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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무비디깅 | 험한 사랑을 파헤치는 이탈리아판 '파묘'

문영훈 기자

2024. 05. 14

도달하지 못할 꿈을 꾸는 사람들은 현실에선 바보 취급을 받지만 영화에선 주인공 자리에 오른다. 이탈리아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은 얼간이 같은 인물을 카메라 한가운데 세워두고 현대의 신화를 만들어낸다.

매혹적인 인물은 낭만적인 맹목성을 가지고 있다.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달만 바라보다가는 얼치기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지만 그래서인지 이상하리만큼 하나에 몰두하는 인물은 비범함을 획득한다. “산에서 피아노만 치고 싶다”고 말하는 임윤찬이라든가, 중력을 거스르는 세 바퀴 점프를 하기 위해 아침마다 반복되는 운동을 “그냥 하는 거지” 하고 넘겨버리는 김연아를 우리는 되새긴다. 문학에선 쥐뿔도 없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캐릭터도 상찬의 대상이 된다.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나 허구한 날 삶과 죽음을 고민했던 우유부단 햄릿도 영웅의 자리에 오른다.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은 자신의 영화 속에서 거리의 영웅(혹은 바보)을 만들어내는 데 능하다. 자전적 작품인 ‘더 원더스’(2014)에서 주인공 소녀 ‘젤소미나’는 영화라는, 시골 너머의 꿈을 품는다. ‘행복한 라짜로’(2019)에서 주인공 라짜로는 근대와 현대를 뛰어넘어 귀족과 자본주의의 착취 속에서도 순수함과 이타성을 유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요즘 말로 ‘호구’나 다름 없는 주인공의 맹목성이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쯤엔 신의 근처를 배회하는 특징으로 승화되는 쾌감이 로르바케르를 현대의 거장으로 만들었다.

사라진 사랑을 찾는 여정
“너구나, 내 잃어버린 여자의 얼굴.“

로르바케르의 최신작 ‘키메라’에서 아르투는 사라진 여자, 베니아미나를 쫓는다. 그녀는 아르투를 떠났는데 돌아올 기약은 없다. 영원히 그녀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의 첫 장면, 아르투는 기차에서 베니아미나가 등장하는 꿈을 꾼다. 아르투는 베니아미나의 드레스에서 나온 붉은 실을 붙잡고 싶어 하지만 소란스러운 주변 소리로 깨어나고 만다.

아르투는 과거, 그러니까 지하 세계에서 베니아미나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베니아미나에 매여 있는 아르투는 사랑하는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오르페우스를 떠오르게 한다. 오르페우스에게 케르베로스를 잠재울 리라가 있다면 아르투에겐 Y 자 모양의 나뭇가지가 있다. 그는 수맥을 찾는 기인처럼 나뭇가지를 들고 걷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리고 그의 발아래엔 로마가 이탈리아를 점령하기 전인 기원전 8세기부터 문명을 꽃피웠던 아르투리아인들의 유물이 묻혀 있다.

아르투의 친구 피로를 위시한 톰바롤리 일당은 아르투가 ‘키메라 상태’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키메라’는 머리는 사자, 몸통은 양, 꼬리는 뱀의 모습을 한 괴수와 동시에 ‘이루기 힘든 꿈이나 희망’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톰바롤리 일당에게 키메라는 일확천금을 안겨주는 아르투의 능력이지만 아르투의 키메라는 돈이 아닌 베니아미나를 향한다.



서로 다른 각자의 키메라는 해변에서 열린 축제가 끝난 뒤 극대화된다. 평범한 선조의 무덤이 아닌 아르투나 동물을 수호하는 여신, 키벨레의 신전을 발견한 것. 돈이 되는 건수임을 짐작한 피로는 대리석 여신 동상을 옮기기 위해 곧바로 머리부터 잘라낸다. 무덤 속 유물을 만나는 과정이 베니아미나를 찾는 여정이라고 생각하는 아르투는 피로의 행동에 분노한다.

