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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전문가 조언

“학습지, 학원 영어실력 도움 안 된다” 발표한 한국외국어대 전종섭 교수

기획·강현숙 / 글·이승민‘자유기고가’ / 사진ㆍ박해윤 기자

2006. 02. 09

최근 ‘어릴 때 학습지나 과외·학원을 통한 영어공부가 실제 영어 실력 향상에 별 도움이 안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한국외국어대 전종섭 교수를 만나 연구 내용과 효과적인 영어교육법을 들어보았다.

“학습지, 학원 영어실력 도움 안 된다” 발표한  한국외국어대 전종섭 교수

한국외대 언어인지과학과 전종섭 교수(38)는 지난 2004년 서울대 대학영어 초빙교수로 근무할 무렵 ‘성인이 돼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초·중·고 시절 어떻게 영어공부를 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서울대 학생이면 당연히 영어도 잘할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저도 물론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막상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영어 실력의 편차가 무척 크더라고요.”
전 교수는 영어 실력이 최고부터 최하까지 골고루 분포된 서울대생을 ‘이상적인 집단’이라고 판단하고 당시 함께 학생들을 지도했던 황윤희·이시연 교수와 ‘유소년기의 다양한 영어학습 방법이 고급영어 구사능력 달성에 미치는 장기적 효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먼저 서울대 대학영어 수강생 2백80명을 대상으로 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평가하고, 면접과 설문을 통해 초·중·고 시절의 영어교육 방법에 대해 조사했다. 그 후 해외체류 경험, 유아기 시청각교재 경험 정도, 학습지 경험 정도, 원어민 교사 경험 여부, 한국인 교사와 학습 여부, 독학 등 다양한 영어 공부법이 현재의 영어 실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면밀히 분석했다.
그 결과 시청각교재나 영어 학습지 경험, 한국인 교사가 가르치는 학원 수강은 성인기 영어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가장 효과가 높았던 방법은 혼자서 문법, 어휘, 듣기, 독해를 열심히 하는 ‘스스로 학습’이며 그 다음은 해외체류 경험이었다. 원어민 교사가 강의하는 학원의 경우 처음에는 오래 다니면 다닐수록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런 학생들은 학원 외에 다른 영어공부법도 많이 한 것으로 조사돼 재분석에 들어갔고, 원어민 교사가 있는 학원 역시 별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전 교수는 이를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착시현상이 학습지나 시청각교재 등 다른 항목에는 나타나지 않고 왜 유독 원어민 교사가 가르치는 학원에만 나타나는지 생각해봤어요. 그것은 원어민 교사의 수업을 많이 받은 아이들은 영어에 쉽게 흥미를 갖게 돼 공부를 열심히 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어요. 즉 원어민 교사가 가르치는 학원은 영어 실력을 키우는 데는 큰 효과가 없지만 영어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데는 효과가 있는 것이죠.”

학문적 바탕 없이 재미만 강조하는 영어교육 큰 효과 없어
전 교수는 부모들의 잘못된 인식 중 하나는 ‘영어는 원래 쉬운 것인데 어렵게 배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어공부를 쉽게 할 수 있다, 음악을 듣다 보면 저절로 영어 실력이 향상된다’는 등 학문적 바탕 없이 ‘재미’만을 강조하는 영어교육법을 무턱대고 믿고 이 방법, 저 방법 시도하는 부모들이 많다. 또 하나 부모들의 그릇된 생각은 이중언어 환경을 만들어주면 영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임신 때부터 태아에게 영어 동화를 읽어주고,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이는 별로 효과가 없다고 한다.
“만 4세 아이들은 어른들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단어를 알고 있어요. 대략 1만~1만5천 개 정도의 단어를 알고, 문법의 90% 정도를 파악하고 있죠. 하지만 이런 능력은 모국어 환경에서만 가능해요. 학계에서는 약 1만5천 시간 동안 그 언어로 의사소통을 했을 때 4세 수준의 언어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봐요. 즉 집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아이에게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익히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죠.”
올해 여섯 살 배기 딸을 키우고 있는 전 교수는 아이를 놀이방에 보내는 것 외에 아무런 교육도 하고 있지 않다. 유아기에는 재미있게 노는 것이 가장 좋고, 조기 영어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어 실력이 최소 수준에 못 미친다는 생각에서다.

“학습지, 학원 영어실력 도움 안 된다” 발표한  한국외국어대 전종섭 교수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건 성인이 돼서 자유자재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잖아요. 지금 어린아이들에게 영어 학습지를 시키고, 학원을 보내고 있다면 그보다는 우선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도록 내버려두세요. 그 후 아이가 조금씩 단계를 밟아 스스로 문법, 어휘, 듣기 등 영어의 기본기를 잘 다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전 교수는 영어교육 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을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첫 번째는 옆집에서 뭘 하느냐에 연연해 흔들리지 말라는 것.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이것저것 가르치다 보면 돈은 돈대로 들고, 아이와 부모의 스트레스만 가중될 뿐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현재 하고 있는 영어공부의 틀 안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독습(獨習)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것. 예를 들어 학원에 다니는 경우 하나의 문장을 배웠다면 그 안에 있는 단어를 다 외우고, 유사한 형태의 문장을 써보고, 안 보고 쓸 수 있게 연습하는 등 배운 것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 교수는 딸아이의 영어교육 방법을 공교육의 틀 안에서 보조를 맞추는 것으로 잡았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교 수업시간에 영어를 배우니 그때부터 학교 진도에 맞춰 영어 공부를 시킬 생각이라고 한다.
“모든 공부에 있어 ‘노력’을 따라갈 만한 학습방법은 없어요. 쉽고 빠른 길로 가려고 하지 말고 장기적인 효과를 고려해 교육방법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아이가 당장 영어로 몇 마디 한다고 기뻐하지 말고 스스로 실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세요.”
하나 더
전종섭 교수가 일러주는 효과적인 영어 독습법

초등학생의 학습은 부모의 노력이 반, 아이의 노력이 반이라고 한다. 영어공부 역시 마찬가지. 독습이 가장 효과적이긴 하지만 초등학생이 혼자서 영어를 공부하기는 힘들므로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부모의 관심이 필수!

▼ 문제풀이식 공부는 피한다
예를 들어 분사가 명사를 수식하는 법을 공부한다고 했을 때 현재분사, 과거분사가 들어 있는 여러 가지 문장 중에서 해당 문장을 고르는 문제풀이식 문법 공부는 문법에 대한 거부감을 키워준다. 그것보다는 아주 짧은 문장이더라도 스스로 예문을 만들어보고, 말로 해보고, 직접 써보는 훈련을 하는 것이 좋다.

▼ 꼭 받아쓰기를 하라
듣기 연습을 하기 위해 원어민 교사가 강의하는 학원에 다니거나 영어 테이프, 영어 비디오를 청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어는 듣는 것만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기가 들은 내용을 받아써야 듣기 능력이 향상된다.

▼ 수준에 맞는 문고판을 읽어라
독해는 아이 수준에 맞는 소설이나 수필류를 읽는 것으로 훈련하는 것이 좋다. 빨리 읽는 것을 연습할 때는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그냥 건너뛰며 전체적으로 읽어보고, 정독할 때는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며 읽는 등 상황에 따라 읽기 방법을 달리한다.

▼ 독해를 하면서 단어를 익힌다
반복적으로 단어를 외워야 하는 어휘 공부는 지루하고 답답해 영어에 대한 흥미를 잃게 하기 쉽다. 따로 어휘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독해를 할 때 나오는 단어 중 모르는 단어를 익히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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