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DU

“‘To do list’ 내려놓고 아이와 하루 10분이라도 그냥 즐기세요”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박소영

김명희 기자

2025. 03. 11

최선을 다하는데도 아이와의 관계가 늘 어렵고,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에 시달린다면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박소영 원장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보자.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박소영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박소영 원장

유니세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행복지수는 41개국 가운데 38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1년 발표한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중 ‘주관적 행복’ 부분에서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행복지수는 22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아이 1명을 양육하는 데 부모와 양가 조부모, 삼촌, 이모까지 8명의 지갑(8포켓)이 동원되고, 부모는 맞벌이하면서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맘 카페와 유튜브, 육아서의 정보를 섭렵하는데 아이들은 왜 점점 더 불행해질까.



육아 베스트셀러에 오른 ‘마음이 부자인 아이는 어떻게 성장하는가’의 저자인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박소영 모아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부모들이 생각하는 ‘좋은 부모’는 아이를 위해 육아를 공부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부모다. 하지만 아이들이 바라는 ‘좋은 부모’는 자신에게 공감해주고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부모”라고 말한다. 내가 되고 싶은 부모가 아닌, 아이들이 원하는 부모에 한 걸음 가까워질 때 아이들은 마음이 단단하고 행복할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고려대 의대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박소영 원장은 SBS Plu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리턴즈’ 자문단으로 활동하는 한편 유튜브 채널 ‘우리동네 어린이병원, 우리어린이’를 통해 어린이 관련 의학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 열정 가득한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다. 진료실 문을 나서면 일곱 살 난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한 박 원장은 부모부터 행복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유쾌하고 쉬운 설명과 함께 육아 관련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박소영 원장이 운영하는 모아정신건강의학과는 서울의 전통 부촌인 강남 압구정, 슈퍼리치들을 위한 프라이빗뱅킹 센터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이 자산을 일구고 불리는 것만큼이나 마음을 돌보는 일에 신경 쓰기 시작했고, 육아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맘 카페·유튜브에 넘치는 육아 정보, 내 아이에게 독이 될 수도

부모와 마음을 나누고 정서를 공유하는 상호주관성이 잘 형성된 아이는 커서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부모와 마음을 나누고 정서를 공유하는 상호주관성이 잘 형성된 아이는 커서도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양육에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가요.
물론이죠. 과거에는 아이의 신체 성장에만 초점을 맞췄지만 이제는 심리 발달을 체크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가 됐습니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신체검사를 통해 성장 상태를 확인했다면 이제는 정서·행동 검사를 통해 정신 건강도 체크하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아이의 심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소아정신과를 찾는 사례도 늘었고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육아의 질이 한층 높아질 수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아졌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소아정신과를 찾는 아이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어요. 과거에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에 진료를 받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영유아기부터 발달 문제로 내원하는 일이 늘고 있어요. 맞벌이 가정 증가와 어린이집·유치원 등 기관 생활을 일찍 시작하면서 부모님들이 아이의 발달 상태를 더 빠르게 인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예전에는 ‘크면 괜찮아진다’고 생각했던 문제들을 이제는 조기에 발견하고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영유아 발달 문제 가운데는 자폐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자폐 진단을 받는 사례는 많지 않다고요.
발달 문제로 병원을 찾는 아이 중 약 20%가 자폐 가능성이 있으며, 나머지는 단순한 발달 지연이나 언어 지연인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율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조기 진단 기술의 발전과 스펙트럼의 확대 그리고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영향도 큽니다. 또 인터넷과 SNS를 통해 무분별한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부모님들이 불필요한 걱정을 하거나 지나치게 예민해지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육아 공부를 잘못하면 독이 되기도 한다”고 하신 거군요.
맞습니다. 그래서 육아 리터러시가 중요합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유튜브, 육아서, 맘 카페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데, 정보가 많다고 해서 모두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육아가 더 어려워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정보의 신뢰도를 판단하고 내 아이에게 맞는 내용을 선별하는 게 중요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건 출산 전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된다고요.
아이를 낳기 전 ‘언제 아이를 낳겠다’거나 ‘직장 휴직은 어떻게 하겠다’ ‘육아는 몇 년 동안 누구의 도움을 받겠다’ 같은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다들 계획을 세우세요. 그런 계획 없이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쉽지가 않은 시대잖아요. 그렇게 현실적인 세팅을 완벽하게 해놓고 아이를 출산했는데 막상 부모로서 마음의 준비가 안 돼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어요. 아이를 낳기 전부터 거창하진 않더라도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나와 우리 아이는 어떤 사이였으면 좋겠는지,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은 생각을 조금씩 하다 보면 부모로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원장님은 어떤 부모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아이가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편하게 저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었고, 나이가 들어서도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관계를 원했죠. 결국 부모의 역할은 아이 스스로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출산휴가 3개월 후 다시 일을 시작하셨는데도 아이와 좋은 애착을 형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제가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찍 복귀한다고 해서 애착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걱정은 별로 없었습니다. 많은 부모님이 아이에게 중요한 시기에 곁에 있어주지 못할까 봐 걱정하시지만, 시간의 양보다는 아이와의 관계에서 질이 더 중요하거든요.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질을 어떻게 높이셨나요.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와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엄마라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일을 하는 것이 제 정신 건강에 중요하다고 느끼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언제나 아이가 1순위였고, 일하는 시간 외에는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했어요. 제가 잘하는 것이 아이와 노는 것이라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와 눈 맞추며 놀고,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에는 아이와의 스킨십과 놀이에 몰입했습니다. 아이가 깨어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그 시간을 최대한 의미 있게 보내려고 노력했어요.

