐’고 주장하지만 정보를 차단하는 게 능사는 아니잖아요. 문제점이 있다면 이를 정확히 알리고 다 같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PD는 고발 프로그램의 가장 큰 딜레마로 일반화 논리를 꼽았다. 달걀 중 일부가, 녹차 중 일부가 몸에 해롭다고 하면 소비자들이 그 품목 자체에 대한 소비를 전반적으로 꺼려 정당하게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도 피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영돈 PD와 프로그램 제작진은 최근 그간의 방송 내용과 프로그램 방영 이후 개선된 점, 취재 후기 등을 곁들여 ‘소비자 고발, 그리고 불편한 진실’을 펴냈는데 여기에는 이런 제작진의 갈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일부 업체 때문에 전체 생산자가 피해를 보는 사례를 막기 위해 실명을 공개하려고 노력하지만 법률적인 측면 때문에 쉽지 않아요. 때문에 소비자 개개인이 항상 눈과 귀를 열고 좋은 제품을 식별하고자 하는 자세를 가지면 좋겠어요.”
이 PD의 책상에는 지난 2월 ‘착한 소비’ 편에서 방영됐던 동티모르산 커피가 놓여 있었다. ‘착한 소비’란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그들에게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마련해주고 소비자도 좋은 제품을 구입하는 대안적인 소비 형태라고 한다.
“이젠 싸게 사는 물건이 좋은 게 아니라 좋은 물건을 정당한 가격에 사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식을 소비자가 가질 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유통업자는 폭리를 취하기보다는 합리적인 선에서 정당한 이윤을 취해야 하며, 정부는 가격 감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동시에 식품안전 등의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미세한 부분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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