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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백영옥 작가가 전하는 힘을 주고 빼야 할 때

윤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3. 09. 21

베스트셀러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로 따뜻한 위로를 전했던 백영옥 작가가 최근 첫 인문 에세이 ‘힘과 쉼’을 펴냈다.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자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 해주고픈 이야기다. 

열심히 달리고 나면 휴식이 필요하다. 휴식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의외로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감 잘 지키는 필자로 유명한 백영옥(49) 작가 역시 워커홀릭 중 한 명이었다. 카피라이터와 온라인 서점 MD, 패션지 기자를 하면서 긴 밤 졸음을 참아가며 소설을 썼고 결국 꿈을 이뤘다. 제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동명의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소설 ‘스타일’과 캐릭터 에세이 돌풍을 일으킨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등 20권의 책을 내는 동안에도 수많은 신문 칼럼을 쓰고 새벽 라디오 DJ를 3년간 해냈다,

이른바 ‘갓생’을 살아온 백영옥 작가가 최근 생활철학서 ‘힘과 쉼’을 펴냈다. 백영옥 작가는 수많은 실패 속에서 어떻게 해야 나가떨어지지 않고 꾸준하게 도전할 수 있는지를 터득했다. 백영옥 작가는 “내 이야기지만 주변에 ‘너 읽으라고 쓴 거야’라며 이 책을 선물한다. 모두 너무 열심히 산다”며 “멈추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책 반응을 좀 살펴봤나요.

전혀요. 지금까지 한 20년쯤 책과 관련된 일을 해오다 보니 느낀 게 있어요. 책은 각자 운명이 있어요. 다 쓰고 나면 쳐다보질 않아요. 다음에 뭐 하지 이 생각을 먼저 하고, 실제로 지금 소설을 준비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정말 토할 때까지 고치거든요. 저는 초고는 굉장히 빨리 쓰는데 수정 과정이 힘들어서 최소한 1년 이상은 지나야 제 책을 봐줄 만해요.

초고는 어느 정도로 빨리 쓰나요.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그날 쓰거나 그다음 날 바로 써요. 어떤 분들은 마감이 닥쳐오면 테스토스테론이 쫙 올라가고 도파민이 팡 터지면서 집중이 잘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불안도가 높은 편이라 마감에 쫓기면 ‘폭망’이에요. 그리고 제가 기자 시절에 마감 안 지키는 필자들한테 너무 시달려서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마감을 안 지킨 건 세월호 사고 때문에 심란해서 소설이 안 써졌을 때 딱 한 번 있어요.

도대체 비결이 뭔가요. 글을 언제 쓰세요.

저는 몇 시에 일어나든 일단 일어나면 글부터 써요.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정말 수년에 걸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내가 언제 일을 했을 때 가장 생산성이 높아지나’ 테스트해보니 오전 5시부터 11시 50분까지였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를 마시고 당시 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원고를 써요. 그게 지난 10여 년간 지켜온 원칙이에요.



오전에 일을 마치면 오후는 뭐 하면서 보내나요.

책을 읽거나 친구를 만날 때도 있고, 주로 산책해요. 작업실 바로 앞에 호수공원이 있어요. 호수공원에 앉아 강아지 보는 게 취미예요. 제가 강아지랑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남편이 알레르기가 있어요. 키울 수가 없으니까 벤치에 앉아서 보고 있으면 가끔 김훈 선생님도 마주치고 그래요. 선생님도 벤치에 앉아서 사람들 관찰하는 게 취미인가 봐요. 집에 돌아와서 요리해 먹고 뒹굴뒹굴하다 오후 9시부터 잘 준비를 해요. 일찍 자지 않으면 일찍 일어나는 게 의미가 없어요.

생각보다 더 잘 쉬고 있네요. 잘 노는 것도 비결이 있나요.