병원 진료와 유튜브에 육아까지 병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번아웃이 오진 않았나요.
사실 요즘 시대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요. 예전에는 아빠는 일만 잘하고, 엄마는 아이만 잘 키우면 됐어요. 하지만 지금은 직업적인 역할도 잘하면서 아이도 잘 키워야 하니 각자 해야 할 일이 더 많이 생긴 거죠. 제 경우엔 예전엔 의학적, 병리학적 치료 중심이었는데 직접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육아와 정신 건강에 관한 현실적인 인사이트들이 쌓여 부모님들께 더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유튜브와 강연도 하게 되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리턴즈’ 방송도 하게 되면서 여러 좋은 기회들이 생겼어요. 그런데 일에 너무 매몰되다 보니 바쁜 일정에 지치고 체력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걸 보면서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는 거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2023년 1년 동안 일을 쉬고, 남편도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와 함께 제주도에 내려가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주도에서의 시간은 어땠나요.
저는 원래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일도 많이 벌이는 편인데, 거기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도 다 직접 해 먹고 같이 놀러 다니고 운동도 많이 하고 그렇게 지냈어요. 가족과 또 자연과 더불어 보낸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통하는 순간, 상호주관성

“아이를 낳은 후 6개월쯤 지났을 때, 주말 아침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해요. 아이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아이를 사랑한다는 걸 서로 인지하는 순간이었죠. 상호주관성이 형성된 거예요. 많은 부모님이 육아의 불안과 걱정 속에서 이런 순간을 놓치곤 하는데, 이 상호주관성의 개념을 알면 육아가 더욱 의미 있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박소영 원장은 부모들이 육아의 기쁨을 느끼고, 아이들이 마음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열쇠로 상호주관성을 꼽는다. 정신의학에서 상호주관성은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정서와 의도를 공유하며 함께 주관적인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육아에 있어서는 부모와 아이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을 뜻한다. 상호주관성을 키우기 위해선 아이와 관심사를 나누는 주의의 공유, 바라는 것을 나누고 욕구를 충족시키는 의도의 공유, 감정을 나누는 정서의 공유 등이 중요하다. 부모와 상호주관성이 잘 형성된 아이는 정서가 안정되고 애착이 단단해지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도 커진다.




