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어느 때보다 사람들에게 위로가 필요한 시대인 것 같아서 책을 펴내게 됐어요.”
최근 노용욱(57)·양화정(54) 부부는 ‘아내의 기도는 하나님의 눈물이다’라는 책을 펴내고 화가 미켈란젤로,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등의 절실한 마음이 담긴 기도문을 소개하며 위기의 시대에 절망을 극복하는 노하우를 소개했다.
“책 내고 난 후 잠이 안 왔어요. 아내와 제가 서로 힘을 합해 책을 냈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했거든요.”
동원대학 출판미디어과 겸임교수인 노씨는 27년간 언론·출판계에 종사한 언론인, 그의 부인은 서양화가로 각자의 분야에서 인정을 받아온 베테랑들이다. 그렇지만 부부가 함께 글과 그림을 엮어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6월부터 공동 작업을 했어요. 매일 집에서 남편은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가서 글을 쓰고, 저는 거실에서 그림을 그렸죠. 젊어서는 각자 바빠서 서로 얼굴 볼 새도 없었는데 거의 하루 종일 집에서 함께 작업하니까 참 좋더군요.”
내친 김에 지난 9월에는 경기도 분당에 부부의 공동 작업실도 마련했다. 25평 규모의 원룸에 남편의 물건이라고는 책상과 컴퓨터, 프린터가 전부이고 부인의 그림과 화구가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집에서 아침식사를 끝내면 부부가 나란히 이 작업실로 발걸음을 옮긴다고 한다.
“남자가 명예퇴직을 하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지니까 지나치게 아내에게 집착한다고 해요. 여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집살이가 시작되는 것이죠. 저희는 반대예요. 각자 혼자 좋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요. 한 공간에 머물면서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는 한 가지 방법인 것 같아요.”
굳이 둘이 할 수 있는 취미를 찾지 않더라도 각자의 세계를 열심히 가꾸어 나가는 것 또한 부부의 공존 방식이라고 믿는 이들 부부. 하지만 각자 일에 대한 프로의식이 강한 만큼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소소한 마찰이 있었을 법도 하다.
“저희 부부는 아까시나무 스타일이 아니라 은행나무 스타일이에요. 아까시나무 뿌리처럼 부부라고 해서 서로 엉키려고 하지 않고 암수가 다른 은행나무처럼 그저 서로를 바라볼 뿐이에요. 친구 같은 부부라고 할까. 절대 내 잣대를 가지고 서로의 영역에 개입하는 일은 없어요.”
부부간의 불화를 예방하기 위해 ‘비판’도 삼가는 편이다. ‘무조건 칭찬해주자’가 이들이 부부애를 키워나가는 방식이다.
“비판보다는 칭찬이 더 큰 열매를 맺게 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애정이 담긴 비판도 결국은 상처가 되거든요. 아내가 작업 도중 ‘제 그림 어때요?’ 하고 물어볼 때 저는 무조건 칭찬해줍니다. 사람은 칭찬을 받을 때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이 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거든요.”
양씨도 남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한다.
“자신감이 떨어지고 위축될 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남편의 말 한마디였어요. ‘당신은 잘할 수 있어’라는 격려의 말에 또다시 도전할 힘을 얻게 됐죠.”
은행나무처럼 친구같은 부부로 살아간다는 노용욱·양화정 부부.
자녀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들 부부 슬하에는 결혼을 한 딸 하나(28)와 대학생인 아들 준승(22)이 있는데 꾸지람보다는 격려와 칭찬이 우선이라고 한다.
“자녀들에게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치는가를 염두에 두고 생활해요. 또 잔소리를 하기 이전에 자식을 위해 ‘절대자’에게 늘 기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죠.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알면 부모, 자식간에 무슨 갈등이 생기겠어요?”
노씨는 ‘마음의 눈’으로 보면 부부 사이나 자녀교육에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내가 널 이만큼 사랑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매일 새벽 두 손을 모으는 정성을 보여주면서 가족의 마음을 얻으라고 조언한다.
“처음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할 때는 갈등이 많았어요. 저를 별로 챙겨주는 것 같지 않았거든요. 친구들 남편은 회사에 가서도 하루 수십 번씩 전화하고 그러는데 남편은 그러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불만을 말하면 남편은 ‘서로 소유하려 들지 말고 열려 있는 친구 사이로 지내자’고 하더군요.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뒤늦게 제가 추구하는 사랑이 집착이란 걸 알았고 지금은 남편이 말한 방식대로 친구처럼 서로를 존중하면서 살려고 해요.”
별로 싸운 기억도 없다는 이들 부부를 보고 있자니 ‘닭살 커플’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로부터 닭살 커플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한다.
“아내가 제 여동생과 대학 친구예요. 축제 때 이 사람이 파트너가 없다고 해서 함께 갔다가 ‘내 여자다!’ 하고 반했죠.”
어쩌면 평범한 연애로만 끝날 수도 있었던 이들의 사랑에 양씨 부모님이 휘발유를 끼얹었다.
“다들 중매결혼을 하던 시대라 연애결혼은 절대 안된다며 집안의 반대가 심했어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친정이 있는 전주에서 교편을 잡았고 남편은 서울에서 생활했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중간 지점인 대전에서 만났어요. 헤어질 때 서로 손을 꽉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렇게 애절한 심정으로 5년간 연애를 했고 마침내 결혼에 성공했다. 그래서인지 웬만한 문제는 서로 덮어주고 넘어간다.
“딸은 결혼해서 시드니에 살고 있는데 결혼 전날 남편과 싸울 일이 생기면 ‘첫 마음을 생각해라’ ‘남편의 눈물을 생각해라’ 하고 말해줬어요. 그런 기억을 상기하면 절대 상대방을 미워할 수 없거든요. 사랑은 나누는 게 아니라 서로의 잘못을 덮는 것 아닌가요?”
노씨는 요즘 높아가는 이혼율에 대해서도 염려의 마음을 털어놨다.
“상대방을 감성의 눈으로 보지 않고 머리로만 따지기 때문에 부부싸움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요즘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가정이 파탄 나는 경우도 많잖아요. 위기의 순간에 기도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을 겁니다. 배우자에게 화를 내고 싶을 때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을 참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럼 달라질 겁니다.”
노용욱·양화정 부부는 암수가 서로 적당한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을 때 더 많은 열매를 맺는 은행나무처럼 해로하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이들이 ‘아름다운 간격’을 유지하며 열매 맺을 황혼의 삶이 더욱더 풍성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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