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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 살까? 말까? 가을에 사라!

문영훈 기자

2022. 09. 15

자페 스펙트럼 장애 캐릭터 ‘우영우’는 주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 출근 지하철에 오른다. 그가 드라마에서 착용한 헤드폰은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탑재한 독일 음향 기업 젠하이저 제품. 또 다른 노이즈 캔슬링 ‘맛집’으로 불리는 소니의 WH-1000XM5 모델을 2주간 사용해봤다. 

4년 전이었다. 친구의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착용했던 순간이. 따로 음악을 재생하지 않아도 머리 위에 얹자마자 불필요한 소음이 줄어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생각보다 많은 잡음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음을 알게 됐다. 결국 나는 친구에게 그 제품을 중고로 구입했다. 수습기자 시절 신나게 헤드폰을 머리에 걸고 다녔다. 특히 출퇴근길 혼잡한 대중교통 속에서 나만의 평화를 찾는 데 유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버스에 헤드폰을 놓고 내렸고 나는 그 검정 헤드폰을 다시 볼 수 없었다. 그 제품은 소니 WH-1000XM4(마크4)다. 2016년 MDR-1000X가 출시된 이후 소니 마크 시리즈(MDR-1000X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가 이후 시리즈부터 모델명이 달라졌다)는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의 제왕으로 불린다. 2022년 5월 신제품 마크5(정가 47만9000원)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이미 나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에어팟 프로 제품을 사용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다 전자제품을 한 달간 사용해보고 원하면 구입할 수 있는 테스트밸리를 발견했고, 마크5를 2주간 사용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쌔끈한’ 디자인

테스트밸리는 ‘Use first, Buy later(먼저 써보고, 나중에 사자)’를 표방하는 IT 기기 판매 스타트업이다. 핵심 서비스는 ‘리턴’. 몇몇 제품을 배송 완료일로부터 최대 30일까지 사용해보고 환불할 수 있다. 대신 소정의 제품 체험비와 배송비 (3000원)는 지불해야 한다. 테스트밸리를 운영하는 홍솔 비엘큐 대표는 미국을 여행하며 160달러짜리 수면 유도등을 사고 난 뒤 불면증이 해소되는 경험을 했다. 이후 삶의 질을 높여주는 전자제품을 먼저 사용해보고 구입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업을 구상했다. 나는 퇴근길 버스에서 이별한 마크4를 추억하며 8월 1일 마크5 블랙 제품을 테스트밸리에서 주문했다.

주문한 지 이틀 만에 제품이 회사로 도착했다. 테스트밸리 마크가 찍힌 택배 박스를 열자 희끄무레한 박스가 하나 더 나왔다. 지속가능성 트렌드에 맞게 소니 마크5 포장재는 친환경 재생용지다. 헤드폰 본체 역시 재생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들어 있는 구성품은 간단하다. 헤드폰 본체와 케이스, 충전용 USB-C 케이블, 유선 헤드폰 사용자를 위한 3.5㎜ 케이블과 간단한 사용 설명서.

우선 마크4와 비교해 눈에 띄게 달라진 건 디자인이다. 투박함이 사라진 느낌이랄까. 이어 컵 부분은 이음새가 잘 보이지 않는 심리스(seamless) 구조로 돼 있다. 마크4에서는 길이 조절 부위가 단계별로 돼 있었는데 마크5는 부드럽게 어느 길이에서도 잘 고정됐다. 다만 지난 모델처럼 한쪽 이어 컵이 접히지 않아 작은 가방에 넣고 다니기는 힘들다.



주인 상태를 인식하는 헤드폰

우선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ANC)을 짚고 넘어가자. ANC는 파일럿을 위해 개발한 기술이다. 1978년 미국 정부는 음향 기술업체 보스(BOSE)에 ANC 기술 개발을 의뢰한다. 전투기 조종사와 나사 직원들이 제트 엔진과 로켓 엔진 소음 속에서도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한 용도였다. 8년 뒤 보스는 ‘군용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 개발에 성공했다. 원리는 소음을 또 다른 소리로 막는 것. ANC 기술이 탑재된 음향 기기에는 외부 소리를 인식하는 마이크가 탑재돼 있다. 마이크를 통해 외부 소음의 파형을 분석하고, 이 파형과 반대 소리를 발생시켜 외부 소음을 상쇄한다.

