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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마음이 선물이라면 ‘말’은 포장지예요”

첫 어린이책 펴낸 이금희 아나운서

윤혜진 객원기자

2026. 01. 07

이금희 아나운서가 자신이 보고 들은 아이들의 반짝이는 말을 엮어 첫 어린이책을 출간했다.
‘소통의 아이콘’이 전하는 다정한 말의 가치.

말은 힘이 세다. 무심코 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상처로 남을 수 있고, 다정한 말 한마디가 닫혔던 마음도 열게 만든다. 1989년부터 36년 동안 마이크를 잡아온 베테랑 아나운서 이금희는 말이 지닌 힘을 누구보다 잘 안다. ‘6시 내고향’ ‘아침마당’ 등 KBS 간판 프로그램 MC를 거쳐 2007년부터 현재까지 KBS 쿨FM ‘사랑하기 좋은날 이금희입니다’ 라디오 DJ로 수많은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위로를 건네고 있다. 22년 6개월간 모교인 숙명여대 미디어학부에서 겸임교수로 말하기 수업을 하면서도 15년 동안 1500여 명과 30분씩 1:1 티타임을 가졌다. 열 명 중 서너 명이 얘기하다가 울었다. “그랬구나”가 가진 힘이었다. 

귀한 경험을 더 많은 이와 나누고자 이금희 아나운서는 최근 책을 펴냈다. 그런데 한 권이 아니다. 닷새 간격으로 2030세대를 이해하고 싶은 4050세대를 위한 에세이 ‘공감에 관하여’와 어린이책 ‘모두 행복해지는 말’을 내놓았다. 한 명이 거의 동시에 책 두 권을 내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 이유에 대해 이금희 아나운서는 “서로 연결된 책이다. 결국 이 아이들이 자라서 이런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면서 “말은 부지불식간에 나오니 어려서부터 좋은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 보이고 싶어 속마음보다 거칠게 말하는 아이들

두 책을 어떻게 닷새 간격으로 내게 됐나요.

일단 각 출판사로부터 비슷한 시기에 제안을 받았어요(웃음). ‘공감에 관하여’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금방 결정했는데, ‘모두 행복해지는 말’은 아이도 없는 저한테 왜 어린이책을 제안하는지 궁금했어요. 물어보니 출판사에서 요즘 아이들이 말하기, 특히 예쁘게 말하기에 취약하다는 거예요. 곰곰이 생각해보고 찾아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주변에서 보고 들은 예쁜 말 사례들을 모아 각색해서 동화처럼 썼어요. 동시에 비슷한 열정으로 시작했으니 출간일도 그에 맞췄죠. 

‘모두 행복해지는 말’에 담긴 이야기들은 어디서 모은 건가요. 



평소 기억에 남았던 지인들의 이야기가 많아요. 제가 글로 써서 아이 부모에게 확인받기도 하고, 몇몇 아나운서 후배들에게는 예전에 해준 얘기를 적어서 보내달라 하기도 했어요. 이 밖에도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청취자들이 보내준 사연에서 소재를 얻기도 하고, 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한 작가님 딸 이야기도 있어요. 

거의 다 실화라는 거네요. 이 예쁜 말을 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거죠(웃음). 

그러니까요. 책에 자신이 한 이야기가 3가지 정도 들어간 아이가 있는데, 그 말들을 했을 당시에는 초등학교 1~2학년이었다가 지금은 5학년이에요. 책이 나오기 전에 부모를 통해 먼저 보여줬더니 “그땐 내가 유치했지” 그러더래요(웃음). 아이들은 참 한 해 한 해가 달라요. 

왜 자라면서 속어나 욕을 입에 달고 살게 되는 걸까요.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이렇게 예쁜 말을 관계 언어로 잘 썼던 건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예요. 그때는 부모나 주변 어른들과 주고받는 말이 중요했는데,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친구들이 제일 소중하고 함께 노는 게 좋을 때잖아요. 그런데 사춘기 또래 집단의 특성은 자기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잘 모르면서 자신을 완성된 자아라고 생각하죠. 세상에 불평불만이 많고, 특히 어른들에게 못마땅한 게 많아요. 또 이 시기 중요한 특징이 다른 사람들한테 세 보이고 싶다는 건데, 세 보이려다 보니 속마음과 달리 더 거칠게 말하는 거죠.

특히 요즘은 학교마다 온라인 언어폭력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불안 세대’란 책을 쓴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급격하게 증가한 미국 청소년들의 자살, 우울증 원인으로 스마트폰을 지목해요. SNS 중독이 심각한 문제인 게, 우리 때는 친구랑 싸웠어도 집에 가면 잊잖아요. 요즘 아이들은 잠자리까지 따라온 스마트폰으로 끊임없이 SNS를 하다 보니 친구 관계 문제가 더욱 심각해져요. 아무래도 얼굴을 보지 않으니 더욱 말을 막 하기 쉽고 오해도 더 쌓이죠. 우리나라라고 사정이 다르겠어요. 스마트폰 사용을 막을 수 없다면 오히려 이를 이용해 학교나 지자체마다 청소년 온라인 상담실을 운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익명의 사례들을 공유해 아이들이 위로받고 고민에 대한 해결 팁도 얻어가고요. 요즘 아이들은 AI에게 상담한다는데, 전문가들의 살아 있는 조언이 낫지 않겠어요. 

