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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trend

멋쟁이 신사는 치마를 입는다

글 이나래

2021. 09. 02

2021년 멘즈웨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젠더리스’, 가장 대표적인 아이템은 스커트다. 버버리는 스커트와 드레스를, 루이 비통과 꼼데가르송은 플리츠스커트를 남성복 쇼 런웨이에 올렸다. 패션 좀 안다 하는 스타들도 앞다퉈 스커트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하이힐과 스커트 스타일링을 즐기는 조권. 지난 5월 한 패션쇼에서는 한복 치마에 도포를 입고 무대에 섰다.

하이힐과 스커트 스타일링을 즐기는 조권. 지난 5월 한 패션쇼에서는 한복 치마에 도포를 입고 무대에 섰다.

치마가 본격적으로 남성 패션의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루이 비통은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A라인 스커트를 무대에 올렸고, 펜디는 튜닉을 선보였다. 로에베와 보테가 베네타가 와이드한 A라인이 마치 스커트인 듯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퀼로트 팬츠로 안정성을 추구했다면, 프라다는 웬만한 여성들도 소화하기 힘들 법한 미니스커트와 쇼트 팬츠를 결합한 ‘스코트(Shorts + Skirt)’를 내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들이 진짜 스커트 패션에 도전할까?’ 궁금해진다면 이미 훌륭한 스타일로 패션 세계를 확장시킨 스타들에게 힌트를 얻어보자. 트렌드의 중심에 서 있는 K팝 스타부터 2m에 달하는 장신에도 불구하고 스커트 스타일링을 주저하지 않은 NBA 선수들까지, 용기 있는 남자가 패셔니스타의 명예를 누린다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


트렌드의 최첨단, K팝 스타들의 선택

체크 스커트를 입은 BTS 지민과 NCT 드림 천러.

체크 스커트를 입은 BTS 지민과 NCT 드림 천러.

스커트 트렌드를 입증하는 스타가 K팝 신에 있다는 사실은, K팝이 얼마나 빠르게 트렌드를 소화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증거다. 무려 10주나 ‘빌보드 핫 100’ 차트에서 1위를 달린 BTS의 메가히트곡 ‘버터’의 티저 이미지가 공개된 직후, 팬덤은 흥분에 휩싸였다.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멤버 지민이 입은 치마가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 짧은 청 반바지 위에 스코틀랜드의 전통 의상을 연상시키는 셀린의 퀼트 스커트와 퍼 부츠를 매치한 젠더리스 스타일링은 신선한 충격을 선사하며 호평을 얻었다. NCT 드림의 멤버 천러도 정규 1집 타이틀곡 ‘맛(Hot Sauce)’ 뮤직비디오에서 BST 지민과 같은 체크 스커트를 선택했지만, 긴 청바지와 매치해 놀라움은 덜했다는 반응이다.

그룹 2AM 출신으로 뮤지컬 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권은 한복 치마에 도전해 화제의 중심에 섰다.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된 한복 패션쇼에서 진달래색 치마에 연분홍 도포를 두르고 7cm에 달하는 굽 높은 꽃신을 신어 젠더리스 스타일링을 완성한 것. 전통 한복에 평생을 바쳐온 한복연구가 박술녀조차 처음으로 시도한 믹스 매치라고 말하며 박수를 보냈다. 그는 실생활에서도 성별을 가리지 않는 패션 스타일링으로 유명한데, 특히 여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하이힐에 탁월한 감각을 발휘하는 편이다. 실제로 조권은 본인의 SNS에 하이힐 사진을 업로드하고 ‘There is no gender in fashion(패션에는 성별이 없다)’는 글을 덧붙여 뚜렷한 가치관을 전하기도 했다.

팝 스타들의 과감한 도전,
시폰 드레스부터 레이스 블라우스까지

로에베, 루이비통, 버버리, 프라다 등 맨즈웨어 컬렉션에 등장한 스커트들.

로에베, 루이비통, 버버리, 프라다 등 맨즈웨어 컬렉션에 등장한 스커트들.

아직까지 K팝 스타들이 바지 위에 퀼트 스커트를 덧입거나 스커트처럼 보이는 튜닉 바지를 착용하는 ‘안전한 선택’을 보여주고 있다면, 해외 팝 스타들은 좀 더 적극적이다. 영국 팝 그룹 원디렉션 출신의 가수 겸 배우 해리 스타일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젠더리스 트렌드의 선두 주자다. 그가 2020년 12월 패션 매거진 ‘보그’의 표지 모델로 등장한 사실은 2가지 측면에서 이슈가 됐다. 미국 ‘보그’ 창간 이래 1백27년 만에 최초의 남성 커버 모델이 되었다는 점이 첫 번째, 그가 디자이너 해리스 리드의 하늘색 레이스 시폰 드레스를 입고 표지 모델에 임했다는 점이 두 번째였다.

