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빠였어. 제대로 해주진 못했어도 그래도 6년 동안 아빠였어.”
료타는 6년간 키운 아들 케이타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에야 자신이 돼먹지 못한 아버지였음을 고백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통해 묻는다. 과연 가족은 주어지는 것인가.
가정의 달을 맞아 ‘여성동아’가 만난 여섯 모양의 가족은 “우리는 이렇게 가족이 됐다”고 말한다. 한일 커플은 국경을 뛰어넘어 결혼하기 위해, 입양 가족은 내가 낳지 않은 아이와 가족이 되기 위해 수십 장의 서류를 정부에 제출했다. 네 자매는 “언젠가 같이 살자”는 어릴 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남편을 비롯해 15명의 동의를 구했다. 수많은 난관을 뚫었지만 아직 법적으로는 가족이 되지 못한 레즈비언 커플과 그 딸도 있다.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사돈지간이 함께 사는 가족), ‘일상과 마음을 나눌 존재’(네 자매 가족), ‘함께하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이민 가족),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가족’(레즈비언 커플) 등 각각 정의하는 가족은 다르지만 마음은 어딘가 닮아 있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된다.
경기도 광주시 ‘독수리 5남매’의 집으로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쏟아졌다. 김근환(44)·김세진(43) 부부에게 소란은 일상이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언니가 장난감 안 빌려줘” 등 다양한 민원을 들고, 거실에 있던 아이들이 부엌으로 찾아왔다. 부부는 다섯 아이를 키우고 있다. 출생 순서대로 김주아(12), 김주혜(11), 김주언(9), 김주성(5), 김주리(3) 이른바 ‘독수리 5남매’다. 세진 씨가 낳은 자식은 첫째와 막내. 주혜 양과 주언 군은 입양 절차를 마쳤고, 법률 후견인 자격으로 위탁 보호하고 있는 주성 군은 향후 입양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다섯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이 궁금합니다.
세진 |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요. 남편은 출근길이 멀어서 먼저 나가고, 저는 아이들 깨워서 준비시키고 밥 먹이고 출근하죠. 초등학교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 첫째와 둘째가 셋째를 데리고 학교에 가고요. 저는 넷째와 다섯째를 등원시킵니다. 그리고 퇴근하면서 아이들을 픽업해서 오죠.
근환 | 주말에는 오늘처럼 정신없는 게 일상이고요. 최근엔 날씨가 좋아져서 다 같이 공원에 놀러 가기도 합니다.
원래 많은 아이를 키울 계획이셨나요.
세진 | 둘째를 유산한 뒤 힘든 순간이 있었어요. 그전에도 제가 먼저 입양을 제안하긴 했지만 그게 중단된 상황에서 한 임신이었거든요. 그때 남편이 입양을 해보자고 역제안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셋째를 먼저 입양했고요. 그 뒤로는 아무래도 입양 카페에 올라온 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혔어요. 특히 둘째가 눈에 들어왔죠. 1년 뒤에도 이 아이가 입양되지 않으면 우리가 하자고 남편과 상의했어요. 그리고 그 둘째가 동생을 더 갖고 싶다고 해서 넷째를 만날 수 있게 됐죠.
근환 | 그리고 다섯째는 어쩌다 보니 생겼어요. 사실 처음엔 이렇게 다섯 아이를 키우게 될 거라고 생각 못 했죠. 결혼하고 첫아이 낳고 나서는 하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은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웃음).
아이들은 함께 잘 지내나요.
세진 | 서로 많이 싸우고, 서로 많이 챙겨주죠. 처음 둘째가 왔을 때는 서열을 잡는 게 어려웠던 적도 있었어요. 첫째와 둘째는 1년도 채 차이 나지 않거든요. 서로 친구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어요. 언니를 언니로 안 보고, 동생을 동생으로 안 봤죠.
근환 | 그래서 둘이 잘 지냈던 것으로 기억해요. 주아도 또래 동생이 생겨서 좋아했다가 이후엔 말 그대로 친자매가 되니까 원수지간이 됐죠(웃음).
모든 입양 부모는 쌍갈랫길에 선다. 아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입양 사실을 알리는 공개 입양과 이를 숨기는 비밀 입양으로 나뉜다. 세진 씨는 “각자 생각이 달라도, 모든 입양 부모는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공개 입양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세진 | 사실 저는 영원히 숨길 자신이 없었어요. 키운 부모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아이가 입양 사실을 듣게 되면 더 큰 충격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알렸나요.
세진 | 괜히 무게 잡지 않고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이야기했어요. ”너희를 낳아준 엄마가 있었고, 어떤 힘든 상황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상황 속에서 그 엄마는 너희를 지켰다. 그건 항상 감사해야 한다“고 했죠. 이건 아이의 인생이고, 입양됐다는 건 그 인생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근환 | 주변에 알리는 일이 쉽지는 않더라고요. 왜 굳이 입양하냐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낳은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입양하는 일이 드물기도 하고요. 예상하고 있긴 했지만 당시엔 그게 힘들었어요.
