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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EY

사과보다 싼 망고, 외식보다 ‘집밥’이 늘었다?!

고물가가 바꿔놓은 식탁 풍경

정세영 기자

2024. 04. 19

막연히 비싸다고 느껴졌던 수입 과일이 가성비가 더 좋고, 불경기에도 대형마트 신선식품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금과일, 금채소가 바꿔놓은 요즘 장바구니 풍경.

서울 서초구의 한 대형마트. 저녁 준비로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육류, 생선, 냉동식품 등 다양한 코너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반면 과일 코너는 상대적으로 한산하다. 그중 형형색색의 과일 앞을 서성이는 주부 김세연(38) 씨. 그의 장바구니에는 30% 할인 스티커가 붙은 1000ml 우유 한 팩과 1+1 라벨 행사를 하는 초코 과자 두 박스가 들어 있다. 4개에 1만990원인 참외 한 봉지와 500g에 7990원인 딸기 한 팩을 집었다 놨다 하던 김 씨는 결국 6개에 9960원인 미국산 자이언트 오렌지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김 씨는 “아이들 식단에 과일을 꼭 넣으려고 하는데 요즘 과일값이 너무 비싸서 넉넉히 살 수 없다. 국산 과일보다 수입 과일이 오히려 가성비가 좋아서 망고, 오렌지, 블루베리 등을 주로 구입한다”고 말했다.

비싼 과일을 내놓아야 하는 마트 역시 난처하긴 마찬가지. 해당 마트에서 5년간 일한 박 모 씨는 최근 과일값을 ‘역대급’이라고 표현했다. “가격표를 써 붙일 때마다 흠칫 놀란다”며 “사과 값이 정점을 찍었을 때는 ‘사과가 왜 이렇게 비싸냐’ ‘특수 품종이라 그러냐’는 등 소비자 불만이 컸다”고 밝혔다.


어? 망고가 사과보다 가성비 좋네!

자고 나면 올라 있는 물가 때문에 서민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통계청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94%(2020년 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 높았다. 물가상승률 역시 가파르다. 지난해 8월부터 3%대로 오른 물가상승률은 올해 1월 2.8%로 다소 떨어지긴 했으나 2, 3월 다시 연속으로 3%대를 기록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이맘때도 소비자물가지수가 높았는데 올해도 3%대 상승률이면 2년 누적으로 볼 때 물가가 엄청나게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민들이 직접 체감하는 물가 상승 요인은 바로 농산물 가격에 있다. 그 시작은 사과였다,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생각했던 사과가 하루아침에 ‘금사과’로 바뀌며 시장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통계청에 따르면 실제 지난 2월 사과 값 상승 폭은 작년 동월 대비 88.2%나 올랐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0년 1월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한 수치다. 사과만큼은 아니지만 배와 귤 값 역시 폭등 수준으로 올랐다. 종합적으로 우리나라 신선과일 물가지수는 2월에 이어 3월에도 40%나 넘게 오른 것으로 풀이된다.

과일값 폭등 사태 요인은 ‘날씨’에서 찾을 수 있다. 냉해, 우박, 태풍 등의 변수로 지난해 사과 생산량이 30%가량 줄었기 때문. 소매가격 또한 줄줄이 올랐다. 까다로운 검역 절차를 거쳐야 하는 탓에 당장 외국산 사과 들여오기도 힘든 노릇이라 사과 값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사과에 대한 수요가 배, 귤 등 다른 품목으로 옮겨가면서 연쇄적으로 과일값이 올랐던 것. 설상가상으로 대파, 애호박 등 채소류도 가격이 줄줄이 올랐는데 이 역시 겨울철 날씨 영향으로 생산이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4000원대로 치솟은 대파는 4월 10일 치러진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슈로까지 비화했다.



