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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시인과 디자이너의 섬세한 감각으로 탄생한 꿈의 정원” 식물 숍 Q.E.D. 성다영 & 세미 대표

[정세영의 공간 도슨트]

정세영 기자

2024. 02. 12

서울 서교동에 작은 정원이 생겼다. 2022년 첫 시집 ‘스킨스카이’를 출간한 시인 성다영(35)과 다매체 예술가 세미(25)가 만든 조용한 식물 가게 ‘Q.E.D.(큐이디)’다.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큐이디에는 각기 다른 형태로 아름다움을 뽐내는 식물들이 가득하다. 규모는 아담하지만 정성스레 가꾼 화분들과 철저히 식물을 배려한 동선을 보면 식물을 사랑하는 주인장의 마음이 결코 작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성다영과 세미 대표가 식물 가게를 연 건 4년 전 여름이다. 성다영 대표가 시 창작 세미나를 위한 작업실 메이트를 찾던 중 세미 대표를 만났다. 평소 식물 공부를 하며 잘 가꾸는 세미를 보면서 식물에 관심을 두게 된 그는 시와 식물이 함께하는 공간을 떠올렸다. 수많은 상상과 회의, 오랜 공부 끝에 공간을 구체화했고, 마침내 식물 숍이자 시 창작 세미나실 큐이디를 만들었다.

큐이디(Q.E.D.)는 라틴어의 약자다. 직역하면 ‘이것이 보여야 할 것이었다’란 뜻. 성다영과 세미가 좋아하는 것들을 큐이디를 통해 자유롭게 나열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큐이디 공간에는 두 사람의 취향이 그대로 녹아 있다. 화이트 계열 벽과 바닥, 철재로 만든 조명과 가구는 차분하고 정적인 그들의 모습을 대변한다. 소담하게 쌓인 알록달록한 자체 제작 화분들은 큐이디만의 특별함을 안고 있다.

식물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기다림’이다. 여름에는 잎이 쑥쑥 뻗지만 겨울에는 성장이 더딘 것처럼, 식물의 시간과 리듬을 헤아리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성다영 대표는 “기다림도 즐거워요”라며 방긋 웃었다. 이어 세미 대표는 “꽃이 피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모래알만큼 작은 새싹이 고개를 내밀 때, 새로운 줄기가 자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말했다. 반짝이는 눈으로 말을 이어가는 두 대표의 얼굴에서 식물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마음들이 큐이디를 더욱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본업은 각각 시인과 다매체 예술가예요. 큐이디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성다영(이하 다영) | 평소 상상을 많이 해요. 그러다 떠오른 아이디어를 제품이나 행사 등에 접목하는 기획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미 | 큐이디의 화분을 디자인하고 있어요. 구상부터 후 작업까지 모두 직접 담당합니다.

다영 | 세미는 식물의 관리 방법, 특징 등 다방면에서 지식이 풍부해요. 덕분에 큐이디 식물들을 건강하고 전문성 있게 키운답니다.

큐이디는 식물 키우기에 적합한 공간인가요. 햇빛, 바람 등 자연 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을 것 같은데요.

세미 | 공간의 두 면이 유리로 구성돼 있어요. 아침에는 앞쪽의 창으로, 오후에는 옆쪽의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죠. 식물들은 바람의 흐름이나 태양의 이동에 맞춰 배열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배치가 바뀌는 경우가 있어요. 또 특성에 따라 햇빛이 많이 필요한 식물은 창가에 두고, 통풍을 요하는 식물은 선풍기 옆에 둡니다. 건조한 환경을 싫어하거나 어린 식물들은 테이블 아래 두고요.

식물 진열 방식이 독특해요. 바닥에 자유롭게 나열한 느낌인데요.

다영 | 큐이디 식물 중에는 제가 집에서 오랫동안 가꾼 것이 많아요. 정성껏 기른 식물을 손님들이 자세히 들여다봤으면 하는 마음에 화분을 바닥에 뒀어요. 또 땅 위에 있는 식물을 보는 것처럼 허리를 숙이거나 앉아서 감상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세미 | 미니멀을 좋아하는 제 취향도 반영됐어요. 사실 큐이디에 큰 선반을 놓으면 더 많은 식물을 소개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공간은 복잡하고 답답해지겠죠. 큐이디의 인테리어 콘셉트는 디자인 요소를 최소화한 절제된 공간이에요. 여기에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위치를 고려하니 바닥이 딱이었던 것 같아요.

주로 철재, 플라스틱 등 차가운 느낌의 소재를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했어요. 목재를 사용해 따뜻한 느낌을 내는 보통의 식물 숍과는 다른 모습이에요.

