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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곽영숙 국립정신건강센터장 “아이의 정신건강에 대한 걱정은 좀 과해도 괜찮아요”

윤혜진 객원기자

2024. 05. 03

단순히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에서 나아가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하는 부모가 많다. 그런데 이들이 놓치는 게 하나 있다.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면서, 정작 지금 내 아이가 행복한지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곽영숙 국립정신건강센터장

곽영숙 국립정신건강센터장

얼마 전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한 국제구호단체가 “어린이들의 마음을 돌보고 있다”며 보내온 정기 뉴스레터를 보고 머리가 띵했다. 아이들을 기아와 전쟁의 위험에서 구해내는 게 필요한 도움이라 생각했지 미처 마음까지는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이 물질적으로는 날로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전 세계 어린이들의 행복은 그에 비례하지 않는다. 유엔아동기금에 따르면 전 세계 아동·청소년 7명 중 1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그 숫자가 약 1억6600만 명에 이르는데, 이 중 42.9%가 불안과 우울증을 호소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황이 더 나쁘면 나빴지, 별반 다르지 않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2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만 12~18세 청소년의 스트레스 인지율이 2018년 32%에서 2022년 36%로 증가했고, 무엇보다 성인보다 높았다. 2021년 청소년의 스트레스 인지율은 32.3%, 성인은 26.4%였다. 심지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23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에서는 최근 1년 사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중고등학생이 31.2%로 나타났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는 학업 문제(42.7%), 미래에 대한 불안(19.8%), 가족 간의 갈등(17.9%) 순이었다.

행복하지 않은 상태를 넘어 죽고 싶단 생각에 이를 때까지 아이들을 혼자 두어선 안 된다. 국민 정신 건강 증진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국립정신건강센터의 곽영숙 센터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더욱 늘었다”며 “그래도 소아청소년정신과 문턱은 어른에 비해 비교적 낮은 편이다. 아이들은 회복탄력성이 높아 빨리 치료에 들어갈수록 경과가 좋다”고 말했다. 곽영숙 센터장은 국립정신건강센터 전신인 국립서울병원 소아정신과장과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원장,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장 등을 두루 거친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다. 국내에서 최초로 수행된 국가 단위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실태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바쁜 곽영숙 센터장을 만나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궁금한 부분을 물었다.

아이들은 우울함을 몸이 아프다거나 짜증으로 표현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의료부에도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많이 찾아오나요.
그럼요. 대기 환자가 많아 빨리빨리 진료해드릴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죠. 개인 소아정신과들도 대기가 한 달에서 3개월, 6개월까지 밀려 있어요. 저를 비롯해 주변 소아정신과 의사 동료, 후배들 모두 우리가 이렇게 잘살게 됐는데 왜 아이들은 더 불행한지가 화두예요. 학교 폭력 문제나 자해 및 자살이 늘고 있으니까요.

행복하지 않은 아이가 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정확한 답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하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며 확실히 더 불안이나 우울함을 호소하는 아이들이 늘어났어요.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이 있듯이 아이들은 제2의 가정인 학교에서 교육과 양육을 동시에 받으며 사회성과 문제해결력을 키워나가야 하는데, 팬데믹 기간 학교에 가질 못했잖아요. 또 전 세계적으로 고립되면서 가정 폭력이나 알코올 중독, SNS상 성적 학대 등에도 아이들이 예전보다 더 노출됐고요. 또 이런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부모들은 내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이 남의 시선을 걱정하는 마음보다 크니까, 그나마 큰 고민 없이 아이 손을 잡고 병원 문턱을 넘는 것 같아요.



병원 내원자 자체가 늘어서 병으로 진단받는 숫자도 커진 거군요.
저는 아이의 정신 건강에 대한 걱정은 좀 과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병원에 와서 괜찮다고 하면 안심하고 가면 되니까 문제를 부정하는 것보다 낫죠. 무엇보다 아이들은 빨리 좋아져요. 환경만 조금 변해도 좋아지고요.

어떤 진단이 가장 많은가요.
우울, 불안이 제일 많아요. 아이들 문제는 크게 외현화와 내현화로 나눕니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 ADHD, 틱장애 등은 알기가 쉬운데 불안이나 우울 같은 내현화 문제는 조금 더 심각해요. 아이들의 불안과 우울 증상은 그 자체가 성인과 다르거든요. 아이들은 “내가 우울해서 삶의 의미가 없어요”라고 표현하기가 힘들잖아요. 아이들은 우울함을 몸이 아프다고 하거나 짜증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불안해도 산만해질 수 있고요. 그런데 이 불안 장애에서도 아이의 나이에 따라 또 진단이 달라져요. 그래서 우리 같은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필요한 거예요.

