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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drama

‘재벌집 막내아들’ 삼성? 현대? 뒤죽박죽, 현대사에 숨겨진 결말

이경은 기자

2022. 12. 22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닷컴버블 등 1980~2000년대 국내외 정치·경제사가 스며들어 있는 드라마 JTBC ‘재벌집 막내아들’. 정말 실제와 비슷할까. 

JTBC ‘재벌집 막내아들’ 포스터.

JTBC ‘재벌집 막내아들’ 포스터.

“초밥에 밥알 말이다, 몇 개고!”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가(家)의 진양철(이성민) 회장이 초밥을 먹으며 요리사에게 묻는 장면이다. 일본 유학까지 하며 일식을 배운 요리사는 끝내 대답하지 못하고 진 회장이 자문자답한다.

“320개다. 점심 식사엔 그게 적당하다 해도 술과 같이 낼 때는 280개만 해라, 으이?”

이 장면은 깐깐한 창업주 진 회장의 성격을 확실히 보여주는 대목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삼성그룹 고(故) 이병철 창업회장이 당시 신라호텔 조리장 앞에서 초밥의 밥알을 모두 세어 보인 일화에서 착안한 것. 극 중 진 회장과 이병철 창업회장이 닮은 건 치밀할 정도로 꼼꼼한 성격만이 아니다. 날 선 눈빛의 외모, 경상도 억양의 말투, 집안 갈등 등도 유사하다. 드라마의 원작인 동명 웹소설을 집필한 작가 산경도 최근 한 인터뷰서 “순양의 모델은 삼성”이라고 밝힌 바 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총수 일가의 오너 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 윤현우(송중기)가 재벌가 막내아들 진도준으로 환생해 2회차 인생을 사는 내용이다. 묘하게 삼성그룹이 떠오르는 이 드라마는 탄탄한 스토리라인에 힘입어 시청률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12월 12일 시청률 조사 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11회(12월 11일 방영) 시청률은 전국 유료 가구 기준 21.1%. 올해 방영된 미니시리즈 중 유일하게 시청률 20% 선을 돌파했다. 주춤하던 ‘재벌물(현대 자본주의사회를 배경으로 재벌가의 권력관계가 얽힌 줄거리가 전개되는 현대 판타지 장르)’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이다.



치밀한 전략과 통쾌한 복수, 주인공 신분 상승의 서사까지 더해져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관람 포인트가 있다. 실제인 듯 아닌 듯 섞여 있는 대한민국 현대 경제사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재벌집 막내아들’을 통해) 한국 기업의 역사를 배운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 드라마와 현실, 얼마나 닮았는지 알아봤다.


Point 01
장자승계원칙은 삼성 아닌 LG

JTBC ‘재벌집 막내아들’ 속 진양철은 자동차에 관심이 많다.

JTBC ‘재벌집 막내아들’ 속 진양철은 자동차에 관심이 많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삼남, 당시 삼성가 막내아들인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을 후계자로 정했다. 장자 승계라는 유교적 가치보다 실질적 경영 능력을 우선 요소로 본 것이다. 또 다른 재벌 기업 롯데그룹도 마찬가지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차남 신동빈 회장이 2005년부터 롯데를 이끌고 있다.

LG그룹은 다르다. 4대째 장자승계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경영권 갈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회장은 장자가 맡고, 다른 가족은 경영 일선서 물러나거나 계열 분리로 독립하는 식이다. 드라마에서 장자 승계를 고수하던 진양철은 LG그룹 창업주와 더 닮아 있는 모습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진양철엔 한국 재벌가 창업주의) 여러 면모가 뒤섞여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극 중 진양철은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해 진도준에게 사장직을 맡기려 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모습을 두고 “후계자를 암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주회사 아래 여러 금융계열사를 두면 이들의 지분을 지주회사가 가져 지배구조가 성립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순양의 승계는 결코 순탄치 않다. 장자승계원칙을 깨는 듯했지만 12월 18일 방영된 14회 에피소드에서 진양철의 죽음 후 순양그룹 회장 자리는 첫째 아들 진영기에게 돌아갔다. 그럼 진양철은 왜 진도준에게 어떤 유산도 남기지 않은 걸까. 종영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Point 02
순양 고명딸 무너뜨린 ‘뉴 데이터 테크놀로지’, 실제로 있다

진양철 회장의 집 ‘정심재’에서 진양철과 그 가족이 식사를 하는 모습.

