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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소설가 50인의 선택 받은 '올해의 소설'

문영훈 기자

2024. 01. 02

‘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문학동네, 1만5000원

교보문고는 매년 겨울이 오면 50인의 소설가에게 ‘올해의 소설’을 묻는다. 이 중 12인이 권여선의 ‘각각의 계절’을 2023년의 소설로 선택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작가가 각종 지면에 발표한 7개의 단편을 묶어낸 책이다. 교보문고가 처음 작가들에게 ‘올해의 소설’을 물은 2016년, 그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가 1위에 뽑히기도 했다. 1996년 ‘푸르른 틈새’로 상상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해 30년 가까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권여선이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는 이유다.

책들이 차례로 꽂혀 있는 듯한 초록색 표지를 열면, 가장 최근 발표된 ‘사슴벌레식 문답’이 독자들을 처음 맞는다. 1980년대에 같은 하숙집을 공유한 준희, 정원, 부영, 경애의 이야기. 권여선은 그들의 이야기를 펼치며 조사 ‘~든’을 손아귀에서 갖고 논다. 화자 준희는 네 친구가 함께 떠난 강촌으로의 여행을 회상한다. “사슴벌레가 어디로 들어와요?”라는 물음에 “어디로든 들어와”라고 답한 숙소 주인에게서 영감을 얻은 준희는 친구 정원과 사슴벌레식 문답을 시작한다. “인간은 어떻게 사는가?” “인간은 무엇으로든 살아.” “너는 왜 연극이 하고 싶어?” “나는 왜든 연극이 하고 싶어.”

그리고 30년이 지나 네 친구의 관계는 산산이 조각난다. 경애는 교수 자리를 지키려고 거짓으로 부영의 남편을 간첩으로 고발한다. 연극배우를 꿈꾸던 정원은 자살했다. ‘든’을 이용한 언어유희도 이렇게 바뀐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어떻게든 이렇게 됐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청춘의 시절을 보내고 이제는 뭐든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사고에 이른 중년의 마음을 한 단어로 꿰맬 수 있는 사람은 소설가가 유일할 것이다.

1월은 지난해 묵은 기억을 잊고 새출발하는 때다. 하지만 준희가 정원의 추모식 이후 30년 전의 마음을 되짚을 수 있었듯 마음 깊은 곳 우리를 아프게 한 회한은 웅크린 채 남아 있다. 권여선은 ‘사슴벌레식 문답’ 외에도 6개의 단편 속 인물들을 통해 과거를 집요하게 헤집는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에서는 “제법 철이 들어 너그러워졌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던 베르타가 “결국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이라는 결론에 다다르는 과정을 설명한다. ‘기억의 왈츠’에서 ‘나’는 대학원 시절 “어떤 파국이 와서 조만간 내 삶을 끝내주리라”고 생각했던 태도로 인해 자신에게 손을 건넨 한 인물을 영원히 떠나보냈음을 회상한다.



과거를 파헤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작가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의 기억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유는 과거를 제대로 기억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며 ”자기 위주로 기억하거나 과거의 일면만 과장하여 기억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기억 속의 자신을 오래 들여다보고 새롭게 발견하려면 오래 머물러 반추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각의계절 #권여선 #여성동아

사진제공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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