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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콘서트, '오퍼스’

심미성 프리랜서 기자

2023. 12. 27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가 담긴 영화가 12월 27일 개봉한다. 자서전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2009)를 바탕으로 그의 연주를 감상하기 전 도움이 될 70년 인생의 순간들을 정리했다. 

영화 오퍼스 스틸.

영화 오퍼스 스틸.

2023년 3월 예술가 류이치 사카모토 타계 이후, 그의 마지막 연주가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한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다큐멘터리라는 넓은 의미의 범주보다 오롯한 한 편의 콘서트 필름으로 감상하기를 권한다. 총 20개 트랙으로 이루어진 그의 연주는 사카모토 스스로가 음악 인생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음악들을 선별하고 재구성한 마지막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사카모토 류이치

일본식 또는 한국식 이름 표기 방식에 따른 ‘사카모토 류이치’가 아니라, 성과 이름이 자리를 바꾼 형태인 ‘류이치 사카모토’로 더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은 그가 끼친 세계적인 영향을 증명한다. 호소노 하루오미, 다카하시 유키히로와 결성한 밴드 YMO(Yellow Magic Orchestra)는 월드 투어를 다니며 국제적인 스타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은 전 세계에서 사랑받은 영화음악으로 훨씬 익숙하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탄생한 1952년, 사카모토 류이치가 태어났다. 실제로 사카모토가 존 케이지의 음악을 알게 된 건 고등학생 시절인데, 이미 클래식과 현대음악을 나름대로 듣고 공부하고 있었다. 그는 매우 복잡한 이론을 바탕으로 곡을 구축하던 현대음악의 계보와 달리, 대담한 우연성을 도입해 일탈을 시도한 존 케이지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때 받은 충격은 사카모토의 음악에 지속적인 자양분이 되었다. 도쿄예술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관심사를 나눌 만한 친구가 없어서 미술학부 친구들과 어울렸다. 자연스럽게 앤디 워홀, 백남준 같은 현대 미술계 아티스트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의 아버지가 출판사 편집자로 근무했기 때문에 사카모토는 어릴 적부터 작가의 이름을 술술 꿰었고, 덕분에 그 나이에 접할 수 없는 책들을 읽었다. 중학교 때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들고 다녔고, 윌리엄 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도 읽었다. 음악과 서서히 연결돼가는 동안 그는 자연스럽게 각종 예술을 탐닉했는데, 특히 영화라는 형식을 되묻고 해체하는 장뤽 고다르의 작품들을 좋아했다. YMO의 첫 앨범에 수록된 곡 ‘Tong Poo’ ‘La Femme Chinoise’ ‘Mad Pierrot’는 분명 고다르의 영화와 직결된 것들이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재즈 카페에 들락거리며 데모에 나갔고, ‘경제학·철학 초고’ 등 레닌, 마르크스, 엥겔스의 책도 읽었다.

조숙하고 남달랐던 그의 관심사도 눈길을 끌지만, 자서전에서 묻어나는 것은 어린 사카모토가 세상을 이해해온 방식들이다. 오히려 어릴 적 피아노를 배운 경험은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다. 그의 회상은 유치원 선생님이 유리창에 수채화를 그려보라고 했던 때에 금기를 깨는 불안과 이를 행하는 쾌감 같은 것을 느꼈다는 사실에 집중한다. 토끼를 기르는 마음을 노래로 표현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어리둥절한 가운데 자기만의 것을 느꼈고, 토끼와 음악 사이의 무관한 관계를 자신이 연결지어버렸다는 위화감에 관한 이야기도 뇌리에 깊게 남았다. 물론 이러한 서술은 노년의 사카모토가 정연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로 쓰인 것이다. 그 점을 사카모토는 결코 모르지 않았으며, 기억 속에 박제된 마음의 정체를 탐색하고 들여다보는 작업을 담백하게 펼쳐놓는다.



YMO와 사카모토 사이에서

1983년 사카모토 류이치(왼쪽에서 두번째)는 ‘전장의 크리스마스’ 팀과 프랑스 파리에 방문했다.

1983년 사카모토 류이치(왼쪽에서 두번째)는 ‘전장의 크리스마스’ 팀과 프랑스 파리에 방문했다.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사카모토는 YMO 합류 제안을 받고 미적지근한 마음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클래식이나 현대음악이 아닌 팝과 록을 원류 삼아온 동료들을 마주하며 사뭇 낯선 의지를 불태웠다. 첫 앨범은 사카모토가 전혀 몰랐던 장르를 열심히 공부하면서 만든 실험적인 앨범이었다. 하지만 처음 자국에서 보기 좋게 외면받았다. 너무 전위적이고 차갑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사카모토는 선구자적인 확신과 만족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 단계로 향할 의욕에 고양되었다.

