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 작가가 2004년부터 수집한 음료 빈 병을 전시한 ‘10/4024’. 2 아디다스와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 컬렉션을 통해 현대인의 삶을 해석한 ‘원피스 SP’
내가 소비한 빅데이터의 실체
작가의 사망을 전제로 그의 유언에 따라 지시문을 수행한 결과물을 전시한 ‘아워 스폿’.
첫 번째 전시 공간 ‘원피스 SP’에서 보여준 아디다스와 나이키의 리미티드 에디션들은 컬렉터의 집착에 가까운 소비가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작가의 대중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집요한 수집벽은 두 번째 전시 공간인 2층의 10/4024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2004년부터 10년간 작가의 스튜디오 안에서 소비된 4024개의 음료 빈 병들은 그저 재활용 쓰레기 더미 정도로 치부될 수 있었던 병들의 행렬을 통해 동시대의 유행과 디자인 변천사, 그리고 추억의 미각 여행을 떠나게 한다.
세 번째 전시 공간은 작가의 연작 ‘아워 스폿’ 프로젝트를 일민미술관 학예팀이 재해석한 것으로, 관객들 스스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현재진행형의 전시라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프로젝트의 전제는 작가의 ‘사망’이다. 작가는 프로젝트를 위해 지인들에게 일종의 ‘지시문’을 전달하곤 했는데, 가령 그가 뉴욕에서 가고 싶었던 장소를 지인이 대신 다녀오도록 지시하고, 지인이 그 장소에서 가져온 것들을 수집하는 방식이다. 그의 지시를 받은 지인들은 그곳에서 사용한 영수증과 사진, 구입한 잡지 등을 가져옴으로써 프로젝트를 완성해왔다. 시드니의 지시문에는 그가 만나고 싶었던 인물을 대신 만나고 오기를 주문하였는데, 이는 실제 그의 지시문 내용에 일민미술관 학예팀이 기획한 허구가 더해짐으로써 작가와 닮은 다섯 명의 인물을 묘사하는 형태로 완성되었다. ‘작가의 죽음’은 그의 지시문 제목인 ‘유언’에 따라 지인들이 수집한 다양한 기록인 ‘유품’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작가의 지시문대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작가의 새로운 지시문을 전달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관람객’들이다. ‘본 지시문에 따라 서울을 여행해보세요!’ ‘기본적으로 수행하면서 모은 영수증, 티켓, 음식점 및 카페의 냅킨, 구매한 음료수 병이나 캔 등을 보관하고, 방문한 곳을 가능한 한 사진으로 기록합니다.’ 빈 테이블 위 ‘OUR SPOT SEOUL’이라는 제목의 지시문에는 오전 10시 전후 지하철 3호선 도곡역을 시작으로 서브웨이, 래미안대치팰리스 오른편의 놀이터, 산책로의 하늘, 은마아파트 왼편의 언덕 등 서울 곳곳의 공간을 작가가 원하는 동선에 따라 여행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물론 지시문에 담긴 내용들을 모두 수행할 필요는 없다. 작가의 지시문은 관람객의 의지와 스케줄에 따라 얼마든지 변형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프로젝트는 작가의 의도와 관람객 개개인의 다양한 경험이 의외의 방식으로 접목되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다.현대사회의 과다 생산과 과다 소비 행태를 집요하게 추적한 전시 ‘엉망’은 관람객 스스로 자신의 기록을 더듬어볼 수 있는 색다른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제목 ‘엉망Ungmang’展 기간 ~11월 25일(월요일 휴관) 장소 일민미술관1, 2, 3 전시실
관람료 일반 7천원, 학생 5천원(만 65세 이상, 장애인,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50% 할인) 문의 02-2020-2050 info@ilmin.org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박해윤 기자 디자인 최정미
사진&자료제공 일민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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