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권 교수는 ‘남자의 탄생’을 통해 한국 남자가 가부장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혔다.
살을 맞대고 살면서도 서로 모르는 게 부부라고 한다. 단순히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 차이 때문만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사내’와 ‘계집’이라는 전혀 다른 코드로 길러져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 만큼이나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여자’의 본성에 대한 탐구는 그동안 여성학자와 여성 소설가들에 의해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반면 ‘남자’에 대한 탐구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그 결과 자기가 누구인지 깨달은 여자들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왔지만 여전히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남자들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가정과 사회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밥을 푸는 데도 순서가 있는 가부장 가족구조
그런 점에서 한 사내아이가 5세에서 12세까지 겪은 체험들을 꼼꼼하게 기록한 ‘남자의 탄생’은 눈길을 끈다. 한국 특유의 가족문화와 사회구조가 한국 남자의 인성 형성을 어떻게 결정짓는지를 꼼꼼히 탐구한 최초의 분석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살을 맞대고 산 아내도 모르는 ‘남자’의 본질을 듣기 위해 저자 전인권 성공회대 연구교수(45)를 만났다.
그는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나는 누구인가’ 하는 자기분석은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작업”이었다고 했다.
“사실 남자들은 정신없이 살고 있어요. 자기가 누구인지 모를 뿐더러 ‘내가 누구인가’ 하는 의문도 없이 살죠.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남자에게는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그동안 남자의 본성이 어떤지 아무것도 모른 채 비난만 했던 여자들은 남자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거죠.”
그는 남자와 여자는 기본적으로 ‘여자는 횡적 대화능력이 뛰어나고 남자는 종적 대화능력이 발달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여자들은 동시에 여러 새끼를 양육해야 한다는 생물학적 본능에 의해 한사람 한사람을 분리해서 제각각 관리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 반면 남자들은 생존을 위해 위로부터 짓누르는 힘(권력)을 이겨나가고 아랫사람을 누르는 힘(권력)을 키워나가는 능력이 강조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종적인 대화능력이 발달했다고 한다.
“한국사회는 지금까지 가부장제 사회였기 때문에 그런 차이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더구나 주5일 근무제가 보편화되면 직장이라는 종적인 공간보다 가족이라는 횡적인 공간의 비중이 커지는데 현재 남자들은 거기에 적응할 능력이 없어요. 따라서 지금 자신의 문제를 되돌아보지 않으면 종국엔 인생의 쓴맛을 볼 수밖에 없어요. 저처럼.”
그는 스스로 착한 아들, 친절한 동료이고, 스무살이나 어린 대학생들에게 높임말을 쓸 정도로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득 되돌아보니 지난 몇년간 가족, 직장, 친구관계에서 실패를 거듭했다는 것.
전인권 교수는 정치학자이면서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에 당선된 미술평론가이기도 하다.
“실패의 원인을 찾기 위해 스스로 묻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어요. 어쩌면 전 ‘동굴 속 황제’처럼 밖을 내다볼 수 없는 동굴 속에 들어앉아 나 혼자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해왔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실패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를 제대로 알기 위해 어린 시절의 나부터 찾아보기로 한 거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버지였다. 생각해보면 아버지와 대화를 해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당신의 의무와 책임감을 생각할 뿐, 가족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고 있었다. 어떤 순간에도 마음을 드러낸 적이 없다. 결국 아버지는 식구들과 같은 공간에서 살았지만 딴 세상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자신도 그런 아버지를 꼭 닮은 남자가 되어 있었다. 전교수는 거기에서부터 한국 남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생각했다고 한다.
“한국의 남자는 어머니의 ‘절대적’ 사랑을 받으며 건강한 사내아이로 커가다 여섯살 무렵부터 아버지를 통해 서서히 사회의 질서에 편입되며 ‘남자’가 되어갑니다. 모성의 공간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본받으며 한국사회의 신분적 질서 속에 자리잡게 되는 거죠.”
남자들, 지금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인생 실패할 수밖에 없어
그에 따르면 한국 남자는 어릴 때부터 독특한 가족문화에 의해 가부장제의 권력과 보수성을 익히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부부가 공유하는 안방만 보아도 아버지의 공간은 늘 깨끗하고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물론 물건을 정돈하는 사람은 어머니 혹은 자식들이다. 아버지는 물건정돈 따위의 시시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머니의 공간엔 물그릇, 반짇고리, 포대기 등이 너저분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그건 의식주라는 기본욕구를 만족시키는 기능을 한다. 결국 아버지의 공간은 질서와 명령의 공간이고, 어머니의 공간은 명령수행과 생산의 공간인 셈이다. 그리고 자식들은 생활 속에서 그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위라는 걸 몸으로 확인한다.
