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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power woman

미 국회에 입성한 한국계 여성 3인방 순자·은주·영옥의 전성시대

글 오영제

2021. 01. 29

제117대 미국 연방의회가 지난 1월 3일 공식 출범했다. 3명의 한국계 여성 의원들이 의회에 입성해 화제를 모았는데, 특히 메릴린 스트리클런드 의원은 한복 차림으로 등장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혼란 속 미국 대선이 끝나고, 이와 함께 진행된 연방 하원의원 선거도 마무리되었다. 공식 임기를 시작한 이번 117대 의회는 역사상 가장 많은 다양성을 보여주는 의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성과 유색인종, 성소수자, 초선 의원의 진출이 눈에 띄게 늘었기 때문이다. 전체 4백35명의 하원의원 중 여성은 1백18명으로 미 하원 역사상 가장 많고, 한국계 하원의원 또한 4명에 이른다. 한국계 하원의원 중 뉴저지의 한인 밀집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남성 의원 앤디 김(39)의 재선을 제외하면 새롭게 당선된 의원들은 모두 여성이다. 취임식에 한복을 입고 등장해 이목을 집중시킨 메릴린 스트리클런드(한국명 순자 스트리클런드, 59) 의원을 필두로 캘리포니아 48 선거구의 미셸 박 스틸(한국명 박은주, 66)과 캘리포니아주 39 선거구에서 당선된 영 김(한국명 김영옥, 59) 의원까지, 새로운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들의 등장 덕에 이번 의회를 지켜보는 미국 한인 사회는 상당히 고무된 분위기다. 미국은 단원제를 택한 우리나라와 달리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다. 상원의원은 외교·안보와 같은 국가적 업무를 주로 맡고, 하원의원은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하는 우리나라의 국회의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지금까지 이렇게 많은 수의 한국인이, 그것도 여성이 하원의원으로 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연방 하원의원 취임·개원식에 한복 입고 등장

미국 연방 하원의원 취임·개원식에서 한복을 입어 화제가 됐던 메릴린 스트리클런드 의원. 
TV로 취임식 장면을 시청할 구순의 어머니가 
자신을 쉽게 알아보도록 한 배려였다.

미국 연방 하원의원 취임·개원식에서 한복을 입어 화제가 됐던 메릴린 스트리클런드 의원. TV로 취임식 장면을 시청할 구순의 어머니가 자신을 쉽게 알아보도록 한 배려였다.

메릴린 스트리클런드 의원은 워싱턴주의 첫 흑인 하원의원이기도 하다. 한국인 어머니와 한국전쟁에 참전한 주한미군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이 고향이다. 만 한 살 반을 넘기던 해 아버지가 버지니아주 포트리 기지로 전보되면서 미국으로 이주해 워싱턴주의 항구 도시 타코마에 정착했다. 워싱턴대를 졸업하고, 클라크애틀랜타대에서 경제학 석사(MBA)를 받은 그는 노던생명보험사와 스타벅스 등에서 일하며 커리어우먼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메릴린을 정계로 이끈 것은 일하던 중 만난 놈 라이스 시애틀 시장이다. 라이스 시장의 권유로 타코마시의 시의원에 도전장을 내민 그는 2년간 시의회 의원으로 재임했고, 2010년 타코마 시장에 당선되어 2018년까지 임기를 이어갔다. 시장직을 마친 이후엔 시애틀 메트로폴리탄 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았다. 그리고 이번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는 ‘워싱턴주를 대표하는 첫 흑인 미국인이자 2백30년 의회 역사상 첫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그가 연방 하원의원 취임·개원식에서 한복을 입은 것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 그 이유가 무척 감동적이다. 바로 구순의 어머니가 TV에서 쉽게 그를 알아보도록 배려한 것. 메릴린은 이미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한국인임을 강조해왔다. 지난해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는 “어머니는 차별을 겪었고 언어 장벽과 사회제도 등 모든 부분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인으로서 경험과 영향은 어머니를 보면서 성장했던 것에 기반을 두고 있다”며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미국인들이 이해하도록 도울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한인들의 권익 증진 위해 힘쓸 것으로 기대돼

미셸 박 스틸 의원 역시 서울이 고향이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파견 근무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모두 일본에서 졸업한 그는 일본여자대학 1학년을 마친 1975년 미국으로 이민했다. 이후 LA 인근에 위치한 캘리포니아주 말리부의 페퍼다인대를 졸업하고 서던캘리포니아대(USC)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 숀 스틸 전 캘리포니아주 공화당 의장과 결혼한 후 한동안 평범한 주부로 지냈지만 이민 1세대로 지내며 느낀 여러 어려움과 이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그를 정치로 이끌었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혼자 옷 가게를 운영하셨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1980년대 초 캘리포니아주 조세형평위원회에서 큰 세금을 부과받았는데 이의 제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때 처음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1992년 LA 폭동을 겪으며 이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LA 폭동은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 때문에 발생한 아픈 역사다. 이를 현지에서 오롯이 마주한 그는 인종 간의 갈등 속에서 희생당하는 한인들을 보면서 한인 사회의 정치적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지역 정치에 참여해 LA 소방감독위원, LA 카운티 아동복지국감독위원, 한미 공화당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부시 행정부에서는 백악관 아시아 태평양계 자문위원을,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백악관 아시아 태평양계 공동 자문위원장을 지냈다. 

캘리포니아주 39 선거구에서 당선된 공화당 소속 영 김 의원은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나 13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괌에서 중학교를, 하와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남편의 권유로 정치계에 입문했다. 13선(選)을 한 에드 로이스 전 하원의원의 아시아 정책보좌관으로 21년 동안 일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 북한 인권, 위안부 문제와 같은 정책을 도맡았다. 그는 선거운동을 하던 당시 미국의 소리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미국과 한국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으며, 함께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한국계 미국인(Korean American)으로서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 그리고 얼마 전 이 약속을 실천하려는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최근 미국 하원에 ‘미주 한인의 날’을 기념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1백18년 전인 1903년 한인들이 미국에 처음 정착한 날을 기념하는 내용으로 의회 내 아시아태평양아메리칸코커스 의장인 주디 추 의원, 민주당의 지미 고메즈 의원과의 공동발의다. 



현재 미국 내 한국계 미국인은 1백80만 명에 달한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 주류 사회에 진출하고 이전보다 위상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불이익과 불평등이 존재한다. 앞으로 그들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한 많은 노력에 더해 한인의 권익 신장과 한미 관계 증진을 위한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진 게티이미지 뉴시스 
사진제공 미국하원 홈페이지, 메릴린 스트리클런드 공식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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