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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가 전하는 위로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성지연 에세이스트, 국문학 박사

2023. 02. 14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시인’, 메리 올리버는 조용한 삶을 살았다. 미국 매사추세츠의 소도시 프로빈스타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숲과 해변을 산책했다. 그의 시는 번잡한 도시에 사는 우리의 삶에도 산들바람 같은 위로를 준다.

이 기획을 시작하면서 인물의 직업을 염두에 두게 됐다. 다양한 여성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다뤘던 사람들 중에는 소설가도 있었고, 화가도 있었고, 정치가도 있었고, 대중 예술가도 있었다. 시인을 한번 다뤄보고 싶었다. 누가 좋을까.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천양희가 떠올랐고,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도 떠올랐다. 그러다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를 생각해냈다.

올리버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시인이라고 하기 어렵다. 게다가 미국은 시를 포함한 고전 예술이 아닌 영화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의 상징과 같은 국가다. 이런데도 내가 올리버를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그의 시에 담겨 있는 매력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올리버는 1935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나 열네 살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평생을 시인으로 살았다. ‘뉴욕 타임스’는 그를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시인”으로 평가한다.

“착하지 않아도 돼” 인상적인 첫 문장

국내에 가장 널리 알려진 올리버의 시는 ‘기러기(Wild Geese)’다. 이 시를 나는 10여 년 전 김연수의 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만났다. 처음 읽었을 때부터 좋았다. 올리버의 시집 ‘꿈 작업’(1986)에 실려 있다지만 당시 올리버의 작품은 그 어떤 것도 번역되지 않았다. 2013년 그의 산문과 시를 모은 ‘완벽한 날들’이 우리말로 나왔다. ‘기러기’는 없었지만 그의 산문도 좋았다. ‘기러기’를 포함한 시선집이 한국에 출간된 것은 2021년이다.

“착하지 않아도 돼. /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 너의 절망을 말해 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기러기’의 앞부분이다. 이 시는 많은 사람을 위로하고 치유했다. 2009년 당시 미국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은 9·11 테러 희생자 추모식에서 이 시를 낭송했다. 많은 미국 대학 기숙사에 이 시가 걸려 있다고 한다.



첫 구절인 “착하지 않아도 돼”부터 인상적이다. 이 구절에 위로받는 이는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일 것이다. 다음 구절인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라는 구절에 위로받는 사람은 스스로를 학대할 정도로 엄격한 사람일 것이다. 올리버는 그들에게 그저 “몸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라”고 말한다. 몸은 인간에게 가장 일차적인 존재다. 인간이 몸과 마음으로 구성돼 있다면 몸은 마음이 거주하는 실체다. 마음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몸의 자유도 중요하다. 그런 몸이 원하는 대로 놓아두라는 올리버의 이야기가 매우 신선하다.

그러고 나서 올리버는 우리 모두 각자의 절망을 나누자고 권유한다. 살아가며 하나의 절망도 마주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은 절망 앞에 평등하다. 위로는 공감에서 출발하기에 그 절망을 나누는 게 위로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공감은 즐거운 일보다 슬프고 아픈 일, 즉 절망에 더 필요한 법이다.

올리버는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진행된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로 번역된 ‘meanwhile’이 이렇게 아름다운 단어인 줄 몰랐다. ‘기러기’의 이어지는 행에서 태양과 비, 초원과 나무, 산과 강의 풍경이 지나간다. 기러기는 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 집으로 돌아간다. 한편에는 죄의식과 절망에 시달리는 인간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자연의 풍광과 기러기가 날고 있는 넓은 세상이 있다. 인간이 고군분투하는 사이에도 모두 제 갈 길을 가는 넓은 세상이다. 자연은 그렇게 자유롭게 존재하는 야생의 세계다. 넓은 세상 위를 날아가는 야생의 기러기 시각에서 보면 인간의 죄의식과 절망은 아주 작아 보일 거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 저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흥겨운 소리로 너에게 소리치지- /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네가 있음을 / 거듭거듭 알려주지.”

‘기러기’의 마지막 부분이다. 올리버는 세상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판단하지 않은 채 상상에 스스로를 내어준다고 노래한다. 각자의 사정으로 괴로움에 빠진 인간이 고개를 들어 세상을 보면, 거기에는 각자의 야생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는 오로지 나에게 달려 있다는 말이다.

올리버는 이런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나의 자리가 있음을 넌지시 일러준다. 나의 자리는 비록 작아 보일지라도 만물이 이룬 세계 안에 놓여 있다. 나 역시 세계가 이룬 가족의 한 구성원이다.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말이다. 있는 그대로 세상 속에 놓인 자신을 선선히 받아들이는 것, 바로 여기서 치유가 시작된다.

시인 메리 올리버(왼쪽)와 언론인이자 작가인 마리아 슈라이버.

시인 메리 올리버(왼쪽)와 언론인이자 작가인 마리아 슈라이버.

위로를 전하는 올리버의 또 다른 시를 들려주고 싶다. 언론인이자 작가인 마리아 슈라이버가 가장 좋아하는 시로 꼽은 ‘여행(The Journey)’이다. 이 시도 ‘꿈 작업’에 수록돼 있다. 슈라이버는 올리버와의 인터뷰에서 ‘여행’에 힘들었던 과거의 경험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올리버는 개인적 경험이 반영돼 있다고 대답했다. 어린 시절 올리버는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한다.

