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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팽팽한 공방

기러기 아빠 위장이혼 사건의 내막

‘위장이혼 후 버림받았다’ vs ‘협의이혼 해놓고 돈 때문에 딴소리 한다’

■ 기획·최호열 기자 ■ 글·백경선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4. 06. 10

유학중인 자녀에게 미국 영주권을 얻어주기 위해 위장이혼을 했다는 기러기 아빠가 위장이혼무효소송을 냈다 기각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세간에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법원 판결에 불복한 것은 패소한 기러기 아빠 권씨가 아닌 ‘남편을 버렸다’고 알려진 아내 송씨. ‘변심한 아내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권씨측 주장과 ‘협의이혼을 해놓고 돈 때문에 뒤늦게 소송을 낸 것’이라는 아내 송씨 측의 팽팽한 공방을 취재했다.

기러기 아빠 위장이혼 사건의 내막

지난 4월30일, 유학을 보낸 자녀에게 미국 영주권을 얻어주기 위해 위장이혼을 했다 아내에게 버림받았다는 한 기러기 아빠가 ‘이혼무효소송’을 냈다 패소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법원은 “협의이혼 당사자들은 일시적으로나마 법률상 부부관계를 해소하려는 이혼 의사가 있었다고 봐야 하고, 그 경우 이혼에 다른 목적이 있었더라도 이혼 신고를 무효로 할 수 없다”며 기러기 아빠 권씨(63)의 소송을 기각했다. 대신 아내 송씨(51)에게 “아파트는 혼인생활 중에 부부가 서로 협력해서 모은 재산인 만큼 자녀 양육권을 갖되 재산분할로 권씨에게 4억4천여 만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언뜻 권씨가 패소하고 아내 송씨가 승소한 것으로 보이는 이 판결에 불복한 것은 의외로 권씨가 아니라 송씨였다. ‘이혼’을 놓고 서로 다른 주장으로 팽팽히 맞선 양측의 입장과 송씨가 법원 판결에 불복한 이유 등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사건의 내막을 알아보았다.
권씨 “아이들 위해 한 위장이혼이었다”
먼저 권씨측에서 주장하는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경찰 공무원이었던 권씨와 중학교 음악교사였던 송씨 부부는 87년 재혼, 지난 98년 초등학교에 다니던 두 자녀를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보냈다. 먼저 송씨가 휴직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있다가 2000년 권씨가 정년퇴직하면서 역할을 바꾸어 권씨가 미국으로 건너가 자녀들 뒷바라지를 하고 송씨는 귀국해 다시 교편을 잡았다.
그런데 고령의 무직자인 권씨는 미국 취업이민이 곤란했고, 따라서 자녀들도 영주권을 얻어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이에 권씨 부부는 위장 이혼을 한 뒤 아내 송씨가 미국 시민권자와 위장 결혼해 영주권을 취득한 후 다시 권씨와 재결합하는 묘안을 짜냈다. 이렇게 해서 부부는 2002년 8월 ‘서류상’ 협의이혼을 한 후 권씨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송씨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그런데 권씨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어찌 된 일인지 그가 미국으로 연락을 해도 송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게다가 송씨가 자신과 상의도 하지 않고 부부가 살던 한국의 집을 판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권씨는 결혼한 전처의 자식들 집을 전전하며 송씨를 만나기 위해 찾아다니다 드디어 2003년 2월 귀국한 송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송씨가 “이제 남남이니 접근하지 말라”며 피했고, 그런 송씨와 다툼을 벌이다가 결국 권씨가 2003년 5월 법원에 “위장이혼이었으니 이혼은 무효”라는 소송을 내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송씨 “가정불화로 인한 협의이혼이었다”
반면 송씨측이 주장하는 사건의 전말은 전혀 다르다.
교통사고로 전처와 사별한 권씨와 한번 이혼한 경험이 있는 송씨는 87년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전남편이 술을 마시고 가정에 착실하지 않아 이혼을 했던 송씨는 권씨가 술도 안 먹고 착실하다고 소개를 받아 그것만 믿고 결혼한 것. 그런데 결혼생활 초기부터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송씨측은 가정불화의 발단은 권씨의 거짓말과 아이들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권씨는 자신이 대학을 나왔고 전처와 사별한 뒤 3남매를 키우고 있다고 했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권씨는 고등학교만 졸업했고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부터 대학을 갓 졸업한 큰딸까지 5남매를 두고 있었다는 것.
송씨는 그래도 권씨를 믿고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권씨의 전처 자식들은 송씨를 엄마로 인정하지 않았고 경제적 문제까지 보태져 가정불화는 더욱 심해졌다고. 경찰 공무원인 권씨의 월급과 교사인 송씨의 월급을 합한다 해도, 전처 자식인 5남매와 송씨가 낳은 남매까지 전부 7남매를 키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
하지만 송씨는 재테크도 열심히 하고 저축도 해서 권씨의 전처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냈고, 특히 2명은 의대를 보내는 등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고 한다. 송씨는 이렇게 “전처 소생도 자기 자식처럼 키우고 결혼까지 시켰는데 권씨는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후처 소생이라고 무시하고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송씨측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사이가 벌어진 두 사람이 이혼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의대를 나온 권씨 막내아들(28)의 혼사 문제였다고 한다. 권씨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가 사별한 뒤 후처와 함께 산다는 것을 처가 식구들이 알게 될까 염려해 송씨에게 처가 식구들 앞에 나타나지 않기를 요구했다는 것. 이에 송씨는 2002년 8월 권씨와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송씨측은 ‘영주권을 목적으로 한 위장이혼’이 아니라 협의이혼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송씨의 친정 식구들은 20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가서 영주권을 가지고 있으며, 송씨는 가족들의 도움으로 미국에서 취업했고 취업이민 비자도 곧 나올 예정에 있어 이혼과 영주권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언론에 송씨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다는 식으로 보도가 되었는데 그것도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8억원 상당의 아파트?
또한 송씨측은 권씨가 이제 와서 이혼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이유에 대해 재산 문제, 즉 시가 8억원 상당의 아파트 때문으로 보고 있다. 송씨측에 따르면 아파트는 권씨가 3분의 2를, 송씨가 3분의 1을 지불해 공동 명의로 구입해서 부부가 함께 살다가 2000년 4월 송씨 명의로 이전한 것으로, 이혼하면서 송씨가 낳은 아이들이 아직 어려 양육비를 위해 권씨가 송씨에게 증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때 권씨가 증여세까지 납부하고 명의 이전도 직접 했다는 것. 그런데 권씨 부부가 이혼한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 권씨 전처 자녀들이 아파트를 되찾기 위해 권씨를 종용해 이혼무효소송을 냈다는 게 송씨측의 주장이다. 이에 대한 권씨측의 입장은 1심 판결 이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조기유학 보낸 아이들에게 미국 영주권을 얻어주기 위해 위장이혼했는데 변심한 아내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권씨측의 주장과, 위장이혼이 아닌 협의이혼이었으며 재산도 이혼 전에 남편과 상의해서 나눠 가진 것이라는 송씨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법원이 내릴 판결에 귀추가 주목된다. 앞으로 법원에서 내리는 결과가 어떻든 간에 이번 사건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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