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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training tips

강아지 이름 불러도 오지 않는 이유는?

서상원 반려견 트레이너

입력 2022.09.29 10:00:01

“반려견이 불러도 오지 않는 이유는 보호자가 자신보다 서열이 낮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침대에서 같이 자지 말고 예뻐해주지도 마세요. 단호한 어조로 명령하세요.” 청학동 예절교육을 연상시키는 교육법을 따르면 반려견이 내 부름에 응답할까.
# 편하게 쉬는 주말, 문득 반려견의 발톱 정리와 귀 청소를 안 해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이름을 불렀더니 반려견은 오지 않는다. 나를 ‘쓱’ 쳐다보더니 고개를 휙 돌려버린다. ‘뭐지?’ 싶어 계속 부르니 이젠 쳐다보지도 않는다. 결국엔 내가 간다.

어릴 땐 부르면 곧잘 오던 아이였는데 요즘 들어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지인들에게 물어봤더니 내가 우리 집 반려견보다 ‘서열’이 아래라서 그렇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보니 가면 갈수록 나를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반려견은 집에서 서열을 나누지 않는다

필자가 이 글을 쓰며 반려견 교육에 대해 검색하니, 여전히 사람과 반려견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보는 정보가 무수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서열을 나눈다’는 말, 그럴듯해 보이지만 집에 사는 반려견은 서열을 나누지 않는다. 서열을 언급하는 정보는 전제부터 잘못됐으며 보호자들에게 혼선을 줄 뿐이다.

도대체 왜 반려견 교육에 ‘서열’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을까. 1940년대로 돌아가 보자. 당시 동물학자들은 실험실에 연고 없는 늑대 2마리를 가두고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 관찰했다. 관찰 결과, 2마리 중 강한 늑대인 ‘알파’가 등장하고 다른 늑대는 순종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결과를 늑대의 후손인 개에게도 적용했다.

1980년대에 접어들어 이 실험에 모순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첫째, 늑대 2마리를 기반으로 한 실험 결과를 종 전체의 습성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둘째, 통제된 공간에서 실험했기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서열이 아니다. 셋째, 늑대와 개는 1만 년 동안이나 다른 환경에서 진화했기에 늑대 실험 결과를 개에게 적용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야생과 가정집의 판이한 환경이다.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야생동물과 세대를 거듭하며 태어날 때부터 가정에서 자란 반려견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심지어 이후에는 늑대조차 서열이 아닌 상호 소통으로 집단생활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실제로 나는 힘의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여러 사례를 목격했다.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유튜브에서 본 리트리버와 포메라니안의 동거였다. 주인이 리트리버와 포메라니안에게 밥을 주면 리트리버가 밥을 다 먹고 포메라니안의 옆을 기웃거린다. 포메라니안이 ‘으르렁’ 소리를 내면 리트리버는 공간을 떠난다. 서열이 적용된다면 5kg도 안 되는 포메라니안이 30~40kg의 리트리버에게 사료를 빼앗겨야 하는 것이 맞다.

다른 종이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몰라 우리 집 동물들을 통해 알아봤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지만 4kg인 반려묘와 15kg이 나가는 반려견에게 한 공간에서 먹을 것을 주고 옆에서 지켜보았다. 우리 집 반려견도 자신의 간식을 다 먹고 반려묘에게 다가갔다. 반려묘가 반려견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경고하자 이내 나에게 와서 간식을 더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서열이 적용된다면 작은 반려묘가 훨씬 덩치 큰 반려견에게 간식을 내주어야 하지 않는가. 설령 결과가 다르다 하더라도 이유는 서열 때문이 아니다. 상대의 경고를 무시하고서라도 그냥 남의 간식이나 사료가 먹고 싶었을 뿐이다.

