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블스도어는 20여 가지 에일 맥주를 판매하는 게스트로펍(gastropub·미식 식당)으로 1322㎡(약 4백 평)의 규모에 1~2층 합쳐 2백여 석을 갖췄다. 가장 이색적인 건 매장 안에 맥주 발효조를 설치해 손님들이 양조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다는 것. 이는 지난해 주세법 개정으로 수제 맥주를 제조장이 아닌 다른 외부 장소에서도 팔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졌다. 이곳에서는 페일에일(Pale Ale), IPA(India Pale Ale), 스타우트(Stout) 등 3종류의 에일 맥주를 직접 생산하고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해외의 다양한 에일 맥주 20여 종을 게스트 맥주로 함께 선보이고 있다.
직접 생산한 에일 맥주의 가격은 테이스팅 글라스 180ml 3천6백원, 370ml 7천5백원, 470ml 9천5백원. 버거와 피자, 바 스낵 등 신세계푸드 R&D센터 셰프들이 직접 개발한 30여 가지 요리들은 3천원부터 3만5천원까지 가격대가 다양하다. 맥주도 맥주지만 셰프들이 만든 요리가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점심시간에도 식사와 맥주를 즐기는 고객들이 늘고 있는 추세. 국내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독특한 인테리어를 즐길 수 있다는 점 또한 고객들을 매료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이에 대해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맥주 제조 장비가 들어가야 하다 보니 공간 확보가 중요했다. 강남 곳곳을 물색한 끝에 다소 외지지만 이곳만큼 적합한 곳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현재 데블스도어는 평일 평균 8백여 명, 주말 평균 1천여 명 이상의 고객이 방문하고 있다. 특히 맥주 마니아들을 포함한 하우스 맥주 동호회원들 사이에서 반응이 뜨겁다.
하지만 신세계의 이 같은 질주를 모두가 마냥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만은 아니다. 주세법 개정의 취지 자체가 대기업이 장악한 맥주 산업을 중소·영세 업체에게도 기회를 주자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인 신세계가 발 빠르게 ‘골목 상권’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술장사는 돈을 벌어도 안 한다’는 고 이병철 선대 회장의 경영 이념과도 배치되는 일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이에 대해 신세계 측은 “데블스도어 오픈은 신세계푸드 대표이사인 김성환 사장의 진두지휘 하에 추진된 일로,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삼성의 불문율을 깼다는 시선에 대해서는 “신세계는 1997년 삼성에서 분리됐고 10여 년 전부터 조선호텔에서 ‘오킴스브로이하우스’라는 펍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이번 데블스도어 오픈으로 선대 회장의 경영 철학을 깼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외식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사업 개척은 기업의 사활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에일 맥주를 바탕으로 맛있는 음식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세워 새로운 외식 문화 창출에 나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신세계그룹의 주류 계열사인 신세계L&B는 조만간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신세계사이먼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에 와인 전문 매장인 ‘와인 앤 모어’를 개장할 예정이다. 100㎡(30평) 규모의 와인 앤 모어 매장에서는 이마트와 신세계L&B가 공동 출시한 뒤 올해 밀리언셀러 기록을 세운 저가 와인 G7을 포함해 다양한 가격대와 종류의 와인을 취급할 계획이다.

청담동 분더샵 내에 입점한 라 페르바 매장. 세계 유명 뷰티 브랜드를 독점 수입해 판매한다.
맥줏집은 맑음, 화장품 사업은 흐림 기업의 성장 동력 찾아 신사업 진출

하지만 화장품 사업은 실적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비디비치는 신세계인터내셔날에 인수된 뒤 전국 신세계백화점 10여 곳과 부산 및 파주에 자리한 프리미엄 아울렛에 입점하고, GS숍과 손잡고 홈쇼핑에도 진출했지만 2년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2012년 23억원, 2013년 41억원, 지난해 상반기에도 25억원의 영업 적자를 냈다. 이에 대해 비디비치 관계자는 “아직은 투자 단계라 본다. 최근 비디비치 리인벤팅 작업을 통해 세계적인 크리에이티브 아트 디렉터 파비엥 바론과 함께 패키지 디자인 작업을 마쳤고, 중국과 홍콩 등 해외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30여 개의 해외 유명 의류 브랜드를 직수입하는 등 패션 사업에 정통한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최근 화장품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정유경 부사장이 뷰티 사업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정 부사장은 그동안 주력 사업인 패션을 포함해 인테리어, 광고 디자인 등을 통해 오빠인 정 부회장을 돕는 역할을 해왔다. 이번 화장품 사업 또한 자신의 관심과 노하우를 투영한 비즈니스라 볼 수 있다.

정유경 부사장은 평소 메이크업을 직접 할 만큼 뷰티 제품과 노하우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화장품 사업 실적은 좀 더 지켜봐야 할 일.
실제로 라 페르바에서 수입하는 브랜드는 미국과 유럽 리치 마켓에서 검증된 제품들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고가만을 지향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샴푸의 경우 2만원대부터 8만원대까지 다양하다. 화장품과 보디 제품도 마찬가지. 김 상무는 “최근 들어 뷰티 편집숍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네임 밸류와 가격을 주로 따졌다면, 최근에는 제품에 대한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취향과 스타일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현명한 소비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 확장 모멘텀으로 변신과 모험이라는 양날의 칼을 집어든 신세계 남매. 절박함 속에서 탄생한 신성장동력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인 만큼 대기업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도 동반돼야 할 것이다.
■ 디자인·박경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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