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흔적 없이 떨어졌다 별저항 없이 다시 붙는, 포스트잇 같은 관계들. 여태 이루지 못한, 내 은밀한 유토피아이즘’.
작가 김영하(34)가 산문집을 펴냈다. 제목은 <포스트잇>. 95년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등단, 96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 습격 사건’을 벌인 그가 7년 만에 엮어낸 산문집이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기발랄하고 건조한 필치의 에세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읽기에 충분히 재밌지만, ‘김영하 마니아’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를 법했다. 그가 군화에 광을 내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헌병대 출신이었다거나 아버지가 육사 출신 군인이었다는 것은 산문집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고백이며,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거나 가끔씩 대금을 연주한다는, 산문집 곳곳에 산재한 ‘단서’들은 그의 소설을 이해할 몇가지의 키워드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설가가 산문을 쓰면 자신의 소설에 대한 논평이랄까 그런 게 나와요. 그런 의미에서 제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일종의 팬 서비스처럼 느낄 수도 있겠지요.”
평소 자주 간다는 홍대앞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영하는 생각보다 키가 훨씬 컸다. 차분한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와 독특한 디자인의 금속 테 안경이 마른 얼굴에 도시적인 세련미를 더한다. 무엇보다 그의 가슴께에 매달린 독특한 문양의 목걸이에 눈길이 갔다.
“전 액세서리를 좋아해요. 집에는 액세서리함이 있을 정도죠. 이건 여행지에서 구입한 건데, 원래 용도는 열쇠고리였어요. 조각이 예뻐서 목걸이로 만들었죠. 귀고리도 즐겨 하는데, 이런 액세서리는 제게 ‘정상적으로 살지 않을 권리’를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가장 모던한 소설을 쓰면서도 옛것을 좋아하는 ‘고전주의자’
액세서리뿐만이 아니다. 그는 이미 산문집에 썼듯이 카메라, 오디오 같은 ‘사물’도 좋아한다. 카메라만 해도 자동 카메라, 수동 카메라는 물론 디지털 카메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종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끊임없이 최신 기종을 업그레이드하는 컬렉터는 아니다. 오히려 그가 매력을 느끼는 건, 세월의 침삭을 오랫동안 견디며 살아남은 이른바 ‘앤티크’다.
“기계의 모든 면이 제 호기심을 자극하나 봐요. 보고 있노라면 기계가 정말 예쁘게 보일 때가 있거든요. 인간이 공들여 만든 것이 그 의도대로 작동되고 멋있게 늙어가는 걸 보면 정말 감동스러워요. 제 오디오만 해도 전부 옛날 제품이에요. 황학동 시장이나 인터넷 중고시장을 뒤져서 앰프, 오디오 플레이어, 스피커 등을 중고로 장만했는데, 소리가 너무 좋고 고장도 없어요.”