저는 ‘놀면 뭐 하냐’ ‘죽으면 실컷 잘 텐데 지금 덜 자도 괜찮다’ 이런 말 정말 싫어해요. 한때 저도 그랬고, 놀면 괜히 죄책감이 든다는 사람도 많은데 대충 쉬겠다라는 마음으로는 안 돼요. 저는 SNS를 안 해요. 자꾸 상향식 비교를 하게 돼서요. SNS를 보고 있으면 ‘무슨 강연을 이렇게 많이 할까, 책도 나왔네, 나는 지금 못 쓰고 있는데 부럽다’ 같은 일 생각부터 ‘요즘은 이런 데가 있네, 저 맛집은 어디지’ 같은 노는 것에도 자극을 받거든요. 그 자극이 굉장히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어요. 우리는 디지털 디톡스를 좀 해야 해요. 디지털 디톡스가 휴식에 중요해요.

그럼 추천하는 휴식 방법은 무엇인가요.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해서 움직이는 방식의 휴식을 해요. 컬러링 북 색칠하거나 산책을 해요. 스마트폰 없이 나가는 게 포인트예요. 좀 쉬고 싶을 때 하는 본인만의 ‘리추얼’이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글 안 써지고 기분 나쁘면 손을 씻어요. 행위에 집중해서 정성스럽게요. 그런 차단이 필요해요. 가장 좋은 휴식 방법은 독서예요. 우리가 인터넷을 하고 나서 뿌듯해져 잠드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최저가를 검색해도 내일이면 또 나올 오픈소스라서 그래요. 그런데 책은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닫힌 느낌을 줘요. 거기서 오는 충만함이 커요.

제대로 쉬는 것도 쉽지 않네요.

우리는 쉬는 걸 아무 준비 없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아요. 더 중요한 건 자주 쉬는 거예요. 실제 연구 결과도 있는데, 휴가를 한 달 통으로 쓰는 것보다 그 한 달을 일주일로 쪼개서 4번 쓰는 게 심리적 만족도가 훨씬 커요. 행복의 평균값이라는 용어 때문인데요. 행복은 치닫다가도 급격히 떨어져 결국 평균으로 회귀하는 특징이 있어요. 즉, 산책을 2시간씩 하는 건 힘들잖아요. 바쁘기도 하고요. 틈날 때 회사 주변 공원을 잠깐 돌아보세요.

나를 잘 돌보는 사람이 진짜 프로

백영옥 작가의 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과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은 소설 ‘빨간 머리 앤’ 주인공의 말을 빌려 독자들에게 위로와 조언을 건넨다. 그 말들은 백영옥 작가를 어루만져주던 것이기도 했다. 백 작가는 요즘도 가끔 ‘빨강머리 앤’ 만화를 본다. 긍정적인 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백 작가는 “어떤 두려움이 덮쳐올 때는 굳이 맞서기보다 잠시 피하자는 주의다. 나만의 안전지대에서 힘을 얻은 후 다시 상황을 돌아봐도 괜찮다”고 말한다.

하긴 곧은 나무가 먼저 베어진다. 앞만 보고 달리던 백 작가는 코로나19 때 넘어졌다. 세상 변화가 이렇게 빠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그때 브레이크 밟는 법을 더 고민하게 됐다.

마감 잘 지키기로 유명한 워커홀릭한테 쉬어야 한단 얘기를 들을 줄 몰랐어요.

주변으로부터 제가 일중독자라는 말을 10년 넘게 들었지만 인정을 안 하고 살았어요. 체력이 뒷받침됐을 때는 일만 하고 살아도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고 에너지 레벨이 낮아지니 탈이 나더라고요. 자기 돌봄 없이 자기 착취만 하다 보면 몸이 보내는 사인을 무시하게 되거든요. 그러다가 엎어지면 그때 쉬는 거예요. 잘나가던 사람도 환자복을 입으면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이고 다 똑같아져요.

속도를 줄일 줄 아는 사람은 진짜 용감한 것 같아요.