또한 밥을 푸는 데도 질서가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형-나-남동생의 순서로 남자들 밥을 먼저 푸고 누나와 여동생의 밥을 푸며 마지막으로 당신의 밥을 푼다. 솥 안에 있을 때의 밥은 밥 자체이지만 밥그릇으로 이동하는 순간 밥조차도 권력과 위계의 구도로 들어오는 셈이다.
그리고 아들은 다시 어머니에 의해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한국남자로 키워진다. 어머니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들을 ‘동굴 속 황제’로 만들고 자신은 기꺼이 아들이 말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주는 하녀가 된다. 이를 통해 아들은 자연스럽게 세상의 모든 것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가치관에 익숙해진다.
전교수는 또한 서양의 가족구도와 한국사회의 가족구도의 차이를 통해 ‘왜 한국 가족구도가 더 가부장제일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한다. 서양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콤플렉스 이론이 있다. 어머니의 영역 안에서 보호받으며 자라는 과정에 아들은 아버지와 경쟁하고 나아가 아버지를 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프로이트가 생각했던 것처럼 아들이 아버지에게 일대일로 직접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아버지는 아이에게 세상으로 나가는 통로이고, 세상을 보는 문이었어요. 그래서 한국의 아버지는 프로이트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성적 이미지로서의 어머니를 아들에게 다 내어주고도 유유자적하게 권위를 누릴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죠.”
한국 남자아이는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 ‘동굴 속 황제’로 자라나 아버지의 권위를 부러워하고 또 한편으로 이를 본받는다. 또한 아버지의 정신적 물질적 유산을 상속하며 아버지가 세운 신분적 질서를 계승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사회의 권위주의적 신분질서가 재생산된다.
책이 나온 지 두달쯤 지난 지금, 독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여성들에게 ‘이 책을 읽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남편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여성학자들도 제 책이 최초의 남성 탐구서라며 대학교재로 사용하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저로서는 고맙죠.”
반면 남자들의 반응에는 차이가 조금 있다고 한다. 긍정 반 부정 반이라는 것. 우선 자기들도 잘 아는 경험세계이기 때문에 사실 자체는 인정을 하지만 개인수준으로 왔을 때 ‘지나치게 몰아가는 것 아니냐, 나도 경험했는데 그게 아니다’며 자기변호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럼 앞으로 남자가 소외되지 않는 바람직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전교수는 우선 남자에게 ‘내 안의 아버지를 살해하라’고 충고한다. 자신 안에 형성돼 있는 어린 시절 우상으로서의 아버지를 살해함으로써 자기부정을 통해 자기긍정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가족 모두 둥글게 둘러앉아 평등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정을 나누는 소통의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먼저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알고 대화하는 법을 깨우쳐야겠죠.”
지금 30∼40대는 전교수처럼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극진한 사랑을 쏟아붓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동굴 속 황제’가 되어 자란 세대다. 그렇다면 부모 세대보다 더 극진한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있는 지금의 아이들은 더 개인주의적이고 외골인 ‘동굴 속 황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아버지의 위엄조차 무너진 시대가 아닌가. 따라서 많은 부모들의 걱정이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하는 것이다.
“자녀를 소유물로 보는 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자녀는 부모와 똑같은 하나의 독립된 존재이고 언젠간 떠나갈 사람이란 걸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부모의 사랑이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해요. 자녀를 끝까지 보호하고 대신해주려고 한다면 그건 자녀를 소유물로 본다는 거예요. 그러면 평등한 대화를 할 수 없죠.”
전인권씨는 정치학 교수다. 그런데 그의 이력을 보면 조금 특이하다. ‘화가 이중섭론’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에 당선된 미술평론가이기도 하다. 왠지 정치학자와 미술평론가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자 “화가와 그림을 정치사회학적으로 볼 뿐”이라고 했다.
“그림을 보면 뭔가 정치사회학적으로 보이는 게 있어요. 그런데 기존 미술평론가들은 그 이야기를 전혀 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관점에서 그림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 글로 몇편 썼어요. 예를 들면 그런 거죠.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이 몇명이고, 그들의 시선이 어떤가에 따라 그림 속의 사회가 대등한 관계인지 종속적인 관계인지,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인지 안정된 시기인지를 읽는 거죠.”
그는 앞으로 청소년기의 경험을 통해 가족과 친구, 사회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연구할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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