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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Story

스페인 왕비부터 메건 마클까지 로열 패밀리가 반한 한국인 디자이너 염미경

글 이나래

2021. 04. 27

옷에 대한 열정 하나로 서른 살이 넘어 불쑥 유럽으로 떠났다. 디자인 팀을 이끌던 리더였지만 단어부터 배우며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했다. 열정과 근성만 가지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나갔다. 한국인 최초로 유럽 하이패션 브랜드에서 디자인 총괄 책임자에 오른, 디자이너 염미경의 이야기.

디자이너 염미경은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우물을 파온, 패션 디자이너다. 

커리어를 시작한 1990년대에는 앤클라인, 보성, 경남모직 등을 거치며 실력을 쌓았고 2000년대 초반 유럽으로 이주해 아크리스, 휴고보스 같은 유럽의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에서 촉망받는 디자이너로 불렸다. 누구보다 일 욕심이 많은 워커홀릭이었고, 패턴에 강하고 깊이 있는 옷을 잘 만들어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도 성취를 인정받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유럽의 하이패션 필드는 워낙 치열했고, 언어적·인종적 한계가 있다고 느끼는 일도 잦았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한 날에는 이순신 장군을 떠올렸다. 고작 12척의 배를 이끌고 전쟁에 나가야 했지만 끝까지 싸워 이긴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면, 가진 것 없는 현실은 희미해지고 끝내 목적한 바를 이루겠다는 의지는 강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 하이패션 마켓에 도전장을 던진 신생 브랜드 알파타우리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Head of Design)로 스카우트되면서 커리어의 제3막에 돌입했다. 브랜드가 그간 쌓아온 이미지와 미래 방향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브랜드의 강점과 시장의 니즈 사이에서 2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노력을 다한 끝에 다행히 호응이 이어지는 추세다. 최근에는 한국의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과 대화하며 영감을 주고받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고 말했다.

김정숙 여사와 레티시아 스페인 왕비. 레티시아 왕비는 2019년 방한 당시 
염미경 씨가 디자인한 스커트를 입었다.

김정숙 여사와 레티시아 스페인 왕비. 레티시아 왕비는 2019년 방한 당시 염미경 씨가 디자인한 스커트를 입었다.

2020년 알파타우리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가 되셨는데요. 글로벌 명품 하우스의 디자인 총책임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알파타우리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알파타우리는 레드불이 패션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만든 브랜드입니다. 모두들 편의점에서 한 번쯤 보셨을 바로 그 음료수 회사죠. 2018년 론칭 당시에는 모기업의 영향에 따라 스포츠웨어를 주축으로 삼고 있었지만, 2020년부터는 럭셔리 하이패션 브랜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음료수 브랜드에서 하이패션을 선보이는 것이나 시장을 공략하는 것 모두 쉽지 않은 작업이다 보니, 하이패션 브랜드의 경험이 많은 저를 스카우트한 거고요.