세진 | 입양했다고 하면 대단하다고들 이야기하세요. 솔직히 저는 그래요. 아이를 키우는 게 대단한 거지, 입양이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모든 부모가 다 대단한 거예요.
입양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세진 | 일단 고민을 많이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주위 사람들부터, 특히 온라인 카페나 모임 등을 통해서 선배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결론을 내렸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입양하면 신혼처럼 허니문 기간이 있습니다. 어디 가서든 자식 자랑을 하고 싶고요. 그다음은 모든 부모의 고민과 비슷해집니다. 입양 여부와 관계없이 육아와 양육은 힘든 일이잖아요.
‘정인이 사건’ 등 일부 양부모의 폭행 사건이 알려지며 힘든 점은 없었나요.
세진 | 저희가 운영하는 ‘독수리오남매’ 유튜브 채널에 진짜 악플이 많이 달렸죠. 하지만 그건 정말 일부의 사례라고 생각해요. 입양 여부와 관계없이 폭행하는 친부모도 있으니까요. 입양아에 대한 당국의 관리도 소홀했고요.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
세진 | 이제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두런두런 학교 이야기든, 친구 이야기든 함께 나누다 보면 대화가 되니까 재밌어요. 또 누나라고 첫째와 둘째가 셋째를 아침에 꼭 챙겨서 같이 나가는 걸 보면 흐뭇하고요. 서로 위하는 걸 보면 정말 예쁘고 고맙죠. 넷째와 다섯째는 보기만 해도 너무 귀여울 때죠. 넷째가 오빠라고, 어린이집에서 바깥 놀이하다 다섯째를 마주치면 이산가족 만난 것처럼 그렇게 좋아한대요.
근환 | 밖에서 보기엔 입양 가족이 특별할 것 같지만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해요. 이렇게 정신없이 보내다가도 순간순간 행복하죠.
5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2011년 최고치(2475명)를 찍었던 입양 아동 수는 점차 줄어 2022년에는 324명의 아이가 새 가정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142명의 아이는 외국으로 떠나야 했다. 인터뷰에서 돌아오는 내내 ‘독수리 5남매’의 맏딸 주아 양이 한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게 뭐 중요한가요. 입양한 동생이든 아니든 짜증 나게 하는 건 똑같죠. 그래도 어떡해요. 동생인데 챙겨야죠.“
#입양가족 #독수리오남매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료타는 6년간 키운 아들 케이타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다음에야 자신이 돼먹지 못한 아버지였음을 고백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통해 묻는다. 과연 가족은 주어지는 것인가.
가정의 달을 맞아 ‘여성동아’가 만난 여섯 모양의 가족은 “우리는 이렇게 가족이 됐다”고 말한다. 한일 커플은 국경을 뛰어넘어 결혼하기 위해, 입양 가족은 내가 낳지 않은 아이와 가족이 되기 위해 수십 장의 서류를 정부에 제출했다. 네 자매는 “언젠가 같이 살자”는 어릴 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남편을 비롯해 15명의 동의를 구했다. 수많은 난관을 뚫었지만 아직 법적으로는 가족이 되지 못한 레즈비언 커플과 그 딸도 있다.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사돈지간이 함께 사는 가족), ‘일상과 마음을 나눌 존재’(네 자매 가족), ‘함께하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이민 가족),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가족’(레즈비언 커플) 등 각각 정의하는 가족은 다르지만 마음은 어딘가 닮아 있다.
우리는 그렇게 가족이 된다.
경기도 광주시 ‘독수리 5남매’의 집으로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쏟아졌다. 김근환(44)·김세진(43) 부부에게 소란은 일상이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언니가 장난감 안 빌려줘” 등 다양한 민원을 들고, 거실에 있던 아이들이 부엌으로 찾아왔다. 부부는 다섯 아이를 키우고 있다. 출생 순서대로 김주아(12), 김주혜(11), 김주언(9), 김주성(5), 김주리(3) 이른바 ‘독수리 5남매’다. 세진 씨가 낳은 자식은 첫째와 막내. 주혜 양과 주언 군은 입양 절차를 마쳤고, 법률 후견인 자격으로 위탁 보호하고 있는 주성 군은 향후 입양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다섯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이 궁금합니다.
세진 |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요. 남편은 출근길이 멀어서 먼저 나가고, 저는 아이들 깨워서 준비시키고 밥 먹이고 출근하죠. 초등학교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 첫째와 둘째가 셋째를 데리고 학교에 가고요. 저는 넷째와 다섯째를 등원시킵니다. 그리고 퇴근하면서 아이들을 픽업해서 오죠.
근환 | 주말에는 오늘처럼 정신없는 게 일상이고요. 최근엔 날씨가 좋아져서 다 같이 공원에 놀러 가기도 합니다.
원래 많은 아이를 키울 계획이셨나요.