교육한 적 없으니, 불러도 오지 않아

그렇다면 왜 우리 집 반려견은 불러도 오지 않는 걸까. 가장 유력한 이유는 반려견이 ‘이리 와’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일 수 있다. 3~4개월의 어린 반려견은 보호자의 “이리 와” “여기”에 호기심을 갖기에 자연스럽게 다가가게 된다. 문제는 성견이 된 이후다. 보호자가 “이리 와”라고 외쳐도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에 그저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 눈치로 알아채고 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매번 그러지 않기에 보호자는 점점 반려견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경우는 보호자가 불러서 갔을 때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이 생긴 기억 때문일수 있다. 사람도 상사가 부르면 아무 이유 없이 일단 꺼려지기 마련, 반려견도 마찬가지다. 칭찬과 간식이 주어지는 비율보다 발톱 관리, 귀 청소 등 싫은 일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면 당연히 불러도 가고 싶지 않다. 발톱 관리와 귀 청소, 목욕, 양치 등은 사람의 기준에서 필요한 일이지만 반려견에게는 하기 싫은, 나쁜 자극을 주는 일이다.

반려견이 이런 관리를 잘 참고 받을 수 있도록 하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보호자는 안아서 붙잡고 강제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불렀을 때 더욱 가지 않게 된다. 심한 경우 불러도 오지 않고 자신을 잡으려는 보호자의 손에 입질을 하기도 한다.

보호자의 말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사람도 그렇듯 신나게 뛰어놀고 있는 반려견을 불러봤자 보호자의 말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복종시키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

아이들이 그렇듯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는 반려견에게 보호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이들이 그렇듯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는 반려견에게 보호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모든 단서는 다 나왔다. 한 번 불렀을 때 반려견이 무조건 오게끔 하고 싶다면 위에 서술한 원인들과 반대로 하면 된다. 반려견이 좋아하도록 보상과 함께 교육을 시작하자. 불러서 왔을 때 맛있는 간식을 선물하고 같이 신나게 놀아주면 긍정적인 기억이 축적된다. 집에서 익숙해지면 조용한 산책로에서, 그리고 반려견 운동장으로 자리를 옮겨보자. 운동장에서 반려견을 불러 다가오면 간식을 선물하고 “다시 가서 놀아!”라고 외치는 보호자라면 반려견은 어떤 상황일지라도 당신의 부름에 응답할 것이다.

부득이하게 나쁜 자극을 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름이나 “이리 와”를 외치지 말자. 불러서 신나게 달려갔는데 보호자가 억지로 발톱을 자른다면 반려견은 배신당한 기분일 것이다. 그러니 직접 찾아가자. 놀이를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끝’이라는 신호를 명확하게 주고 끝내도록 하자. 반려견을 부른 후에 좋아하는 것을 치워버리는 자극은 주지 않는 게 현명하다.

반복해서 이름을 부르거나 “이리 와”라고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 번 말해서 듣지 않으면 못 알아들은 것이거나, 이미 그 신호 자체가 무시해도 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렇게 되지 않도록 반복적으로 부르는 행동은 자제하도록 한다. 불러도 나에게 집중하지 못할 상황이면 애초에 부르지 말자.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반려견은 어차피 내가 불러도 듣지 못한다. 올 것 같은 상황에서만 불러 다가오면 칭찬해주는 방식이 교육이다. 이 원칙들을 실생활에 적용한다면 나중에는 반려견도 보호자의 부름을 보상으로 느껴 자기 이름이 불릴 때마다 행복을 느낄 것이다.

서열이라는 잣대를 제거하면 사람과 반려견의 행동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보호자가 불렀는데 오지 않는 것을 배신행위라고 생각하지 말자. 보호자와 반려견은 가족이다. 반려견이 반드시 보호자의 말에 ‘복종’해야 하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사랑으로 보듬어야 하는 수평적인 관계임을 명심하자. 군림하지 않아도 행복한 반려 생활을 할 수 있다.

#반려견교육 #강아지부르는법 #긍정강화훈련 #여성동아


서상원
현) 하이나나 출장교육센터 운영
미국 전문 반려견트레이너 협회(APDT) Professional Member
미국켄넬클럽(AKC) Canine Good Citizen Evaluator
FearFree Animal Trainer Certified Professional
Karen Pryor Academy Puppy Start Right For Instructor
(사) 한국애견협회 반려견지도사 자격

사진 게티이미지 



여성동아 2022년 10월 7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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