다영 | 나무나 패브릭 등으로 공간에 자연스러움을 연출하기보다는 식물 본연의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철재나 플라스틱이 이에 가장 적합했고요. 사실 나무를 대량으로 벌목해 목재를 얻는 과정을 생각하면 우드 소재가 결코 자연스러운 결과물은 아닌 것 같아요.

큐이디에 있는 가구 대부분은 누군가 쓰던 것이라고 들었어요.

다영 | 맞아요. 선반, 화분도 누군가 버린 걸 주워와서 닦고 말린 뒤 다시 색을 칠한 것들이에요. 살아 숨 쉬는 나무를 벌목해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하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물건을 재사용하는 것이 훨씬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세미 | 큐이디는 최대한 자연을 해치지 않는 방향을 지향해요. 야생에서 채취한 식물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죠. 흙도 코코넛 열매를 수확할 때 나오는 부산물을 활용합니다. 큐이디의 시그니처인 파스텔 톤 핑크와 펄 화이트 컬러 화기도 식물에서 추출한 무독성 플라스틱 PLA를 사용했어요. 3D 프린트를 활용해 직접 만들었고요.

화분을 직접 만드는 이유가 뭔가요.

세미 | 컬러풀하고 가벼운 화기를 찾지 못했거든요. 또 저는 식물에 물 주는 것을 자주 잊어버리는 편이라 물이 적당한 속도로 마르는 화분을 선호해요. 이 모든 것을 충족하려면 화분을 직접 만드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어요. 큐이디를 오픈하고 한 달 후부터 화분을 제작했고 판매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큐이디 화기들은 56℃ 이상의 온도에서 생분해되는 소재와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요. 앞으로 재활용 소재 비율을 높여갈 생각이고요.

필리로에 vas 91, 레투사 pot 103 등 생물 이름을 따온 화분 라인 네이밍도 독특해요.

세미 | 화분 이름은 라인-종류-번호 3가지 요소를 결합해 만들어요. 라인은 디자인할 때 가장 영감을 많이 받은 생물 분류군을 뜻하고, 종류는 물건의 용도, 번호는 디자인된 순서를 의미합니다. 라인의 이름인 필리로에, 레투사, 리토는 모두 해양 복족류에서 따왔어요.

유니크한 업사이클링 화분으로 MZ세대 겨냥

화분 디자인의 영감은 생물인가요.

세미 | 맞아요. 저는 무언가를 만들 때 생물과 생물학적 이미지를 차용하는 걸 좋아해요. 화분은 식물과 흙을 감싸는 껍데기라는 점에 착안해 겉이 단단한 복족류, 씨앗 등을 떠올렸죠. 그리고 그 생물들의 곡선 실루엣을 연구했어요. 몇 가지 실루엣을 발견한 뒤 디자인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다양한 시도와 연구 끝에 지금의 디자인이 탄생했죠.

큐이디의 화분뿐 아니라 인테리어, 콘셉트 등을 모방하는 곳도 많다고 들었어요.

다영 | 대단히 많아요. 저희 숍 근처에도 있었어요. 지금은 문을 닫았고요. 처음에는 굉장히 신경이 쓰였는데 이제는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어요. 오리지널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거든요. 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그 안에 담고 있는 철학과 결과물은 확연히 다르잖아요. 손님들도 그걸 아시고요.

세미 | 화분을 직접 만든 이유는 경제적으로 가장 부담이 덜했기 때문이에요. 저희를 모방할 돈으로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게 훨씬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방이 경제적으로도 크게 의미 있는 행위는 아니니까요.

다영 대표님은 ‘식물’에서 영감받은 시를 쓰기도 하나요.

다영 | 식물이 특수한 깨달음이나 정념을 불러일으키진 않아요. 매일 식물을 다루다 보니 시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뿐이죠. 저는 인간 중심적 시선에서 벗어난, 다른 시선으로 세계와 자연을 바라보는 시를 쓰고 있어요. 식물의 시선에서 식물을 이야기하는 시를 쓰진 않습니다.

큐이디로 인해 식물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나요.

다영 | 식물 숍을 열기 전에는 식물을 팔아서 돈 버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산, 강, 거리 등 어디에나 식물은 있으니까요.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아요. 생김새와 향기가 다른 식물이 주변에 이렇게 많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지죠. 또 가끔은 살아 있는 걸 다룬다는 것이 경이롭게 여겨질 때도 있어요.

큐이디에서는 주로 어떤 식물을 소개하나요.

세미 | 강한 생명력과 실내 적응력을 가진, 야생 채집 개체가 아닌 식물들요. 이 3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식물 중 마음이 가거나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들을 자유롭게 선택해요.

팝업스토어, 29CM 등 다양한 곳에서 큐이디 제품을 소개하고 있어요. 판매에 도움이 되나요.

