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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마약 위험성 알려주는 동네 형, 최진묵 마약류중독치료센터장

문영훈 기자

2023. 11. 30

마약 청정국은 옛말이다. 2022년에만 1만8396명이 마약류 사범으로 검거됐다. 일상 속을 파고든 마약, 무엇이 문제일까. 

유명인의 마약 투약 혐의, 한 경찰관의 추락사 현장에서 검출된 마약,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까지. 2023년은 마약과 관련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은 한 해였다. 정부는 6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마약사범의 숫자는 늘고 있다. 7월 대검찰청이 발표한 ‘2022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마약류 사범은 1만8395명으로 4년 전 1만2613명과 비교해 약 45.8% 늘어났다. 마약사범 연령대가 낮아지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다. 전체 마약류 사범 중 30대 이하는 1만988명으로 2018년(5227명)과 비교해 2배 넘게 증가했다. 이 중 10대 마약류 사범도 481명이나 된다.

박성수 세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가 2019년 발표한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 측정에 관한 질적 연구’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은 28.57배로 예측됐다. 검거되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하면 마약을 접한 사람이 1만 명을 상회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10~20대입니다.”

최진묵(48) 마약류중독재활센터장의 말이다. 그는 청소년 시절 마약을 접했다. 이후 23년간 마약에 중독돼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그리고 마약중독 치료 전문 의사의 도움으로 단약을 시작했다. 그는 현재 마약 상담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인천 다르크(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 센터장으로 일하며 중독자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 최근 마약사범 급증의 이유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묻기 위해 인천을 찾았다.



나는 중독되지 않을 거라는 착각

최진묵 마약류중독재활센터장은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화며 누구나 마약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진묵 마약류중독재활센터장은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화며 누구나 마약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왜 마약사범이 늘었을까요.

접근성이죠. 사실상 이제는 누구나 마약을 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마약을 사려면 직접 사람을 만나야 했어요.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에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됐습니다. 과거엔 조직적으로 마약을 유통했다면 이젠 출입국할 때 미량을 숨겨오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그러면서 온라인상 마약 딜러가 우후죽순 생겼습니다. 문화적인 영향도 있습니다.

어떤 영향인가요.

젊은 세대는 외국을 오가며 마약을 간접 경험하게 됩니다. 미국의 경우 21개 주에서 대마초 합법화가 이루어졌고, 유럽의 다수 국가에서도 대마초를 비범죄로 여기죠. 문제는 한국에서는 대마초를 파는 사람이 다른 마약도 함께 파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점이죠.

그래서 대마초가 게이트웨이 드러그(입문 마약)로도 불립니다.

한국에서는 확실히 그런 역할을 하죠. 대마초가 합법화된 국가에서는 대마만 파는 매장이 따로 있어요. 국가가 환각을 일으키는 THC(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 성분을 조절하죠. 한국에서는 대마초를 파는 곳에서 엑스터시도 팔고 필로폰도 팔거든요. 처음엔 ‘대마초만 피울 거야’ 생각해도 계속 자극에 노출되다 보면 다른 마약을 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지죠.

주로 어떻게 마약을 접하게 되나요.

마약을 처음 하게 되는 계기는 2가지입니다. 호기심이나 권유죠. 친구들과 놀다가 친구 추천으로 아니면 호기심에 대마초나 엑스터시 같은 마약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럼 훨씬 자극적이고 재밌게 놀았다는 기분을 느껴요. 그렇게 두세 번 마약을 했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중독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정하는 건가요.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러다가 맨정신으로 놀아보면 재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럼 목적성을 띠고 마약을 하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재밌게 놀기 위해 약을 하는 거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클럽에서만, 파티에 갈 때만’ 같은 단서를 붙여요. 그러면서 서서히 중독되는 겁니다. 그다음 단계는 평소에도 마약을 하는 겁니다. 삶 속으로 마약이 들어오는 거죠.

한번 마약을 하면 바로 중독되나요.

중독의 의미가 ‘삶에 지장을 주는 것’이라면 한국에서는 한 번도 중독이라고 말할 수 있죠. 마약은 불법이니 어떤 종류의 마약이라도 한번 접하면 투약자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번 경험했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마약중독자, 그러니까 거리의 부랑자처럼 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마약에 중독된 채로 우리 옆에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마약 한 번에 인생이 망가진다” 식의 교육은 오히려 마약을 부추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가요.

소프트 드러그를 접한 사람들이 ‘나는 중독되지 않아’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대마초를 한 친구들은 “치료제로도 쓰이는데 왜 하면 안 되냐”고 제게 말해요. 그러면서 자신이 마약을 조절할 수 있다거나, 하드 드러그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하죠. 그러는 사이 중독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죠. 중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정확한 과정을 알려주는 예방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권유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2023년 톱스타들의 마약 투약 혐의가 언론 헤드라인에 자주 등장했다. 사진은 유아인, 이선균, 지드래곤(왼쪽부터).

2023년 톱스타들의 마약 투약 혐의가 언론 헤드라인에 자주 등장했다. 사진은 유아인, 이선균, 지드래곤(왼쪽부터).

마약사범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판매자를 붙잡는 거죠. 정부도 마약과의 전쟁을 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안 잡고 싶어서 안 잡는 게 아닐 거란 말이죠. 이보다 확실한 방법은 투약자에 대한 재활 치료입니다. 앞서 말했듯 마약은 권유에 의해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투약자가 다른 사람에게 약물을 퍼뜨리는 걸 생각하면 한 사람을 재활 치료하는 건 수많은 사람의 마약 투약 가능성을 줄이는 거죠.