그게 참 쉽지가 않아요. 저는 그래서 ‘프로페셔널’이라는 개념 안에 자기 돌봄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커리어 쌓는 게 단기 경기가 아니잖아요. 마라톤이에요. 배우 윤여정 선생님은 70세가 넘어서 아카데미상을 받았어요.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성공은 계속 쇼를 하는 거라고 말했고요. 쇼가 화려하든 실패하든 일단 계속하려면 반드시 자기를 돌봐야 해요. 특히 수면이 중요해요. 우리나라 국민 수면 시간은 OECD 국가 중 최하위예요.

하지만 성공한 분들은 거의 다 잠을 줄여가며 뭔가를 한 사람들 아닌가요.

그렇긴 해요. 제가 한 10년 전쯤에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다양한 분들을 인터뷰하는 연재 칼럼을 진행했었는데 맙소사, 다 너무 안 자는 거예요. ‘내가 성공을 못 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싶어서 8시간 자던 걸 6시간으로 줄인 적이 있어요. 하루 종일 멍했어요. 현대인들은 그 멍한 상태에 카페인을 들이붓고 니코틴을 흡입해서 억지로 끌고 가는데 그러면 업무 효율성이 떨어져요. 다행히 이제는 저처럼 수면이 중요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왔어요. 수면 자체가 단기 기억력을 장기 기억력으로 전환해서 보존하는 역할을 한대요. 기자님도 스마트폰 보지 말고 일찍 자보세요.

침대에 웅크려 ‘빨간머리 앤’을 보면 엄마 자궁 안에 웅크려 있는 태아처럼 편안해진다는 백영옥 작가.

침대에 웅크려 ‘빨간머리 앤’을 보면 엄마 자궁 안에 웅크려 있는 태아처럼 편안해진다는 백영옥 작가.

어떻게 알았죠? 일찍 자려고 누워도 스마트폰을 보다가 자꾸 늦게 자요.

다 그래요. 빅테크 기업들이 알고리즘 자체를 자동 재생 기능과 무한 스크롤을 통해 사람들이 체류 시간을 늘리도록 정교하게 설계해놨거든요. 구글 전 수석 디자이너 제이크 냅이 저서 ‘메이크 타임’에서 자기 일은 검색에 드는 속도와 시간을 줄여 사람들이 장애물 없는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게 만드는 것이었다면서, 각종 생산성 앱을 삭제하거나 ‘ON’으로 설정된 디폴트 알람을 ‘OFF’로 바꾸라고 조언해요. 저도 스마트폰 첫 화면을 비워두는 방법을 따라 해 봤는데 효과가 좋았어요. 결국 자기만의 방지턱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나만의 방지턱이라, 빅테크 기업에서 싫어할 얘기인데요(웃음).

시간 학자들은 스마트폰을 수시로 확인하는 행위를 ‘오염된 시간’이라고 표현해요. 순간 주의력을 뺏기면서 일의 실행력이 낮아지고, 그 실행력이 복구되는 데 15분 이상 걸린대요. 그래서 저는 멀티태스킹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오히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능력이 훨씬 더 높게 평가받는 날이 와야 하고, 꼭 올 거라고 생각해요. 집중력이 곧 돈인걸요. 빅테크 기업들이 돈을 버는 건, 내가 인터넷에 남긴 데이터를 다양한 방식으로 팔기 때문이에요. 데이터는 21세기 석유 같은 거죠. 집중해서 내 시간을 안 지키면 끝도 없이 강탈당하는 구조예요.

그럼 유튜브나 넷플릭스도 안 보나요.

물론 봅니다. 저는 쉬는 방법 중 하나로 영국의 로열발레단 연습 동영상을 틀어놓고 따라 하기도 해요. 다만 제 SNS 계정을 운영하진 않고, 가끔 필요한 것만 찾아서 봐요. 저는 걱정이 많고 예민한 성격이라 ‘좋아요’나 댓글 하나에도 심리적으로 휘둘릴 여지가 있어 아예 그 여지를 차단하는 거죠. 스마트폰은 없으면 세상과 단절되고 보기 시작하면 시간을 뺏기는 애증의 대상이에요. 얼마 전에도 넷플릭스에서 ‘마스크걸’ 한 회만 보고 자야지, 하고는 7회를 내리 보고 망했다 했어요.

