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가 오늘 9월 서울에 상륙한다.
아트페어는 갤러리들이 한 장소에 모여 미술품을 전시·판매하는 행사를 말한다. 1990년대에는 비엔날레가 각광을 받았다면, 2000년대 들어서는 아트페어가 미술 이벤트로서의 대중적 파급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그간 국내에도 다양한 규모의 아트페어가 생겨났다. 2005년만 해도 국내 아트페어는 ‘화랑미술제’와 키아프 서울 등 7곳 정도에 불과했으나, 2021년에는 78곳으로 급증했다. 아트페어가 미술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트페어가 부상하는 가운데 프리즈가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은 미술계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프리즈 서울을 계기로 시장의 파이가 커지고, 서울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거점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프리즈는 1970년에 시작한 ‘아트바젤(Art Basel)’과 비교하면 역사가 짧지만, 단기간에 급성장한 만큼 그 출발과 운영 과정이 궁금해진다.
미술잡지에서 아트페어로
프리즈의 시작은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가 1988년 골드스미스 대학의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기획한 ‘프리즈(Freeze)’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전시는 학생들이 주축이 돼 런던 도클랜드 지역의 빈 창고를 대안공간으로 삼아 주도면밀한 기획과 철저한 마케팅을 통해 대성공을 거둔다. 이때 전시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젊은 영국 예술가들(YBAs)’이라는 호칭을 얻고 영국 미술계 최고 권위를 지닌 터너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인 명성을 날리게 된다.젊은 예술가들의 전시를 흥미롭게 본 미술평론가 매튜 슬로토버는 1991년 아만다 샤프와 함께 미술 전문지 ‘프리즈(Frieze)’를 창간한다. ‘프리즈’는 전시 제목이었던 ‘프리즈(Freeze)’와 발음은 같고 뜻은 다른데, 건축물 윗부분을 장식하는 띠를 뜻하는 이 말은 현대 미술의 흐름을 조망한다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미술 잡지를 운영하던 이들은 2003년 새로운 아트페어를 시작한다. 아트페어의 이름은 잡지와 동일한 프리즈. 기존에도 아트페어가 여럿 존재했지만, 프리즈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 위주로 소개하며 다른 아트페어와 차별점을 두었다. 일반적인 아트페어가 갤러리나 미술관 같은 화이트 큐브에서 진행되는 것과 달리 프리즈는 런던의 리젠트 파크 내 텐트형 공간에서 개최하며 실험적인 콘셉트를 살렸다.
지금은 다른 아트페어에서도 토크와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작가가 직접 진행하는 ‘좌담 프로그램’은 본래 프리즈에서 시작한 기획이다. 작가들이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참가자들은 질문과 토론을 이어간다. 컬렉팅, 공공미술, 미술심리 등 주제도 다양하다. 아트페어는 작품 판매를 목적으로 하지만, 프리즈는 비엔날레처럼 동시대 미술 담론을 논하고 실험적인 사조를 선보임으로써 다른 아트페어와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프리즈는 미들 마켓을 타깃으로 하기에 몇만 달러 수준의 작품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트바젤과 같은 아트페어가 수십만 달러 수준에 거래되는 슈퍼스타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다룬다면, 프리즈는 작품의 가능성에 비해 다소 부담이 덜한 가격대의 작품을 선보임으로써 시장의 활성화를 꾀했다. 또한 테이트 모던의 적극적인 작품 구입 지원을 받는 등 영국의 제도적 뒷받침을 안고 있다는 점도 프리즈를 돋보이게 만드는 지점이다.
프리즈는 런던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2012년 ‘프리즈 뉴욕(Frieze New York)’을 론칭하고, 이후 2019년에는 ‘프리즈 로스앤젤레스(Frieze Los Angeles)’를 선보였다. 2012년부터는 ‘프리즈 마스터스 런던(Frieze Masters London)’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걸고 ‘역사적인 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프리즈 런던이 젊고 혁신적인 작품을 선보인다면, 프리즈 마스터스 런던은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 고미술과 골동품부터 19세기 말~20세기 초에 활동한 거장들의 작품까지 두루 보여준다.