해리 스타일스

해리 스타일스

넷상의 반응은 열광적이었지만 반대의 의견도 다수 등장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극우 논객 캔디스 오웬스의 트위터 게시물이다. “남성들이 꾸준히 여성화되고 있다. 남자다운 남자로 돌아오라(Bring Back Manly Men)”고 주장한 그녀의 트위터로 인해 갑론을박은 거세졌는데, 해리 스타일스는 2021년 1월호 ‘버라이어티’ 매거진 이미지-소매와 블라우스 밑단이 프릴로 장식된 슈트를 입고 바나나를 먹으면서 촬영한-를 업로드한 후 캔디스 오웬스의 “Bring Back Manly Men” 발언을 게시하며 반박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2019년 멧 갈라 당시에도 레이스 장식이 화려한 시스루 블라우스를 착용하며 개성을 뽐낸 바 있는 그는, ‘보그’ 표지 모델 촬영과 병행한 인터뷰를 통해 “옷이란 개성을 표출하는 도구이고, 사람마다 개성이 각각 다른데 여성용과 남성용을 구분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영블러드

영블러드

핫하게 떠오르고 있는 록 스타 영블러드도 젠더리스 패션에 빠질 수 없는 아이콘이다. 앨범 커버와 뮤직비디오, 각종 시상식에서 다양한 의상을 선보이며 펑크 록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스커트와 드레스를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다. 드레스를 선호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섹시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답한 그는, “블랙 컬러의 타이트한 드레스를 좋아한다”고 취향을 밝히기도 했다.

릴 나스 엑스

릴 나스 엑스

‘Old Town Road’라는 곡으로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고, 1억에 달하는 스트리밍 횟수를 기록하며 컨트리 음악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릴 나스 엑스도 스커트 트렌드에 올라탔다. 지난 5월 지미 팰런의 ‘더 투나이트 쇼’에서는 루이 비통의 레드 타탄 스커트를, 6월 말 열린 BET 어워드에서는 디자이너 안드레아 그로시의 화려한 드레스를 선택해 패션 감각을 뽐냈다.

할리우드에서 NBA까지,
남성 패셔니스타들의 필수템

젠더리스 트렌드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다양한 시도를 하며 흐름을 만들어온 이들도 있다. 공고하게 구축돼온 편견-치마는 여성의 전유물이라는-에 가장 효과적으로 반론을 제기한 사람이 미국 배우 빌리 포터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2019년 TV 시리즈 ‘포즈’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그는 같은 해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많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은 주인공이 됐다. 턱시도 재킷에 보타이를 매치한 상의만 보면 남자 배우들이 흔히 하는 스타일링처럼 여겨지지만,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넓게 펼쳐지는 벨벳 소재의 A라인 드레스를 입어 모두를 놀라게 한 것.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황금 깃털을 연상시키는 상의와 풍성한 실루엣으로 이어지는 드레스에 20cm가 넘는 하이힐로 방점을 찍기도 했다. 패션계와 팬들 모두 “빌리 포터야말로 편견 없이 옷을 사랑하고 패션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데 동의한다.

댄 레비

댄 레비

포터의 뒤를 이어 2020년 캐나다 시트콤 ‘시트 크릭’으로 에미상을 수상한 댄 레비 역시 톰브라운의 스커트를 입고 수상대에 올랐다. 시트콤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 데이비드 로즈가 극 중 결혼식에서 같은 브랜드의 스커트 양복을 입은 장면을 재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르지 이바카

세르지 이바카

누군가는 치마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남성성을 극대화해야 하는 스포츠 필드에도 이미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NBA 스타들이 이 변화의 중심에 있다. 유타 재즈의 포인트 가드이자 이미 패셔니스타로 이름 높은 조던 클락슨이 선두에 섰다. 타탄체크 스커트에 나이키 덩크 슈즈를 매치하면서 파파라치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그는, 톰브라운의 스커트 풀 착용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스타일링을 펼치는 중이다. 워싱턴 위저즈의 가드 러셀 웨스트브룩 역시 경기 후 퇴근길에 타탄 스커트를 입은 모습이 매체에 공개되기도 했고 LA 클리퍼스의 포워드인 세르지 이바카도 2019년 파리 패션위크 톰브라운 쇼에 참석했을 때 스커트를 입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 바 있다.

이제 서울의 거리 혹은 지하철에서 치마 입은 남자를 만나더라도 놀라지 말 것. 그것은 양궁선수 안산의 쇼트커트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사진제공 댄레비 로에베 루이비통 조권 버버리 프라다 해리스타일스 인스타그램 영블러드 BTS NCT드림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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