그렇게 나도 사무실의 소음을 상쇄시켜봤다. 전원 버튼을 켜고 헤드폰을 끼면 주변의 백색소음은 사라진다. 동료의 목소리나 엔터키를 ‘탁’ 하고 치는 소리는 뭉툭해져서 귀에 들어온다. 소음에 민감한 사람도 시끄러운 카페에서 한결 조용하게 일할 수 있을 정도.

마크5보다 15만원 저렴한 미국 애플사의 이어폰 ‘에어팟 프로’와 성능을 일대일로 비교하는 건 너무한 처사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음질 차이는 확연했다. 베이스의 둥둥거리는 진동 수준이 달랐고, 소리의 공간감 역시 마크5 쪽이 탁월했다. 또 에어팟 프로를 사용하면 귀 양쪽이 막히며 먹먹해지는 기분이 드는데 마크5의 경우 산뜻하게 주변 소리만 소거해줬다. 가장 큰 차이는 통화 음질이다.

“너의 목소리만 들려.” 에어팟 프로를 착용한 채 전화하면 소음에 목소리가 묻힌다며 ‘극혐’하던 친구가 마크5를 낀 채 통화하자 반색했다. 소니는 ‘업계 최고의 통화 품질’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는데,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마크4부터 적용된 ‘DSEE Extreme’ 기능도 여전히 신기했다. AI(인공지능)를 이용해 손실된 음원을 복원하는 기술이다. 최신 음원을 들을 때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과거 공연 영상은 달랐다. 유튜브에서 1985년 퀸이 라이브 에이드 공연 때 부른 ‘보헤미안 랩소디’ 영상을 재생했다. 뭉개지거나 깨지던 사운드가 잡혀서 라이브 실황을 음원 형태로 재작업한 것 같았다.

마크5에서 가장 인상적인 기능은 이른바 ‘적응형 사운드 제어’다. 사용자의 현재 상황을 인식해 정지 상태, 걷는 중, 뛰는 중, 차량 이동으로 분류한다. 해당 상황에 맞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조절해주는데, 걷는 중에는 그 정도를 줄이는 식이다. 가끔 노이즈 캔슬링 음향 기기를 착용하고 길거리에 나서면 주변 소리를 듣지 못해 사고 위협을 받기도 하는데 이를 미연에 방지해준다.

헤드폰에 부적합한 K-여름

숱한 장점을 나열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8월의 습한 날씨다. 덥고 습한 K-여름, 가죽으로 된 헤드폰을 거리에서 쓰자 금세 답답함이 느껴졌다.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라면 운동하며 착용하기엔 부적합하다. 헬스장에 갈 때는 음질을 손해보더라도 무게와 착용감 면에서 모두 가벼운 에어팟 프로에 손이 향했다.

완연한 가을이 올 때까지 일단 구매는 보류. 테스트밸리 홈페이지에서 리턴을 신청했다. 구매 내역에서 제품 수거 장소와 날짜만 입력하면 된다. 제품을 다시 포장하고 박스에 넣으면 소비자가 할 일은 여기서 완료. 테스트밸리 측은 리턴 제품이 도착하면 엔지니어를 통해 제품을 검수하고 체험비와 배송비를 차감한 금액을 리턴 신청자에게 돌려준다. 테스트밸리 홈페이지에는 다른 이용자가 리턴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리뉴 코너도 마련해두었으니 참고하자.

#노이즈캔슬링 #소니 #테스트밸리 #여성동아


문(文)영훈. 
3년 차 잡지 기자. 기사를 쓰면서 이야깃거리를 얻고 일상 속에서 기삿거리를 찾는다. 요즘 꽂힌 건 테크. 처음엔 “이게 왜 필요한가” 싶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기술에 매료된다.



사진 문영훈 기자 
사진제공 소니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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