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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낭만적인 느림의 미학, 클래식 힙이 뜬다

오한별 객원기자

2025. 09. 01

요즘 클래식이 한층 힙해졌다. 젊은 스타 연주자와 형식을 깬 콘텐츠가 어우러져 MZ세대의 흥미 넘치는 취미로 자리 잡고 있다.

2022년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우승 후, 임윤찬은 독보적 연주와 신비로운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으며 클래식 신드롬을 일으켰다.  @sofrolimsky

2022년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우승 후, 임윤찬은 독보적 연주와 신비로운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으며 클래식 신드롬을 일으켰다.  @sofrolimsky

‘텍스트 힙’이 독서와 서점을 유행의 전면에 세웠다면, 이제 그 흐름은 클래식으로 번지고 있다. 고전소설과 시에 빠진 요즘 세대는 이제 클래식 공연으로 교양을 쌓고, 자신만의 취향을 확장한다. 빠르고 자극적인 숏폼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에 클래식을 듣는다는 건 곧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클래식은 그들에게 단순한 교양이 아니라 취향의 아카이브를 확장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트렌디한 도구가 됐다.

젊고 매력적인 연주자와 콘텐츠 

세종문화회관이 사회 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문화동행 프로젝트 ‘누구나 클래식’. @sejongcenter

세종문화회관이 사회 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운영하는 문화동행 프로젝트 ‘누구나 클래식’. @sejongcenter

클래식이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깨트린 건 젊고 매력적인 연주자들의 등장 덕분이다. 2000년대 초 피아니스트 임동혁은 세계 유수 콩쿠르를 휩쓸며 ‘클래식계 오빠부대’를 만들었다. 이후 조성진, 임윤찬이 세계적 콩쿠르에서 잇따라 우승하며 Z세대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공연 영상은 유튜브와 SNS에서 폭발적으로 퍼졌고, 이를 계기로 클래식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들의 공연은 아이돌 콘서트급 티케팅 전쟁을 만든다.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부산콘서트홀에서 열린 정명훈·조성진·선우예권 공연은 예매 1분도 안 돼 전석이 매진됐다. 올해 3월 통영에서 열린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은 티켓 오픈 58초 만에 전석 매진, 6월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파리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티켓 오픈 30초 만에 1200석이 매진됐다.

클래식의 인기에는 유튜브와 SNS에서 확산된 바이럴 마케팅의 힘도 컸다. 유튜브 채널 ‘탱로그’는 클래식을 ‘클래식계의 피식대학’처럼 쉽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며, 고전음악을 낯설어하는 세대의 눈높이를 맞춘다. 병맛 섬네일로 화제를 모은 유튜브 채널 ‘클래식 좀 들어라’는 2023년 9월 구독자 7000명에서 올해 8월 12만3000명으로 급성장했다. 이 채널은 우아한 공연 영상이나 지적인 해설 없이 리스트 소개만으로 주목받았다. 

KBS교향악단, 유튜브 채널 ‘클래식좀들어라’ ‘탱로그’ 등 클래식의 인기에는 SNS에서 확산된 바이럴의 힘도 크다.

KBS교향악단, 유튜브 채널 ‘클래식좀들어라’ ‘탱로그’ 등 클래식의 인기에는 SNS에서 확산된 바이럴의 힘도 크다.

KBS교향악단은 예능 ‘1박 2일’의 강호동 어록, 드라마 ‘태조왕건’의 궁예 어록을 활용한 클래식 패러디 콘텐츠로 젊은 세대의 눈길을 끌었다. ‘강호동 협주곡’ ‘궁예 레퀴엠’ 영상은 각각 254만 회, 89만 회 이상 재생되며 클래식의 진입 장벽을 허물었다. 



드라마에서도 클래식은 현대식으로 변주되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는 참가자들의 잠을 깨우는 팡파르로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이 울려 퍼진다. 밝고 경쾌한 이 곡은 게임이라는 극한 상황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비극적 현실 속에서 캐릭터들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의 사운드트랙에서는 세계적인 음악 그룹인 비타민 스트링 콰르텟(Vitamin String Quartet)이 팝 히트곡을 19세기 영국 사교계의 분위기에 맞춰 재해석했다. 빌리 아일리시의 ‘bad guy’, 아리아나 그란데의 ‘thank u, next’가 대표적이다. 

관람료 선택제 등 접근성 넓히는 혁신적인 시도 

‘클래식 힙’의 확산에는 클래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한몫했다. 세종문화회관은 대표 사회 공헌 프로그램인 ‘문화동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누구나 클래식’을 운영하며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고 있다. 8월에는 지휘자 박근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피아니스트 신창용이 함께한 라흐마니노프 무대를 선보였다. 이번 무대는 소련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제2번’과 ‘교향곡 제2번’ 등 클래식 입문자에게도 친숙한 명곡으로 구성했으며, 1000~1만 원 사이로 관람료를 자율 책정하는 ‘관람료 선택제’를 도입해 큰 호응을 얻었다. 예술의전당은 7월 1일 공연 영상 플랫폼 ‘디지털 스테이지’를 정식 오픈했다. 이는 모바일과 웹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공연 실황을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로, 무료 회원이라도 100편에 달하는 영상과 라이브 스트리밍을 즐길 수 있다. 4K 화질의 프리미엄 콘텐츠에는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과 ‘미샤 마이스키 첼로 리사이틀’ 등 국내외 정상급 무대가 포함됐다.

넷플릭스 ‘브리저튼’ 사운드트랙은 비타민 스트링 콰르텟이 팝 히트곡을 19세기풍으로 재해석했다. @bridgertonnetflix

넷플릭스 ‘브리저튼’ 사운드트랙은 비타민 스트링 콰르텟이 팝 히트곡을 19세기풍으로 재해석했다. @bridgertonnetflix

MZ세대는 클래식을 통해 ‘진짜 경험’을 하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쌓는다.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시대에 클래식은 느림과 몰입이라는 반대의 감각을 제공하며, 엘리트 문화도 서브컬처도 아닌 현대적 교양의 새로운 얼굴로 자리 잡았다.

#클래식힙 #조성진 #예술의전당 #여성동아

사진제공 KBS교향악단 클래식좀들어라 탱로그 유튜브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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