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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power woman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첼리스트 최하영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 2022.09.23 10:00:01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젊은 한국 연주자들이 거듭 낭보를 전하며 ‘K-클래식’이라는 말까지 만들어졌다. 지난 6월,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쥔 첼리스트 최하영을 만났다.


6월 1일 벨기에 브뤼셀 보자르, 불규칙한 첼로 선율이 고요한 극장을 갈랐다. 첼로 솔로로 시작된 루토스와프스키 첼로 협주곡은 30분 뒤, 관객들의 박수갈채와 환호성으로 끝났다. 첼리스트 최하영(24)은 약 한 달간 진행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했다. 86년 역사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국제 음악 콩쿠르로 꼽힌다.

입상자들과 함께 벨기에 투어를 마친 최하영은 최근 한국 투어를 위해 고국을 찾았다. 9월 14일부터 8일간 일곱 차례의 공연이 이어지는 빠듯한 일정이다. 동아일보 충정로사옥 스튜디오를 찾은 그는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투어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을 방문할 수 있어 기대가 크다”며 활짝 웃었다.

카리스마 있는 자연스러움

한국 투어에서 어떤 곡을 준비했나요.

정말 다채로운 곡을 준비했는데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세미파이널에서 연주한 하이든 첼로 협주곡, 파이널에서 연주한 루토스와프스키 첼로 협주곡을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드로브자크의 곡도 준비했습니다.

결선 무대가 끝나고 지휘자와 눈을 마주치면서 웃던데, 우승을 예상했나요.

안도의 순간이었습니다. 루토스와프스키 곡을 청중 앞에서 처음 연주해봤어요. 걱정도 많이 했지만 무사히 잘 마쳤다는 의미였습니다.



루토스와프스키 곡은 난해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파이널 미션곡 선택에 의아하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현지에서는 대범하다고 많이들 말씀해주셨고요. 제 강점을 보여줄 수 있는 곡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현대곡이라 난해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재밌고, 극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는 곡입니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의 강점은 뭘까요.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많은 분의 이야기를 빌리자면(웃음), 연주가 자연스럽고 카리스마가 있다고 말씀해주세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약 한 달의 기간 동안 1차, 세미파이널, 파이널 세 차례의 경연이 이어진다. 파이널에 진출한 12명의 연주자는 일주일간 ‘뮤직 샤펠(music chapel)’이라 불리는 궁에 가둬진 채 자신이 선택한 곡과 주최 측이 지정한 곡을 연습한다. 지정곡의 경우 새로 창작된 곡으로 뮤직 샤펠에 들어가서야 악보를 받을 수 있다. 올해 지정곡은 외르그 비드만의 미발표곡 ‘5개의 소품’이다.

“저도 콩쿠르를 많이 나가봤지만 합숙은 처음이었어요. 뮤직 샤펠에 들어가면 작은 블랙박스를 받아요. 이곳의 생활 규칙, 메트로놈, 알람시계 딱 3개만 들어 있죠. 그걸 받고 나면 핸드폰을 압수하고요(웃음). 인터넷, TV, 전화도 없는 상황에서 일주일간 고립되죠. 그리고 파이널 미션에서 본인이 선택한 곡, 그리고 지정곡 악보를 받게 됩니다.”

떡볶이·라면 나눠 먹으며 합숙

경쟁자와의 동침이네요.

서로 도와주는 분위기였어요. 같이 밥 먹고 곡과 핑거링(손 짚는 법)에 대한 의견도 주고받으면서 힘이 됐죠. 격려도 해줬고요. 함께 결선에 진출한 한국인 참가자들과는 라면이나 떡볶이도 같이 먹었어요(웃음).

지정곡 악보를 받을 때 어땠나요.

테크닉 면에서 어려운 점이 많았고요. 일주일 만에 곡을 소화해서 연주해야 하니 불안하기도 했어요. 오케스트라 리허설 때 재밌게 연주해서 안심했습니다.

연주하면서 어떤 생각을 하나요.

곡마다 달라요. 저는 연습할 때, 이 부분에서 상상하는 장면을 악보에 써둬요.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광경 같은 걸 수도, 사람이 말하는 극적인 장면이 될 수도 있어요. 노래하는 걸 생각하기도 하고요. 음악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저만의 스토리가 있고 그걸 청중에게 전달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건 첼로 솔로 연주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상상력을 전달한 후 해석은 관객의 몫이고요.

루토스와프스키 첼로 협주곡을 연주할 때는 어떤 장면을 상상했나요.

논쟁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첼로 솔로로 시작하지만 여러 악기가 등장하죠. 각각의 캐릭터와 대화를 하는 거예요.

금관악기가 치고 들어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맞아요. 첼로가 다시 그 소리를 억압하죠. 끝없는 배틀(battle)입니다.

콩쿠르를 준비하는 과정이 고통스럽지는 않으셨나요.

힘들죠. 정말 많은 훈련이 필요하니까요. 가장 신경 썼던 점은 체력입니다. 연습도 물론 많이 해야 하지만, 그만큼 쉬는 시간도 자주 가지려고 했어요. 근력 운동도 하고요. 연주 전, 연주 중간, 연주 후 다 스트레칭 방법이 다르거든요. 몸 관리가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대회에 나가지 않을 때도 항상 연습을 해야 하죠.

1위 발표가 났을 때 정말 기뻤겠네요.