오래된 기계만 사랑하는 건 아니다. 오래되어 길이 잘 든 조선 시대 목가구나 공예품도 좋아한다. 인터뷰 때 그는 브라운 가죽 숄더백을 메고 왔는데, 오래된 가죽 특유의 색감과 광택을 지닌 빈티지풍의 백이었다. 그는 홍대 앞 벼룩시장에서 단돈 2만원을 주고 산 것이라며 의기양양해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모던한 소설을 쓰고 있는 그가, 옛것을 사랑하고 대금 불기를 즐기며 고전 읽기를 좋아하는 ‘고전주의자’였다니, 그야말로 모순의 ‘조합’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군인 가족 출신이다. 대부분의 군인 가족들이 그렇듯 그도 이사라면 이골이 났다. 초등학교 시절은 거의 1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다녔다. “처음엔 그것 때문에 괴로웠지만, 나중에 아무렇지도 않아졌다”는 그는 “어쩌면 오래된 기계를 좋아하는 건 그 영향 탓인지도 모른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잦은 이사 탓일까요. 전 과거를 잘 잊어버리는 편이에요. 연연해하지 않거든요. 대신에 그만큼 현재에 충실하게 살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진득진득한 편은 못 되죠. 아마 그런 인간관계의 비어있음을 기계에서 채우려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차분하고 조리 있는 말씨. 그의 목소리는 듣기에 퍽 편하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작년부터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의 DJ로 무려 1년을 버틴 데는 이 목소리도 한몫 한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책에 관한 정보를 주는 방송이잖아요. 짧지 않은 1년이라는 시간을 방송과 함께 했으니, 애착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그렇지만 1주년 기념 방송을 하고 나니까, 이제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동안 규칙적으로 잘 살았지만, 매일 여기에 매달린다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그런데 묘하게도 ‘그만두겠다’ 말하자마자 개편과 동시에 프로가 주간 방송(일요일 오전 6시)으로 바뀌어버렸어요. 아무래도 저 같은 ‘명 진행자’를 찾지 못한 모양이죠?(웃음)”
스스로도 “방송을 썩 한다”고 말할 만큼 ‘DJ’ 김영하는 ‘라디오 체질’이다. 원하는 화면을 얻어내기 위해 억지와 교태를 부려야만 하는 TV에 비해 라디오는 솔직하고 여백이 많으며, 무엇보다 청취자와의 교감이 살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J’ 역할이 줄어든 데 대해 아쉬운 눈치가 아니다.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에 이르기까지 써야 할 글들이 아주 많아요. 시간이 부족해요. 당장 내년 초에 영화 관련 산문집이 출간될 예정이고, 또 이미 구상을 끝낸 새 장편소설도 써야 하니까요.”
그는 이번에 산문집의 한 대목을 빌려 “자신이 소설가의 몸을 타고난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다른 어떤 방식보다도 글로 세상과 소통할 때 영혼의 교감이라는 것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는 예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소설의 시대는 이미 가지 않았는가. “1백만 관객을 들이는 영화는 있어도 1백만 독자를 불러모으는 소설은 없지 않느냐”는 기자의 반문에 그는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저 역시 영화 시나리오를 써보기도 했고 영화도 즐겨봐요. 하지만 소설은 영화가 갖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만이 유일하게 우리를 3차원적 세계로 데려가죠. 영화는 아무리 그럴 듯해도, 감상하는 사람이 그안에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영화 <태백산맥>을 생각해보세요. 안성기를 빼고 그 영화를 생각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좋은 소설은 책을 읽고 있는 우리를 소설 속의 공간에 직접적으로 데려다 놓아요. 소설의 이런 매력은 대체불가능이죠.”
그는 다시 ‘소설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몰입’ 그 자체로 끝나버리는 영화적 체험과 달리, 멈춰 서서 사유하도록 하는 소설의 매력이 독자들을 붙드는 날이 올 것이며, 그 시대는 ‘영상’이 아니라 ‘활자’가, ‘감각’이 아니라 ‘사유’가 상상력의 근원이라는 것을 다시금 재확인해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때 ‘문단의 인터넷 광신도’라 불리며 어느 작가보다도 먼저(97년) 홈페이지를 열성적으로 운영했던 그가 작년 인터넷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모든 게 있다고 말해요. 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어요. 어느 학자가 ‘인터넷은 디즈니랜드가 아니다’라는 말을 했어요. 제가 보기에 인터넷은 차라리 ‘시골장터’예요. 너도나도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기 사진과 자기 글, 자기 이야기를 올려놓고 흐뭇해하지만, 그건 일종의 자기들끼리 사고 파는 ‘좌판’같은 거예요. 그것도 아무나 지나가며 내려다보는, 쓸쓸한 좌판이죠.”
그는 우연한 기회에 작가가 됐다. 연세대 학부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문학의 신열에 들떠 ‘작가지망생’들이 벌이는 치기나 기행 같은 건 없었다. 91년 연세대 대학원 재학시절부터 PC통신 하이텔에 글을 썼지만, 설마 이게 ‘본업’이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어느날, 두 여자와 한 남자의 기이한 연애행각을 담아낸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이 한 문학계간지에 실리면서 작가가 되어버렸고, 그와 동시에 작가로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자 ‘평범 콤플렉스’가 그를 괴롭혔다.