세미 | 판매에 가장 도움이 되는 건 29CM예요. 기획전 등 플랫폼 내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통해 큐이디가 많이 알려졌거든요. 큐이디 제품은 서울, 강원도, 제주도 등 국내 여러 식물 숍과 편집 숍에도 입점해 있어요. 매출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와 제품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 큰 의의를 두죠. 모든 곳을 가보진 못했지만 큐이디 화분이 어느 공간에 예쁘게 진열된 모습을 상상하면 낯설고도 뿌듯해요. 지난해에는 편집 숍 MMMG와 팝업스토어을 진행했는데, 큐이디 화분을 알아보는 분들이 많아서 굉장히 기뻤습니다. 다양한 계층의 손님을 직접 만날 수 있어서 더욱 재미있었고요.

큐이디처럼 콘셉트가 확고한 브랜드 론칭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요.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세미 | 창업에는 2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경제적 안정과 브랜드 운영 자체에 보람을 느끼는 거요. 경제적 목적이 주된 이유라면 좀 더 디테일하게 계획을 세우고 여유로운 자세를 가져야 할 것 같아요. ‘난 꼭 성공해야지’라는 마인드로 시작하면 금방 지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창업을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계획은 최대한 자세하게 세우고, 실패했을 경우 단계별로 대비책도 확실히 만들어놓아야 해요. 성공보다는 실패를 생각하면서 창업을 준비했으면 좋겠어요.

다영 | 식물 숍은 초기 자본이 적게 드는 사업이에요. 하지만 절대 떼돈은 못 법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화원이나 식물 유통을 하는 게 맞아요. 만약 전 세계에 하나뿐인 특이한 식물 가게를 열고 싶다면 추천합니다. 하지만 ‘돈’이 목적이라면 말리고 싶네요.

형형색색의 화분은 세미 대표가 직접 제작했다. 손님들이 식물을 자세히 들여다봤으면 하는 마음에 화분은 바닥에 진열한다.

형형색색의 화분은 세미 대표가 직접 제작했다. 손님들이 식물을 자세히 들여다봤으면 하는 마음에 화분은 바닥에 진열한다.

운영상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세미 | 주문이 들어오는 거요(웃음). 주문을 관리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또 주문과 동시에 제품을 제작하는 경우 정신도 없고 실수도 많이 해요. 힘들다기보다는 부담스러운 마음이죠.

다영 | 크게 힘든 점은 없어요. 제가 욕심이 없거든요. 그냥 지금 생활에 만족하면서 살다 보니 딱히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없는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정 동요나 스트레스를 덜 받는 편이고요.

대표님 두 분의 성향이 완전 다르네요.

다영 | 맞아요. 특히 위기 상황에서 더욱 차이가 드러나죠(웃음). 세미는 불안하면 새로운 걸 많이 구상하는 편이에요. 저는 더욱 느긋해지고요. 개인적으로 큐이디가 너무 빨리 바뀌는 건 싫어요. 지금 큐이디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정착되긴 했어요. 하지만 새로운 걸 계속 쏟아내면 정작 우리가 뭘 하고 싶은지, 손님들이 뭘 원하는지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럴 때일수록 초심을 되새기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간판이 없어요. 의도한 건가요.

다영 |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냥 지금 이대로가 마음에 들거든요. 인테리어를 모두 마친 뒤 건물 외관을 봤는데 굳이 간판을 달 필요가 없더라고요. 유리창 너머 나열된 식물을 보면 식물 숍이라는 걸 알 수 있잖아요. 또 저희가 뭔가 드러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공격적인 SNS도 피하는 편이고요.

특별한 홍보 없이도 핫플이 된 거네요. 큐이디가 사람들의 마음을 끈 이유는 뭘까요.

세미 | 아직 핫플까진 아니지만(웃음) 저희도 신기해요. 가끔 손님들과 대화하다 보면 큐이디의 단조롭고 정적인 분위기에 끌린다고 말씀하세요. 쉽게 볼 수 없는 형형색색의 화분도 매력적이고요. 작지만 포인트가 되는 요소들을 특별하고 소중하게 여겨주는 것 같아요.

큐이디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요.

다영 | 저도 궁금해요. 큐이디는 사실 엄청난 계획 아래 운영되지 않아요. 회의 때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갑자기 추진하기도 하죠. 올해는 행잉과 분재 화분을 출시할 계획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리빙으로 영역을 확장해보고 싶은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고요.

세미 | 절대 변하지 않을 건 있어요. 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일이요. 재활용 소재의 사용, 코코피트 흙 사용 등 사소한 부분이라도 환경에 좋은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예요.

#Q.E.D. #큐이디 #식물숍 #플랜테리어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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