반응은 대륙 반대편에서 왔다.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한 월드 투어가 성황리에 마무리되고 일본으로 돌아온 YMO는 일약 스타가 돼 있었다. 동양의 전자음악이 서양에서 먼저 환영받았다는 기쁨의 이면에 사카모토는 일종의 난감함을 느꼈다.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곳의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당시 서구에 대두된 일본 문화 대망론은 의아했고, 일본을 대표한다는 느낌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의심에서 만든 두 번째 솔로 앨범 ‘B-2 Unit’에 대해 사카모토는 “질척질척한 에너지가 가득하다”고 자평한다. 그는 YMO 활동을 지속하면서 음악적 토대나 지향이 달랐던 멤버들과 의견을 조화롭게 수렴하지 못했다. 부차적으로 따라온 인기의 압박에도 시달렸다. 오죽하면 이 앨범에는 ‘Public Pressure’라는 곡도 들어 있다. 그 여파로 사카모토는 당시 YMO를 가상의 적으로 여기면서 앨범을 만들었다. YMO와 정반대 음악을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제작한 이 앨범에 대해서 멤버들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서로의 고집을 뛰어넘어 세 사람의 능력이 120점짜리로 합쳐진 앨범 ‘Technodelic’이 이후에 나오면서, 사카모토는 자기 안의 반(反)YMO적인 마음을 해소했다.

평소 동경하던 감독 오시마 나기사로부터 영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그는 내심 감격했지만 “대신 음악도 하게 해달라”는 말을 뱉어버린다. 계획에 없던 말은 그 즉시 수락되었다.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에서 그는 데이비드 보위와 지극히 미묘한 동성애적 감정선에 있는 연기를 펼쳤고, 마냥 아름답기만 하지 않은 특유의 색깔로 완성한 음악들로 영화음악 신에 데뷔했다.

영화는 그해 칸영화제에 출품되었다. 그곳에서 사카모토는 동경하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을 만나 중국의 마지막 황제에 관한 영화를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아마카스 역을 맡은 사카모토가 그 작품의 영화음악까지 담당하게 된 데는 즉흥적인 구석이 있다. 감독이 갑자기 황제 즉위 장면에 음악이 필요하다면서 짧은 시간 내에 작곡하기를 요구했다.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사카모토에게 감독은 “엔니오 모리코네라면 그 자리에서 당장 작곡했어”라고 그를 자극했다. 추후 영화 편집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사카모토가 영화음악 전체를 담당하게 되었다.

‘마지막 황제’의 시사회에서 사카모토는 자리에서 굴러떨어질 만큼 놀랐다. 지옥 같은 스케줄로 고생해 만든 44곡 중에서 영화에 사용된 것은 절반 정도였고, 그마저도 완전히 다른 영화로 편집된 결과물에 쓰이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아카데미상 9개 부문을 석권했고, 사카모토 역시 작곡상을 거머쥐었다.

21세기의 사카모토

1988년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사카모토 류이치.

1988년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사카모토 류이치.

사카모토가 미국 뉴욕에 거주하고 있을 당시,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들이받았다. 해석 불가능한 사건 앞에서 음악마저 멈추는 일련의 상황들과 직면하면서 사카모토는 패권주의에 대한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드뷔시의 환생이 아닐까 생각할 만큼 그에 대한 애정이 깊었는데, 그의 음악에조차 프랑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영향이 있고 그 훌륭함의 바탕에 이러한 영향이 깔렸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클래식의 원류로 돌아가던 21세기 사카모토의 작업들에는 그런 고민의 흔적이 묻어난다. 21세기 첫 앨범인 ‘Chasm’(2004)의 타이틀은 세계의 벌어진 ‘틈’ 그 자체를 의미한다. 숲을 늘리자는 운동의 일환으로 발족한 ‘모어 트리즈(More Trees)’ 프로젝트로 새로운 숲이 생겨나는 기쁨도 맛봤다. 사카모토는 2009년 그린란드에 가서 체험하고 수집한 자연의 소리들을 재료 삼아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그 음악엔 인간이 자연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 허용 한계를 벗어나면 패자가 되는 쪽은 인간이라는 그의 신념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한 인간의 생애에 퇴적된 사유의 결과물을, 명료한 번역이나 해석이 불가능한 음악의 형태로 알 수 있을 뿐이다. 암 투병으로 점차 쇠약해가는 중에도 사카모토는 쉬지 않고 자신의 연주를 재련했다.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의 어떤 단락에는 잠깐 멈춰 건반의 소리를 가다듬고, 중얼거리고, 귀 기울이며 다시 화음을 매만져보는 장면이 나온다. 어떠한 부연 설명도 없이 피아노와 예술가 둘만이 교감하고 빚어내는 소리들의 체험으로, 이제 세상에 없는 그의 존재를 더듬어보길 바란다.


#사카모토류이치 #오퍼스 #여성동아

사진 뉴스1 AP뉴시스 
사진제공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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