“저는 작가란 일반인과는 유전자부터 다르다고 믿고 있었어요. 그런데 전 성장과정부터 너무 평범한 거예요. 그런데 어느날 누가 제게 ‘당신이 매우 별나다는 걸 알고 있나?’하고 묻더군요. 제가 평범하다고 생각해온 모든 게 그들에게는 평범이 아니었던 거죠.”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 이전까지 문학의 ‘정통성’은 역사, 사회변혁, 분단과 같은 거대 담론 쪽에 서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문학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끌어들인 그는 ‘이단’처럼 받아들여졌다. 대신 그는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소설의 기미를 찾아낸다. 삐삐(<호출>), 번개(피뢰침), 십자 드라이버(<내사랑, 십자드라이버>), 사진 한장(<사진관 살인사건>)…. 선배 작가들의 눈에는 이런 것도 소설이 되나 싶을 만한 것들에 그는 새로운 상상력을 덧입혀왔다.
“한국소설의 문제는 다들 불륜소설만 쓰고 있는 게 아니라, 당대에 허용된 ‘뻔한’ 소재만을 다루고 있는 거라고 봐요. 작가들이 소설과 소설사적 전통에 대한 자의식을 잃은 것 같아요. 이제는 자신의 소설이 소설사적 전통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나 아무도 질문조차 안 하죠. 그러니 새로운 게 나올 리 없고요.”
그는 6년 전 결혼한 두살 아래의 예쁜 부인과 서울 성산동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연세대 어학당 강사 시절, 동료로 만난 그의 부인 장은수씨는 학부에서는 심리학을, 대학원에서는 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남편이 쓴 소설의 첫 독자이자 첫 비평가로 손색이 없다. 재밌는 건 그가 97년 발표한 단편 <도드리>는 실제 연애경험이 반영된 소설이라는 점. 그저 동료로만 대하던 아내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그는 여주인공의 모습에 아내의 모습을 오버랩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아이 없이, 아직까지도 신혼부부처럼 살고 있다. 그는 집에서 음식을 해 먹기보다는 외식을 즐기고 아내가 옷 사러 다니는 걸 따라다니는 게 즐겁다는 특이한 남자이며, 축구가 싫다는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별난 남자이기도 하다. 작년 한 영화주간지에 쓴 “난 정치, 축구, 도박 같은 남성적인 게 싫다”는 칼럼은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난 남자가 많은 곳에 가면 불편하다. 여자들이 관계지향적인 데 반해 남자들은 지배를 원한다. 서열을 정하지 않으면 30분도 그냥 앉아 있지 못한다. 만난 지 10분도 안 돼 ‘영하야, 나 네 선배인데, 말 놓아도 되지’ 그러는 거 너무 싫다.”
이렇다 보니 아내도 그를 여자친구처럼 여긴단다. 여자친구들도 그가 남자라는 걸 깜박할 때가 있을 정도라고.
그는 ‘여행’을 좋아한다. 어학당이 방학을 하는 9월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한다. 1년여 동안 번 돈을 거의 쓰다시피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작가로서 시야를 넓히는 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올해 정초에 한 문학계간지에 발표한 단편 <오빠가 돌아왔다>로 한국일보문학상 최종후보작까지 올라갔다가 아깝게 탈락했다. 그 대신 수상의 영광을 안은 건 은희경. 최근 몇년간 그는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 유수 문학상의 ‘단골 후보’였다. 그러나 정작 수상의 기쁨을 누린 건 99년 <당신의 나무>로 받은 현대문학상에 그치고 있다. “주목을 많이 받은 데 비해 상복이 적은 작가인 듯싶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네요. 등단 때부터 그러더니, 저는 줄곧 ‘주목만’ 받는 작가인 듯싶어요. 상을 주기엔 아직 어려보이나 봐요. 주목만 받는다는 게 좀 아쉽기는 한데, 어쩌면 이게 낫다는 생각도 들어요. 상이라는 게 양면성이 있거든요. 99년에 현대문학상을 받고 나서 한동안 단편을 못 썼던 적이 있어요. 주눅이랄까 부담을 느낀 것 같아요. 사실, 문학상이라는 건 대부분 작가로서 완성되었다는 승인 같은 거잖아요. 저에 대해서는 아직 ‘긴가민가’ 판단 보류중이라는 얘기인데, 너무 일찍 판단이 끝나는 것도 좋은 건 아니라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상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습니다.”
