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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미니스커트를 위한 유쾌한 변명

안미은 프리랜서 기자

2024. 01. 15

한 뼘만 한 마이크로미니스커트가 한파를 뚫고 리얼웨이에 등장했다.

흔히 미니스커트는 경기불황일 때 유행한다는 속설이 있다. 경기가 어두울수록 여성들이 심리적으로 초라해 보이지 않기 위해 짧고 화려한 옷차림을 선호한다는 분석에서다. 그도 그럴 것이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인해 전 세계가 불황에 휩싸였을 때 미니스커트 대유행이 시작됐다. 반면 위의 속설과 반대되는 1920년대 미국의 경제학자 조지 테일러의 주장도 있다. 여성의 스커트 길이와 경기의 관계를 최초로 알린 인물인 조지 테일러는 ‘헴라인 지수(Hemline index)’라는 흥미로운 이론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경제 호황기의 여성들은 고급 실크 스타킹을 과시하기 위해 짧은 스커트를 입고, 경기가 침체되면 값비싼 스타킹을 사기 어려워져 긴 스커트를 입는다는 것이다. 1970년대 미국의 경제학자 마브리도 1929년 미국 대공황 때는 여성들의 치마 길이가 길어졌지만, 1960년대 호황기에는 짧은 치마가 유행했다는 근거를 들며 조지 테일러의 이론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속설은 속설일 뿐, 취향이 중요시되고 자신을 치장하는 일에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현대사회에서 치마 길이는 경제와는 사실상 무관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로 받아들여진다.


돌이켜보면 미니스커트는 2000년대 이후 단 한 번도 유행이 아닌 적이 없었다. 계절을 불문하고 패션계에서 꾸준히 사랑받아온 스테디셀러임이 자명하니까. 특히 2023년은 갈수록 짧아지는 미니스커트에 열광한 한 해였다. 미니스커트의 한계를 실험하듯 엉덩이가 보일락 말락 언더웨어를 노출한 하의 실종 패션 신까지 등장해 트렌드 굳히기에 나섰다. 언더웨어 팬티를 등장시키며 트렌드 선봉에 선 미우미우가 젠지(Z세대)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떠오른 배우 엠마 코린을 내세워 컬렉션 피날레를 장식했을 때는, 나 같은 유교 걸도 20대 이후로는 시도하지 못했던 한 뼘 길이의 미니스커트를 다시 꺼내 입을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샘솟았다. 2024 S/S 컬렉션에서도 마이크로미니스커트가 줄지어 등장하며 장관을 이뤘다. 미우미우는 장난스럽게 부풀린 플레어 장식으로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만들며 지난 시즌의 기조를 이어갔다. 란제리에 시스루 가운을 걸친 듯 아슬아슬하고 도발적인 드레스를 선보인 지방시, 포켓 장식과 컷아웃 디테일로 형태감을 살려 연출한 사카이의 유틸리티 룩에서 미니스커트의 소재와 디자인이 더욱 다양해짐을 알 수 있었다. 한편 루이비통은 우아하고 귀족적인 분위기의 클래식 룩에 무릎 위로 한 뼘은 올라오는 플리츠 미니스커트를 더하는 짜릿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구겨진 종이에서 힌트를 얻은 와이프로젝트의 대담한 셋업과 끊어질 듯 이어지는 레이스 컷아웃 디테일로 여성의 몸을 조명한 발렌티노의 미니드레스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계절을 거스른 채 아찔한 마이크로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패피가 끊이지 않고 있다. 스타일링 팁은 포근한 아우터를 곁들여 노출에 대한 부담은 줄이고 계절감은 살려 연출하는 것. 오버사이즈 코트로 몸을 감싼 모델 베라 반 에르프처럼 스포츠 헤어밴드와 부츠를 더하면 세련된 스타일이 완성된다. 미니스커트와 사랑에 빠진 가수 두아 리파의 룩도 눈여겨보자. 광택이 흐르는 톡톡한 패딩 마이크로미니스커트를 택해 계절감을 채웠다. 여기에 짙은 와인 컬러 하프 코트와 시스루 스타킹의 조합은 어딘지 모르게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그런가 하면 모델 헤일리 비버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레이아 스페즈는 니트 스웨터, 롱 코트, 선글라스, 토트백 등의 아이템으로 무드를 맞춘 듯 꼭 닮은 시밀러 룩을 연출했다. 또 터틀넥 티셔츠에 마이크로미니스커트를 입고 양말과 발레 슈즈, 리본 헤어밴드로 발레코어 무드를 더한 모델 엘사 호스크도 있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불편하게 걷는 여성을 보며 눈살 찌푸리던 이전과 달리 최근엔 자신의 몸을 당당히 드러내며 신체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초미니, 울트라 미니, 마이크로미니까지. 어쩌면 계속해서 짧아지는 헴라인은 여성을 바라보는 유연한 시선과 관련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이 진보적인 성향이 미니스커트를 좀 더 주류의 트렌드로 올려놓은 것은 아닐까.

#미니스커트 #미니스커트스타일링 #여성동아



기획 최은초롱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루이비통 미우미우 발렌티노 사카이 지방시 Y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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