디자인 총괄 책임자의 역할은 브랜드 전반을 살피고 리드하는 일이에요. 이미지를 구상하고, 매해 시즌별 콘셉트를 짜는 것부터 평면으로 완성된 디자인에 소재나 구성 요소를 덧입혀 옷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은 모두들 익히 아실 것 같은데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케팅이나 홍보 팀과의 협업을 통해 우리의 작업을 세상에 선보이는 일까지도 맡고 있어요. 현재 소속 디자이너 8명 외에 분야별로 협업을 진행하는 프리랜스 디자이너들과 마케팅 팀, 홍보 파트까지 저와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서 첫 작업인 2021 F/W 컬렉션에 대해 영국판 ‘에스콰이어’를 비롯한 미디어들의 호평이 이어졌는데요.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로서 이미지를 정립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어요. 스포츠웨어 브랜드라는 인식을 깨기 위해서는 감수성을 잘 불어넣는 것이 중요했죠. 다만 스포츠웨어를 통해 다져진 최첨단 소재는 충분히 활용하려고 노력했고요. 다행히 의상을 선보인 후에 호응이 따르더군요. 특히 소재나 원단 등에서 디자이너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니트웨어의 반응이 좋아서 보람을 느꼈어요. 차별화를 위해 무척 신경을 썼는데 그 부분이 잘 먹혀 들었죠. 남성 트렌치코트의 경우에는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클래식한 디자인과 신소재의 결합이 이상적으로 이루어져 2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결과물이 되었는데요. 지금까지 시장에 없었던 브랜드로 포지셔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인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F1 드라이버의 유니폼을 디자인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소속된 패션 회사 알파타우리에서 F1 팀을 보유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F1 드라이버의 옷을 디자인한다기보다는 알파타우리 디자인을 총괄하는 업무 안에 F1 드라이버의 옷도 들어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죠. 사실 F1 유니폼은 이미 셰이프가 정해져 있고, 제작도 특정한 회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제가 맡은 부분은 디자인 콘셉트와 컬러링, 스폰서의 로고 배치 정도예요. 다만 패션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F1 팀인 만큼, 출전하는 모든 팀 중에서 가장 멋진 유니폼을 입히고 싶다는 마음은 강해요. 제가 처음으로 작업한 2021년 유니폼은 큐비즘을 콘셉트로 한 비대칭 디자인인데, 선수와 팬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레티시아 스페인 왕비와 메건 마클 같은 세계적인 셀렙들이 염미경 씨가 디자인한 옷을 즐겨 입는다.

레티시아 스페인 왕비와 메건 마클 같은 세계적인 셀렙들이 염미경 씨가 디자인한 옷을 즐겨 입는다.

염미경 씨의 의상을 입은 셀레브리티가 여럿 있다고 들었습니다. 유명인 누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알려주시겠어요.

가장 많이 알려진 건 메건 마클이죠. 그녀가 영국 해리 왕자와 결혼하고 처음 소화한 공식 일정에서 제가 디자인한 스커트를 입었는데, 워낙 스타일링이 뛰어나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어요. 심지어 협찬이 아니라 그녀가 개인적으로 구매한 아이템이었는데, 반응이 좋아서였는지 곧 다른 컬러를 더 구매해 갔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스페인 레티시아 왕비도 제가 디자인한 스커트를 여러 차례 입었는데요. 특히 2019년 방한해 영부인 김정숙 여사와 가진 간담회 때 제 옷을 입은 걸 보고 참 기뻤습니다. 한국인 디자이너의 작업이라는 걸 알았다면 두 분의 환담에 좋은 소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했죠. 아크리스에서는 유럽 각국의 왕족이 주 고객이었어요. 샤를로트 카시라기 모나코 공주, 전 미국 국무장관 같은 분이 제 의상을 입고 언론에 자주 노출됐었고요. 한국에서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께서 2009년 방북 일정에서 입었던 재킷이 많이 알려졌죠.

많은 유명인에게 사랑받는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본인이 가장 자신 있는 스타일은 무엇인가요.

커팅 라인과 색상에 가장 자신이 있어요. 드레이핑에 강한 편이라 특히 패턴에 신경을 많이 쓰고요. 언뜻 심플해 보이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아주 구조적인 디자인을 추구한달까요? 언밸런스한 소재를 믹스해 만드는 디자인도 좋아하고요. 그보다 중요한 건, 제가 사람을 좋아하는 디자이너라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입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정말 많아요. 이런 옷을 입는 사람은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할 거고, 이런 장소에 자주 갈 거고, 이런 집에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설정에 옷을 녹여내는 거죠. 이렇게 큰 맥락 안에서 디자인한 옷이 긴 수명을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예뻐서 샀지만 한두 번만 입고 옷장 안에 처박히는 옷을 디자인하는 일은 너무 슬프잖아요.