완성된 작가라는 추인보다는 작가로서 긴장과 신선감을 잃지 않는 편이 낫다는 낙관. 하긴 그는 아직 젊지 않은가. 그리고 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작가로 살 생각이니만큼 긴 호흡이 필요할 만했다.
“요즘 인생이 짧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전 정말 훌륭하고 멋진 소설, 언제가는 세계에서도 통할 만한 그런 소설을 내고 싶어요. 그러려면 오래 살아야죠. 담배 끊고 하루에 4km씩 매일 달리기를 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입니다.”
자살보조원이 등장하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자신의 남편이 흡혈귀가 아닌가 의심하는 여자가 등장하는 <흡혈귀>, 투명인간이 되어 직장도 잃고 가정까지 엉망이 된 남자가 등장하는 <고압선>, 신임사또 부임날 피묻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랑’의 전설을 재해석한 <아랑은 왜> … 독자들은 그의 소설에 대해 낯설면서도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이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그가 ‘재미’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엄숙한 체, 근사한 체하지 않고도 그는 사소한 일상에서 인간 세상 전체를 관통하는 아이러니를 지적해낼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언젠가 꼭 쓰고 싶은 소설은 황당하게도 ‘아름다운 멜로’란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멜로소설을 언제가는 써야죠. 그런데 등장인물들이 말을 안 들어요. 정신차리고 보면 갑자기 서로를 죽이고 있으니 원….”
작가 김영하(34)가 산문집을 펴냈다. 제목은 <포스트잇>. 95년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등단, 96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 습격 사건’을 벌인 그가 7년 만에 엮어낸 산문집이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기발랄하고 건조한 필치의 에세이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읽기에 충분히 재밌지만, ‘김영하 마니아’에게는 그 의미가 남다를 법했다. 그가 군화에 광을 내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헌병대 출신이었다거나 아버지가 육사 출신 군인이었다는 것은 산문집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고백이며, 자전거 타기를 즐긴다거나 가끔씩 대금을 연주한다는, 산문집 곳곳에 산재한 ‘단서’들은 그의 소설을 이해할 몇가지의 키워드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설가가 산문을 쓰면 자신의 소설에 대한 논평이랄까 그런 게 나와요. 그런 의미에서 제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일종의 팬 서비스처럼 느낄 수도 있겠지요.”
평소 자주 간다는 홍대앞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영하는 생각보다 키가 훨씬 컸다. 차분한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와 독특한 디자인의 금속 테 안경이 마른 얼굴에 도시적인 세련미를 더한다. 무엇보다 그의 가슴께에 매달린 독특한 문양의 목걸이에 눈길이 갔다.
“전 액세서리를 좋아해요. 집에는 액세서리함이 있을 정도죠. 이건 여행지에서 구입한 건데, 원래 용도는 열쇠고리였어요. 조각이 예뻐서 목걸이로 만들었죠. 귀고리도 즐겨 하는데, 이런 액세서리는 제게 ‘정상적으로 살지 않을 권리’를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가장 모던한 소설을 쓰면서도 옛것을 좋아하는 ‘고전주의자’
액세서리뿐만이 아니다. 그는 이미 산문집에 썼듯이 카메라, 오디오 같은 ‘사물’도 좋아한다. 카메라만 해도 자동 카메라, 수동 카메라는 물론 디지털 카메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종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끊임없이 최신 기종을 업그레이드하는 컬렉터는 아니다. 오히려 그가 매력을 느끼는 건, 세월의 침삭을 오랫동안 견디며 살아남은 이른바 ‘앤티크’다.
