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면 도대체 탐구력이 무엇일까.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에게 탐구력은 낯선 영역이다. 고등학생 학부모들도 학생부에서 탐구력이 중요하단 건 알지만 막상 탐구력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입학사정관을 거쳐 서울 대치동에서 수시 컨설턴트로 활동한 김신애 작가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고 해서 탐구력이 있는 게 아니며, 탐구력은 학원에서 단시간에 배울 수 있는 능력 또한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가 최근 ‘대치동을 이기는 내 아이 탐구력 로드맵’을 펴낸 이유도 초중고 아이의 발달 단계에 맞춰 가정에서 차근차근 탐구력을 길러주라는 의미에서다. 김 작가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 길러낸 탐구력이 입시는 물론 학교 밖 세상에서 마주하게 될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 입시에서 탐구력이 더 중요해진 배경은 무엇인가요.
2028년 대입 개편의 키워드는 통합 수능과 내신 5등급제의 영향입니다. 기존에는 선택형 수능이었고 내신도 9등급제라 조금 더 학생들을 촘촘하게 줄 세울 수 있었는데, 개편되면서 대학에서는 학생 선발 시 보완책을 생각해야 하게 됐어요. 지금 상위권 대학에서 발표한 내용들을 보면 학생부 항목 중 교과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하 세특)을 교과 전형에도 반영하겠단 입장이에요. 세특은 교과 수업 중 학생의 태도나 탐구, 사고력 등이 드러날 수 있는 부분이에요. 특히 대학 입시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서울대가 수능 60%와 교과 역량 평가 40%를 합해 정시 전형을 운영하겠다고 했어요. 이 부분 역시 학업성취도뿐만 아니라 아이가 주도적으로 어떻게 학업을 이끌어갔는지 비교과 활동을 보겠다는 의미인데, 비교과 활동에서 차별성을 보이려면 탐구력이 중요합니다.
대학 입시에서 필요로 하는 탐구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이해하기 쉽게 평가 요소를 기반으로 탐구력을 설명하면, 탐구력은 과정 중심 평가를 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에서 특히 중요한 역량이에요. 서울 상위 15개 대학 정도의 학종 평가 기준을 보면 크게 학업 역량, 진로 역량, 공동체 역량 3가지로 나뉩니다. 여기서 탐구력은 보통 학업 역량의 하부 평가 요소로 들어가요. 지적 호기심을 바탕으로 사물과 현상에 대해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했는지 보는 것이죠. 예를 들어 제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인데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팽이를 만들어 시합을 했대요. 여기서 스토리 있는 공부를 하려면 팽이가 도는 원리를 고민해 최적의 팽이를 만들고 여러 방법으로 돌려보고 수업이 끝나도 고민하는 거예요. 소재를 바꾸면 더 좋을지, 바람을 이용하면 좋을지 생각하면서 혼자 팽이를 새로 만들어보는 등의 서사가 바로 학생부에서 말하는 탐구력입니다.


서울대가 지난 9월 29일 발표한 2028학년도 입시 개편안의 핵심은 정시에서도 학생부 반영 비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주제 탐구’가 중요해졌다.
탐구력 길러주는 수행평가 적극 활용하기
현재 우리 교육 현실에서는 학부모들이 아이의 탐구력을 기르고 기록으로 담는 과정에 대해 막막하게 느낄 것 같아요.아무래도 교육 시장이 효율성을 강조하니까요. “이게 왜 안 되지?”라는 말이 아이에게서 나올 때까지 고민할 시간을 줘야 하는데 기다려주질 않죠. 하지만 초중등 과정에도 탐구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초등학교에서는 교사가 실험을 설계하고 이끌지만, 아이가 질문을 하거나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는 행위가 탐구에 포함돼요. 중학교에서는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넣어 각자 자신만의 실험 설계를 해라’ 식으로 활동이 주어지는데, 이게 바로 수행평가예요. 결국 초중등 과정에서 차곡차곡 역량이 쌓여야 고등학교에서 자유롭게 개방적 탐구를 할 수 있어요.
현 교육 시스템에서 수행평가가 탐구력을 기르는 과정이라 할 수 있으나 학생들이 수행평가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죠. 내신 대비 학원 다니랴, 수능 준비하랴 시간이 한정적이니까요.
수행평가는 토론, 글쓰기, 보고서, 실험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을 적용해보는 과정이에요. 자기주도 학습을 연습해 볼 기회죠. 스스로 주제를 찾고 자료 조사하면서 공부하는 아이가 얼마나 있겠어요. 수행평가를 통해 어쨌든 계획을 세우고 자료를 수집해 자기 생각을 담아 글로 완성하는 경험을 해봄으로써 다음에 조금 더 심화된 공부를 할 때 이 방법을 활용해볼 수 있어요.