세진 | 둘째를 유산한 뒤 힘든 순간이 있었어요. 그전에도 제가 먼저 입양을 제안하긴 했지만 그게 중단된 상황에서 한 임신이었거든요. 그때 남편이 입양을 해보자고 역제안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셋째를 먼저 입양했고요. 그 뒤로는 아무래도 입양 카페에 올라온 아이들이 자꾸 눈에 밟혔어요. 특히 둘째가 눈에 들어왔죠. 1년 뒤에도 이 아이가 입양되지 않으면 우리가 하자고 남편과 상의했어요. 그리고 그 둘째가 동생을 더 갖고 싶다고 해서 넷째를 만날 수 있게 됐죠.
근환 | 그리고 다섯째는 어쩌다 보니 생겼어요. 사실 처음엔 이렇게 다섯 아이를 키우게 될 거라고 생각 못 했죠. 결혼하고 첫아이 낳고 나서는 하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은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웃음).
아이들은 함께 잘 지내나요.
세진 | 서로 많이 싸우고, 서로 많이 챙겨주죠. 처음 둘째가 왔을 때는 서열을 잡는 게 어려웠던 적도 있었어요. 첫째와 둘째는 1년도 채 차이 나지 않거든요. 서로 친구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어요. 언니를 언니로 안 보고, 동생을 동생으로 안 봤죠.
근환 | 그래서 둘이 잘 지냈던 것으로 기억해요. 주아도 또래 동생이 생겨서 좋아했다가 이후엔 말 그대로 친자매가 되니까 원수지간이 됐죠(웃음).
모든 입양 부모는 쌍갈랫길에 선다. 아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입양 사실을 알리는 공개 입양과 이를 숨기는 비밀 입양으로 나뉜다. 세진 씨는 “각자 생각이 달라도, 모든 입양 부모는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공개 입양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세진 | 사실 저는 영원히 숨길 자신이 없었어요. 키운 부모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아이가 입양 사실을 듣게 되면 더 큰 충격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알렸나요.
세진 | 괜히 무게 잡지 않고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이야기했어요. ”너희를 낳아준 엄마가 있었고, 어떤 힘든 상황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상황 속에서 그 엄마는 너희를 지켰다. 그건 항상 감사해야 한다“고 했죠. 이건 아이의 인생이고, 입양됐다는 건 그 인생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근환 | 주변에 알리는 일이 쉽지는 않더라고요. 왜 굳이 입양하냐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낳은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입양하는 일이 드물기도 하고요. 예상하고 있긴 했지만 당시엔 그게 힘들었어요.
세진 | 입양했다고 하면 대단하다고들 이야기하세요. 솔직히 저는 그래요. 아이를 키우는 게 대단한 거지, 입양이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모든 부모가 다 대단한 거예요.
입양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세진 | 일단 고민을 많이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주위 사람들부터, 특히 온라인 카페나 모임 등을 통해서 선배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결론을 내렸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입양하면 신혼처럼 허니문 기간이 있습니다. 어디 가서든 자식 자랑을 하고 싶고요. 그다음은 모든 부모의 고민과 비슷해집니다. 입양 여부와 관계없이 육아와 양육은 힘든 일이잖아요.
‘정인이 사건’ 등 일부 양부모의 폭행 사건이 알려지며 힘든 점은 없었나요.
세진 | 저희가 운영하는 ‘독수리오남매’ 유튜브 채널에 진짜 악플이 많이 달렸죠. 하지만 그건 정말 일부의 사례라고 생각해요. 입양 여부와 관계없이 폭행하는 친부모도 있으니까요. 입양아에 대한 당국의 관리도 소홀했고요.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
세진 | 이제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두런두런 학교 이야기든, 친구 이야기든 함께 나누다 보면 대화가 되니까 재밌어요. 또 누나라고 첫째와 둘째가 셋째를 아침에 꼭 챙겨서 같이 나가는 걸 보면 흐뭇하고요. 서로 위하는 걸 보면 정말 예쁘고 고맙죠. 넷째와 다섯째는 보기만 해도 너무 귀여울 때죠. 넷째가 오빠라고, 어린이집에서 바깥 놀이하다 다섯째를 마주치면 이산가족 만난 것처럼 그렇게 좋아한대요.
근환 | 밖에서 보기엔 입양 가족이 특별할 것 같지만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해요. 이렇게 정신없이 보내다가도 순간순간 행복하죠.
5월 11일은 입양의 날이다. 2011년 최고치(2475명)를 찍었던 입양 아동 수는 점차 줄어 2022년에는 324명의 아이가 새 가정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142명의 아이는 외국으로 떠나야 했다. 인터뷰에서 돌아오는 내내 ‘독수리 5남매’의 맏딸 주아 양이 한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게 뭐 중요한가요. 입양한 동생이든 아니든 짜증 나게 하는 건 똑같죠. 그래도 어떡해요. 동생인데 챙겨야죠.“
#입양가족 #독수리오남매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