상호주관성이 형성되는 시기가 따로 있나요.
성인들 사이에서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연애할 때 상대의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한다고 하잖아요. 그게 바로 상호주관성이에요. 그런데 상호주관성은 아이가 어릴 때 더 쉽게 형성돼요. 어릴수록 말이 아닌 정서적 교류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나이 들수록 부모는 아이에게 기대가 많아지고, 아이도 부모를 잔소리하고 통제하는 존재로 보게 되면서 상호주관성 형성이 어려워질 수 있어요. 실제로 진료실에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도 많이 오시는데, ‘우리 아이는 이것이 문제고, 무엇을 못한다’는 내용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하면서 ‘아이와 행복했던 시간이 언제였나요?’라는 질문에는 대답을 못 하는 경우가 많아요. 청소년기라 해도 부모와 자녀가 그냥 함께 있을 때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이 필요한데, 그걸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워요.

상호주관성이 잘 형성된 부모와 자녀는 어떤 모습인가요.
상호주관적인 경험이 많은 부모와 자녀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편안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아이는 실수를 하거나 어려움을 겪어도 부모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며, 이는 자기 신뢰와 안정된 애착으로 이어집니다. 청소년기에는 부모와의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하지만, 상호 신뢰가 형성된 관계에서는 아이가 속마음을 터놓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반면, 신뢰가 부족한 경우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대화를 피하게 됩니다. 따라서 상호주관적인 경험이 쌓인 부모와 자녀는 나이가 들어도 서로에게 기대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요.

책에 소개된 사례를 보면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오는 일이 많은데요. 아이의 정신적인 문제에 엄마들이 책임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서일까요.
예전보다 아빠들이 아이와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아졌고, 저는 이걸 굉장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아직은 엄마들이 아이와 함께 오는 경우가 더 많은데, 여기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가장 큰 이유는 아빠들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고, 또 병원에 오기를 조금 더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빠들은 출산 전후로 엄마처럼 아이와의 본딩을 자연스럽게 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육아에서 뒤처지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또 아버님들은 병원에 올 때 혼날까 봐 또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을까 봐 걱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에게는 엄마와 아빠 모두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두 분이 협력하는 것이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3월엔 유치원과 학교에서 새 학기가 시작되는데, 어떻게 하면 아이가 새로운 공간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새로운 공간에 대한 안전함을 판단하는 첫 지표가 부모입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엄마 얼굴을 쳐다보는데 엄마가 편안하게 웃고 있다, 그러면 ‘조금 겁나긴 하지만 엄마 표정이 괜찮은 걸 보니 한번 해볼 만하네’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엄마가 덜덜 떨고 안절부절못한다, 그러면 아이도 ‘위기 상황이다’ 싶어 긴장하게 됩니다. 아이가 흔들리고 불안할 때 부모의 역할은 편안하게, 단단하게 그 울타리를 지켜주는 거예요. 걱정이 되더라도 엄마가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도 적응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어요. 물론 기질에 따라서 하루 만에 적응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아이도 있어요. 아이가 예민한 기질이고 낯가림이 있다 싶으면 한 학기 정도를 적응 기간이라 생각하고, 그 기간에 어려움이 있어도 ‘그럴 수 있다. 이게 다 과정이다’라고 편하게 받아들이면 아이도 새 학기 적응이 좀 쉬워질 거라 생각합니다.

육아를 힘들어하는 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많은 부모님이 아이와 같이 있을 때 짧은 시간에 발달을 이끌어내야 한다거나 ‘to do list’에 얽매여 그 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육아가 힘겨운 부모님들에게는 하루 10분, 20분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아이와 편안한 시간을 가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부모와 아이 간의 즐겁고 편안한 시간이 쌓이면, 아이는 상황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되고 부모 역시 아이와의 관계가 더욱 특별하고 소중해질 거예요.


#박소영원장 #금쪽이육아법 #소아정신과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게티이미지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