작가님도 그럴 때가 있다니 친근하네요.

제가 의지력이 강한 사람은 절대 아니에요. 의지가 부족해서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추상적인 의미인 의지를 눈에 보이는 근육 덩어리라고 생각해보세요. 근육 키울 때 반복해서 자극을 주죠. 습관 바꾸는 것도 똑같아요. 그런데 왜 더 힘들다고 느끼냐면 금연, 금주, 다이어트 등은 단기적으로는 성공하지만 장기적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려면 이행 장치를 많이 써야 해요. 이걸 이행했을 때 어떻게 보상을 줄지, 실패 시 대처 계획도 세워야 하고요.

작가님이 세운 올해의 계획과 그 습관을 지키기 위한 이행 장치는 뭔가요.

저는 올해 스쾃을 하루에 100개 이상씩 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어요. 실제로 매일 하고 있고요. 방법 알려드릴까요? 매일 하는 행동에 추구하고 싶은 습관을 끼워 넣는 거예요. 저는 손을 닦고 나서 손이 깨끗한 김에 얼굴에 수분 크림과 선크림을 발라요. 그 습관 사이에 스쾃을 넣었어요. 손 닦을 때마다 화장실에서 스쾃을 15개에서 20개씩 하다 보니 100개는 거뜬하더라고요. 또 올해 초 구매해서 아주 유용하게 쓰고 있는 아이템이 하나 있어요. 바로 ‘스마트폰 감옥’인데요. 그 스마트폰 감옥을 주로 밤새 잠가놨다가 오전 5시에 열리면 그때 감옥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확인해요. 제가 얼마나 실패를 많이 했으면 이런 얘기를 줄줄 하겠어요. 실패 끝에 찾은 방법들이에요.

내가 일부러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이유

15분 단위로 계획을 세워 살던 백영옥 작가가 스마트폰 없이 산책하기까지 스마트폰 감옥, 스마트폰 첫 화면 비우기 등 여러 노력이 필요했다.

15분 단위로 계획을 세워 살던 백영옥 작가가 스마트폰 없이 산책하기까지 스마트폰 감옥, 스마트폰 첫 화면 비우기 등 여러 노력이 필요했다.

실패를 많이 한다는 건 시도를 계속한다는 거잖아요. 이 힘은 어디서 나오나요.

가끔은 우울해도 그냥 웃어야 해요. 정체성이라는 건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저는 이따금 고민하는 후배에게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 돼야 한다, 되고 싶은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조언해요. 처음에는 절대 쉽지 않지만 그런 척이라도 하고 있으면 마침내 자기가 그런 사람이 됐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 있거든요. 저는 사람이 바뀐다고 믿고 있어요.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의도적으로 많이 해요. 우리 인류의 DNA 자체가 생존을 위해 일단 피하고 두려워하다 보니 부정 편향이 심해요. 저는 인류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회색 지대가 없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많아요. 회색분자라고 나쁘게 표현하기도 하는데 달리 보면 회색은 중립일 수 있잖아요. 다만 그런 회색 지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스피커가 아니라서 세상에는 극단의 목소리만 크게 들리는 거죠. 회색 지대가 줄면 줄수록 저는 세상이 안 좋아진다고 봐요. 상식은 회색 지대 안에 있으니까요.

이런 생각들을 의도적으로 담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직업이라니 멋있네요. 쓰는 입장에서는 에세이와 소설 중 어떤 장르에 담아낼 때 더 흥미롭나요.

소설은 이야기를 담는 게 아니고 제가 그렇게 직접 살아내는 거예요. 소설을 쓰면 자상을 입고 누더기가 돼요. 제가 소설을 한 권 쓸 때마다 병명이 하나씩 늘었어요. 좌골신경통이 생겼고 앉아서 오래 일을 못 해요. 허리 디스크 3·4번이 다 나갔거든요.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쓰는 칼럼과 다르게 소설은 아예 하나의 우주를 만드는 일이라 많이 힘들죠. 그런데도 소설을 쓰는 이유는 어느 순간 내가 만든 캐릭터가 나에게 ‘이건 아니지 않아?’ 질문할 때가 있어요. 어떤 하나의 존재로서 역할을 할 때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충족감이 있어요.

