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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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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부동산 대책 한 달… “대치동·목동, 이젠 가고 싶어도 못 가요”

EDITOR 정혜연 기자

2020. 01. 23

정부가 12·16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지 한 달 남짓. 고가 부동산 매매는 거의 올 스톱 상태다. 교육 특구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양천구 목동 전세 시장은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간 뒤 다시 잠잠해진 분위기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거주하는 30대 주부 김모 씨는 올해 3월 첫째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에 맞춰 목동으로 이사하려 했다.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니 무리를 하더라도 집을 사자는 남편 뜻에 따르기로 했던 것. 그녀는 기왕 살 거면 교육 환경이 좋은 목동의 구축 아파트라도 잡자고 남편을 설득했다. 이후 지난해 11월부터 공인중개사무소 몇 군데를 돌아보던 중 12월 말쯤 계약서를 쓰자는 데가 있어 한참 얘기가 오갔다. 

그런데 하필 12월 16일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옥죄는 바람에 모든 게 틀어졌다. 정부가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15억원이 넘는 주택을 살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한 것. 그 이하의 경우라도 9억원까지만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기존 40%로 유지하고 9억~15억원은 9억원까지 40%, 9억원 초과 구간은 20%로 낮췄다. 자금 여력이 부족했던 김 씨는 전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매매는 어차피 안 되니 전세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공인중개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는데 하루 사이에 5천만원씩 올려 부르더라고요. 일단 계약금이라도 넣으려 했지만 다들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매물이 씨가 말랐죠. 결국 이사를 포기했어요. 아이들을 좋은 환경에서 키울 기회조차 영영 잃게 되는 거 아닌가 싶어 속상해요.”

학원 트렌드 변화 중인 목동, 전세는 여전히 강세

목동 5단지 앞 학원가.

목동 5단지 앞 학원가.

김 씨처럼 기회를 엿보다 실기한 사람이 적지 않다. 지난해 12월 중순 정부가 고가 아파트 대출 금지라는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펼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많은 실수요자가 곤경에 처했다. 당장 대출이 막혔으니 고가 아파트 매매 시장은 얼어붙었다. 목동의 9억~15억원 아파트, 대치동의 15억원 이상 아파트 매매 문의는 확연히 줄었다. 

반면 전세 문의는 대폭 늘어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올려 불렀다. 안 그래도 3월 새 학기를 앞두고 이사를 준비하던 세입자들만 피해를 봤다. 해마다 이사철이면 문전성시를 이루는 목동과 대치동을 찾아 전세 시장 분위기를 살폈다. 



목동은 1단지부터 14단지까지 단지별로 아파트가 나뉜다. 각 단지마다 학원가가 분산돼 있지만 목동 토박이들은 “1~8단지에 괜찮은 학원들이 몰려 있다”고 말한다. 2000년대 초반 목동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모 씨는 “목동이 넓긴 해도 고등학생만 되면 마을버스를 타고 학원 다니기 편하게 돼 있다. 9단지에 살았지만 친구들과 소문난 학원을 찾아 7단지 인근 목동 사거리까지 다녔다”고 말했다. 

목동에서 중학생 자녀를 키우고 있는 50대 회사원 조모 씨는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얼마 전 첫째를 대학에 보내고 둘째를 교육시키는데 학원 트렌드가 조금씩 바뀐다. 요즘은 오목교역 사거리에 대치동 유명 강사들이 학원을 열어 고등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은 거주하는 아파트 근처 학원을 다니지만 고등학생들은 운신의 폭이 넓다. 학구열이 높은 목동 아이들은 유명 학원으로 다니는데 강서구, 영등포구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넘어오기 때문에 면학 분위기는 좋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자녀의 학령에 따라 선호하는 아파트가 다르다고. 고등학생이면 굳이 단지를 따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둔 부모는 자녀의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학원가 인근 아파트를 찾는다. 1~8단지의 경우 한가람고등학교 서쪽에 학원가가 형성돼 있어 이와 근접한 1~5단지 아파트를 찾는 수요자가 많다. 

5단지 아파트 내 A공인중개사무소를 들러 시세를 물었다. 실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3월 개학을 앞두고 2월에는 이사하려는 이들이 거래를 모두 마친 상태다. 매물이 한두 개밖에 없는데 재건축 아파트라 상태는 좋지 않다”고 말했다. 시세라도 알고 싶다고 하니 “전용면적 95㎡ 전세가가 8억~8억5천만원”이라고 답했다. 

목동은 30년 전에 지어진 아파트가 대부분이라 재건축을 논의 중이지만 사업 시행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설은 낡아 살기 불편하지만 사교육을 시키기엔 더없이 좋은 조건이라 전세 수요는 꾸준하다고. 실장은 “언론에서는 집값이 급락한다고 하지만 집주인들은 급할 것 없다는 분위기다. 15억원 이상은 대출이 막혀 20억원이 넘는 95㎡ 이상은 거래가 잘되지 않고, 그나마 65㎡는 15억원대에 매물이 나오지만 집주인들이 가격을 낮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치동 신축은 넘사벽, 재건축 전세도 경기도 집값 한 채

12월 16일 정부 대책 발표 이후 대치동은 전세대란이 벌어졌다. 대치동에서 인기가 높은 래미안대치팰리스.

12월 16일 정부 대책 발표 이후 대치동은 전세대란이 벌어졌다. 대치동에서 인기가 높은 래미안대치팰리스.

