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1일 서울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서 열린 제47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몇 해전부터 공중파에서 방송을 하지 않는 탓에 올해 뽑힌 한국의 대표미인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번 대회에서 미스코리아 진에 뽑힌 최윤영양(20)은 시원한 눈매와 깨끗한 피부가 매력적이고, 발레 수영 테니스 태권무 등 각종 운동과 함께 퀼트와 십자수를 즐기는 ‘팔방미인.’ 프로농구 원주 나래(현 TG)와 대구 동양의 감독을 지낸 최명룡씨(51)의 딸이기도 하다.
현재 동국대학교 체육학과에서 강의를 하며 스포츠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최명룡씨는 프로농구 원년인 97년, 원주 나래의 사령탑을 맡아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2001년 대구 동양 감독을 끝으로 코트를 떠났다. 프로농구 감독 시절, 최 전 감독은 수려한 용모와 뛰어난 패션감각으로 눈길을 끌었는데 윤영양은 그런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어려서부터 아빠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 말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매사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고요.”
그러나 최 전 감독은 사실 윤영양이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는 걸 반대했다. 부모와 떨어져 캐나다에서 어렵게 시작한 공부에 지장을 줄까 염려했던 것. 미스코리아대회 출전을 연예계 진출을 위한 발판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선입견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아빠는 제가 미스코리아에 나가겠다고 하니까 처음엔 ‘공부의 맥이 끊기지 않겠냐’며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제가 나가고 싶어하는 이유를 설명해드렸더니 기꺼이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사회사업에 도움 될 것 같아 미스코리아 대회 준비 적극 나서
윤영양이 미스코리아에 출전하기로 마음먹은 건 사회사업을 하려는 자신의 꿈에 미스코리아라는 타이틀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현재 캐나다 명문 브리티시 컬럼비아대(UBC) 심리학과를 휴학중인 윤영양의 장래희망은 불우한 이웃을 돕는 따뜻한 심리치료사가 되는 것. 20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사업을 시작하고, 30대에는 미얀마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는 게 그의 꿈이다. 그가 심리치료사가 되어 사회사업을 하는 것으로 인생의 목표를 정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목적 없이 공부하는 건 싫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 1년 동안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어느날 목사님께서 설교 도중 읽어주신 미혼모의 일기 30편을 듣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어요. ‘이게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하고 깨달았죠.”
그런 윤영양 주변에는 172cm의 큰 키에 날씬한 몸매, 또렷한 이목구비가 딱 미스코리아감이라며 대회에 나가볼 것을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자라면 누구나 미스코리아가 되고픈 막연한 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지난해 여름방학 때 미스코리아에 나가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어요. 처음엔 장난으로 ‘그래볼까?’ 하다가 진지하게 제가 하고 싶은 일이랑 연결해보니 플러스가 될 것 같더라고요. 복지사업을 할 때 미스코리아라고 하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제 말에 더 집중할 테고, 재정적 도움을 받는 것도 수월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런 결심이 선 뒤에는 학교를 휴학하고 한국에 들어와 지난 3월부터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가며 적극적으로 대회를 준비했다. 더욱이 그는 이번 미스코리아 합숙기간 동안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을 방문,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접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구체화되는 것 같아 기뻤다고 한다.
“사실 복지나 심리학은 분야가 꽤 광범위한데 그중 어느 부분을 특화시켜야 할지 파악할 수 있게 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유학생활을 잠시 접은 2003년 한해 동안 몸으로 부대끼며 제가 어느 분야를 공부해야 할지 찾아볼 계획이에요.”
최윤영양은 어머니 김정애씨와 아버지 최명룡 감독을 반반씩 닮았다.
윤영양은 초등학교 때 발레를 시작해 선화예술중학교에 들어가 발레리나의 꿈을 키웠다. 그런 그가 2학년 때 발레를 그만두고 졸업과 함께 언니 윤정씨(21)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난 건 발레를 하기엔 키가 너무 크다는 아버지의 지적과 함께 윤영양 자신도 ‘소질은 있으나 발레로 일인자가 될 만큼의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 하지만 어머니 김정애씨(51)에 따르면 발레를 그만두고, 캐나다로 떠나기 전까지 윤영양은 많이 힘들어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매달려 왔던 발레를 그만두고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한다는 게 적지않은 부담이 됐을 거라고 그의 어머니는 말한다.
“친구들이 모두 발레 수업을 받으러 나가는데 혼자 교실에 남아있는 게 싫었겠죠. 윤영이도 교실에 혼자 남아있어야 했던 중3 때가 자신이 가장 성숙해진 시기라고 이야기해요.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도 많았던 때이고.”
결국 윤영양은 부모와 상의해 캐나다 유학을 떠났다. 생선초밥과 순두부찌개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캐나다 유학생활 중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어 요리솜씨도 제법이라고. 함께 유학생활을 하던 언니 윤정씨는 캐나다에서 약학을 공부했으나 호텔 업무에 관심이 있어 메리어트 호텔에서 인턴으로 일했으며 현재는 스위스에서 호텔경영을 공부하고 있다.
