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1950(1917년 원본의 복제품), 자기 소변기, 30.5x38.1x45.7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마르셀 뒤샹(1887~1968)이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항공박람회를 관람한 뒤 친구인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 한 말이다. 이에 앞서 1917년 뒤샹은 이미 현대미술의 중요한 변곡점이 된 퍼포먼스를 벌였다. 당시 독립예술가협회 이사를 맡고 있던 그는 ‘출품비만 내면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전시회의 콘셉트에 따라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남성용 소변기에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달고는 ‘알 머트(R. Mutt)’라는 가상 인물 사인을 넣어 출품했다. 전시 관계자들은 대량 생산된 기성품, 그것도 변기가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냐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인 끝에 예술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고 ‘샘’의 전시를 거부했다. 이에 뒤샹은 한 잡지에 알 머트라는 무명 작가를 옹호하는 척하며 이 작품에 대한 글을 투고했다.
“변기가 부도덕하지 않듯이 머트 씨의 작품 ‘샘’도 부도덕하지 않다. 배관 수리 상점의 진열장에서 우리가 매일 보는 제품일 뿐이다. 머트 씨가 그것을 직접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일상의 평범한 사물이 실용적인 특성을 버리고 새로운 목적과 시각에 의해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생각으로 창조된 것이다.”
아티스트가 한 땀 한 땀 공들여 제작한 작품만이 예술이라고 믿던 시대, 뒤샹은 이미 만들어진 것(Ready-made)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현대미술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러한 뒤샹의 예술을 집중 조명하는 ‘마르셀 뒤샹’전(~4월 7일)을 마련했다.
에로즈 셀라비로 분장한 뒤샹, 1921, 만 레이, 젤라틴 실버 프린트, 17.8x13.3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기성품을 예술로, 몰래카메라 기법 최초 차용
로토릴리프(광학 원반), 1935, 오프셋 석판인쇄로 양면 인쇄된 마분지 원반, 지름 20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 2), 1912, 캔버스 유채, 147x89.2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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