그럼 다음 소설은 언제쯤 만날 수 있나요.

모르죠. 소설은 알 수가 없어요. 저는 MBTI가 ENFJ(외향적이고 직관적이며 감정을 중요히 여기는 계획형)예요. 저 자신이 과잉 목표 설계자인 데다가 소설 장르 특성상 굉장히 노동집약적이어서 성실함이나 계획성이 수반되지 않으면 종결하기가 어려워요. 취재 계획도 짜야 하고 언제 쓰기 시작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마 소설가 중에 J 유형이 많을걸요(웃음).

내년에 50대가 되는데 보통 나이 앞 자릿수가 바뀌면 좀 심란해지잖아요. 작가님은 어떤가요. 파워 ‘J’ 유형이니까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나요.

조금 더 본질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 나이 듦의 혜택이고 축복 같아요. 어릴 때는 꽃이 단순히 어쩜 이렇게 예쁠까 싶었는데 요즘은 꽃이 애틋하고 예뻐 보이는 이유를 알아요. 꽃이 빨리 지는 걸 아니까 예쁜 거죠. 옛날에는 뭐든 생각을 많이 하고 그래서 늘 불안했고 일을 점점 많이 하게 됐어요. 돌이켜보면 일을 많이 해서 성취한 부분도 있지만 잃은 것도 있어요. 요즘은 본질적인 가치를 찾으려 해요.

작가님에게 본질적인 가치는 무엇인가요.

제가 제일 행복할 때는 소설을 쓰는 순간이거든요. 그런데 요즘 소설이 안 팔려요.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소설을 한번 읽어보라고 여기저기 소개해주고 싶어요.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영화 ‘타이타닉’에서 배가 침몰 중인데도 악사들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장면 기억나세요? 워낙 세상이 빠르게 변하니까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쓰여요. 제가 영어로 소설 쓰기에도 관심이 있어서 영국인 선생님과 쓰기 수업을 오래 했어요. 그런데 올해 챗GPT가 나왔잖아요. 챗GPT가 제 문장을 수정하는 것을 넘어 다른 버전으로 계속 알려줘요. 그걸 보면서 선생님이 “내 직업은 사라지겠다”고 그러길래 소설가도 사라지고 있다고 했어요.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한테는 무슨 일을 하라고 하면 좋을까요.

우리의 미래는 알 수가 없어요. 우리가 했던 성공의 방정식이 요즘 아이들한테는 안 맞거든요. 우리 때만 해도 교사가 정말 좋은 직업이고 선망의 대상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많은 교사가 힘들어하죠. 세상이 너무 빨리 또 많이 바뀌기 때문에 이럴 때는 그래도 안 바뀌는 게 뭔지를 생각해야 해요. 나에게 바뀌지 않는 가치가 있다면 거기에 더 집중해야 해요.

백영옥 작가는 집중을 위해 점심을 거르고도 열정적으로 얘기했다. 더 놀라운 건 모든 이야기는 기가 막히게 본론으로 돌아가 끝을 맺었다. 그는 지금까지 해본 여러 직업 중 소설가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힘들다고 했지만, 기자에게는 소설가가 가장 힘든 인터뷰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이 2시간가량 풀어낸 주옥같은 말 중 뺄 부분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사는 것도 그렇다. 힘을 줄 때와 뺄 때가 있다. 백 작가의 말처럼 “오늘 얻은 깨달음이 늘 유지되는 게 아니라 업 앤드 다운이 계속 있는 와중에 내가 그걸 알아채고 다시 조정하는, 반복의 반복을 거듭하는 게 인생”이다.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자신의 의지를 믿고 자만할 것도 없다. 1+1로 구매한 스마트폰 감옥을 준다고 할 때 사양 말고 받을 걸 그랬다.

#백영옥작가 #힘과쉼 #여성동아

사진제공 백영옥(포토그래퍼 허성민) 사진출처 애니원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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