한편 대형마트 신선식품 수요는 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주요 대형마트의 올해 1분기(1〜3월) 농축수산을 포함한 신선식품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롯데마트(온라인 기준) 10%, 이마트 6%, 홈플러스(온라인 기준) 11% 증가했다. 이는 외식 물가가 고공행진 하면서 집밥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분석된다. 주부 한지혜(39) 씨는 “식구 4명이 외식하면 10만 원을 훌쩍 넘어 부담이 큰데, 그나마 밀키트 등 간편식의 가성비가 좋아 자주 애용한다”며 “요즘은 마감 세일을 하는 식품을 사기 위해 저녁 6시 이후에 백화점을 방문한다“고 말했다.

서울 한 백화점 식품관과 대형마트에 진열된 과일과 채소. 역대급으로 오른 사과 값의 영향으로 채소류의 가격도 최고점을 찍었다.

서울 한 백화점 식품관과 대형마트에 진열된 과일과 채소. 역대급으로 오른 사과 값의 영향으로 채소류의 가격도 최고점을 찍었다.

“‘두더지 잡기’ 식 할인으론 물가 못 잡아”

좀처럼 잡히지 않는 물가에 정부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올 3월 정부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때까지 가격안정자금을 무제한·무기한 투입하고 지원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1500억 원(납품단가 지원 755억 원, 소비자 할인 지원 450억 원, 축산물 할인 195억 원, 과일 직수입 100억 원)의 긴급 가격안정자금을 투입했는데, 이로써 신선식품 물가에 약간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4월 7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4월 5일 기준, 후지 사과 10개 소매가격은 2만4286원이었다. 한 달 전과 비교해 18.3% 하락한 가격이다. 토마토와 딸기 가격 역시 각각 16.9%, 23.2% 떨어졌다. 이후 정부는 그간 대형마트에 집중한 납품단가 지원 대상을 중소형 마트와 온라인쇼핑몰, 전통시장으로 확대했으며 바나나, 오렌지 등을 직수입해 시중가 대비 20%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했다. 정부는 오는 6월 말까지 파인애플, 망고, 자몽, 아보카도, 만다린, 두리안 등 총 5만t의 과일을 직수입해 공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시적 지원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특정 품목의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는 목소리가 크다. 실제로 정부가 할인 지원에 나선 사과, 토마토, 딸기 등 과일 가격은 안정세에 접어들었지만, 다른 품목의 가격이 튀어 오르며 일명 ‘두더지 게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등에 따르면 지난 4월 1일 기준, 양배추 1포기 소매가는 5409원으로 전주(3월 25일 3935원)보다 약 37.4%, 전월(3820원)보다 41.6%나 올랐다. 배추 또한 비슷한 상황. 양파, 당근, 시금치, 풋고추, 오이 등 식탁에 오르는 대부분의 채소 가격이 훌쩍 올라 또 다른 부담을 낳고 있다.

정부의 개입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균형을 깨뜨린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의 지원으로 사과 값이 내려가자 사과 소비가 늘었고, 연쇄 반응으로 사과 저장량이 줄어들어 향후 사과 값이 다시 튀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격안정자금을 투입하는 방식 외에도 유통 구조 개선 등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전국 32개 공영도매시장을 비롯해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 대형 유통업체 등의 농산물 출하와 유통 실태를 점검하기로 했으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국제 유가 상승, 고환율 등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내실을 다지지 않으면 결국 같은 위기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이런 와중에 최근 한국은행이 금리 동결을 발표했다. 4월 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종전 기준금리 연 3.5%를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2월과 4월, 5월, 7월, 8월, 10월, 11월과 올해 1월, 2월에 이어 10회 연속 동결이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인하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금리 역전 차가 2%p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격차를 더 벌리는 건 자금 유출 등의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는 당초 3월에서 5월로, 현재는 하반기로 미뤄진 상황이다.

금리 동결 발표에 앞서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추세적으로는 둔화 흐름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다만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유가와 농산물 가격의 움직임에 따라 매끄럽지 않은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고물가 분위기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서민 부담이 늘고, 민간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는 식의 도미노 현상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금사과 #물가 #사과값 #여성동아


사진 정세영 기자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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