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신상진 시장은 노동운동가, 의사, 4선 국회의원 등을 거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서울 마포의 가난한 집에서 나고 자라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지만, 삶의 방향은 출세와는 달랐다. 의료 기술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했고, 청춘의 한가운데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밤에는 야학 교사로 일하며 배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곁을 지켰다. 1984년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반지하 셋방으로 이사하면서 성남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두 딸도 성남에서 낳았다. 그가 이 도시를 ‘가장 사랑하는 삶의 터전’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늦깎이로 대학 졸업장을 받고 동네 병원을 열었으며,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C형간염 국가검진 도입, 존엄사법 발의 등 ‘의사 정치인’으로서 일관되고 소신 있는 행보를 이어갔다. 2020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활동할 때는 생후 12개월밖에 안 된 어린아이가 확장성심근증으로 심실 보조장치를 달아야 하는데 장비 대여비로 1억 원, 매달 유지비 1000만 원을 전액 개인 부담해야 한다는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해당 치료의 건강보험 급여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2022년 성남시장 당선 후에는 전 시민 무료 독감 백신 접종 시행에 이어, 7월부터는 65세 이상 시민 대상 대상포진 무료 예방접종도 시행한다.
그는 가족 이야기를 꺼낼 때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진다. 신상진 시장과 김미숙 여사 부부는 지난 5월 21일 세계부부의날위원회가 주관하는 ‘올해의 모범부부상’을 수상했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 노동운동 현장에서 만나 38년을 함께했다. “힘들 때마다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며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모범적인 부부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인터뷰 내내 신 시장은 시정과 가족 그리고 성남이라는 도시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솔로몬의 선택’ 취재를 위해 성남을 방문한 프랑스 공영 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신상진 시장.
‘성남표 공공 미팅’ 프로그램, 글로벌 주목받는 이유
성남시의 미혼 남녀 만남 주선 프로그램 ‘솔로몬의 선택’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구상하게 된 계기와 담고 싶었던 철학은 무엇인가요.국회의원 시절부터 저출생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만족스러운 해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시장이 되고 나서 지자체 차원에서라도 대안을 모색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 딸을 보니 대학원 생활에 바빠 이성을 만날 시간이 없더라고요. 주변에서 이성을 소개해줘도 단둘이 만나면 부담스럽고, 그걸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단체 미팅이 효과적일 거라 판단했고, 지자체가 주선하면 부담도 줄지 않을까 생각했죠. 참가자들 반응도 좋고, 시가 주관한다는 점에서 신뢰와 감사의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 비슷한 단체 미팅이 많은데 ‘솔로몬의 선택’만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요.
참가자들이 주말에 5시간씩 함께 지내며 다양한 게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가는 기회를 갖습니다. 특히 AI를 활용해 참가자들의 MBTI, 생활 패턴, 가치관 등을 미리 분석해 서로 잘 맞을 법한 커플을 매치해주는 시스템이 효과적이었습니다. 또 커피 쿠폰을 나눠줘서 게임 중간중간에 호감 가는 이성에게 부담 없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장치도 분위기를 띄우는 데 한몫했습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경쟁률도 6:1에서 8:1로 높아졌어요.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출산율 저하 문제는 전 세계 선진국 대도시들이 공통으로 겪는 고민입니다. 특히 개인화되고 단절된 도시 생활 속에서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단체 미팅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이 단순한 만남을 넘어 청년층의 결혼 인식 개선, 건강한 결혼 문화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공공적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서도 이런 시도를 개인의 외로움, 1인 가구 증가 등을 극복할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하고 있고요.

구미동 하수처리장 부지에 들어선 산책로 성남 두물길 개방 행사에 참석한 신장진 시장.