미술시장 신흥강자, 서울
이처럼 짧은 기간 내에 큰 성과를 낸 프리즈가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전 세계적인 규모의 아트페어는 점점 연결망을 구축하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 아트바젤이 그 예다. 아트바젤은 마이애미비치, 홍콩, 파리에서 아트페어를 성공적으로 론칭했다. 특히 2013년 ‘홍콩 아트페어(ART HK)’를 인수하면서 시작한 ‘아트바젤 홍콩’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글로벌 미술시장에서 아시아 지역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미주 지역에 집중한 프리즈는 아시아에 지점망을 구축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홍콩이 아시아의 다른 지역들과 비교해 지리적·사회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프리즈는 아트바젤이 선점한 홍콩 외에 다른 지역을 고민했다.
중국 본토의 베이징과 상하이가 미술 도시로 급성장하긴 했으나 무관세 지역인 홍콩과 달리 미술품 거래에 높은 세율이 부과되고 검열이 여전히 남아 있는 점을 고려했을 때 거점으로 삼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을 터. 싱가포르 또한 1990년대 이후 미술시장이 활성화되고 정부의 지원도 뒷받침되었으나 지역 컬렉터와 작가가 부족한 상황이다.
아시아의 각 도시들이 제약 사항을 지닌 가운데 서울은 미술시장이 성장세를 보이면서도 문화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거론돼왔다. 프랑스의 미술시장 조사기관인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2021년 글로벌 미술시장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40%로, 아시아 시장의 수익이 홍콩에 쏠려 있기는 하지만 서울을 신흥 강자로 분석했다. 서울은 전 세계 최대 규모의 항공 라인이 구축돼 있어 지리적 접근이 용이하고, 글로벌 메가시티로 관광 자원도 풍부해 여러 조건에 부합한다.
더불어 K-팝을 비롯해 한국의 영화, 드라마, 웹툰 등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상황도 선택의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최근 쾨닉, 타데우스 로팍, 글래드스톤 등 거대 규모의 외국계 갤러리들이 앞다퉈 서울에 분점을 연 것도 한국 미술시장의 성장을 예견한 것으로 읽힌다.
프리즈 서울이 최근 공개한 참여 갤러리 목록을 보면 뉴욕의 가고시안·글래드스톤·리만머핀·페이스, 런던의 화이트 큐브·하우저 & 워스, 파리의 페로탱 등 세계 유수의 110개 갤러리가 포진해 있다. 여기에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는 164개 갤러리를 더하면 전 세계 350개 이상의 갤러리가 큐레이션한 작품을 살펴볼 수 있는 셈이다.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부터 신진 작가의 실험적인 작품들까지 두루 출품되는 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질 전망이다.
MZ세대 컬렉터라면 프리즈 서울 개최 기간 근처 세텍에서 열리는 위성 아트페어인 키아프 플러스도 주목할 만하다. 위성 아트페어는 대규모 페어의 근거리에서 열리는 중소 규모의 페어를 말한다. 키아프 플러스는 아트바젤 홍콩과 함께 열리는 ‘아트센트럴 홍콩(Art Central Hong Kong)’이나 대형 아트페어의 틈새를 파고든 ‘어포더블 아트페어(Affordable Art Fair)’와 비슷한 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술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작품을 선보이면서 신진 작가를 후원하는 즐거움을 선사해줄 것이다.
프리즈 서울은 메인(Main), 프리즈 마스터즈(Frieze Masters), 포커스 아시아(Focus Asia)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프리즈 마스터즈에서는 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포커스 아시아에서는 2010년 이후 아시아 지역에 개관한 갤러리 10곳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공식 개막에 앞서 8월 29일부터는 ‘프리즈 위크(Frieze Week)’가 열려 서울이라는 지역적 특성에 맞는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된다. 패트릭 리 프리즈 서울 디렉터는 “아시아의 첫 아트페어를 서울에서 개최하게 돼 기쁘다”면서 “서울의 창의적이고 다양한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나누고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정된 공간인 갤러리를 벗어나 대형 아트페어에서 여러 작품을 동시에 살펴보며 구입하는 방식이 미술품 유통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국내 아트페어는 이번 프리즈 서울을 계기로 미술 이벤트로서의 파급력을 더욱 확산시켜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갤러리, 작가, 컬렉터, 관람객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미술 문화가 대중 속으로 스며들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프리즈서울 #KIAF #아트페어 #여성동아
사진제공 프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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