진양철 회장의 집 ‘정심재’에서 진양철과 그 가족이 식사를 하는 모습.

미래를 알고 있는 진도준은 고모 진화영에게 ‘뉴 데이터 테크놀로지’ 투자 정보를 전해 진화영이 투자 수익을 얻도록 한다. 회사 공금 30억 원으로 4배에 달하는 이익을 얻은 진화영은 백화점 입접 업체 판매 대금 1400억 원으로 추가 매수에 나선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진화영은 그 돈을 모두 잃고 급기야 공금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다.

극 중에 등장하는 뉴 데이터 테크놀로지는 인터넷 무료 국제전화 ‘다이얼패드’로 한국 증시 사상 역대 최고의 상승률과 최고의 낙폭을 동시에 기록한 ‘새롬기술’을 모티프로 했다. 1993년 설립된 새롬기술은 1999년 8월 2300원의 공모가로 증시에 입성해 다음 해 3월 30만8000원까지 폭등한다. 글로벌 IT 버블, 소위 ‘닷컴버블’이 새롬기술의 주가 상승세에 기름을 부었다. 하지만 이후 공모가 수준으로 폭락하며 수많은 투자자가 좌절을 경험했다. 당시 삼성전자, 삼성전기 등 삼성그룹 계열사도 새롬기술에 880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롬기술은 2004년 3월 ‘솔본’으로 사명을 바꿨으며 현재는 의료기기 업체 등을 보유한 지주회사가 됐다.

Point 03 
인수전 펼쳐지는 ‘아진자동차’는 ‘기아자동차’?

극 중 라이벌 관계인 순양과 대영은 아진자동차 인수를 두고 쟁탈전을 펼친다. 순양자동차를 본격적으로 키우고 싶은 진 회장이 사활을 거는 분야였기 때문이다. 창업주는 아니지만 2대 회장인 삼성 이건희 선대회장이 삼성자동차를 두고 “매년 5000억 원씩 10년간 적자가 나도 괜찮다”고 했던 것과 닮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도 “자동차에 관심 있던 건 이건희 회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실제 삼성그룹이 1992년 자동차 제조 사업 인가를 받은 뒤 이건희 선대회장은 1994년 닛산과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해 1995년 삼성자동차를 공식 출범시켰다. 드라마 속 순양은 다사다난한 갈등 끝에 아진차 인수에 성공하지만, 삼성은 기아차 인수에 도전했으나 낮은 인수 평가 점수로 실패했다. 현실 세계에서 기아차는 극 중 대영자동차의 모티프가 된 현대자동차에 최종 인수된다.

Point 04
진양철의 마지막 꿈 경차 ‘아폴로’ 실존했나

‘재벌집 막내아들’ 13회, 순양자동차를 향한 진양철의 집념 끝에 경차 ‘아폴로’가 출시를 앞두고 있다. 진도준은 부진한 실적이 예견된 아폴로를 팔기 위해 ‘2002 한일 월드컵’을 통한 이미지 마케팅을 계획해 큰 성공을 거둔다. 드라마에 등장한 ‘아폴로’의 외관은 대우 ‘마티즈’와 가깝지만 순양자동차가 처한 상황을 보면 현대 ‘아토스’가 떠오른다. 기존 시장을 지배하던 대우 ‘티코’보다 비싼 가격대에 출시된 점, 출시 당시 국내 경차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였던 점 등이다. 성공 신화도 비슷하다. 1997년 출시된 아토스는 티코를 밀어내고 현대자동차 내 판매 1위(1998)를 기록했다. 계약 첫날 1만 대가 넘는 사전계약 대수를 기록해 이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다만 진도준은 ‘꿈’ ‘열정’ 메시지로 아폴로를 성공시키지만 당시 현대자동차는 특별한 마케팅 기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KBS 드라마 ‘웨딩드레스’(1997)에서 신현준의 차로 관심을 끈 게 성공 비결일지도 모르겠다.

알고 보면 더 재밌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어느새 종영을 목전에 두고 있다. 2000년대로 진입한 순양이 앞으로 어떤 굵직한 사건들의 기로에 서게 될지가 남은 회의 관람 포인트. 실제 역사를 통해 순양그룹과 진도준의 앞날을 추측해보자.

#재벌집막내아들 #재벌 #삼성 #여성동아

사진제공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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