마약사범에 대한 교육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육과 재활은 다릅니다. 마약 초범은 마약을 한번 해본다고 바로 되는 게 아닙니다. 특히 온라인상 비대면 마약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첫 투약 시기와 초범으로 잡히는 시기 사이가 훨씬 길어졌어요. 예전엔 판매 유통책을 잡으면 거래했던 사람들이 잡히는 구조였지만 지금은 온라인 보안이 강해져서 그것마저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초범이 집행유예를 받고 나와서 기소유예로 28시간 교육, 혹은 집행유예를 받고 40시간의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마약중독이 치료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건 틀린 정책인 거죠.

재활 시설이 부족하다고 하던데요.

사실상 거의 없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그래서 마약중독을 오래 고민해온 미국이나 일본의 사례를 살펴봐야 해요. 병원에서는 기본적인 해독 치료를 할 수 있지만 결국 재활은 치료 공동체에서 이뤄지거든요. 당사자가 욕망을 줄여가는 과정, 약을 안 해도 되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해줘야 해요.

그는 “마약을 오래 한 사람이 마약을 더 끊고 싶어 한다”고 강조했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의 삶은 지옥이거든요. 제 경우엔 지구상에 나 혼자 있는 느낌이었어요. 누구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남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누구보다 마약을 멈추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몰랐던 거죠.”

단약 계기는 무엇인가요.

교도소에서 한 칼럼을 보고 출소 후 그분이 운영하는 병원을 무작정 찾아갔어요. 인천참사랑병원의 천영훈 원장님입니다. 원장님과의 상담이 너무 좋았습니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을 털어놓게 됐고요. 지금은 너무 유명해지셔서 그렇게 못 하겠지만 그땐 1시간씩 상담하기도 했거든요. 원장님이 인생에서 큰 영향을 줬어요.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주신 거예요. 공부를 하게끔 해주셨고요. 그 병원에 취직해서 근무도 했어요. 그러면서 저보다 심한 중독자들을 접하고 치료 공동체인 다르크를 만들게 됐죠.

최 센터장이 운영하는 ‘다르크’는 일본에서 기원했다. 1985년 마약중독자였던 곤도 쓰네오가 만든 민간 주도 약물 중독자 재활시설이다. 곤도는 중독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또 다른 마약중독자들을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현재 일본 전역의 95개 다르크에서 2000여 명의 중독자들이 재활에 힘쓰고 있다.
지금 최 센터장이 운영하는 인천 다르크에서는 5명의 중독자가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단약을 북돋고 있다. 그는 입소자가 직접 출연하기도 하는 유튜브 채널 ‘마쓰형’(마약으로 쓰레기 됐던 형)도 운영하고 있다. 최 센터장은 “입소를 문의하는 상담 전화가 많이 오는데 내 선에서는 그걸 다 받아줄 수 없어 안타깝다”며 “다르크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재활센터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르크가 있어서 나도 계속 단약할 수 있다”

사비로 센터를 운영한다고요.

알음알음 후원해주는 분들도 있고 입소비를 받기도 하지만 모자라면 사비로 충당합니다. 저야 제가 좋아서 하는 거지만 모두가 그럴 수는 없으니 한계가 있죠. 재활센터가 더 많이 만들어지려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처우가 뒤따라야 해요. 일본은 법원에서도 다르크에 입소하는 걸 권고할 정도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렇게 제도권 안에 포함되는 일이 중요합니다. 국가가 재활센터를 직접 운영하든, 위탁 경영이든 굴러갈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마약중독자들이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하는 거니까요.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응원 댓글이 많습니다.

아직도 한국은 마약 문제를 숨기는 경향이 있어요. 마약 청정국이었던 2000년대 중반까지는 그게 도움이 됐을지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약물 중독자들이 폐쇄적인 공간에 갇히고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욕을 하고 그러면 그들은 계속 마약을 할 수밖에 없어요. 마약 회복 과정을 양지화해야 더 많은 사람이 마약 근절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유튜브를 열었고, 이를 통해 상담을 요청하거나 응원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많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센터를 운영하며 어려운 일이 많을 것 같은데요.

다르크에 살고 있는 친구와 최근 크게 부딪혔어요. 그 친구가 흉기 같은 걸 들고 협박하기도 했고요. 그에 대처하는 걸 다른 친구가 보더니 제게 감사하다고 했어요. 그 친구도 저를 막 대한 적이 있었거든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건 중독에서 벗어나고 있는 사람과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기에 단약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거고요.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재활이 가능한 커뮤니티 안에 오래 머무르는 게 가장 좋은 치료법이라고 생각해요. 중독의 반대말은 관계입니다. 그래서 우선 도움을 청하는 게 먼저입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가 운영하는 상담이 됐건, 다르크가 됐건, NA(약물 중독자 자조 모임)가 됐건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해요. 자신을 믿어주는 네트워크에 많이 노출돼 있는 사람이 중독에서 빠져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최 센터장은 마지막으로 마약중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다시 마약을 했다고 해서 실패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다시 끊어보자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단약을 하는 과정 속에 있는 거예요. 그 과정을 거쳐야 마약을 끊을 수 있어요. 삶이 다시 만들어질 수 있다는 희망, 그 희망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최진묵 #인천다르크 #마약중독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게티이미지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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