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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drug #issue

남양유업 · SK · 현대가 3세는 왜 마약에 빠졌나

EDITOR 이미나

2019. 04. 29

내로라하는 재벌가 3세들이 마약에 손을 댔다 잇따라 적발됐다. 최근 ‘버닝썬 게이트’로 경찰이 마약 범죄를 강력 단속하고 나선 가운데, 재계는 이들로 시작된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튀지는 않을지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모습이다.

#황하나 vs 박유천의 진실 게임

마약 혐의로 구속된 남양유업 외손녀 황하나 씨.

마약 혐의로 구속된 남양유업 외손녀 황하나 씨.

4월 4일 고 홍두영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이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조카인 황하나(31) 씨가 서울 자택 등에서 2015년 5〜6월과 9월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와 지난해 4월 향정신성 의약품인 클로나제팜 성분이 포함된 약품 2가지를 불법 복용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경찰은 황씨가 올해 초에도 필로폰을 투약한 정황을 포착했는데, 그녀는 경찰에 과거 연인 사이던 박유천과 함께 투약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씨와 박유천은 2017년 깜짝 결혼 발표를 했다가 2018년 결별 사실을 전한 바 있다. 박유천은 4월 10일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혐의가 인정된다면 연예인 박유천이 활동을 중단하거나 은퇴하는 것을 넘어 내 인생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박한 마음으로 왔다”며 “결코 마약을 하지 않았고 권유한 적은 더더욱 없다. 경찰서에 가서 성실히 조사받겠다”고 말했다. 4월 17일 MBC는 경찰이 확보한 CCTV에 박유천이 지난 2월과 3월 서울 한남동과 역삼동 등에서 마약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들고 가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박유천 측은 “CCTV 영상과 관련된 보도의 경우 경찰이 조사과정에서 묻지도 않은 내용이다. 묻지도 않은 내용을 집중 추궁했다고 보도한 것 자체가 명백한 허위 보도”라는 입장이다. 또한 경찰이 그가 마스크를 쓴 채 마약 판매상으로 추정되는 계좌에 돈을 송금하는 영상을 확보했다는 보도도 있었으나 박유천은 경찰에 “황하나의 부탁으로 돈을 입금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 투약 간이 검사에서 음성 반응이 나온 것은 박유천에게 유리한 정황이지만 정밀검사에서 결과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경찰은 박유천의 모발과 소변 등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정밀검사를 의뢰했으며 황씨와 박유천의 대질 조사도 검토 중이다. 

황씨와 함께 마약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유천.

황씨와 함께 마약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유천.

황씨는 과거 마약을 했지만 경찰의 ‘봐주기 수사’로 법망을 빠져나갔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2016년 필로폰을 수차례 투약하고 매수·매도한 혐의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대학생 조모 씨의 판결문에 황씨의 이름이 무려 8차례나 등장할 정도로 그가 사건에 깊숙이 연루돼 있었지만, 당시 경찰이 조씨만 구속 수사하고 황씨는 소환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1년 대마초 흡연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황씨는 당시 범죄 사실이 드러났다면 가중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컸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황씨가 2015년 한 블로거와 법적 분쟁을 벌일 당시 지인에게 “경찰청장이 우리 아빠랑 베프(베스트 프렌드)다” “지금 아예 경찰서에서 제일 높은 사람까지 만나고 오는 길이다”라는 등의 발언을 한 사실도 공개되면서 경찰은 당시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내사에 착수한 상황이다. 경찰은 일단 지난 4월 15일 황씨가 ‘홧김에 이야기했을 뿐 경찰에 아는 사람은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며, 수사 과정에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으나 대중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SK · 현대 창업주의 손자들도 연루

마약 혐의로 검찰에 송치 중인 SK 3세 최모 씨.

마약 혐의로 검찰에 송치 중인 SK 3세 최모 씨.

경찰은 이에 앞서 4월 1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SK가 최모(31) 씨를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씨는 SK그룹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장손자이자 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외아들로, 현재 SK그룹을 이끌고 있는 최태원 회장과는 5촌 조카와 당숙 사이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최씨는 SK그룹의 한 계열사에 근무하던 중 사무실에서 긴급 체포됐다. 



경찰은 최씨와 함께 현대가 3세 정모(29)씨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정씨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8남 정몽일 현대엠파트너스 회장의 장남이다. 지난 2월 중순 영국 런던으로 출국한 이래 행방이 묘연했던 정씨는 변호인을 통해 곧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들의 행각은 앞서 지난 2월 20대 마약 공급책 이모 씨가 경찰에 구속되면서 들통났다. 수사 결과 최씨는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18차례에 걸쳐 이씨 등으로부터 전달받은 전자담배용 액상 대마 등을 피운 것으로 드러났다. 대마 간이 시약 검사 결과 양성 반응이 나온 최씨는 경찰에 “호기심에 피웠다”며 혐의를 대부분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책 이씨는 4월 19일 열린 재판에서 “재벌가 3세들에게 마약을 판매한 것은 아니고 돈을 받고 대마를 구해서 전해줬다”고 진술했다.

마약 둘러싼 재벌가 빛과 그림자

황하나 씨와 최씨, 정씨 등은 대한민국 재계를 대표해온 재벌 그룹의 일원에 속하지만 경영권을 승계받거나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의 인물은 아니다. 특히 남양유업은 사회적 물의를 빚은 황씨가 기업과 연관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눈치다. 또한 이들은 모두 해외 유학파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재벌 3세들은 대부분 미국의 명문 보딩 스쿨을 거쳐 대학에 진학하는데,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대마 등 마약에 접근하기 쉬운 환경에 놓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미 일부 지역에선 대마가 합법화됐을 정도로 비교적 쉽게 대마를 구할 수 있는 데다, 성장기 대부분을 한국에서 떠나 지내는 만큼 한국의 사회 규범을 익힐 기회도 적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와 정씨에게 마약을 공급한 이씨 역시 유학 중 이들과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됐다고 진술했다. 실제 지난 10년간 마약 관련 혐의로 경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재벌가 자제들은 대부분 유학 경험이 있었다. 특히 이번에 불구속 입건된 현대가 3세 정씨의 여동생(28) 역시 지난 2013년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벌금 3백만원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범행 ‘수법’ 또한 놀라움을 안긴다. 최씨와 정씨는 최근 보안 수준이 높은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을 이용해 공급책인 이씨와 접촉했다. 이씨에게 원하는 종류의 대마를 주문하고 돈을 입금하면, 이씨가 이를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으로 바꿔 마약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주로 찾은 것은 ‘액상 대마’ 외에도 ‘대마 쿠키’로, 1g당 가격이 금값의 3배가량 되고 환각성은 40배가량 되는 고농축 변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 3세들이 마약의 유혹에 쉽게 빠지는 이유에 대해 임준태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여성동아’와의 통화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동년배들과 비교했을 때 이들은 20대, 빠르면 10대부터 다른 성장과정을 거치게 된다”며 “해외에서 생활한 기간이 길었던 만큼 마약에 대한 경각심 또한 일반인에 비해 낮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권을 승계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성장한 주류 재벌 3세들의 경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역할과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자기 최면도 커지면서 스스로를 통제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주류에서 벗어난 경우는 이들과는 삶의 경로가 다르다. 

임 교수는 “재벌가에서 자라나 입시나 취업 등 일반인들이 느끼는 극심한 경쟁을 경험할 필요가 없는 재벌 3세들의 경우 아무래도 삶에서 느끼는 긴장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며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는 쾌감을 점점 탐닉하게 되는 마약 범죄의 특성이 이 같은 배경과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뉴스1 셔터스톡 디자인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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