애초에 고운 말을 쓰면 좋을 텐데요. 일일이 감시할 수 없으니 지도하기 쉽지 않아요.   

반드시 고쳐야 하는 부분이지만 하루아침에 고치긴 힘들 거예요. 왜 언어 습관을 고쳐야 하는지 설명해주고, 아이와 지킬 수 있는 선을 합의해보면 어떨까요. “평소 거친 말을 계속 사용하면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서도 불쑥 튀어나올 수 있다. 그 상태로 사회에 나간다면 오해를 살 수 있어 걱정이 된다”고 말하고, 아이와 적어도 집에서는 욕을 쓰지 않기로 약속하는 거예요. 친구들 사이에서도 선을 정하고, 되도록 그 선을 넘지 않게 조심하고요.     

한편으로는 아예 대화를 나누는 행위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소통에 서툰 아이들도 많아요. 

옛날에는 형제자매가 많다 보니 관계 언어를 태어나면서부터 익혔어요. 반면 요즘 아이들은 외동이 많죠. 결정적으로 코로나19 시기에는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질 못했어요. 가더라도 마스크를 쓰고,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질 못하니 관계 언어를 익히지 못했을 거예요.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에요. 한 대학교수님이 얘기해줬는데 요즘 대학생은 1학년도 1학년, 4학년도 1학년이래요. 학교생활에 대해 아무도 모른대요. 졸업 작품 전시회 준비를 하면서도 서로 데면데면하게 있느라 진도가 안 나가고요. 함께 먹고 자고 갈등도 겪어보면서 한 작품을 만들어가는 건데, 부대껴보질 못한 거죠. 초중고 곳곳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거예요.

커뮤니케이션을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말 잘하는 팁을 알려준다면요. 

소통은 마음으로 하는 거지, 기술이 중요하지 않아요. ‘아침마당’을 오랫동안 진행해보니 게스트가 달변가라고 해서 시청률이 잘 나오진 않았어요. 눌변이더라도 진심으로 말하는 분에게 방청객들이 집중하고 시청률도 높더라고요. 심지어 이런 경험도 있어요. 결혼과 함께 은퇴하고 외국으로 건너갔다가 이혼 후 연예계 컴백한 분이었는데, 그분의 드라마틱한 인생 스토리에 시청자들이 빠져들게 하려면 결혼 생활 이야기가 꼭 필요했어요. 하지만 몇 번을 질문해도 계속 다른 답을 하더라고요. 결국 포기했는데, 그 방송을 본 제 친구들이 “그분은 얘기를 안 하고 싶었던 거지? MC들이 애쓰는데도 딴 얘기를 하더라”라고 알아주는 거예요. 그때 진심은 통하고, 말하지 않아도 그 메시지를 사람들은 아는구나를 깨달았어요. 중요한 건 마음과 태도예요. 다만 그런 건 있죠. 마음이 선물이라면 말은 포장지예요.

지금 그 말은 ‘모두 행복해지는 말’에도 나오는 대목이네요.

그 부분은 제가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 창작했어요. 창작한 글은 두세 편밖에 안 돼요. 왜 꼭 넣고 싶었냐면, 저는 ‘오다 주웠다’가 좋은 표현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좋은 선물을 준비해놓고 휙 던지면서 “오다 주웠다”고 하면 받는 사람이 덜 행복해요. 오다 주운 거면 꼭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줘도 상관없고, 만약 안 주웠다면 선물이 없었을 거 아니에요. 그런 표현 대신 “네가 초록색을 좋아하잖아. 이걸 보니까 네 생각이 나더라.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면 듣는 이가 더 행복해지지 않겠어요? 이왕이면 예쁘게 포장해 전하면 더 좋죠.

부모들이 머리론 알지만, 아이를 대할 때 말이 예쁘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특히 잘못한 점을 지적할 때요.  