유럽 진출 전, 한국의 유명 패션 브랜드에서 일하셨다고요. 불확실한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으로 떠난 과정과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고, 의류학과를 졸업했으니 당연히 패션 회사에 입사했죠. 그런데 스물세 살에 미국으로 첫 출장을 갔다가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밤새 일만 하던 일개미가 처음으로 넓은 세상을 보니 심장이 쿵쾅거리더군요. 당시 한국 패션 산업의 구조도 절 지치게 했고요. 해외 출장을 가면 항상 샘플이 될 만한 디자인을 골라 녹음기에 중얼중얼 녹음하는 게 일이었어요. 소재는 무어고, 드레이핑은 어떻게 했고, 길이는 어느 정도고…. 그러고는 한국에 돌아와서 그 녹음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그려 샘플실에 넘겼죠. 우리끼리는 농담처럼 디자이너는 없고 카피 머신만 있다고 말하곤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우리가 베껴 오는 디자인의 원작자는 대체 누군지,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내는지, 제가 한 번도 배워보지 못한 창조의 과정이 궁금해졌죠. 회사원이 아니라 좋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져 서른이 넘은 나이에 디자인 팀장이라는 자리를 내려놓고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독일 베를린으로 불쑥 떠났어요.

유럽의 명품 하우스에서 아시아계 여성이 리더가 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되는데요. 지금도 기억에 남는 노력이나 도전이 있나요.

정말 어려웠어요. 김치나 마늘 냄새 같은 인종 차별 발언에 관한 에피소드는 아주 흔하고요. 유럽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다 보니 넘기 힘든 언어, 문화적 장벽이 있었죠.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해요. 동료들이 인정할 만큼 평판도 좋았고, 인센티브도 늘 두둑하게 받았죠. 휴고보스에서는 잠잘 시간이 없을 만큼 하루를 쪼개가며 일을 하면서 사내 모델로도 활동했어요. 정말 바쁜 시기라 사양하고 싶었지만, 아시안은 유독 내성적이라든가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편견을 강화시킬까 봐 걱정이 들었거든요. 그래도 매 순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항상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국인이라는 점이 가장 자랑스러울 때는 언제인가요.

유럽 친구들이 자진해서 먼저 한국 패션이나 디자이너에 대해 말할 때 전율이 느껴져요. 몇 년 전 돌아가신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을 비롯해 우영미, 준지, 분더샵, 젠틀몬스터 같은 디자이너 브랜드는 이미 유럽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거든요. 영화 ‘기생충’이나 ‘미나리’ 등이 연이어 성공하면서, 이제 K컬처가 메인스트림으로 들어온 것 같은 분위기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K패션도 좀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을 타진했으면 싶어요. 제 나름대로는 한국 원단이나 부자재를 활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일조하고 싶은데, 아직 한국 생산자나 패션 관계자들이 해외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협업이 이루어지기 어렵더라고요. 그에 비해 최근에 중국은 정말 적극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소재를 알리고 있거든요. 일본은 1980~90년대에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 사업을 시행해 패션 필드를 키웠다고 알려져 있는데, 우리도 이런 지원이 이루어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카피캣이 많은 것이 K패션의 한계처럼 여겨졌죠. 염미경 씨가 보는 최근의 한국 패션 디자인은 어떤가요.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어떤 점을 극복해야 할까요.

한국 패션은 정말 많이 성장했어요. 유럽 명품 하우스에서도 한국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을 눈여겨보고 있고요. 특히 개인 브랜드는 그 색깔이 뚜렷하고 퀄리티도 좋아 기대가 커요. 젊은 디자이너들은 정말 유니크한 감성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의상들을 선보이더라고요.
다만 온라인에 편중된 한국 특유의 유통 구조가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요소 같아요. 유럽의 경우 개인 브랜드 숍이더라도 입소문만 타면 성공할 수 있는 문화가 구축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한국의 경우 온라인 플랫폼에 집중되는 구조이다 보니 생산자보다 유통 부문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돼요. 생계가 보장되지 않으면 지속할 수 없잖아요. 판로를 잘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죠.

SNS 채널을 통해서 젊은 디자이너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SNS를 함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이고, 나누는 것은 무엇인가요.