“기계의 모든 면이 제 호기심을 자극하나 봐요. 보고 있노라면 기계가 정말 예쁘게 보일 때가 있거든요. 인간이 공들여 만든 것이 그 의도대로 작동되고 멋있게 늙어가는 걸 보면 정말 감동스러워요. 제 오디오만 해도 전부 옛날 제품이에요. 황학동 시장이나 인터넷 중고시장을 뒤져서 앰프, 오디오 플레이어, 스피커 등을 중고로 장만했는데, 소리가 너무 좋고 고장도 없어요.”
오래된 기계만 사랑하는 건 아니다. 오래되어 길이 잘 든 조선 시대 목가구나 공예품도 좋아한다. 인터뷰 때 그는 브라운 가죽 숄더백을 메고 왔는데, 오래된 가죽 특유의 색감과 광택을 지닌 빈티지풍의 백이었다. 그는 홍대 앞 벼룩시장에서 단돈 2만원을 주고 산 것이라며 의기양양해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모던한 소설을 쓰고 있는 그가, 옛것을 사랑하고 대금 불기를 즐기며 고전 읽기를 좋아하는 ‘고전주의자’였다니, 그야말로 모순의 ‘조합’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군인 가족 출신이다. 대부분의 군인 가족들이 그렇듯 그도 이사라면 이골이 났다. 초등학교 시절은 거의 1년에 한번 꼴로 이사를 다녔다. “처음엔 그것 때문에 괴로웠지만, 나중에 아무렇지도 않아졌다”는 그는 “어쩌면 오래된 기계를 좋아하는 건 그 영향 탓인지도 모른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잦은 이사 탓일까요. 전 과거를 잘 잊어버리는 편이에요. 연연해하지 않거든요. 대신에 그만큼 현재에 충실하게 살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인간관계가 진득진득한 편은 못 되죠. 아마 그런 인간관계의 비어있음을 기계에서 채우려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차분하고 조리 있는 말씨. 그의 목소리는 듣기에 퍽 편하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작년부터 SBS 라디오 <책하고 놀자>의 DJ로 무려 1년을 버틴 데는 이 목소리도 한몫 한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책에 관한 정보를 주는 방송이잖아요. 짧지 않은 1년이라는 시간을 방송과 함께 했으니, 애착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그렇지만 1주년 기념 방송을 하고 나니까, 이제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동안 규칙적으로 잘 살았지만, 매일 여기에 매달린다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그런데 묘하게도 ‘그만두겠다’ 말하자마자 개편과 동시에 프로가 주간 방송(일요일 오전 6시)으로 바뀌어버렸어요. 아무래도 저 같은 ‘명 진행자’를 찾지 못한 모양이죠?(웃음)”
스스로도 “방송을 썩 한다”고 말할 만큼 ‘DJ’ 김영하는 ‘라디오 체질’이다. 원하는 화면을 얻어내기 위해 억지와 교태를 부려야만 하는 TV에 비해 라디오는 솔직하고 여백이 많으며, 무엇보다 청취자와의 교감이 살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J’ 역할이 줄어든 데 대해 아쉬운 눈치가 아니다.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에 이르기까지 써야 할 글들이 아주 많아요. 시간이 부족해요. 당장 내년 초에 영화 관련 산문집이 출간될 예정이고, 또 이미 구상을 끝낸 새 장편소설도 써야 하니까요.”