제가 부모 강의 요청도 종종 받아요. 공부를 해보니 청유형으로 바꿔 말하는 훈련이 있어요. 예를 들어 “너 왜 늦게 왔어? 이번 주에 벌써 세 번째야”가 아니라 “오늘도 늦었네. 왜 이번 주에 세 번이나 통금 시간을 어겼는지 얘기해줄 수 있을까? 그러면 우리 시간을 다시 정해볼까? 네 생각에는 몇 시가 합리적인 것 같아?”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속은 터지겠지만 아이는 자기가 참여한 룰이기 때문에 더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들죠. 부모가 입을 열면 아이의 뇌가 정지된다는 실험 결과가 있어요. 얼마나 슬픈 일이에요.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말 곱게 나올 리가

‘공감에 관하여’는 4050세대를 위한 책이에요. 상처를 주지 않는 소통이나 마음을 여는 대화를 어려워하는 중년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보면 40대가 인생에서 제일 힘든 시기 같아요. 특히 아이를 낳아 키우는 중년은 자기 몸도 예전 같지 않은데 육아에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잖아요. 게다가 위로는 부모님도 챙겨야 할 나이예요. 중간에서 굉장히 버겁게 느껴지죠. 회사에 가도 비슷해요.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위치예요. 2030세대 후배와 선배 사이에 껴서 일이 많죠. 이렇게 이중고, 삼중고를 겪고 있는 상태에서는 말이 곱게 나올 수가 없어요.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예쁜 말이 나오는 거예요.

이금희 아나운서의 40대는 어땠나요.

저는 결혼을 안 한 게 확실히 에너지를 비축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가족에게 써야 할 시간을 저 자신에게 온전히 쓸 수 있어서 좋아하는 책 읽고 영화 보고 사람도 많이 만났어요. 지금 예쁜 말이 잘 안 나온다면 하루에 1시간씩이든, 일주일에 한 번 몇 시간이든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세요. 나가서 뛰어도 좋고, 카페에 멍하니 앉아 있어도 좋아요. 주말에는 남편과 아내가 날 잡아서 오전, 오후 번갈아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거예요. 그러면 주말에도 시간이 아까워 눈이 번쩍 떠질걸요. 자신이 행복해지면 행복한 말이 나와요.

그럼 어떨 때 행복한가요.

저는 행복의 역치가 굉장히 낮은 편이에요. 갓 지은 밥에 아삭아삭한 김치만 먹어도 맛있고, 만족하면 행복해져요. 최근에 ‘은중과 상연’이란 드라마를 봤는데, ‘이걸 왜 이제야 봤을까’ 싶을 만큼 재미있었어요. 그럼 일 끝나고 빨리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싶어 설레고, 사람들과 만나 작품 얘기를 나누며 또 즐거워져요. 그래서 저는 행복이 자주 찾아와요. 

최근 가수 성시경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건넨 따뜻한 위로가 인상적이었어요. 본인이 위로나 조언을 듣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나요.

혼자 묻고 혼자 답을 해요. 어떻게 해야 위로가 되는지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알잖아요.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도 자신이 제일 잘 알고요. 예전에는 친한 언니한테 얘기하고 위로를 받았어요. 그 언니한테 들었던 말 중에 잊을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당시 제가 사귀던 남자친구에 대해 주위에서 전부 반대했어요. 그런데 그 언니만 “그 사람이 지구상에서 제일 나쁘더라도 네가 좋아하면 나는 인정해”라고 말해줬어요. 그렇게 늘 제 편을 들어주던 언니와 오해가 생겨 멀어지고 힘들어했을 때, 또 다른 언니가 이런 말을 해줬어요. “네가 지구면 그 사람은 천왕성이라고 생각해. 멀어졌지만 은하계에 같이 있어”라고요. 제가 그 말을 들은 후로는 자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게 됐어요.

2026년은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해예요. 지금껏 달려온 ‘나’에게 말 한마디 해줄까요. 

글쎄요. 제 생일이 12월이라 그쯤 되어야 느낌이 올 것 같은데요? 하하. 다만 이 말만큼은 확실히 할 수 있어요. 참 열심히 살아왔다고요. 한 친구가 제 묘비명에 “열심히 살다 갔다”라고 써주겠단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이 참 좋았어요. 저는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나를 위해서’예요. 실제로 일이 저를 성장시키고 변화시켰거든요. 워낙 TV 활동을 하면서 라디오 진행도 하고 대학원에 다니거나 강의를 하는 등 몇십 년을 바쁘게 살아왔기 때문에,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게 습관이 됐어요. 해냈을 때의 만족감도 커요. 그래서 저한테 “열심히 살았고, 괜찮게 살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많은 일을 해왔는데, 더 해보고 싶은 일이 남아 있나요.

당연히 있죠.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요. 2026년이면 제가 ‘아침마당’을 그만둔 지 10년이 돼요. 그동안 저한테 꾸준히 비슷한 프로그램들 제안이 들어왔지만 다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새롭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몇 해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든 토크쇼 ‘거침마당’은 재미있게 했어요. MC가 저랑 박명수 씨랑 침착맨 이말년 씨, 이렇게 처음으로 같이 일해보는 셋이었거든요. 정말 재미있어서 앞으로 예능 프로그램을 더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요즘 새로운 곳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거군요.   

네! 저는 매우 직관적인 사람이에요. 제 MBTI가 J(계획형)라서 단기 계획을 세우는 건 좋아하나 장기적으로 보면 직관적으로 반응해요.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이금희 #행복 #말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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