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ULTURE

열정과 패기, 우리가 알던 그 얼굴로 돌아온 ‘1947 보스톤’ 임시완

최현수 프리랜서 기자

2023. 09. 21

시간이 흘러도 임시완의 시계만큼은 멈춰 있는 것 같다. 그는 여전히 한결같은 열정과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임시완의 시계만큼은 멈춰 있는 것 같다. 그는 여전히 한결같은 열정과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10년 전 영화 ‘변호인’에서 고문받는 무고한 대학생 ‘박진우’ 역을 맡을 때의 혈기 왕성한 순수함을 여전히 그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만 34세. 이제는 어엿한 30대 중반의 길목에 접어들었지만, 배우 임시완은 연기를 향한 열정과 청춘을 대변하는 맑은 얼굴을 아직도 잃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의 순수함과 열정에 원숙함이라는 동력이 더해져, 이제는 임시완이라는 세 글자 만으로도 믿음이 가는 배우가 됐다.

그는 지난해 영화 ‘비상선언’에서 소시오패스 생화학 테러범인 류진석을 연기하며 신선함을 줬다. 올해 초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서 휴대폰을 해킹해 스토킹을 일삼는 빌런 준영 역으로 등장하자 대중은 임시완의 매력이 이제는 냉혈하고 광적인 악함으로 변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강제규 감독의 신작 ‘1947 보스톤’에서 임시완은 순수하고 열정 가득하며 여전히 젊음과 패기로 넘치는, 우리가 알던 그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영화 ‘1947 보스톤’은 광복 이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달고 국제 스포츠 대회 우승의 영예를 안긴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마라토너 서윤복과 손기정, 남승룡 선생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정우는 광복 이후 마라톤에 대한 열의를 잃고 술독에 빠진 마라톤 영웅 손기정을 연기했고, 임시완은 제2의 손기정으로 촉망받는 젊은 마라토너 서윤복 역을 맡았다. 능청스러운 연기에 능한 하정우와 선함 속에 독기가 서린 임시완의 사제지간 케미는 개봉 전부터 관객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난 9월 11일 ‘1947 보스톤’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한 하정우는 임시완과 연기 합을 맞춘 소감을 묻자 “옆에서 봤을 때 실제 운동선수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서윤복 선생님의 모습을 소화하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해온 시간을 곁에서 함께 지켜봤기 때문에 대회 장면을 찍을 때 자연스럽게 감정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이어 “서윤복 선생님도 임시완 배우의 모습을 굉장히 좋아하실 것 같다”고 덧붙였다. 동료 배우들도 입을 모아 그의 노력을 칭찬할 만큼 임시완의 연기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보다 진심이다. 그런 그의 진심은 스크린에서 다른 사람으로 변신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이제는 어색한 호칭, 연기돌 임시완

연기자로 활동한 지 벌써 11년 차에 접어든 지금, 임시완이라는 이름 앞에는 배우라는 호칭이 아닌 호칭은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밀레니얼세대 이상이라면 임시완의 연예계 데뷔는 다름 아닌 아이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후유증’ ‘Mazeltov’ 등 중독성 강한 히트곡과 멤버들의 개성이 넘쳤던 그룹 ‘제국의아이들’로 2010년 연예계에 데뷔한 임시완은 그룹 내 리드보컬과 비주얼을 맡았었다. 이제 제국의아이들은 그룹 활동보다는 멤버들의 개별 활동으로 더 큰 성공을 이룬 그룹이 되었다. 박형식과 김동준은 배우로 좋은 평가를 받았고, 황광희는 예능계의 아이콘이 되었다.