“어느 날 마침내 당신은 /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고, 그걸 시작했지, / 주위의 목소리들은 그릇된 조언을 / 외쳐댔지- / 집 안 전체가 / 흔들리기 시작하고 / 오랜 속박이 / 당신의 발목을 잡았지.”

‘여행’의 앞부분이다. 주위에선 “그릇된 조언”을 퍼붓고, “오랜 속박이 당신의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당신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기 때문에 멈추지 않았다. 당신은 자신의 목소리를 깨닫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고자 한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구하러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여기에 앞의 인터뷰 내용을 덧붙이자면 올리버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 날 집을 떠났다고, 잠시라도 기다릴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것이 자신의 목소리임을 / 서서히 깨닫게 된 당신, / 그 목소리를 길동무 삼아, /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하겠다는 / 결심으로, /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을 구하겠다는 / 결심으로 / 세상 속으로 / 깊이 더 깊이 걸어 들어갔지.”

불완전함, 아무것도 아닌

‘여행’은 이렇게 끝난다. 당신이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목소리”였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면 당신은 자신을 구할 수 없었다. 세상으로 나아간 이가 메리 올리버라고 하면, 그는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을 구해냈다.

‘여행’을 읽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용기를 내야 할 때가 있다. 익숙한 것들을 떨쳐야 하는 건지 쉽게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자신의 삶이 제대로 펼쳐질 수 없다면 떠나야 한다. 나만이 내 삶을 구할 수 있다.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이다. 올리버는 시를 통해 삶에의 용기를 우리에게 건넨다. 시의 힘이자 문학의 힘이다.

올리버 시의 매력은 자연을 통해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는 데 있다. 우리 삶은 자연의 한 부분이다. 자연의 흐름과 삶의 흐름은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아주 많이 닮아 있다.

“그래도, 내가 삶에서 원하는 건 / 기꺼이 / 현혹되는 것- / 사실들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 어쩌면 / 이 고난의 세상 조금 위에서 / 떠도는 것. / … / 불완전함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 빛이 전부라고-빛은 피었다 지는 모든 결함 있는 꽃들의 / 합보다 크다고 믿고 싶어. 그리고 믿어.”

시 ‘연못(The Ponds)’의 한 구절이다. 시집 ‘빛의 집’(1990)에 수록돼 있다. 시의 시작은 해마다 수련이 완벽하게 피는 연못을 보여주는 것. 검은 연못 가득한 겹겹의 빛은 믿을 수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점차 진실이 드러난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완벽한 수련은 없다. 기울고 병에 걸리고 갉아 먹힌 것들로 가득하다. 그럼 이제 더 이상 수련은 아름답지 않을까. 그래도 올리버는 “기꺼이 현혹”되겠다고 말한다. 사실에서 벗어나 이 고난의 세상 조금 위에서 떠돌겠다고, 불완전함보다는 자신이 본 빛을 믿겠다고.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은 수련들이다. 위로가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자연에 기댄 올리버의 비유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고난의 세상을 살아가며 모두들 상처를 지니게 된다. 땅에 바짝 엎드려 그 상처 하나하나를 낱낱이 관찰하면 우리는 불완전함밖에 만날 수 없다.

올리버는 상처를 제외한, 아니 상처를 품어 안은 수련의 아름다움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 시선은 아름다움에 자발적으로 현혹돼 세상의 약간 위에서 바라보는 것. 바로 그럴 때 결함을 가진 꽃들 위에 아름다움이 빛으로 떠오른다. 지나간 상처를 없는 것으로 할 순 없다. 새로운 빛으로 아름다움을 밝히는 수밖에. 큰 상처일수록 더욱더.

이것이 올리버가 일러준 상처에 갇히지 않는 방식이다. 아픔 없는 사람은 없다. 그에게도 많은 상처가 있었을 테고, 특히 어린 시절의 상처는 극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상처를 넘어서 아름다움을 밝히는 빛은 새로운 눈이다. 새로운 생활이기도 하다. 과거의 익숙한 자리를 떠나 새로 눈을 뜨고 새로운 생활을 일구어갈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날들’에는 미국 시인 맥신 쿠민이 올리버를 평가한 구절이 실려 있다. 쿠민은 올리버가 “습지 순찰자”이며 “자연 세계에 대한 포기할 줄 모르는 안내자”라고 말한다.

올리버는 고향 오하이오의 숲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시를 쓰며 자연 안에서 스스로의 회복을 도모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자신을 위로하고 치유한 경험으로부터 자신의 시를 읽는 사람을 치유할 지혜를 얻었을 것이다. 올리버는 1960년대에 고향을 떠나 매사추세츠의 케이프코드만에 있는 소도시 프로빈스타운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날마다 숲과 해변을 산책했다. 올리버는 그곳에서 50년 동안 살았다. 2015년 프로빈스타운을 떠나 플로리다로 이사했고, 2019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자연과 뗄 수 없는 올리버의 삶은 소박했고 한갓졌다.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받은 베스트셀러 시인이었지만 유명인들의 떠들썩한 인생과는 거리를 뒀다. 이 세상에 최고의 인생은 하나뿐일까. 올리버는 내게 그것이 여럿임을, 그 모양은 다 다른 것임을 넌지시 일러준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삶이 최고의 삶일 거다. 올리버의 시는 바로 그런 깨달음과 확신을 안겨준다. 내게 그것은 왠지 작지 않은 위안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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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연의 다시 만난 그녀들
1970년 출생.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어른의 인생 수업’이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 뉴시스 
사진제공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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