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핑크만큼 의견이 분분한 컬러도 드물다. 이번 남성복 컬렉션에는 핑크빛 행렬이 이어지며 남성들이 성 고정관념 없이 자유로이 색을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시몬로샤는 시스루 톱에 은은한 분홍빛 와이드 팬츠를 매치해 남성복에 우아함과 깊이를 더했고, 드리스반노튼은 강렬한 채도의 분홍 시폰 트렌치코트로 관능적인 무드를 연출했다. 언리얼에이지옴므는 진주 장식이 가미된 연보라색 셋업으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알렉산더맥퀸 역시 핑크 레이스 블라우스에 틴트 선글라스를 조합해 펑크적인 감성을 극대화했다. 좀 더 과감한 스타일을 원한다면, 꼼데가르송의 진분홍 슈트에 주목할 만하다.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컬러와 실루엣은 핑크가 지닌 에너지의 극치를 보여준다.

최근 남성복 런웨이에 스커트 열풍이 거세다. 유행을 선도하는 디자이너들이 앞다투어 남성복에 스커트를 도입하면서 스커트는 더 이상 여성들의 전유물이 아닌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스타일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시즌 모스키노와 비비안웨스트우드는 하늘하늘한 시폰 랩스커트를 선보이며 마치 휴양지에 있는 듯한 여유로운 무드를 연출했다. 언더커버와 알릭스히긴스도 마찬가지. 몸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우아한 실루엣의 스커트 셋업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 로리윌리엄도처티는 인종과 성별의 경계를 초월한 다채로운 스커트 룩으로 다양성을 포용했다. 스커트는 이제 남성들에게도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여성들에게도 새로운 자극이자 반가운 흐름으로 받아들여지는 중이다. 남성복 매장에서 스커트를 당당히 고르는 여성들의 모습도 점차 익숙해질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여성스러운 디테일이나 실루엣이 강조된 니트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나누시카는 부드러운 베이지 톤의 프릴 니트 톱으로 젠더의 경계를 유연하게 풀어냈고, JW앤더슨은 레이스로 장식한 깊게 파인 V넥 니트 톱으로 고혹적인 무드를 더했다. 구찌는 경쾌한 스트라이프 패턴 니트 원피스를, 로에베는 밑단을 벨트로 장식한 크롭트 스타일의 폴로 니트 톱과 슬랙스를 선보이며 남성복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1980년대의 강인한 여성상을 상징하는 파워 숄더 실루엣도 재해석됐다. 입체적인 파워 숄더 카디건에 오밀조밀한 컬러와 패턴을 입혀 독창성을 드러낸 사카이가 대표적이다. 니트는 특유의 포용력으로 남녀 모두를 너그럽게 아우른다. 남성의 니트에 여성들이 눈길을 준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시대다.

마치 출근길 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아재미’ 가득한 슈트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완벽한 테일러링보다 어딘지 느슨한 무드로 연출하는 것이 핵심. 대디코어 트렌드와 함께 진짜 남자들의 슈트에 도전해보는 건 어떨까. 대표적으로 아미는 셔츠와 쇼츠 차림에 클래식한 재킷을 톤온톤으로 매치해 단정하면서도 재기 발랄한 무드를 선보였다. 제냐는 셔츠 대신 화이트 니트 톱을 이너 웨어로 선택해 한결 느긋한 분위기다. 루이비통 역시 정중한 셔츠와 넥타이에 가벼운 쇼츠와 롱 재킷을 더해 포멀과 캐주얼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었다. 그런가 하면 보디라인을 따라 흐르는 헐렁한 슈트에 골드 컬러 벨트로 잘록한 허리를 강조한 발망의 모델은 남성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할 만큼 매혹적이었다. 과감한 절개 디테일로 한쪽 팔과 다리를 드러낸 빅토리아베컴 슈트 역시 여성들의 탐닉을 자극한다.
#남성복컬렉션 #남성복 #여성동아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나누시카 로리윌리엄도처티 발망 비비안웨스트우드 알릭스히긴스 언리얼에이지옴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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