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랑 ‘아쿠아 알레고리아
향수는 우리의 일상에 특별함을 더하는 요소 중 하나다. 향기 하나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타인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그렇다면 향수는 어떤 재료로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될까. 향수는 일반적으로 여러 화학 물질이 복잡하게 어우러져 만들어진다. 각 물질의 배합 비율과 강도, 숙성 기간 등에 따라 향이 미세하게 달라진다. 거대 뷰티 브랜드 상당수는 향료 기업에서 가져온 재료를 자사 배합 기준에 맞춰 향수를 만든다. 이 때문에 브랜드들은 향료가 주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기 쉽지 않다. 다만 고급 향을 얻기 위해 포획되는 사향노루와 사향고양이 등 일부 종이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 최고급 향으로 분류되는 침향나무가 무분별하게 벌목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구찌 ‘웨어 마이 하트 비츠’
이처럼 생물다양성 손실, 폐기물, 탄소 배출 등으로 소비자의 우려가 높아지면서 향수 브랜드들도 친환경 이슈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일부 브랜드가 향수 생산의 지속 가능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다. 화장품 회사가 자체적으로 원료를 수급하는 수준을 넘어, ‘친환경’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원료를 획득하는 것이다.
아뜰리에코롱 ‘가이악 이터널’
대표적으로 영국의 화장품 브랜드 러쉬는 향료 기업을 거치지 않고 직접 윤리적 원료를 수급한다. 향수를 만들 때 필요한 원료의 생산지를 직접 찾아 친환경 농법을 장려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윤리적 재료 구매’ 방식을 고수한다. 특히 향수에 사용되는 파촐리 오일을 얻기 위해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있는 지역 농부들과 협력을 맺었다.
로이비 ‘오 드 퍼퓸 베르가못 앤 화이트 로즈’
자체 원료 수급을 넘어 ‘업사이클링’에 관심을 기울인 향수 브랜드도 있다. 에따리브르도랑주는 2018년 ‘아이 앰 트래시(I am trash)’라는 향수를 선보였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각종 폐기물에서 향료를 추출해 만들었다. 스위스 향료 기업 지보단과 협력해, 과일음료를 만들고 남은 사과와 로즈 앱솔루트 추출 시 사용 후 버려진 장미꽃 등에서 향을 뽑아낸 것이다. 이렇게 얻어진 업사이클링 향료는 피부 위에서 오랫동안 지속되는 자연스러운 향을 제공한다. 구찌는 세계 최초로 탄소 포집 기술을 활용해 100% 재활용 탄소로 만든 친환경 향수 ’웨어 마이 하트 비츠’를 선보였다. 탄소 포집 기술의 핵심은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인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방출되는 것을 막는 것. 이미 만들어진 탄소를 재활용한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한 방식이다.
에따리브르도랑주
자체 수급한 원료로 운송 시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물론, 리필 제품을 권장해 유리 용기와 물 사용량, 탄소 배출을 감소하는 방법을 실천하는 브랜드도 있다. 겔랑은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리필 제품을 권장한다. 리필 제품 사용으로 유리 용기와 탄소 배출을 감소할 수 있다. 또 석탄이 아닌 비트 뿌리에서 추출한 식물성 알코올과 자연 유래 원료를 사용하며, 포장 비율을 최소화하고 FSC(산림관리협회) 인증 지류를 활용해 패키징한다. 프랑스 니치 퍼퓸 하우스 아틀리에코롱도 모든 제품이 리필 가능하다. 특히 ‘가이악 이터널’ 제품의 메인 성분인 가이악 우드는 ‘그란차코’ 숲의 고유종이기에 벌목업자들이 특별한 벌목 기술로 채취하는 등 생태계를 보호하고 있다.
러쉬 ‘러스트’
거대한 지속 가능성의 흐름에 비건 향수로 동참한 브랜드도 있다. 비건 향수는 니치 향수에 많이 들어가는 사향 같은 동물 유래 성분을 함유하지 않으며, 패키지도 재활용이 가능한 것으로 제작하는 것이 특징. 프랑스 향수 브랜드 썽봉은 동물 유래 성분과 인공 성분을 배제하고 신체와 환경에 모두 안전한 향수를 선보인다. 프랑스 니치 향수 브랜드 르쿠방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으며 동물성 성분이 함유되지 않은 비건 향수를 선보인다. 화학 합성물과 동물성 성분 제품을 지양하고, 비건 포뮬러만을 사용하는 등 자연에 대한 확고한 원칙 아래 그린 럭셔리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이세이미야케는 태양 아래 만물이 생동감을 더해가는 자연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새로운 비건 향수 ‘로디세이 뿌르 옴므 솔라 라벤더 오드 뚜왈렛 엥땅스’를 소개했다. 순수한 물과 라벤더, 아로마 노트와 드라이한 우디 베이스가 어우러진 향수로, 보틀은 플라스틱이 아닌 100% 목재 캡과 재활용 유리로 제작했다. 토리버치의 ‘에센스 오브 드림즈’ 역시 향수 포뮬러에 안정 성분을 사용하고, 보틀 캡도 유해 성분을 배제한 소재로 만들었다. 패키지 역시 지속 가능한 산림에서 생산된 제품에 부여하는 FSC 인증 상자로 만들었으며, 생분해 가능한 비닐 커버로 마무리했다. 로이비도 FSC 인증을 받아 환경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민까지 담아냈다.
르쿠방 ‘아쿠아 밀레 폴리아’
쓰레기로 향수를 만들거나, 리필 용기를 제안하거나, 탄소를 재활용하는 등 향수 업계의 다양한 아이디어는 친환경적이며 윤리적인 측면에서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가치 있는 과정이다. 향수 산업은 환경에 대한 책임을 더욱 강조하며 향기를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지구를 보호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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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인스타그램 사진제공 구찌 겔랑 딥티크 러쉬 로이비 르쿠방 아틀리에코롱 이세이미야케 에따리브르도랑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