불안한 마음이 연령대에 따라 어떻게 다른가요.
태어나 6~7개월 정도 되면 낯선 얼굴에 대한 불안이 생기다가 16~18개월 즈음 걸을 수 있게 되면서 부모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분리불안이 생겨요. 만 3~4세 때부터 엄마가 눈에 안 보여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면 이별을 견디지만, 이게 극복이 안 되는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는 걸 힘들어하죠. 이런 증상이 한 달 이상 계속되면서 강도가 심할 때 장애라고 진단을 내려요. 그런데 이런 이별 불안은 또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모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그래서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봐 불안한 마음으로 바뀝니다. 실제로 부모들이 100점 맞고 1등 하고 이런 성취에 대한 조건을 걸잖아요. 결국 사랑의 조건을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 생기는 거죠.

이런 불안함은 아이의 타고난 기질인가요. 아니면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 건가요.
대부분 2가지가 다 작용해요. 생물학적으로 부모의 성격을 어느 정도는 닮고요. 또 유전자도 환경에 의해 변화가 생길 수 있어요. 가정 폭력, 학대 등이 아이의 뇌 발달에 영향을 끼치니까요. 다시 말해 ADHD인 아이가 산만한 게 아이의 잘못도, 그렇다고 부모가 잘못해서도 아니란 거예요.

특히 엄마들은 아이에게서 정신적 문제를 발견하면 자책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부모가 부당한 죄책감을 갖지 않게끔 하는 거예요. 부모가 자신감이 없으면 일관성 있게 제대로 양육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어느 순간에는 과잉보호를, 어떤 때는 힘들어서 굉장히 화를 내게 돼요. 내 마음이 피폐한데 아이한테 무언가를 해줄 수 없는 거죠. 대부분은 어머니 탓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는 그 자체가 누구보다 아이를 끔찍하게 위한다는 거잖아요. 죄책감은 치료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많은 분이 아이의 약물치료에 부담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정신의학은 생물학적이면서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면을 두루 살필 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의사가 진료할 때 부모 상담도 하고, 우리 센터 같은 경우 학교 정신 건강 사업도 하는 거죠. 이런 환경적 요소나 아이 성격, 부모 문제 등이 시간이 걸리는 부분이라면 약물치료는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ADHD의 경우 약물치료 후 성인이 된 사람의 뇌 발달에서 약물치료 없이 성인이 된 케이스보다 뇌의 고등 중추인 뇌 바깥쪽 회백질이 훨씬 촘촘해요. 거의 정상에 가깝죠. 학교에 전혀 못 가던 이별 불안 장애 아이도 약을 쓰면 불안이 없어지고 학교에 가는 등 드라마틱하게 변화가 생기는 경우가 꽤 있어요.

병원을 고를 때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요.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가 되려면 일반 정신과 전문의가 된 후 2년 더 트레이닝을 거쳐 자격증을 하나 더 따야 합니다. 이 전문의 자격이 있는지를 살피는 게 필요하고, 아이와 충분히 면담하는 선생님인지가 중요해요. 보통 소아청소년정신과 진료는 아이 진료와 부모 상담까지 해야 해서 시간이 2배로 걸려요. 치료자 입장에서는 에너지가 많이 들죠. 그래도 어린아이일수록 비언어적인 놀이 등을 통해 관계를 맺고 아이가 자기표현을 하게끔 소통에 투자하는 분을 찾아보세요. 다만 정신과 진료는 일정 시간보다 더 상담받기를 원한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하는 구조예요. 개인 병원마다 다를 수 있으니 그 부분은 미리 체크해보세요.

“오래 사셔서 우리 애 끝까지 봐달라” 듣고 울컥

1962년 국내 최초 국립정신병원으로 출발한 국립정신건강센터는 1982년 국립서울정신병원, 2002년 국립서울병원으로 두 번 명칭을 바꾼 끝에 2016년 3월 국립정신건강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센터는 보건복지부 소속기관으로 의료부, 정신건강사업부, 정신건강연구소, 국가트라우마센터를 갖추고 있다. 곽영숙 센터장은 1986년부터 1999년까지 의사로서 이곳에 재직 당시 소아자폐증진료소를 열어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을 정착시켰다. 학교 정신 건강 사업에도 관심이 많아 직접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을 만나기도 했다. 곽영숙 센터장은 실제 손녀 외에도 전국에 아들, 딸, 손녀들이 많다. 이 같은 오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곽영숙 센터장은 부모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다.

