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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길 위에서 인생의 꽃 다시 피운 이임자

글 정혜연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2009. 07. 20

잡지 편집장으로 앞만 보며 열심히 살다가 퇴직 후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이임자씨. 그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국토순례 길에 올라 길 위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길 위에서 인생의 꽃 다시 피운 이임자

예순이 넘은 나이에 국토순례 길에 올라 2년 만에 완주한 이임자씨(66). 무언가 다시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할 나이에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 그는 예상했던 대로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정정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후회한 순간도 많았어요. 젊은이도 하기 힘든 여정을 견뎌야 할 때마다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마다 미국의 전 헤비급 챔피언 제임스 J. 코벳의 말을 떠올렸어요. ‘너무 지쳐 발을 움직일 수조차 없다고 느낄 때, 한 라운드를 더 뛰면 된다’라고 했던 말을요.”
그가 국토순례에 도전한 계기는 젊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78년부터 20여 년간 잡지기자로 일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몸담고 있던 ‘음악동아’가 폐간되면서 명예퇴직을 했다. 그는 퇴직하기 전까지 하루하루가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애착을 갖고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국내외 아티스트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재능 있는 신진음악가들을 조명하는 일도 했죠. 클래식에서 국악까지 다루지 않은 장르가 없었어요. 때문에 퇴직 후 상실감이 더 컸죠.”
생각보다 충격이 컸던지 2년 동안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됐다고 한다.
“몸이 가장 먼저 반응하더라고요. 온몸이 벌집처럼 흉측하게 변하는 피부병을 앓았어요.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한 번에 폭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차차 나아졌는데 이후에는 머리카락이 숭숭 빠지더라고요. 몸과 마음이 고통으로 가득한 나날이었어요.”
하지만 더 가슴 아팠던 건 따로 있었다. 직책에서 비롯되는 권리를 자신의 권리로 착각했던 그는 직책을 잃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닌 자신의 모습에 쓸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처음으로 벌거벗겨진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길 위에서 인생의 꽃 다시 피운 이임자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이는 자기 자신뿐이라고 말하는 이임자씨.


“정신적으로 힘든 때였죠. 그러다 내린 결론은 은퇴(retire)의 뜻이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바퀴를 새로 갈아 끼우는(re-tire), 즉 또 다른 기회라는 것이었어요. 몸이 차츰 나아질 때쯤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리라는 마음이 생겼죠.”
그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리더십센터에서 강사로 일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몇 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강의를 할 때면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교육을 통해 누군가를 감동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달았다고.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콘텐츠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고 새롭게 채우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나를 비우고 나니 인생 2막을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보였어요”
그가 선택한 일은 국토순례였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막연하게 꿈꾸던 일이었다. 하지만 한동안 떠날지 말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실행에 옮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고심했는지 몰라요. 언제 출발할지, 코스는 어떻게 잡을지 등 생각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문득 이러다 떠나지도 못하고 그만두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일단 시작부터 하자 싶어 2004년 12월29일, 강원도 고성으로 향했어요.”
길 위에서 새해를 맞은 그는 새로운 희망으로 다시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자신감이 생겨 한 코스씩 나아갈 수 있었다. 그는 6000km에 이르는 우리 땅을 2년 동안 18회에 걸쳐 두 발로 걸었다.
“1년이면 되겠지 했는데 결국 2년 반이 걸렸어요. 주중에는 강의를 해야 했고, 주일에는 교회학교 교사로 일해야 돼서 스케줄을 조정하다 보니 긴 시간이 소요됐죠. 여행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정말 값진 경험이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코스에 대해 묻자 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밟았던 모든 길과 마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모두 의미 있는 곳이라 하나만 특별히 생각나지는 않네요. 가장 힘들었던 때는… 아, 기억나요. 서해안 무창포해수욕장으로 걸어갈 때였죠. 길을 몰라 지나가던 젊은 남자에게 얼마나 가야 하냐고 물었는데 ‘30분만 쭉 걸어가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해가 일찍 떨어진 늦가을이었는데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아 두렵기까지 했죠.”
30분이면 된다던 그 길을 그는 2시간 동안 걷고 나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걷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식당에 앉아 따뜻한 음식을 먹는데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인간은 목표가 분명하면 어떻게든 결말을 맺게 돼요. 다리가 아프고, 주변에 아무도 없고,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삶에 대한 의지만 확고하다면 무엇이든 못할 게 없죠.”
인생 2막을 활기차게 살아가는 그는 자신 주변의 퇴직자를 예로 들며 “은퇴 이후의 삶을 더 잘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어떤 일을 할지 늘 생각하며, 두려움 없이 길을 나서야 더욱 윤택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미국 국민화가로 불리는 모제스 할머니는 76세에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 될 때까지 붓을 놓지 않았어요. 가난한 농부의 아내였던 그는 관절염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자 대신 붓을 들었다고 해요. 정말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죠. 때문에 나이에 상관없이 꾸준히 길을 찾아 나서야 해요.”
그는 2년여 동안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모아 ‘내 꽃도 한 번은 피리라’를 출간했다. 책 속에는 그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성찰이 담겨 있다. 그는 “자기 인생의 가치를 결정하는 이는 자신뿐”이라며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할 것을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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