대치동은 이번 겨울 아파트 단지마다 전세 매물을 구하려는 수요자들이 번호표를 뽑고 대기해야 할 정도로 대란을 겪어야 했다. 예비 초등학생을 둔 워킹맘 최모 씨는 원래 경기도에 보유한 아파트 두 채를 정리하고 대치동 신축 아파트 한 채를 매입하려고 했다. 작년 12월 초까지만 해도 좋은 값에 집을 정리하면 대치동 입성이 무난할 것이라고 점쳤다. 

그러나 12월 16일 이후 매매는 포기했다. 대출이 막히자 집값이 조정되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자신의 집도 시세가 낮아져 팔기 애매해졌기 때문. 급한 대로 전세를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중개인들이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금부터 넣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할 때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최 씨는 “어제 보고 나온 집이 저녁 사이 거래됐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턱 막혔다. 뒤로 갈수록 전셋값이 1억원씩 뛰자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좋은 학교, 학원가 가까운 아파트 전세를 찾던 그녀는 원하던 조건을 하나씩 포기해야 했다. 덕분에 집은 보고 계약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12월 말에는 ‘대치동 이사를 포기해야 하나’ 싶었는데 하늘이 도운 것 같다. 대치동은 입시 경쟁만큼 전세 계약도 만만치 않은 경쟁이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대치동은 은마아파트 사거리를 중심으로 각종 학원이 몰려 있다. 대부분 초등학교 3학년 정도만 되면 대로변을 따라 걸어 다니거나 마을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거리다. 그렇다고 대치동 학원가와 인접한 순서로 전세가가 결정되지는 않는다. 괜찮은 학원은 ‘우선미’라고 통칭되는 우성·선경·미도아파트 북쪽에도 있기 때문에 자녀의 성별, 학령, 부모의 거주 만족도 등에 따라 신축, 재건축, 구축, 주상복합 등 다양한 선택을 한다. 

최 씨는 학구열이 높고 단지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대치초등학교를 보내기 위해 우성·선경아파트를 노렸다. 그러나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고, 경쟁이 너무 치열했다. 단지와 초등학교 사이는 멀지만 학원가에 인접한 미도아파트는 우성이나 선경보다 전세가가 1억원가량 낮았다. 다행히 경쟁도 덜해 계약할 수 있었다. 최 씨는 “아마 아이가 남자였거나 중학교 입학을 앞뒀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대치동은 전세가를 결정하는 요소가 다른 동네보다 복잡하다. 이런 곳에서 절대 강자로 꼽히는 아파트는 2016년 입주한 신축아파트 ‘래미안대치팰리스’다. 이곳의 전세 시장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 인근 B공인중개사무소를 들렀다. 시세를 묻자 실장은 “전용면적 84㎡ 전세가 15억~16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래대팰은 대치초, 단대부중, 숙명여중, 대청중을 아우르기 때문에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둔 학부모 사이에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해당 아파트는 1단지와 2단지로 나뉘는데 1단지 지하에 수영장, 헬스장, 도서관, 독서실 등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이 몰려 있다. 반면 2단지는 커뮤니티 시설이 없는 대신 대형 평수가 몰려 있고,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는 단지 내에서 운동을 가르칠 수 있는 1단지를, 조용히 공부하기를 원하는 고등학생을 둔 학부모는 2단지를 선호한다고. 

그렇다고 해도 모두가 래대팰을 선호하는 건 아니다. B공인중개사사무소 실장은 “래대팰은 100% 숙명여중에 진학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 일부 여학생은 남녀공학인 대청중으로도 빠지기 때문에 확실히 숙명여중을 보낼 수 있는 아파트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해당 아파트의 매매가는 어떨까. 15억원 이상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된 이후 매매가가 떨어졌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실장은 “85㎡ 매매 시세가 32억~33억원 정도로 형성돼 있다. 실거래가가 뜨면 집주인들이 거기에 1억원을 얹어 내놓기 때문에 최근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보면 된다. 대출이 금지됐어도 집값을 낮추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겨울 좀 더 유난스러웠던 대치동 전세 시장

대치동 학원가.

대치동 학원가.

주택담보대출이 막힌 상황에도 대치동 대다수 아파트 시세가 흔들림이 없는지 궁금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대치역 인근 C공인중개사무소를 들러 대치동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물었다. 사무소 대표는 “지금은 매매가가 떨어지지 않지만 대출이 막혔으니 시간이 흐를수록 조정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전세가가 워낙 오르다 보니 구축은 갭이 계속 줄어들고 있어 지방의 현금 부자들이 와서 살 가능성도 높다. 지방은 워낙 경기가 좋지 않으니 대치동 한 채 계약해 반전세로 돌리려는 사람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가 자사고와 특목고를 일괄 폐지하고 정시 비중 확대를 골자로 한 대입 개편안을 발표한 터라 대치동 불패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전세 시장은 올겨울 유독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C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전세가가 올라도 이 정도로 정신없이 오르지는 않았다. 올해는 정부 발표 때문에 더 유난스러웠다. 대출이 막혀 집을 못 사니까 기존 세입자들은 임대 재연장을 선택했고, 시장에 전세 매물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러니 새로 들어오려는 세입자들은 전세 물건 몇 개를 가지고 싸워야 했다. 지금은 거래가 마무리돼 잠잠한데 내년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진 조영철 기자 디자인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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