그는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최종 후보작까지 올라갔다가 '또' 탈락했다. 그러나 그는 “작가로서 긴장감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 문학상 수상 여부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저 역시 영화 시나리오를 써보기도 했고 영화도 즐겨봐요. 하지만 소설은 영화가 갖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만이 유일하게 우리를 3차원적 세계로 데려가죠. 영화는 아무리 그럴 듯해도, 감상하는 사람이 그안에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영화 <태백산맥>을 생각해보세요. 안성기를 빼고 그 영화를 생각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좋은 소설은 책을 읽고 있는 우리를 소설 속의 공간에 직접적으로 데려다 놓아요. 소설의 이런 매력은 대체불가능이죠.”
그는 다시 ‘소설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몰입’ 그 자체로 끝나버리는 영화적 체험과 달리, 멈춰 서서 사유하도록 하는 소설의 매력이 독자들을 붙드는 날이 올 것이며, 그 시대는 ‘영상’이 아니라 ‘활자’가, ‘감각’이 아니라 ‘사유’가 상상력의 근원이라는 것을 다시금 재확인해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때 ‘문단의 인터넷 광신도’라 불리며 어느 작가보다도 먼저(97년) 홈페이지를 열성적으로 운영했던 그가 작년 인터넷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모든 게 있다고 말해요. 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어요. 어느 학자가 ‘인터넷은 디즈니랜드가 아니다’라는 말을 했어요. 제가 보기에 인터넷은 차라리 ‘시골장터’예요. 너도나도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기 사진과 자기 글, 자기 이야기를 올려놓고 흐뭇해하지만, 그건 일종의 자기들끼리 사고 파는 ‘좌판’같은 거예요. 그것도 아무나 지나가며 내려다보는, 쓸쓸한 좌판이죠.”
그는 우연한 기회에 작가가 됐다. 연세대 학부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문학의 신열에 들떠 ‘작가지망생’들이 벌이는 치기나 기행 같은 건 없었다. 91년 연세대 대학원 재학시절부터 PC통신 하이텔에 글을 썼지만, 설마 이게 ‘본업’이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어느날, 두 여자와 한 남자의 기이한 연애행각을 담아낸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이 한 문학계간지에 실리면서 작가가 되어버렸고, 그와 동시에 작가로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자 ‘평범 콤플렉스’가 그를 괴롭혔다.
“저는 작가란 일반인과는 유전자부터 다르다고 믿고 있었어요. 그런데 전 성장과정부터 너무 평범한 거예요. 그런데 어느날 누가 제게 ‘당신이 매우 별나다는 걸 알고 있나?’하고 묻더군요. 제가 평범하다고 생각해온 모든 게 그들에게는 평범이 아니었던 거죠.”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 이전까지 문학의 ‘정통성’은 역사, 사회변혁, 분단과 같은 거대 담론 쪽에 서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문학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풍경을 끌어들인 그는 ‘이단’처럼 받아들여졌다. 대신 그는 일상의 사소한 것에서 소설의 기미를 찾아낸다. 삐삐(<호출>), 번개(피뢰침), 십자 드라이버(<내사랑, 십자드라이버>), 사진 한장(<사진관 살인사건>)…. 선배 작가들의 눈에는 이런 것도 소설이 되나 싶을 만한 것들에 그는 새로운 상상력을 덧입혀왔다.
“한국소설의 문제는 다들 불륜소설만 쓰고 있는 게 아니라, 당대에 허용된 ‘뻔한’ 소재만을 다루고 있는 거라고 봐요. 작가들이 소설과 소설사적 전통에 대한 자의식을 잃은 것 같아요. 이제는 자신의 소설이 소설사적 전통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나 아무도 질문조차 안 하죠. 그러니 새로운 게 나올 리 없고요.”