정말 마음을 비우고 있던 상태여서 이름이 딱 불렸을 때는 ‘빅 쇼크’였고요. 무대로 걸어갈 때 많은 청중이 큰 환호를 해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최하영은 “콩쿠르 무대가 긴장되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수많은 관객을 만나 행복했다”고 털어놨다.

“2020년 3월 초 연주를 끝으로 계속 공연이 취소됐어요. 잡혀 있는 연주가 없으니까 ‘뭘 위해서 연습을 하나’ 생각이 드는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무관중 온라인 연주를 하기도 했지만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관객과 직접 소통할 수 없으니까요. 콩쿠르 이전에도 실황 무대가 있긴 했지만 수천 명의 관객이 모인 무대는 오랜만이었어요. 1차 때부터 거의 만석이어서 깜짝 놀랐죠. 관객들도 목말라 있었다고 생각해요.”

공부엔 끝이 없다

2022년은 그야말로 ‘K-클래식’의 해다. 금호문화재단 집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첼리스트 최하영, 피아니스트 임윤찬을 비롯해 25개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37명의 한국인이 입상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파이널 무대에도 최하영을 비롯한 4명의 한국인이 진출했다. 최하영은 “정말 신기하다”며 “제가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 다녔는데, 훗날 음악 페스티벌에서 당시 봤던 친구들을 자주 만난다”고 말했다.

최하영은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을 거쳐 음악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왔다. 영국 퍼셀 음악학교,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현재는 독일 베를린에 살며, 베를린 예술대학에 재학 중이다. 재능을 타고난 건지를 묻자, 그는 손사래를 쳤다.

“다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무대에 서는 게 재밌었어요. 청중에게 에너지를 주고 제가 많은 에너지를 받는 과정이요. 그때마다 음악가, 첼리스트로 사는 게 정말 축복받은 일이라는 걸 느껴요.”

첼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어머니 때문이라고요.

어머니가 취미로 첼로를 배우셨어요. 저도 따라서 초등학생 때 첼로를 익히기 시작했고, 첼로 외에도 피아노나 하프를 배웠죠.

많은 악기 중 첼로를 꾸준히 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 첼로를 잡았을 때부터 울림이 너무 좋았어요. 다른 악기도 배웠지만 전공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첼로는 정말 낮은 음역대부터 높은 음역대까지, 소프라노·알토·바리톤·테너를 다 소화할 수 있는 악기예요. 그게 정말 매력적이죠.

어릴 적 영국에서의 유학 생활은 어땠나요.

열세살 세 때 영국에 갔어요. 제가 다녔던 퍼셀 음악학교는 무척 자유로운 분위기였어요. 기상하면 아침 먹기 전, 첼로를 연습할 수 있는 한 시간이 주어져요. 이후 정규 교과 과정이 시작되는데 오후는 자유 시간이에요. 악기 연습을 할 수도 있고 축구나 댄스, 수영을 할 수도 있죠. 그래서 음악 외에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었어요.

그 경험이 첼로 연주에도 영향을 줬겠네요.

학교에 들어가서 존 스타인벡과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었어요. 영어 수업에서 읽었던 문학이 연주에 많은 도움을 줬죠.

열여섯 살 때 독일로 가게 됩니다.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는 마스터 클래스가 열려요. 많은 음악 거장이 와서 수업을 하죠. 수업뿐 아니라 함께 밥을 먹고 인생 이야기를 듣기도 해요. 제 레슨뿐 아니라 동료들 레슨도 같이 들으면서 토론하기도 하고요. 각자의 곡 해석을 서로 들려주는 거죠.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1위를 했지만, 또다시 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왕립학교에 입학한다고 들었습니다.

공부엔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제 목소리를 찾기 위해 계속 노력 중입니다.

마드리드로 이사하는 건가요.

거주지는 옮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베를린을 좋아하는군요.

베를린은 예술가들이 정말 많이 사는 도시예요. 거리마다 작은 전시회가 열리죠.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정말 많아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는 환경이 정말 좋죠. 주말마다 뭘 할지 고민을 정말 많이 해요. 구역마다 분위기도 다른데, 하나의 도시에 10개 이상의 도시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가는 곳마다 정말 새로워요.

“청중과 깊이 소통하는 첼리스트”

연주 외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요.

요즘 드럼을 배우고 있어요. 재즈 음악을 좋아해서 취미로 시작하게 됐어요.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해요. 첼로에서 잠시 벗어나는 시간인 거죠.

갖고 싶은 취미가 또 있나요.

너무 많아요(웃음). 춤도 조금 더 배우고 싶어요. 많은 분이 클래식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옛날 재즈 댄스도 배우고 싶고 어번(urban) 댄스도 배우고 싶어요. 여행도 가고 싶었는데, 이번 한국 투어를 하며 자연스럽게 여행하게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나요.

깊이 있는 음악을 전달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는 첼로계의 전설 버나드 그린하우스와의 일화를 전했다.

“세 번의 레슨을 받을 기회가 있었어요. 소중한 인연으로 발전한 게, 수업이 끝난 뒤 그분이 저를 미국으로 초대하셨어요. 방학 때 미국 보스턴 인근 해변 마을에 있는 그린하우스 선생님 집으로 가서 2주 정도 레슨을 받았어요. 그때 ‘위대한 첼리스트가 되기보다 위대한 음악가가 돼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청중과 깊게 대화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하신 거죠.”

#최하영 #첼리스트 #퀸엘리자베스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제공 주브뤼셀 한국문화원 사진출처 최하영 인스타그램



여성동아 2022년 10월 7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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