사실 윤영양 위로 윤정씨말고 두명의 형제가 더 있었다고 한다. 최 전 감독은 첫째와 둘째를 모두 생후 1년도 안돼서 잃은 탓에 윤정, 윤영 자매에 대한 집착이 컸는데 그런 부모 마음을 헤아리고, 잘 자라 기쁨을 안겨주는 딸들이 고맙다고 했다. 특히 윤영양으로부터 오히려 위로와 격려를 받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2001년, 사령탑을 맡았던 프로농구 대구 동양팀이 11연패 늪에 빠져 감독직에서 물러날 결심을 아내와 두 딸에게 털어놓았을 때 윤영양이 자신은 ‘아빠의 영원한 팬’이라며 최 전 감독을 위로했다고. 최 전 감독은 “농구를 생각하면 가슴이 썩어 들어갔지만 가족들이 행복한 웃음을 짓게 했다”고 말했다.
“빈약한 가슴이 불만, 아기 낳은 후에 수술하고 싶어요”
윤영양의 속 깊은 생각은 곳곳에서 배어난다. 그의 어머니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방학 때 귀국해 미스코리아에 출전하겠다는 결심을 털어놓은 뒤로는 “미스코리아에 나가면 날 지켜보는 사람들도 많을 테고, 반 공인이 되는 것이므로 더욱더 행동 조심하고 바르게 살겠다”고 누누이 말해왔다고. 이 때문에 그는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친구들이 ‘나이트클럽’에 가자고 권유할 때도 혹시 자신이 그곳에서 노는 모습을 안 좋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냐며 꾹 참았을 정도.
어머니는 “윤영이는 정말 스무살 같지 않다”며 “자식을 보고 배운다”고 말했다. 더욱이 요즘처럼 “어쩜 그렇게 자식을 잘 키웠냐” 소리를 들을 때면 새삼 딸 키운 보람을 느낀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그의 부모는 그런 찬사와 축하들이 ‘앞으로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속이 깊어 부모를 감동시키는 윤영양도 이제 갓 스무살이 된 막내딸 티를 완전히 벗어버릴 수는 없다. “미스코리아 진이 되고 난 뒤 달라진 게 있냐”고 물었더니 얼굴에 생기가 돌며 말이 술술 나온다.
최명룡 감독은 윤영양이 유니세프 홍보대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전화통에 불이 나더라고요. 왜 스포츠신문에 ‘당당한 그녀’라고 하면서 제 얼굴사진이 크게 나갔잖아요. 친구들이 ‘윤영아 길에 나가면 네가 날 보고 웃어’ 그래요. 태어나서 꽃도 가장 많이 받았어요. 생전 처음 피부관리도 받아봤는데 좋긴 좋더라고요(웃음).”
그는 성형수술한 적이 없는 순수 자연미인. 그렇지만 뜻밖에도 성형수술 하고 싶은 곳이 있다고 귀띔한다.
“가슴이요. 솔직히 가슴이 빈약하거든요. 아기 낳고 나면 가슴수술하고 싶어요.”
솔직하게 털어놓고는 “엄마가 이런 얘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하며 웃음짓는 그. 이왕 할 생각이라면 한살이라도 젊을 때 하는 게 낫지 않냐고 되물었더니 고개를 젓는다.
“기술이 발달해서 가슴 수술해도 수유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요. 아기 낳고, 모유를 먹인 다음에 수술할래요.”
그녀의 발랄함과 재치는 이미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미스코리아대회 본선에서 개그맨 박준형이 “집 앞에서 남자 친구와 작별키스를 하다 아버지에게 들킬 경우 어떻게 하겠냐”는 짓궂은 질문을 던졌을 때, 윤영양은 “센스 있는 우리 아버지라면 아는 척하지 않을 것”이라고 화제의 방향을 돌린 뒤 “아직 해보지는 않았지만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멋진 추억일 것”이라고 재치있게 응수했다.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한 뚜렷한 이유와 목표가 있기 때문에 윤영양은 연예인이 되는 건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심리치료사로 다년간 경험을 쌓은 뒤, 기회가 된다면 ‘오프라 윈프리쇼’와 같은 심리 토크쇼를 진행해보고 싶다고. 아버지 최 전 감독도 윤영양이 연기자나 방송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윤영이가 처음 미스코리아에 나가겠다고 결심한 대로 잘 실천했으면 좋겠어요. 불우청소년과 미혼모를 돕는 재단을 설립하고, 유니세프 홍보대사로 선정돼 기아선상에 놓여있는 어린이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으면 더 좋겠고요.”
테레사 수녀를 존경한다는 윤영양은 아버지의 꿈이자 자신의 꿈인 사회사업을 충실히 하며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인생을 살면서 큰 변화를 추구하진 않지만 만나는 사람 하나 하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