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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JOEL’S KALEIDOSCOPE

샤넬과 티파니의 변심이 말해주는 것

글·조엘 킴벡

2015. 03. 12

세상에는 트렌드를 읽어내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연일 터져 나오는 뉴스로 읽어내는 사람도 있을 테고, 시중에서 잘 팔리는 물품 리스트로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인기를 끄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영화, 혹은 ‘스트리트 패션’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가늠하는 이도 있다.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비속어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흐름을 읽어내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패션과 뷰티 브랜드의 광고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이를 통해서 트렌드를 읽어낸다. 매 시즌 쏟아져 나오는 각양각색 콘셉트의 패션 및 뷰티 브랜드의 광고들. 거기에서 단순히 판매하려는 상품에 관한 정보뿐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히든 메시지(Hidden Message)’를 읽어낼 수 있다면, 시대의 트렌드도 함께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고 ‘지름신’을 내려 지갑을 열게 하는 마법의 주문인 광고, 그중에서도 꽃이라 불리는 패션 및 뷰티 브랜드의 광고를 통해 요즘 시대를 관통하는 트렌드를 한번 읽어내려 가볼까.

샤넬의 새로운 뮤즈는 아이가 있는 유부녀?

‘샤넬 No. 5’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죽었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 듯한 전설의 섹시 여배우, 마릴린 먼로다. “잠잘 때 뭘 입고 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담하게도 “샤넬 No. 5만 입고 잔다”고 한 그의 대답은 50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회자되는 전설적인 코멘트이자, 광고 역사상 가장 훌륭한 슬로건이라고 해도 손색없다. 그렇게 샤넬 No. 5는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처럼 섹시하고 도발적이며 관능적인 향수의 대명사로 군림하며 롱 셀러로 사랑받아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향수의 종류도 엄청 많아지고, 향의 트렌드 역시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법. 장점으로 여겨졌던 샤넬 No. 5의 역사와 전통은, 클래식이라는 이면에 올드하다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결국 샤넬 No. 5는 새로이 향수를 구매하기 시작하는 젊은 층이 아닌, 클래식한 것이 얼마나 멋스러운지를 아는 경제적 여유와 연륜을 갖춘 사람들을 공략하는 영민한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2012년 광고 역사상 처음으로 남성 모델인 배우 브래드 피트를 기용해서 큰 효과를 본 샤넬 No. 5는 이번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광고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아이를 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초강수를 두었다. 남자 모델도 기용했는데 유부녀를 모델로 내세운 것이 뭐가 대수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모델이 유부녀라는 점보다 광고에 아이가 직접 등장한다는 것이 쇼킹한 포인트다. 모델로 발탁된 지젤 번천 역시 실제로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광고 영상 속에 나오는 딸의 이미지, 그것도 아기(baby)가 아닌 적어도 유치원 이상은 다닐 것 같은 어린이(kid)를 둔 엄마가 샤넬 No. 5의 주 소비자층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전 같으면 결혼이나 출산, 자녀의 이미지는 섹시한 분위기에 반한다는 이유로 피하려 했다. 샤넬 No. 5의 새로운 광고는 바야흐로 성숙한 여성상을 표현해내는 데 자녀가 플러스 요인인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육아와 자녀 교육에 찌들어 있는 엄마의 모습은 아니다. 아이가 꽤 자랐지만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데 소홀하지 않으며, 스포츠(서핑)를 즐기는 역동적인 삶의 자세에, 결혼 생활 중인지 아니면 이혼을 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기품을 잃지 않아 남성에게 이성적으로 매력적인 원숙함을 어필한다. 이른바 ‘Sexy’가 아닌 ‘Sensual’한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밸런스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일과 사랑, 섹시함과 지적인 요소 그리고 독립적이며 건강함까지 갖춘 여성이야말로 샤넬 No. 5가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의미의 성공한 여성상이 아닐까 싶다. 아침 드라마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다들 악을 쓰고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고 복수를 일삼는 막장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봐서 그렇지, 여주인공을 잘 살펴보면 결혼해서(혹은 이혼하고) 아이 하나 정도 둔 여성이 많다. 반면 남자 주인공은 총각에 심지어 대부분 여성보다 나이도 어린 경우가 많다. 한국의 드라마가 샤넬 No. 5의 여성상에 영향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명품, 돈 많은 동성커플에게 눈을 돌리다

뉴욕은 이제 동성 간의 결혼이 합법이다. 미국은 개방된 듯 보여도 보수적이기 이를 데 없는 사회라고 여겼는데, 생각보다 일찍 성에 관한 한 평등한 세상이 온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정권이 이렇게 쉽사리 동성 간의 결혼을 용인해주기 시작한 것에 대해 혹자는 경제 논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성 간의 결혼이 매년 감소하는 추세로 들어선 지 오래이기에, 결혼과 관련된 경제 활동 역시 정체 상태다. 다들 알다시피 결혼이라는 것은 일생에 한 번 할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이기에 다소 비싸고 부담이 되더라도 이왕이면 더 좋은 것, 최고의 것으로 혼수를 마련하는 게 사람의 심리고 시장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결혼 준비가 시작됨과 동시에 많은 소비-즉 예물부터 시작해 가구 및 집기, 선물, 그리고 신혼 생활을 영위하게 될 집까지-가 이루어진다. 이런 소비가 매년 줄어드는 것은 나라 전체의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하면 출산율도 떨어져 인구까지 줄어드는 타격을 입게 된다.

그렇다면 대안은 한 가지. 인구가 더 늘어나지는 않겠지만, 혼인률을 높일 수 있는 동성 간의 결혼을 합법화하는 것이다. 그 덕분인지 지금 뉴욕의 경기는 9·11테러 이후 최고로 좋다고 이야기될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다른 곳도 아닌 세계의 중심이라 불리는 뉴욕에서 동성 간의 결혼이 허용되다니…. 예전이라면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거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가서 결혼식을 올려야 했던 많은 뉴욕 거주 동성 커플들이 줄지어 결혼과 관련된 소비 행위를 시작하다 보니 경제가 윤택해질 수밖에. 뉴욕은 게이나 레즈비언들이 큰돈을 만지는 경우가 많기에 소비 수준도 남다른 것이 사실이다.

돌아가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성 패션지는 하나같이 동성애적인 시선이 담긴 패션 브랜드의 광고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결혼의 징표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반지를 판매하는 주얼리 브랜드들은 일찌감치 대놓고 동성애자들을 겨냥한 광고를 선보이고 있는 것. 사랑을 서약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뉴욕의 5번가에 플래그십 매장이 위치한 ‘티파니’의 경우, 새롭게 론칭한 ‘Will You’라는 이름의 광고(Will you marry me?·저와 결혼해 주실래요?라는 의미의 광고)에서 파격적으로 남남 커플을 등장시켜 남녀 커플의 반지 디자인과 다른, 남성들이 선호할 만한 2개의 심플한 반지를 선보이고 각종 매거진에서 이를 전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광고가 통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미국은 이미 ‘돈 쓰는데 성적 차별이 웬말이냐’고 말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모든 나라가 지금 ‘경제, 경제, 경제’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고, 한국 역시 이를 부정할 수 없기에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이런 광고들을 보게 될 날이 올 수도 있다.

샤넬과 티파니의 변심이 말해주는 것
Joel Kimbeck

뉴욕에서 활동하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팰트로, 줄리아 로버츠, 아만다 사이프리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현재 ‘퍼투’를 이끌며 패션 광고를 만들고 있다. ‘레드 카펫’을 번역하고 ‘패션 뮤즈’를 펴냈으며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에 칼럼을 기고한다.

디자인·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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