그는 6년 전 결혼한 두살 아래의 예쁜 부인과 서울 성산동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연세대 어학당 강사 시절, 동료로 만난 그의 부인 장은수씨는 학부에서는 심리학을, 대학원에서는 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남편이 쓴 소설의 첫 독자이자 첫 비평가로 손색이 없다. 재밌는 건 그가 97년 발표한 단편 <도드리>는 실제 연애경험이 반영된 소설이라는 점. 그저 동료로만 대하던 아내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그는 여주인공의 모습에 아내의 모습을 오버랩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 부부는 아이 없이, 아직까지도 신혼부부처럼 살고 있다. 그는 집에서 음식을 해 먹기보다는 외식을 즐기고 아내가 옷 사러 다니는 걸 따라다니는 게 즐겁다는 특이한 남자이며, 축구가 싫다는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별난 남자이기도 하다. 작년 한 영화주간지에 쓴 “난 정치, 축구, 도박 같은 남성적인 게 싫다”는 칼럼은 그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난 남자가 많은 곳에 가면 불편하다. 여자들이 관계지향적인 데 반해 남자들은 지배를 원한다. 서열을 정하지 않으면 30분도 그냥 앉아 있지 못한다. 만난 지 10분도 안 돼 ‘영하야, 나 네 선배인데, 말 놓아도 되지’ 그러는 거 너무 싫다.”
이렇다 보니 아내도 그를 여자친구처럼 여긴단다. 여자친구들도 그가 남자라는 걸 깜박할 때가 있을 정도라고.
그는 ‘여행’을 좋아한다. 어학당이 방학을 하는 9월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한다. 1년여 동안 번 돈을 거의 쓰다시피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작가로서 시야를 넓히는 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올해 정초에 한 문학계간지에 발표한 단편 <오빠가 돌아왔다>로 한국일보문학상 최종후보작까지 올라갔다가 아깝게 탈락했다. 그 대신 수상의 영광을 안은 건 은희경. 최근 몇년간 그는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 유수 문학상의 ‘단골 후보’였다. 그러나 정작 수상의 기쁨을 누린 건 99년 <당신의 나무>로 받은 현대문학상에 그치고 있다. “주목을 많이 받은 데 비해 상복이 적은 작가인 듯싶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네요. 등단 때부터 그러더니, 저는 줄곧 ‘주목만’ 받는 작가인 듯싶어요. 상을 주기엔 아직 어려보이나 봐요. 주목만 받는다는 게 좀 아쉽기는 한데, 어쩌면 이게 낫다는 생각도 들어요. 상이라는 게 양면성이 있거든요. 99년에 현대문학상을 받고 나서 한동안 단편을 못 썼던 적이 있어요. 주눅이랄까 부담을 느낀 것 같아요. 사실, 문학상이라는 건 대부분 작가로서 완성되었다는 승인 같은 거잖아요. 저에 대해서는 아직 ‘긴가민가’ 판단 보류중이라는 얘기인데, 너무 일찍 판단이 끝나는 것도 좋은 건 아니라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상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습니다.”
완성된 작가라는 추인보다는 작가로서 긴장과 신선감을 잃지 않는 편이 낫다는 낙관. 하긴 그는 아직 젊지 않은가. 그리고 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작가로 살 생각이니만큼 긴 호흡이 필요할 만했다.
“요즘 인생이 짧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전 정말 훌륭하고 멋진 소설, 언제가는 세계에서도 통할 만한 그런 소설을 내고 싶어요. 그러려면 오래 살아야죠. 담배 끊고 하루에 4km씩 매일 달리기를 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입니다.”
자살보조원이 등장하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자신의 남편이 흡혈귀가 아닌가 의심하는 여자가 등장하는 <흡혈귀>, 투명인간이 되어 직장도 잃고 가정까지 엉망이 된 남자가 등장하는 <고압선>, 신임사또 부임날 피묻은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랑’의 전설을 재해석한 <아랑은 왜> … 독자들은 그의 소설에 대해 낯설면서도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이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 그렇다고 그가 ‘재미’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엄숙한 체, 근사한 체하지 않고도 그는 사소한 일상에서 인간 세상 전체를 관통하는 아이러니를 지적해낼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언젠가 꼭 쓰고 싶은 소설은 황당하게도 ‘아름다운 멜로’란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멜로소설을 언제가는 써야죠. 그런데 등장인물들이 말을 안 들어요. 정신차리고 보면 갑자기 서로를 죽이고 있으니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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