왜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를 택했나요.
우리나라 최초의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인 홍강의 교수님이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처음으로 진료를 시작할 때 제가 전공의였어요. 당시로선 새로운 임상 분야지만 아이들이 좋아지는 모습이 눈에 바로 보이는 게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제가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지금까지 만나본 환자 중 어떤 환자가 가장 기억에 남나요.
기억에 남는 환자는 정말 많아요. 모든 환자가 소중한데, 제가 대학교수 퇴임을 앞뒀을 때 어떤 보호자분이 한 얘기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요. 제가 오랫동안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아이를 유치원 다닐 때 만나서 대학도 보내고, 군대도 보냈어요. 그분은 자폐 장애와 신체적인 문제가 있는 아이의 보호자였는데 당시 저보다 나이가 많으셨어요. 어느 날 저한테 “오래오래 사셔서 우리 아이를 끝까지 봐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울컥했어요. 이런 관계의 무게라는 건 제가 의사가 아니면 못 느끼는 거잖아요. 제가 그 아이의 병을 다 고치지는 못했지만 오랜 세월 같이하면서 조금은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해요.

요즘 자폐증이나 ADHD 환자가 많이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환경오염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예전보다 진단을 더 잘하기 때문이에요. 만성적인 자폐 장애는 초기 개입에 따라 굉장히 차이가 나요. 그래서 처음에 일단 진단을 정확하게 내리고 조기에 집중 치료해야 합니다.

최근 발달장애 자녀를 둔 웹툰 작가 주호민 씨와 특수교사 일로 발달장애 아동들의 통합교육이 이슈가 됐잖아요. 그 일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그 일을 보면서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안타까웠어요. 힘든 사람끼리 싸워서는 안 돼요. 서로 힘을 합해야 하는 공동 치료자이자 공동 교육자예요. 사실 현재 학교 상황을 보면 병원에 와도 치료 팀이 힘들어할 아이 여러 명을 특수교사가 보살피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선 누구나 힘듭니다. 물론 실제적인 학대가 일어났다면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죠. 제가 꼭 하고 싶은 말은 완벽한 부모는 없어요.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기대치를 현실에 맞추고 같이 해결해나가자는 거죠. 인력 지원이나 환경적 지원이 먼저 이뤄져야 하는 상황에서 힘든 사람들끼리 힘 빼지 않으면 좋겠어요.

청소년들은 사춘기라 그런지, 우울증이 있어서 화를 내는 건지 헷갈립니다.
2가지가 섞여 있을 수도 있죠. 이 시기 부모들이 흔히 하는 실수 중에 “사춘기라 그래”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반대로 부모가 불안해서 자꾸 아이의 모든 면을 문제 삼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병원을 방문해서 한번 진료를 받아보세요. 평소 어디 아플 때 건강검진을 받고 나면 마음이 놓이잖아요. 병원에서 좋은 얘기 듣고 자기 위로도 받고 하면 그게 어떤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으니까 아이가 걱정된다면 한번 병원에 가보세요.

전문가이자 인생 선배로서 센터장님은 이 시기를 어떻게 보냈나요.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가 어릴 때는 너무 바빠서 제대로 아이를 돌보지 못하다가 아이가 사춘기쯤 되면 직장에서 여유가 좀 생겨요. 그러면 갑자기 아이한테 엄청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아이가 어떤 행동으로 부모를 자극할 때도 있지만, 이 시기에는 아이와 좀 멀어져야 해요. 사춘기 때의 발달 과제는 자율성 독립인데, 이 시기에 아이가 엄마한테 맨날 와서 뭐 물어보고 그러면 그게 더 이상한 거예요. 친구와 가깝고, 엄마와는 비밀도 생기고 조금 멀어지는 게 건강한 겁니다. 그런데 엄마들은 반대로 하고 있죠. 그래서 아이는 자기 자율성을 침해받았다고 생각해 분노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이 시기에 부모는 그냥 옆에서 준비 상태로 있다가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 도와주는 게 제일 효과적이에요. 꼬치꼬치 캐묻지 말고 “엄마는 오늘 이런 일이 있어서 속상했어” “오늘 정말 좋았어” 하면서 자신의 얘기를 하세요. 그러면 아이가 편하게 받아들여요. 절대로 미리 무언가를 해주려 하지 마세요. 그럼 청개구리 심리가 있어서 더 도망갑니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뭘까요.
부모들에게 물어보면 자신이 어린 시절 받았던 양육에서 굉장히 많은 이야깃거리가 나와요. 어릴 때 싫어했던 어머니, 아버지 모습을 자기도 모르게 그대로 아이에게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내 부모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과정이 꼭 필요해요. ‘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아이를 대하는구나’ ‘이래서 이 부분에 무관심하구나’ 알 수 있어요. 그런 부분을 알고 난 다음에는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한테 원했던 것들을 그대로 아이에게 해주세요.


#국립정신건강센터 #우울증 #ADHD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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