음성 SNS 클럽하우스를 통해 만난 2030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정말 패션을 사랑하고 열정이 넘치는 똑똑한 친구들이 많아서 듣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얻게 되는 기분이에요. 너무나 진심으로 패션을 논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제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에 전전긍긍하는 게 무척 보잘것없이 느껴지더라고요. 작은 일로 내 열정을 망칠 수 없다는 마음도 강해지고요. 그러다 보니 저도 이들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어요. 이제 저는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니 직접 무엇을 하기보다는 젊은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도록 울타리를 만드는 역할을 하면 어떨까, 젊은 디자이너를 해외에 소개해서 K패션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요. 젊은 한국인 디자이너들이 좀 더 많이 세계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말이죠. K팝의 첫 단추를 끼운 SM의 이수만 프로듀서처럼, K패션의 세계화에 일조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어요.

한국인의 감성이 담긴 패션 브랜드를 선보이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상적인 브랜드는 어떤 색깔인가요.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최고의 퀄리티를 가진 옷을 ‘메이드 인 코리아’의 이름을 달고 만들고 싶어요. 다른 것은 몰라도 하이엔드 퀄리티에는 자신이 있거든요. 디자인에 대해 말해본다면, 조선 백자 같은 당당함을 가진 옷을 선보이고 싶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만드는 옷이 어떤 이유로든 이 사회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는 특히 그런 생각이 강해졌어요. 자연에게 피해를 덜 주는 디자인을 하고 싶고요. 동물이나 어린이처럼 약한 존재, 또는 저보다 어린 사람들이나 후배 디자이너들처럼 미래를 더 오래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가 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브랜드를 론칭하게 된다면 뮤즈로 삼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자신만의 세계와 주관이 있는 사람이 뮤즈가 되겠죠.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는 사람이면 좋겠고요. 제일 먼저 생각나는 분은 아주 오랫동안 팬이었던 윤여정 선생님인데, 요즘 너무 주목받고 계셔서 시대에 편승하는 것처럼 보일까 걱정이긴 하네요.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윤여정 선생님과 성격이 비슷하다는 말을 자주 하거든요. 김혜수 씨도 너무나 멋진 분이라 뮤즈로 모시고 싶고요.

미래의 파트너가 될 젊은 한국 디자이너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요.

절대로 기죽지 말 것, 자신이 좋아하는 부문을 찾을 것을 강조하고 싶어요. 경험이 없다 보니 주변의 이런저런 말에 흔들리기 쉽잖아요. 하지만 분명한 건 ‘모든 사람들은 각기 다른 취향을 가졌고, 모두를 만족시키는 디자인은 없다’는 거예요.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자신의 작업이 옳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오늘 하루만 일하고 말 게 아니라면 자신을 지키고 다듬어가면서 자기만의 색깔을 발전시키는 게 중요하겠죠.

롤 모델이 누구일지 궁금해요.

이순신 장군이에요. ‘패션 디자이너가 조선시대 장군을 롤 모델로 삼다니?’ 의아하실 수도 있겠지만 아시아 여성, 심지어 서른이 넘은 나이에 처음 외국 생활을 시작한 저로서는 늘 배수진을 쳤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했거든요. 너무나 외로움이 사무치는 날에는 광화문 한복판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 상을 떠올리면서, 12척의 배를 끌고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의 마음을 곱씹곤 했죠. 저도 그분처럼 가진 건 없지만 지략을 이용해 승리를 쟁취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디자이너 염미경을 넘어 인간 염미경의 꿈은 무엇인가요.

2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죽을 때 “와 너무 재미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거예요. 그러려면 제가 해보고 싶은 것을 직성이 풀릴 때까지 다 해봐야겠죠? 어떤 모습으로 죽고 싶은지 늘 생각해요. 내일 죽는다고 해도 후회 없이 사는 것이 제게는 가장 큰 꿈이에요. 다른 하나는, 일흔 살쯤 되었을 때 세상에서 두 번째로 예쁜 할머니라는 평가를 받는 거예요. 제일 예쁜 할머니는 좀 어려울 것 같고(웃음).

사진제공 염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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