신 시장은 진로 특강 등을 통해 성남의 미래 인재인 청소년들과도 자주 만난다. 사진은 경기형 과학고에 선정된 분당중앙고 진로 특강 모습.
부부는 서로의 삶에 유익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향점과 가치관이 같아야 하죠. 저와 아내는 대학 시절 노동운동을 하며 함께 고생한 동지였습니다. 이후에도 병원 운영을 돈벌이보다는 공동체를 위한 사명감으로 해왔습니다. 부부간의 생활 철학이나 가치관이 같다면 생활 속 갈등도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동지적 결혼은 깊은 뿌리를 가진 관계라 쉽게 흔들리지 않죠.
그렇게 이상적인 관계에도 갈등은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어느 날 아내가 “서운한 게 하나 있다”고 하더군요. 병원을 운영하며 전세 살던 시절, 아내가 “집은 한 채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제가 “그게 무슨 속물 같은 소리냐”고 했다는 거예요. 저는 잘 기억도 못 하는데, 그날 이후로 아내는 집 얘기는 아예 꺼내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신념도 중요하지만 제가 그때 아내에게 너무 심했던 것 같아 두고두고 미안하더군요.
그래서 이후에 ‘내 집 마련’은 하셨나요.
2009년 은행주공아파트 28평을 마련했습니다. 곧 재건축 이주가 시작되기도 하고, 또 지난해 아내가 큰 수술을 하면서 환경을 좀 바꿔보자 해서 지금은 대출을 받아 다른 곳에 전세로 살고 있습니다.
부인이 꽤 무던한 성격 같으신데요.
정말 그렇습니다. 마을 행사 같은 곳을 가면 누구도 제 아내인지 모를 정도로 조용히 일만 하다 옵니다. 두 군데 행사가 겹치면 한쪽만 끝까지 책임지면서 설거지까지 다 하고 옵니다. 남들 다 빠져나가도 마지막까지 남아서 뒷정리를 책임지는 스타일이에요. 저보다 인기가 좋습니다.
공약 이행률이 84%에 이른다고 들었습니다. 비결은 무엇입니까.
저는 일을 설렁설렁 대충 하는 걸 싫어합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철저히 확인하는 스타일이에요. 행정은 결과가 눈에 보이니까 더 보람이 큽니다. 하지만 4년이라는 임기는 짧더라고요. 예산 편성, 시의회 통과, 입찰 절차 등을 거치다 보면 한 사업에 2~3년은 기본입니다. 예를 들어 판교의 카이스트 인공지능(AI) 연구원도 임기 초반부터 추진했는데 올해 11월에야 착공을 합니다. 물론 착공까지가 중요하긴 하지만, 연구원이 준공돼 학생들을 선발하고 연구가 진행돼야 비로소 제대로 된 마무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회의원 시절 C형간염 국가검진 도입, 성남시 전 시민 무료 독감 백신 시행 등 건강 및 보건 분야에 일관된 철학이 있습니다.
저는 원래는 판사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 골수염으로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으면서 의료비 보증인이 없다고 치료를 못 받는 사람들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생명과 건강은 평등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후 의사가 됐고, 야학 교사와 노동운동을 하며 사회 구조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의료 관련 입법이나 정책은 실제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일이라 특히 보람이 큽니다.
신념의 원천은 어머니와 아내
서울대 의대 출신이면 의사로도 크게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요.후회는 없습니다. 어머니는 미싱사셨고,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하셨어요. 제가 의대에 진학하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제 형님 고생 끝났다”고 했지만, 어머니께 “왕진 가방 들고 무의촌 진료 다닐 테니 그런 기대는 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어요. 보통 어머니 같았으면 “왜 그러냐”고 말리셨을 텐데, 저희 어머니는 전혀 그런 말씀이 없었어요. 이후에 제가 노동운동을 하다 남영동에 끌려갔고, 그때 충격으로 쓰러지신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집에 갔더니 이미 상을 알리는 등이 걸려 있더군요. 제가 왜 이렇게 돈에 거리를 두나 생각해보니, 어머니 때문이었어요. 어머니께 호강할 기대는 접으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랬던 제가 돈에 연연하면 너무 이율배반적이잖아요.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 때문에라도 떳떳하게 살아야겠다, 이렇게 된 거죠.
성남시의 자연·여가 공간도 많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도시 설계에 있어 어떤 철학을 갖고 계신가요.
현재 시민들에게 유익하면서도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탄천 준설 작업 당시 생태계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수질이 개선되고 생물다양성도 회복됐습니다. 담수량이 늘면서 수해 예방 효과도 있고요. 도시 공간은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대상 진로 특강도 자주 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시나요.
먼저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충분히 고민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설정하라고 합니다. 결정이 틀릴 수도 있지만, 일단 도전하고 열심히 하면 그 과정 자체가 자산이 됩니다. 성남은 과거 어려운 도시였지만 지금은 첨단 과학도시로 변모하고 있죠. 이런 도시에서 사는 자부심도 심어주려 합니다.

지속 가능한 도시로의 여정
경기형 과학고 유치에 성공해 분당중앙고가 2027년 3월 과학고로 전환될 예정입니다. 성남시의 향후 교육정책 방향은 어떻게 되나요.과학고를 중심으로 산학연관 협력체계를 구축해 이공계 미래 인재 양성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기업 인턴십, 공동 연구, 전문가 강연, 멘토링, 창업 지원, 직업 체험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입니다. 또 기업·대학·연구 기관과의 연계를 강화하여 과학고 학생들이 실무 경험을 쌓고, 지역 산업과 연계된 맞춤형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고요. 성남시는 4차산업 특별 도시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판교 IT 기업 및 연구 기관과 협력하여 특화 교육과정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과학고를 미래 인재 양성의 거점으로 육성하며, 지역 기반 과학고 설립의 전국적 모델로 확대해 나가겠습니다.
노동과 시민운동, 의료 활동을 거쳐 정치에 입문했고 지금은 지방행정가로 주목받고 계신데요. 지금의 자신을 스스로는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가요.
국회의원 시절에는 국가적 차원의 제도 개선과 입법 활동에 매진했고, 지금 성남시장으로서는 현장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하는 일에 책임감을 안고 임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남시장으로서의 제 소임은, 성남이 대한민국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성남을 사랑하는 사람, 청렴함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애쓰며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봐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임기 내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지금이 ‘공약 이행의 골든타임’인 만큼 추진 중인 여러 사업을 속도감 있게 완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특히 분당 지역은 노후화된 주거 단지의 재건축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시민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단순한 건축물 교체가 아니라 스마트시티로의 전환, 교통과 인프라 개선, 탄소중립도시 설계까지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수정구와 중원구 같은 원도심의 재개발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도시 간 불균형을 해소하고,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도시환경을 만드는 일은 중단 없이 추진돼야 할 정책입니다. 공약은 시민과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들을 임기 내에 가시적으로 이뤄내서 시민들이 ‘정말 변했다’고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제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저출생 문제 해결에 성과가 있는 도시로 평가받고 싶어요. 저출생 문제는 단순히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삶 전체를 바꾸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성남은 단발성 출산장려정책을 넘어 아이를 낳고 키우는 전 과정에서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종합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예컨대 보육·돌봄 서비스의 질적 향상, 주거 안정, 부모의 일·생활 균형, 청년정책 등 모든 것을 하나의 생애 주기로 보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성남이 단순한 선도 도시가 아니라, 저출생 문제 해결의 실질적 ‘모델 도시’가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선택’처럼 성남이 보여준 변화가 전국으로 퍼져나가길 기대합니다.
#신상진 #성남시장 #솔로몬의선택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성남시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