사실 임시완은 아이돌 활동 당시 연기에 크게 뜻이 있는 멤버는 아니었다. 소속사 차원에서도 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오디션을 통해 데뷔하게 된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송재희가 연기한 허염의 아역으로 등장하자마자, 방영 직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달리며 스타덤에 올랐다. 물론 당시 그가 주목받은 건 화려한 외모뿐이지만 탄탄한 발성과 적절한 호흡 역시 전문 연기자들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이장일’의 아역으로 출연한 임시완은 처음으로 악역 연기를 시도했다. 이장일은 아버지의 죄를 은닉하고, 각목으로 친구의 뒤통수를 가격한 뒤 바다에 빠뜨리는 살인자였기에 임시완은 촬영 내내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선우를 각목으로 가격하는 장면을 찍은 뒤, 한동안 사람을 피하게 됐다“며 ”그래서 당시 항상 어두운 표정을 짓고 다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때부터 이미 임시완은 극 중 인물에 자신을 최대한 몰입해서 연기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가 짧은 시간 안에 좋은 배우로 성장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본격적으로 성인 연기에 집중한 임시완은 2013년 ‘변호인’에서 억울하게 고문을 당한 대학생 박진우를 연기했다. 구타, 물고문부터 코에 국물을 붓거나 손발을 철봉에 묶고 패는 ‘통닭구이’까지 온갖 고문을 감내해야 하는 강도 높은 연기였다. 실제로 그는 캐스팅 당시 한창 몸을 만들고 있었는데 49kg까지 체중을 감량했고, 일주일간의 고문 장면 촬영 때문에 얼굴에 실핏줄이 터져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등 일반 배우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연기를 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지난 2월 출연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촬영 후일담을 밝히며 “현장의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박수갈채가 터져나올 때 영광스러운 느낌을 받았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아울러 그는 송강호에게 혼나면서 찍었던 접견실에서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을 배우 인생에서 터닝 포인트로 꼽으며 “‘진짜 감정을 발산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변호인’을 통해 본격적으로 배우 임시완의 이름을 대중의 뇌리에 새긴 뒤 2014년에 만난 작품은 그를 청춘의 초상으로 만들었다. 바로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 역이다. 원작 만화의 장그래는 좀 더 노련하고 수를 읽는 바둑기사의 면모가 부각됐다면, 임시완이 그려낸 장그래는 현실이 아직 낯선 사회 초년생의 모습이다. 회식 때마다 술에 취해 오 차장의 집 앞에서 잠이 들거나,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 더미를 뒤적거리는 모습도 작위적이지 않게 다가왔다. 마치 임시완이라는 사람 자체가 2014년의 청춘이란 개념을 의인화한 것처럼 이질감이 전혀 없었다.

한없이 선한 줄만 알았던 임시완의 대변신은 단연 변성현 감독의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맡은 조현수 역이다. ‘변호인’과 ‘미생’에 이어 출연한 영화 ‘오빠생각’까지 그는 선하고 순수한 마스크의 매력에 걸맞은 역을 연기했었다. 하지만 ‘불한당’ 속 언더커버 경찰 조현수는 그가 지닌 반전 매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다. 직전에 출연한 영화 ‘원라인’에서 이미 능청스러운 여유를 보여주었다면, ‘불한당’의 조현수는 독기와 비밀을 여유로 감춰내고 있다. 교도소에서 한재호(설경구)의 눈에 들기 위해 뺨 때리기 대회를 하거나, 고병갑(김희원)과의 관계를 교란하기 위해 배짱을 부리는 모습은 기존 임시완의 연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설경구와의 치명적인 조합을 보여준 임시완은 ‘불한당’을 통해 처음으로 칸영화제에 초청되는 영예를 얻었다.

2019년 군 제대 이후 배우 임시완의 도전은 계속됐다.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부터 ‘비상선언’을 거쳐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까지 선한 모습의 임시완에게 악인의 모습을 덧입혀 갔다. ‘타인은 지옥이다’의 작가 지망생 윤종우를 연기할 때는 서서히 엄습하는 살인과 공포에 미쳐가는 모습을, ‘비상선언’에서는 냉혈한 소시오패스 테러리스트를,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서는 절대 악에 가까운 오준영의 모습을 보이며 연기 변신에 성공했다.

끊임없이 연기라는 코스를 달려 나가기

‘1947 보스톤’에서 서윤복 역을 맡은 임시완(왼쪽)과 손기정 역의 하정우.

‘1947 보스톤’에서 서윤복 역을 맡은 임시완(왼쪽)과 손기정 역의 하정우.

9월 27일 개봉하는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에서 임시완은 한국 마라톤의 전설 서윤복 선생을 연기한다. 그는 이번 연기를 위해 식단을 조절하며 운동하고, 마라톤 레슨을 받으며 체지방률 6%라는 경이로운 수치의 몸을 완성했다. 임시완 배우를 서윤복 역에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강제규 감독은 “서윤복의 아담하지만 단단한 체형을 떠올리면서 그런 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배우를 찾길 원했다”고 밝혔다. 즉, 임시완의 노력과 열정으로 구현해낸 동양 마라토너의 육체가 영화 제작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는 뜻이다.

임시완은 실존 인물이자 마라톤 영웅인 서윤복 선생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서윤복 선수가 최초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한 것처럼,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저 역시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연기했다”며 “실존 인물인 서윤복 선생께 절대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책임 의식을 지녔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을 계기로 마라톤이 취미가 되었다는 임시완은 결승점을 통과하는 장면을 찍으면서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에 죽을 만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시의 심정을 이야기했다. 그의 모든 인터뷰에서 항상 반복하는 말은 ‘노력’ ‘최선’ ‘태도’다. 마라톤은 지구력이 중요한 스포츠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내딛는 한발 한발이 오래 이어져야 한다. ‘1947 보스톤’에서 보여준 임시완의 연기는 실존 인물 서윤복 선생을 넘어 인간 임시완의 연기를 견지하는 굳건한 태도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는 여전히 발을 내딛고 뛰어나간다. 좋은 연기라는 결승점을 향하여.

#임시완 #1947보스톤 #여성동아

제공 뉴스1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