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위치(The VVitch·2015)

영화는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한 한 가족의 일상에 포커스를 맞춘다. 가난에 붙들린 어머니와 오직 신실한 삶만이 전부인 아버지가 있다. 어린 동생들 틈에 집안일을 도맡은 장녀 토마신의 매일은 고단하게 흘러간다. 그러던 어느 날 토마신이 돌보던 아기가 감쪽같이 사라지면서, 토마신은 가족에게 닥친 모든 불행의 원흉으로 지목당한다. 외딴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공기, 가족 내부에서 서서히 응집되는 기이한 분노. 그들이 말하는 사탄이 진짜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서양 오컬트물의 소재로 빈번하게 활용되는 중세 마녀사냥 이야기는 전설이나 설화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감독은 ‘더 위치’에 쓰인 대사도 “역사적 기록을 참조하고 인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로스트 하이웨이(Lost Highway·1997)

심원한 불안의 이미지를 창조한 ‘로스트 하이웨이’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무한한 고속도로를 연상시킨다. 누구나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과오에 대한 기억 하나쯤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 흩뜨려진 이미지들은 그런 기억으로부터 짓눌린 무의식을 떠오르게 한다. 집으로 배달된 비디오테이프 하나. 거기엔 나도 몰랐던 살인의 행각이 기록돼 있다. 진위를 파악하기 힘든 혼란에 휩싸여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주인공. 어둠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무한히 달리는 감각은 자기 부정의 끝에 영원한 불안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듯해 섬찟하다.
어딕션(The Addiction·1995)

전쟁을 일으킨 인류의 책임에 대해 골몰하던 캐슬린이 뱀파이어에게 물리면서, 날카로운 이성을 재련하던 지식인은 크게 진동한다. 학살의 역사에 대한 이미지에 연민과 분노를 보이던 그가 어떤 참상을 스스로 불러낼지를 생각해보자. 중독(addiction)에 깊숙이 영혼을 담근 캐슬린의 모습은 그 전과 비교해 철학을 몸소 이해한 사람처럼 보인다. 영화의 초반부, 캐슬린을 문 뱀파이어가 남기고 간 말이 인상적이다.
“너도 이제 공모자야.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두고 봐.”
드래그 미 투 헬(Drag Me To Hell·2009)

한 노파가 은행에 들러 대출 상환 기간을 연장해달라고 호소한다. 대출 상담사 크리스틴은 마음이 쓰였지만 승진이 불리해질 것을 염려해 거절한다. 그러자 노파는 갑자기 돌변해 크리스틴을 마구 공격한다. 거의 액션 신이라고 봐도 무방할 노파의 공격은 무시무시하다. 이후 저주에 들린 크리스틴이 겪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지만, 감상은 꽤 즐겁게 할 수 있다. 특유의 과장 어법으로 B급 감수성이 물씬 배어나는 스플래터 장르의 영향 덕. 호쾌하고 시원한 호러 영화를 원한다면 단연 이 작품이다.
신체 강탈자의 침입(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1956)

의사 마일즈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포착한다. 생김새나 말투는 그대로인데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긴다. 알고 보니 외계에서 날아든 꽃씨가 번지면서, 잠든 사람들을 고치 속에 가둔 채 복제 인간이 만들어진 것. 이들은 점점 세를 불려간다. 마일즈와 베키는 그들의 모략, 쏟아지는 잠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달아난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불안을 두렵고 무섭게 묘사한 ‘신체 강탈자의 침입’은 전체주의와 매카시즘의 공포로 해석하기에도 흥미로운 텍스트다. 잭 피니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에 구현된 이미지들이 매력을 더한다. 이후 ‘신체 강탈자의 침입’은 1978년 ‘외계의 침입자’, 1993년 ‘보디 에일리언’, 2007년 ‘인베이젼’ 등 꾸준한 리메이크와 변주의 대상이 됐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I’m Thinking of Ending Things·2020)

남자 친구의 부모님이 사는 농장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 여자. 이들의 대화는 계속 미묘하게 어긋나고, 부모님은 수시로 늙거나 젊은 모습으로 바뀐다. 도통 분간할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는 이 세계는 무의식으로 지어진 초현실주의자의 집처럼 보인다. 불가해함에서 비롯되는 음울한 분위기가 공포스럽다.
터스크(Tusk·2014)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윌레스가 새로운 소재를 찾아 헤맬 때쯤, 그의 눈에 흥미로운 광고 문구가 들어온다. 그렇게 윌레스는 캐나다로 떠나 탐험가 하워드를 인터뷰하게 된다. 하워드가 내 온 차를 음미하며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모험담을 듣는데, 바다코끼리와의 특별한 우정을 회상하는 대목에서 정신을 잃는다. 하위 장르 영화답게 영상미, 개연성, 연출력에 대한 기대는 반쯤 접어두는 감상의 태도가 필요하다. 나도 몰랐던 보디 호러에 대한 취향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공포영화 #여름밤 #호러 #여성동아
사진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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