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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여성할당제는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입력 2022.09.04 10:00:02

공정 이후의 세계
김정희원 지음, 창비, 1만7000원

“여성할당제는 정의로운가?”

세계관은 인식의 한계를 결정한다. 그래서 DC 코믹스의 슈퍼맨이 사는 세계에 마블의 스파이더맨은 존재할 수 없다. 일상의 물리 법칙으론 미시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김정희원 애리조나대 교수는 한국 사회의 화두인 공정 논쟁이 자체 세계관에 매몰된 ‘폐쇄적 담론’이라고 진단한다. 한국 사회의 공정 세계관에서 정의는 능력주의, 즉 시험을 통과했느냐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다양성은 끼어들 틈이 없다. 공정의 세계에 갇혀 있는 한 여성할당제는 불공정하고 부정의하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공정론은 겉으론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포장돼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고 말한다. 영재학교는 서울 대치동 출신 학생들로 가득 차 있고, 명문대는 부자 부모의 세습 수단으로 쓰인다. 성공을 향한 레이스는 협력이 아닌 경쟁의 원리로 작동하기에 구성원들은 각자도생에 내몰린다. 연대와 협동은 자리를 잃고, 개인은 끊임없이 노력을 강요받다 ‘번아웃’된다. 이 악순환을 끝내고자 저자는 독자를 ‘공정 이후의 세계’로 초대한다.

김정 교수에게 마이클 샌델의 능력주의 비판은 부족하다. ‘운(運)’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샌델은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을 바로잡는 어려운 문제는 피해가고 제비뽑기라는 쉬운 해답을 내놓는다. 저자는 어려운 문제에 천착한다.



저자는 ‘급진적인 자기 돌봄’을 새로운 정의의 기준으로 세우자고 제안한다. ‘공정 이후의 세계’에서 인간은 상호 의존적이라는 전제 아래 개인이 아닌, 관계와 공동체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끊임없는 경쟁으로 지친 개인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며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회다. 그렇게 상처받은 개인은 주변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한다. 성공의 기준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관점에 맞춰진다.

저자는 거창한 정치 슬로건으로 시작하는 하향식 변화가 아닌 풀뿌리로부터 시작하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 여러 정체성을 지닌 현대인은 사회적 약자의 정체성도 지니고 있기 마련. 저자는 차별받는 약자들이 연대해 가정에서, 일터에서부터 부정의에 대항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자고 말한다.

불안정한 사회 내 개인이 타인의 안위보다 자신의 성공을 우선하는 행동은 합리적이다. 한국 사회 내 공정 담론의 강력함은 불안정한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경쟁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 삶의 방식을 깊숙이 내면화했다는 점에서 비롯한다. 이는 흡사 개인에겐 합리적인 선택이 공동체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죄수의 딜레마’를 연상케 한다. 공동체의 관점에서는 개인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김정희원 교수의 제언이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공정이후의세계 #김정희원 #여성할당제 #여성동아



여성동아 2022년 9월 7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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