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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만 통쾌하다 송곳

우리가 알아야 할 삶의 이야기

글 · 정덕현 문화평론가 김성욱 자유기고가 | 사진 · JTBC 제공

2015. 12. 15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송곳’이 잔잔한 화제를 낳고 있다. 거대 유통회사의 노동 착취와 노조 탄압, 그 안에서 최소한의 생존권을 찾으려 고군분투하는 푸르미 마트 직원들은 비단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외면할 수 없는 ‘송곳’ 관전 포인트&주인공 인터뷰.

아프지만 통쾌하다 송곳
JTBC 드라마 ‘송곳’의 주인공 이수인(지현우)은 스스로를 ‘걸림돌’이라고 부른다. 대충 현실이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면 별로 큰 문제가 없을 텐데 어찌된 일인지 그는 그렇게 살아갈 수가 없다. 그가 걸림돌의 삶을 시작한 건 학교에서부터다. 촌지를 노골적으로 요구하며 이런저런 핑곗거리로 그에게 ‘매타작’을 하는 선생님 앞에서 그는 묵묵히 엉덩이만을 내밀면서 걸림돌이 됐다. 부조리한 현실은 군대에서도 똑같이 펼쳐졌다. 육군사관학교 시절,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찍으라는 고위 간부의 회유에 정치 개입이라며 반기를 들었고, 그 결과 그는 도망치듯 군대에서 나왔다. 이후 외국계 대형 마트 ‘푸르미’에 입사한 그는 ‘비정규 직원 전부를 해고하라’는 회사의 부조리와 맞닥뜨리고, 이번에도 역시나 “부당 해고”라 주장하며 고난을 자초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로 부조리 투성이다. 이수인은 이 주머니 속의 부조리들이 바깥으로 뚫고 나오게 만드는 송곳 같은 인물이다. 그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가 성장하면서 차례로 거치는 학교와 군대는 부조리들이 학습되고 이어지는 공간이다. ‘송곳’은 이수인을 통해 노동운동의 본질과 실질적 방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존의 노동운동을 다룬 드라마들과 차별화된다. 부진노동상담소 구고신(안내상) 소장이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 앞에서 왜 노동운동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지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장면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아프지만 통쾌하다 송곳
유쾌한 노동운동이란 이런 것

흥미로운 건 우리가 흔히 노동운동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과 편견을 이 드라마가 상당 부분 깨주고 있다는 점이다. 386세대라면, 노동운동이 환기시키는 걸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는 처절한 사투의 현장이라는 것을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송곳’은 이처럼 무거울 수밖에 없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경쾌함을 잃지 않는다. 이는 바로 이수인이 서 있는 독특한 위치에서 비롯된다. 이수인은 푸르미 마트의 채소 담당 관리자다. 그는 직접적인 해고 대상이 아니다. 노동운동을 소재로 다루면서도 주체라 할 수 있는 노동자를 세우지 않은 건 이 드라마가 일종의 ‘거리 두기’를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1980년대 노동운동을 다룬 많은 작은 영화들이 결국 당사자들만의 공감대에 갇히게 된 건 어쩌면 그 노동운동이 특정한 사람들만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게 한 무거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송곳’이 무거움을 덜어내자 노동운동은 훨씬 더 경쾌한 일로 그려진다. 대단한 판타지나 멜로 없이도 ‘송곳’은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작은 시도들, 그것으로 얻는 성취감, 동료들 간의 훈훈한 정 등으로 쏠쏠한 재미를 선사한다. 결국 드라마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노동운동은 무언가를 거스르는 불편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를 되찾는 일이라는 것이다. 특정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특수한 행위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하는 기본 상식이라는 것을 드라마는 말해주고 있다.

아프지만 통쾌하다 송곳

‘송곳’에서 푸르미 마트 직원들에게 노동운동의 실질적 방법을 알려주는 이수인과 구고신. 이들이 전하는 건 노동운동은 누구나 알아야 할 우리 삶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 ‘인생 캐릭터’ 만난 지현우



아프지만 통쾌하다 송곳
지현우(31)가 드라마 ‘송곳’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다. 극 중 그는 송곳처럼 뚫고 나오는 정의감 때문에 번번이 ‘갑’과 맞서는 이수인 역을 맡아 섬세한 연기로 호평을 받고 있다. 원작인 웹툰 속 인물과 싱크로율 100%에 가까운 연기를 선보이며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올드미스 다이어리’ 김석윤(‘송곳’의 연출자) 감독님과의 인연으로 캐스팅이 됐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했어요. 원작이 워낙 많은 사랑을 받아서 부담감도 컸고요. 대본까지 거의 다 나온 상태에서 연기를 못하면 정말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웃음).”

노동운동을 다룬 드라마인 만큼 너무 심각해서 보기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에 대해 지현우는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 사회를 한 번쯤 되돌아보면 좋겠다”고 말한다. ‘송곳’을 만나기 전까지 노사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그는 촬영 전 대형 마트 근로자들을 비롯해 광화문 등지에서 시위 중인 노동조합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처음으로 노동운동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지현우는 그동안 로맨스 전문 연기자라는 인식이 강했던 만큼 이번 작품을 계기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배우로 거듭나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예전에는 연출자를 보고 작품을 선택한 적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작품을 먼저 보게 되더라고요. 배역의 크고 작음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고 싶고, 혼자 튀려 애쓰기보다 여러 배우들과 하모니를 맞춰가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 통쾌한 언변으로 화제, 안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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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에서 부진노동상담소 소장 구고신으로 분한 안내상(51)은 첫 등장부터 남달랐다. 말 한마디로 상대를 제압하는 화려한 언변과 그 속에 스며든 배려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푸르미 마트 노동자들에게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어록으로 화제가 될 만큼 안내상은 매회 시청자들에게 사이다처럼 짜릿한 통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정작 그는 역할이 주는 무게 때문인지 유난히 큰 책임감을 느끼며 연기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는 그는 “당시 나는 구고신처럼 앞에 나서 맞서지 못했다. 연기를 하면서도 ‘내가 과연 구고신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가 이번 작품을 선택한 것은 원작을 읽으면서 구고신에게 점점 더 매료됐기 때문. 안내상은 구고신에 대해 “세상을 냉철하게 꿰뚫어보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여러 작품에 출연하며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만들어온 중견 배우지만, 그는 지금도 배우라는 타이틀이 부끄럽고 낯설다고 한다.

“배우가 극 중 인물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자신이 없어지고, 일상생활을 할 때도 어느 것이 연기이고 어느 것이 나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순간이 찾아와요. 앞으로도 그런 경험을 많이 하고 싶어요. 대본 속 활자로 존재하는 인물이 내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느낌, 그게 좋아서 지금까지 연기를 하고 있어요.”

안내상은 배우로서 이미지 변신에 대한 욕심 대신 스스로를 만족시키고 그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송곳’ 역시 성공적인 선택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디자인 · 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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