수행평가를 효율적으로 준비하는 팁이 있을까요.
요즘은 챗GPT 같은 AI를 잘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단순한 내용 채집이 아니라 스스로 어떤 주제에 대해 고민할 때 그 주제를 조금 더 구체화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정보를 추가하면서 살을 붙여나가는 용도로 활용해보세요. 관점이 다양해질 수 있어요. 무엇보다 수행평가는 선생님이 처음부터 평가 기준을 제공해주잖아요. 근거를 제시하고 자료 출처를 밝히면서 내용을 완성했을 때 어떤 기준으로 더 좋은 점수를 받는지, 반대로 점수가 깎이는지 경험해보는 게 나중에 탐구보고서 작성 시 도움이 됩니다.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본인이 적극적으로 지식 확장 활동을 했다는 증거물이 바로 자발적으로 준비하는 탐구보고서니까요.
탐구보고서의 탐구 주제는 어떻게 정하나요.
탐구보고서는 주제가 50%를 차지한다고 봐도 무방해요. 교과서에 기반한 내용에서 출발해 자신의 지적 호기심이나 관심사, 진로를 더해 ‘개별성’을 갖는 주제를 찾아야 합니다. 자신이 실제로 하기 쉬운 주제, 실험 도구가 필요하다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주제 등을 택해도 됩니다. 다만 그 주제는 보고서를 위해 억지로 하는 탐구활동이 아니라 ‘얼마나 구체적이고 진정성 있는가’가 중요해요. 탐구보고서의 개수와 분량은 중요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화학 세특을 잘 써야 한다면 선생님께 “이번에 화학에서 탄소에 대해 배웠는데, 그중에서 탄소의 어떤 작용에 관심이 생겨 관련 책을 찾아봤어요. 그 안에 이런 내용이 있었는데, 이 부분을 주제로 삼아도 괜찮을까요?”라고 구체적인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탐구보고서를 쓸 때 교사의 도움을 어느 정도까지 받을 수 있나요.
주제 탐구의 경우 개인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학교 상황에 따라 도움을 주는 정도가 달라요. 그래서 이왕이면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부터 ‘학교알리미’ 사이트에서 고교 특색 사업을 확인해보길 추천해요. 수시 합격자를 많이 배출하는, 학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학교일수록 탐구활동을 지원하는 특색 프로그램을 시스템적으로 마련해놓아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도움을 받고 싶다면 관련 전공 동아리 활동도 도움이 됩니다. 물론 이러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더라도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학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도 있지만 대체로 20~40명 정도 선에서 운영하거든요.
무전공 선발이나 융합형 자유전공 선발을 생각한다면 학종과 탐구보고서를 어떻게 준비하나요.
무전공 선발, 융합형 자유전공 선발에서는 더 학생의 탐구력을 확인하고 싶어 할 겁니다. 특히 융합형은 다양한 분야를 탐색한다고 해서 융합형이라 부르지 않아요. 융합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오히려 더 명확해야 해요. 대학에 있지 않은 전공을 해보겠다는 거잖아요. 성균관대 같은 경우는 몇 해 전부터 학종에서 진로 역량 대신 탐구 역량을 보고 있어요. ‘나는 어떤 전공을 하나 정하기는 조금 애매하지만, 어떤 주제를 어디까지 혼자 공부해봤기 때문에 대학 입학 후 전공 심화 공부를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해야 해요.
질문을 자유롭게 던질 줄 알아야 지적 호기심 발달
세특에 남는 탐구활동의 핵심은 결과가 아니라 탐구의 이유다. 왜 이 실험을 했는지,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는지, 탐구 과정에서 무엇을 새롭게 깨달았는지가 기록으로 남는 것이다. 결국 자기 주도적인 탐구를 하려면 어릴 때부터 질문하는 힘을 키우는 경험이 필요하다. 김신애 작가는 “아이가 질문하길 원한다면 인풋을 먼저 제공하라”고 조언했다.어떻게 하면 아이로부터 좋은 질문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아이가 질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궁금한 상황에 놓이게 해주세요. 제가 아이와 식품점에 갔는데, 아이가 초록색 이끼 같은 치즈를 봤어요. 먹어도 되는지, 우유를 상하게 해서 치즈와 요구르트를 만든다면 치즈와 요구르트의 발효과정에서 차이는 무엇인지 묻더라고요. 물론 아이의 질문이 터무니없을 때도 많을 거예요. 예를 들어 “엄청 큰 킹콩이 학교를 부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받았다고 가정해볼게요. 부모가 “학교를 부수려면 힘이 얼마나 필요한데?” “킹콩 정도 힘을 가진 다른 동물은 없어?” 식으로 질문을 이끌어 아이 스스로 질문을 고쳐나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러려면 아이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가 우선이 되어야 해요.