아르투의 맹목적인 사랑은 그를 둘러싼 인물에 의해 부각된다. 에트루리아 유물을 돈이라는 가치로 환산하는 3단계의 사람들이다. 톰바롤리 일당은 돈을 위해 철저히 아르투를 이용하고, 그가 쓸모없어지자 가차 없이 버린다. 동네 도굴꾼들에 불과한 톰바롤리 일당 위에는 도시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스파르타코가 있다. 톰바롤리 일당이 찾은 부장품을 저렴한 가격에 사들인 다음, ‘새로운 밀로의 비너스’와 같은 마케팅 기법을 얹어 판매한다. 바다 위 열띤 경매가 열리는 선박 위에 모인 전 세계 박물관 큐레이터들의 모습은 스파르타코 일당 위에 또 다른 계급이 있음을 보여준다. 땅속에 켜켜이 쌓인 지층처럼 지상에선 돈으로 쌓아 올린 계급의 질서가 위계를 구성한다.

아르투에게 톰바롤리 일당과 스파르타코는 야만적인 사람들이다. 아르투가 바라보는 그들의 대화가 목소리가 아닌 개의 울부짖음으로 처리되는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는 도굴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기도 하다. 로르바케르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신성한 가치는 소멸하고 유물은 그저 팔리기 위한 상품으로 전락해버린 한때를 이 영화를 통해 돌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또 다른 캐릭터, 이탈리아 역시 아르투의 도굴 행위에 ”인간이 보라고 만든 게 아니에요. 영혼을 위한 거죠“라며 반기를 든다.

영화는 물신주의를 비판하며 유물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식의 결론에만 도달하지는 않는다. 살아 있으면서도 죽음의 세계를 갈망하는 아르투의 곁에는 현재에 밀착해 사는 이탈리아가 존재하는 까닭이다. 이탈리아는 아르투 집 근처에 심어진 나무를 보고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사람“으로 비유한다. 영화 내내 시큰둥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르투와 달리 이탈리아는 자유로운 몸짓으로 춤을 추고 노래와 수어로 다채로운 의사 표현을 해내는 사람이다.

”그들은 삶의 어떤 충만함을 가지고, 자유롭고 즐겁게 숨 쉬도록 내버려둔다. 심지어 무덤들조차도. 이것이 진정한 에트루리아의 가치다. 즉 편안함, 자연스러움 그리고 삶의 풍요로움. 지성이나 영혼을 어떤 방향으로도 강요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유명한 D. H. 로렌스가 에트루리아 문명을 답사하고 남긴 글이다. 이탈리아는 현재에 충실하면서도 과거를 존중하는 까닭에 현실에서 과거 에트루리아와 같은 이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버려진 역사에서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과 자신처럼 무시당하는 여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꾸린다. 이탈리아는 톰바롤리 일당에게도 버림받은 아르투에게 현재로의 초대장을 건네지만 죽음으로 들어가는 과거의 세계에 몰두하는 아르투는 이를 거절한다.

자신만의 키메라를 찾아서

글로 영화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건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는 격이다.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시공간을 뒤섞어내는 로르바케르 감독의 영화에 특히 해당되는 말이다. 아날로그 필름을 고집하며 거칠지만 따스한 질감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촬영 방식과 이탈리아 작은 마을을 체험하는 듯 사실적으로 그리는 그의 영화는 큰 스크린으로 봐야 비로소 진가가 드러난다. 음유시인 악사들이 톰바롤리 일당의 도굴 유랑을 설명하는 장면이라든가 한국의 명절 풍경이 떠오르게 하는 이탈리아 가족들의 풍경이 한 남자의 순애보 사이사이 재미를 더한다.

”모두 자신만의 키메라가 있습니다.“ ‘키메라’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로르바케르 감독이 전한 말이다. 감독이 이끄는 대로 아르투의 유랑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의 눈앞에도 자신의 과거와 연결된 붉은 실이 어른거린다.

#키메라 #알리체로르바케르 #행복한라짜로 #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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