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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에르메스. 샤넬 백도 함부로 다뤄야 더 힙하다

오한별 객원기자

2024. 02. 08

가방을 신주 단지 모시듯 대하던 시대는 갔다. 실루엣이 망가지든 말든 물건을 양껏 구겨 넣거나, 온갖 장식을 주렁주렁 매달아놓거나. 2024년 백 트렌드는 가방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에르메스 버킨 백을 가장 자유롭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제인 버킨. 그녀가 버킨 백을 드는 방식은, 과거 바스켓 백을 다룰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방이란 필요한 물건을 넘칠 듯이 가득 넣고, 바닥에 툭 내려놔도 되는 물건일 뿐. 제인 버킨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버킨 백을 길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발로 밟거나 손으로 구긴 뒤 가방이 불룩해질 정도로 많은 물건을 넣었다. 가방 표면에 본인이 지지하는 사회단체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거나 백 안감에 낙서를 했고, 여행지에서 산 장식품이나 부적, 에르메스 시계를 참 장식처럼 활용했다. 이처럼 제인 버킨의 개성과 취향이 담긴 버킨 백은 그녀를 해방과 자유의 상징으로 만들었고, 전 세계 패션 피플에게 영감을 선사했다.

제인 버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패션계 이슈 메이커로서 불멸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미우미우는 2024년 봄여름 컬렉션을 통해 제인 버킨의 패션 철학을 선명히 보여줬다. 미우미우의 이번 시즌 런웨이는 어수선한 일상의 흔적으로 가득했으며, 이 모든 것은 치밀하게 계산되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모델들이 들고 있던 토트백 안에는 구두, 피케 셔츠, 볼캡 등 여분의 신발과 옷이 지퍼가 잠기지 않을 정도로 너저분하게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친숙하면서도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컬렉션을 통해 미우치아 프라다는 어수선한 모습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정의 내린 듯하다. 발렌시아가의 가방을 대하는 태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삶과 커리어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들”이라는 뎀나 바잘리아의 설명처럼, 그의 가족과 친구들을 모델로 내세운 이번 컬렉션은 일상적이고 자전적인 요소로 가득했다. 힘없이 축 무너진 가방은 손때와 흠집으로 뒤덮인 가죽, 온갖 키 링, 자물쇠, 열쇠 꾸러미, 키 체인, 목걸이 등과 어우러져 개인적인 것의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보테가베네타의 쇼에서도 이와 비슷한 장면을 마주할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가 여행을 주제로 지휘한 컬렉션은 실용과 상상, 일상과 비일상을 넘나드는 피스들로 채워졌다. 니트 보디슈트나 티셔츠에 브리프를 매치한 모델들이 돌돌 말린 신문과 여벌의 셔츠가 삐죽 나와 있는 오버사이즈 위빙 백을 들고 등장해 시선을 끌었다. 풍성한 풀밭이 펼쳐진 유럽의 여름으로 초대한 에르메스는 담백한 가죽 버킷 백에 갈대와 꽃을 한껏 담아 자유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완성했다.

가방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대하는 애티튜드는 셀러브리티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더로우를 이끌고 있는 올슨 자매의 가방을 험하게 대하는 모습은 일찍이 파파라치 사진을 통해 공개됐다. 모서리가 헐고 빛이 바랜 에르메스 켈리 백을 공식 석상에 무심히 들고 나타나거나, 가방 속 소지품을 다 쏟아낼 것처럼 한쪽 핸들만 어깨에 메는 식. 있는 그대로의 매끈한 백을 드는 대신 자신의 취향을 곁들인 액세서리를 추가하는 셀러브리티도 있다. 두아 리파는 블랙 버킨 백에 수하물 태그와 열쇠고리를 주렁주렁 매달았고, 앤 해서웨이는 깜찍한 참으로 멋을 냈다. 블랙핑크 지수와 르세라핌 허윤진은 아이돌답게 인형 키 링과 비즈, 리본 장식으로 발랄함을 더했다.

이번 시즌 백을 대할 때 중요한 점은 얼마나 비싸고 트렌디한 것을 드느냐가 아니다. 나답게 꾸미고 ‘가방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애티튜드가 포인트. 행여 모양이 망가지거나 흠집이 날까 조심했던 태도 대신 가방이 가진 기능을 아낌없이 활용해보자. 일상에 필요한 물건을 담고 옮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생활감이 자신의 삶과 경험, 고유한 이야기가 담긴 멋스러운 가방으로 만들어줄 테니까.



#신상백 #에르메스 #미우미우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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