중고교 시기 독서를 통해 탐구력을 길러주려면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은가요. 거의 독서가 단절되다시피 하는 시기잖아요.
바쁜 중고등학생이 대단한 실험을 설계해 탐구력을 기르긴 어려우니 독서가 중요해요. 그런데 수행평가를 할 때 책을 활용하라고 하면 아이들이 부담스러워해요. 빨리 끝내야 하는데 책 한 권을 언제 다 읽느냐는 이유에서죠. 이럴 때는 발췌독이라도 시도해보길 추천해요. 먼저 관련된 책을 찾고 목차를 보며 필요한 부분을 활용해 만든 결과물이, 인터넷에서 블로그나 기사를 간추려 만든 것보다 차원이 다른 전문성이 있다는 점을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자료를 찾을 때도 요약된 내용 말고 출처를 통해 원문을 직접 읽어보려는 노력이 중요해요. 이런 작업이 가능하고 역량만 된다면, 논문에서 발췌독을 하거나 논문에 있는 선행 연구를 참고해 본인의 탐구 주제를 마련하는 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어요.
초등학생 아이를 둔 전문가 엄마로서 아이의 탐구력을 길러주고자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아이 학교에서 주말마다 주제를 정해서 글쓰기 숙제를 내줘요. 저는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하나 검색해서 객관적인 정보를 꼭 글에 넣도록 해요. 객관적인 자료를 글에 넣어봄으로써 글의 방향성이나 색깔이 달라지는지를 느껴보는 거죠. 또 탐구력은 자기주도학습이 되어야만 발현될 수 있는 역량이에요. 자기 주도성을 위한 첫걸음으로 위클리 플래너를 쓰고 있어요. 요즘 고등학생 맞춤형 학생부 관리를 해줄 때 처음 하는 일이 내신 시험 준비 계획을 짜주는 거예요. 아이들이 이만큼의 양이면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서요. 아들은 위클리 플래너를 처음 쓸 때는 계획을 짰는데도 좌절하는 경험을 몇 번 했어요. 몇 번 실패하더니 스스로 과업 처리 속도를 알게 되더라고요. 중학생이 되면 수행평가나 시험 준비할 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일상에서 시작되는 탐구력
초중등 시기 탐구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는 엄마표 방법을 소개한다. 김신애 작가는 “생각을 정리해 표현할 수 있도록 머릿속에 사고의 단계를 장착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문제점 찾아주는 복기
세계적인 e스포츠 선수인 페이커는 경기를 마친 후 경기 내용을 복기한다. 복기는 분석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부족한 점을 찾아 고치도록 돕는 오답 노트와 같은 원리다. 일상에서 복기 연습을 통해 스스로의 생각을 구조화한다면 자기만의 생각 틀을 만들 수 있고 기억 용량도 키울 수 있다. 더불어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지난 주말 다녀왔던 외할머니 댁에 가는 길을 떠올려본다거나,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고 주인공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 이유는 무엇인지 같은 구체적인 내용을 얘기해본다.
지식이 촘촘해지는 비교하기
김신애 작가는 수시에서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2차 면접을 준비하는 수업을 하면서 비교하기 역량의 중요성을 알았다. 구술 고사 성격을 띠는 경우 제시문이나 표, 그래프 등이 주어지고 학생이 각각을 비교 분석하며 문제 푸는 과정을 설명하는 형식이다. 비교는 자신이 설명하려는 대상을 조금 더 명확하게 보여주는 도구가 된다. 유사한 대상 비교는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에 비슷한 새 정보를 덧붙여 자기의 지식체계 안으로 통합시킨다. 차이점 비교는 공통점과 다른 점을 찾은 후 자연스럽게 ‘왜 다를까?’라는 질문의 시작으로 연결된다.
생각 도식화하기
생각은 머릿속에 있을 때보다 시각화될 때 보다 쉽게 정리할 수 있다. 김신애 작가는 초등학생에게는 마인드맵 그리기를, 중학생에게는 글을 표로 바꾸고 표를 그래프로 만드는 연습을 추천한다. 책을 읽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줄거리를 구조화하거나 인물 관계도를 그려보며 저자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표나 그래프로 정리하는 연습은 앞서 비교하기에서 언급한 면접이나 논술 전형의 지문을 해석할 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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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해윤 기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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