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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전화도 민박도 없는 섬에서 마음껏 힐링했어요”

2월 7일 개봉 ‘남쪽으로 튀어’ 김윤석

우먼동아일보

2013. 01. 29

“전화도 민박도 없는 섬에서 마음껏 힐링했어요”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국민연금, 그런 걸 왜 내.” “나 TV 안 본 지 오래 됐어. 돈 안 내.”

국민연금과 TV 수신료 납부를 거부하고, 주민등록증 찢어버리기 운동을 주도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최해갑. 영화 ‘남쪽으로 튀어’(다음 달 7일 개봉)의 주인공 해갑은 ‘주어진 각본대로’ 사는 현대인에게 낯설다. 하지만 세상 모든 속박을 거부한 그가 승진과 자녀 교육, 재테크로 머릿속이 복잡한 요즘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모두들 ‘나도 한번 남쪽으로 튀어봤으면’ 하는 상상을 하니까.

해갑을 그려낸 배우는 흥행 보증수표 김윤석(45). ‘추격자’(507만 명) ‘거북이 달린다’(305만 명) ‘전우치’(613만 명) ‘황해’(216만 명) ‘완득이’(531만 명) 그리고 지난해 한국 영화 흥행 기록을 바꿔놓은 ‘도둑들’(1303만 명)까지 관객 몰이에 특장을 발휘해온 그가 이번에는 반상업적인 캐릭터를 완성했다.

영화는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奧田英朗)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386세대 운동권 출신인 해갑과 그의 아내이자 동지 봉희(오연수), 그리고 세 자녀의 가족 이야기를 담았다. 무정부주의자 해갑은 어느 날 고향 섬 마을이 주민의 반대에도 리조트로 개발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향한다. 28일 오전 서울 중구의 호텔에서 해갑, 아니 김윤석을 만났다.

“소설과는 좀 다를 겁니다. 원작의 주인공은 극단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인물이지만 해갑은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소설에는 일본 도(刀)처럼 날선 느낌이 있어요. 하지만 영화는 슬플 때도 웃고, 웃기는데도 슬픈 토종 정서를 담았죠.”



경제적으로 무능한 가장인 해갑은 가족에게 당당하다. 아내는 무능한 가장을 자랑스러워하고, 첫째 딸은 고교를 중퇴하고도 행복하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해갑은 그를 감시하는 정보요원들도 감화시킨다. “요즘 힐링이 대세잖아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을 통해 일탈의 본능을 대리 만족하게 하면 그걸로 할 몫을 다한 영화죠. 성인동화입니다.”

영화는 지난여름 전남 완도군 대모도 등 섬에서 두 달 넘게 촬영했다. 주민 20여 명이 전부인 작은 섬에서 고생 많이 했단다. “민박과 펜션이 없는, 때 묻지 않은 섬을 찾아 스태프가 우리나라 섬을 다 뒤졌죠. 대모도에는 피서객이 없어 마음껏 촬영할 수 있었어요.”

아름다운 풍광에 눈은 호강했지만 그늘 하나 없는 섬에서 더위를 맞느라 온몸은 괴로웠다.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난 게 20년 만이죠. 최연소 섬 주민인 72세 회장님이 섬 마을 홍보 잘해 달라고 양주도 주셨는데, 너무 고생한 이야기만 하네요. 돈 쓸 곳도, 전화도 없는 그곳에서 저도 힐링했어요.”

‘세 친구’(1996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년)의 임순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소수자를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왔던 임 감독과 작품의 궁합이 잘 맞아 보인다. “감독님의 이전 작품을 보면 루저에게 카메라 포커스를 맞췄죠. 당시에는 세게 찍으셨어요, ‘와이키키 브라더스’ 마지막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벌거벗고 기타를 치잖아요. 근데 이제 시선이 온화하고 따뜻해지신 것 같아요. 촬영이 끝나도 한참을 ‘컷’ 소리 없이 기다리며 연기의 여백을 찍는 감독님이 인상적이었어요.”

“전화도 민박도 없는 섬에서 마음껏 힐링했어요”

‘남쪽으로 튀어’에서 김윤석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섬에 도착한 해갑의 가족이 단칸방에서 함께 자는 대목이다. “이 영화는 ‘MSG’가 없는 작품입니다. 드라마와 캐릭터만으로 관객에게 다가가요. 공부, 출세 다 버리고 섬에서 첫날밤을 보내는 이 장면이 영화의 모든 걸 설명합니다.”

1988년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그는 극단 연우무대와 학전에서 활동했다. 부산 동의대 재학 시절에는 연출을 맡았다. 감독 욕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친한 배우 중 절반 이상이 감독을 꿈꾸고 있어요. 연기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수행하지만 저도 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꿈이 있어요.”

늦깎이지만 배우 인생의 정점에 오른 배우. 그의 작품 선택 기준이 궁금했다. “당시에 들어왔던 시나리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를 뿐이죠. 다만 뭔가 아류의 냄새가 나는 것은 사양해요. 그동안 운이 좋았어요.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네요. 하하.”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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